소설리스트

재벌 3세는 조용히 살고 싶다-306화 (306/1,021)

#306.

갑작스러운 사과 발표에 오히려 DL 화재 직원도 큰 충격을 받았다.

설마 이런 일이 벌어질 것이라고는 누구도 상상을 못 했다.

남수현 변호사의 승리였다.

거의 모든 언론에서 남수현 변호사를 조명하면서 이번 특정금전신탁이거나 이와 비슷한 편법에 관한 이야기가 나왔다.

결국 국회에서도 여론에 떠밀려서 특별법 제정을 일사천리로 진행했다.

최민혁은 뉴스 특종으로 나온 이 사태를 보면서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이번 일로 DL 그룹도 자금 확보가 쉽지 않겠어요. DL 화재 돈줄이 당분간은 막혀 버릴 테니. 하지만 이대로 둘 수는 없지.’

김명준 과장은 사태가 생각보다 더 커지자 걱정스러운 눈으로 바라봤다.

“괜찮겠습니까?”

“어차피 저랑 아무런 관련이 없습니다. 그러니 절 걸고넘어지는 사람은 없을 거예요. 오히려 오성 전자가 문제겠죠. 하지만 안 회장은 이번 일에 대해서 변명 따위는 하지 않을 겁니다. DL 그룹에 대해서 이를 갈고 있었을 테니까.”

그랬다.

지금 사태의 가장 심각한 문제는 오성 그룹과 DL 그룹이 돌아설 수 없는 강을 건넜다는 점이다.

당장은 DL 그룹이 힘이 없어서 고개를 숙이겠지만 그게 계속된다고 보기 어렵다.

오성 그룹을 공격할 방법은 생각보다 많기 때문이었다.

최민혁은 방긋 미소 지었다.

“중요한 것은 두 기업의 싸움이 지금부터 본격적으로 격화될 거라는 겁니다. 오성 그룹이야 뭐 큰 타격을 입겠습니까. 하지만 DL 그룹은 상황이 달라요.”

“하지만 아직 DL 그룹은 여전히 건재합니다.”

“김상구 회장이 현재 구도에 만족하면 그렇게 될 겁니다. 하지만 지금처럼 욕심을 내는 상황에서는 상황이 다를 겁니다.”

“설마 다른 쪽에서 자금을 끌어온다는 말씀입니까?”

“네. 마침 그 좋은 대상이 물 건너 있지 않습니까.”

“일본계 자금을 말씀하시는군요.”

“저금리로 일본 자금을 끌어당겨 쓰는 기업이 어디 한둘입니까. 지금까지는 자금 사정이 탄탄해서 그럴 일이 없었겠지만, 앞으로는 사정이 다를 겁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일본 자금으로 얼마든지 수익 창출을 한다면 상황이 다르지 않을까요?”

“하하하, 재미있는 말씀을 하시는군요. 장 실장이 왜 제 말대로 우리 그룹을 구조조정한다고 생각하십니까. 안 좋은 신호가 계속 나오기 때문이죠. 물론 지금 이대로는 알 수가 없어요. 상황이 바뀐다면 또 다릅니다.”

“…….”

김명준 과장은 그제야 최민혁의 의도를 깨닫고는 혀를 찼다. 한편으로 정말 한국 금융 상황이 나빠질까에 대해서는 의문이었다.

‘하지만 실장님 이야기가 이제까지 틀린 적은 없잖아. 더욱이 무궁화 위성 부품 사건은 정말 소름 끼쳤으니까.’

최민혁은 피식 웃으면서 한 가지 일을 지적했다.

“일단 우리 첫째 큰아버지도 정신을 차린 것 같으니, 그쪽도 신경을 써주세요. 이제까지 조용히 있다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으니까.”

“…알겠습니다.”

* * *

최문경 부회장은 국내에 돌아온 후에 겉으로는 쥐 죽은 듯이 지냈다.

하지만 수면 밑에서는 KM 인스트루먼트 김환진 사장을 비롯한 이번 KM 그룹 구조조정 대상에 오른 이들을 비밀리에 만났다.

비록 지오텍 처리 때문에 최민혁 실장 인기가 그룹 내에서 독보적이지만 경영진은 이야기가 좀 다르다. 특히 피해를 본 이들은 최민혁 실장에 대한 반감이 그 어느 때보다 컸다.

다만 워낙에 최민혁 실장 인기가 압도적이라서 몸을 사렸다.

그들 중에는 최용욱 회장을 지지하는 중도파도 있었다.

이들조차 최문경 부회장이 내미는 손을 거절하기는 힘들었다.

즉 KM 그룹은 겉으로는 최민혁 실장 인기가 독보적이지만 피해를 당한 부장급 이상 직원은 오히려 그 반대였다.

최문경 부회장으로서는 오히려 중도 지지층까지 흡수할 수가 있어서 최민혁이 고마웠다.

하지만 그는 최민혁이 처리한 지오텍 문제를 조용히 지켜봤다.

“HY 전자가 한국 항만전화와 30억 규모의 단독 계약을 체결했다라.”

지오텍과 손을 잡기가 무섭게 이룩한 성과.

이번 협상은 산악, 빌딩이 밀집해 있는 도시 지역 모델을 기준으로 삼았다.

이 계약은 시작에 불과했다.

“서울, 광주 개통도 시작이라니. 정말 민혁이 말이 맞는 것일까?”

권재홍 비서실장은 냉정했다.

“지금까지 최 실장이 한 일을 본다면, 마냥 좋게만 볼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시장 자체는 나쁘지 않잖아. 경기 지역까지 포함한다면 적어도 200억 가까운 계약이잖아. 결코, 가볍게 볼 수는 없어.”

“그렇게 본다면 부산을 빼놓기 어렵습니다. 300~400억 시장은 족히 될 겁니다.”

“그런데도 최 실장 편을 들겠나?”

“하지만 이제부터 시작입니다. 최근 제가 이 사업에 뛰어든 중소기업 숫자만 모두 20곳이 넘습니다. 경쟁이 격화되면, 과연 정부가 지금처럼 대기업을 밀어만 주겠습니까?”

“그거야…….”

“최민혁 실장이 걱정하는 것은 당장 초기 시장을 말하는 것이 아닐 겁니다. 앞으로 TRS 관련 시장을 말하는 건데, 국내 시장은 너무 작습니다.”

“HY 전자가 그걸 모를까?”

“모를 겁니다. 그저 모바일 사업 붐이 일어나니, 거기에 편승해서 나서는 것뿐입니다. 굳이 우리까지 끼어들 여지는 없습니다. 오히려 지오텍도 이런 상황 때문에 기존 협상을 취소했고, 그걸 다행이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그래서 최 실장이 잘했다?”

“그런 뜻이 아닙니다. 지금 일어나는 DL 그룹 사태를 봐도 답이 나옵니다.”

권재홍 비서실장이 비서실을 총동원해서 DL 그룹에서 있었던 일을 조사한 보고서를 내놨다. 이 보고서는 기존 보고서와는 많이 달랐다.

아예 작정하고 최민혁 실장을 중심으로 만든 보고서이기 때문이다.

물론 최민혁 실장이 직접 이 사건에 연루되었다는 흔적은 없었다.

그래도 연결 고리가 꼼꼼하게 드러났다.

안현수 팀장, 남수현 변호사를 시작으로 일어난 일에 대한 것이다.

특히 권재홍 비서실장은 최민혁 실장이 최근 권태성 실장을 만나서 일어난 일까지 파악했다.

“…이건 또 뭐야? 무궁화 위성에 불량 부품을 사용했다니?”

“그것 때문에 미국 록히드 마틴에서도 난리가 났습니다. 알고 보니, 중간에 비용 절감을 위해서 기존 부품을 사용했습니다. 이 일에도 최민혁 실장이 손을 썼다는 이야기가 파다합니다.”

“증거도 없고?”

“이번 일을 문제 삼은 권태성 실장도 처음에는 아무런 증거를 확보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최민혁 실장을 만나고 난 후에 갑자기 명확한 증거를 내놓았습니다. 이건 최 실장이 연루되지 않았다면 있을 수가 없는 일입니다.”

“흠.”

정황 증거다.

아쉽게 최민혁 실장이 움직이는 동선을 추적할 수가 없어서 대안으로 선택한 방법이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생각보다 명확했다.

최문경 부회장도 혀를 내둘렀다. 그 역시 DL 그룹을 딱히 좋아하지 않았다. 최훈열 전무를 부추긴 것도 의도적이었다.

KM 전자 문제가 터지면 최훈열 전무가 날아가는 불문가지.

그 중간에서 이익을 보려고 했다.

그만큼 그에게도 DL 그룹은 부담스러운 상대였다.

그런데 조카 최민혁이 손을 쓴 이후에 DL 그룹은 정말 휘청였다.

그 역시 특종으로 나온 DL 그룹 김희찬 부사장의 기자회견을 지켜봤다.

“그런데 웃기네. DL 화재 사장이 물러나다니. 아니 그러면 김희찬 부사장이 결국 임시 사장을 대행한다는 이야기잖아.”

“그래도 김현탁 사장도 지난 일에 관한 책임을 지고 현재 DL 스카이에서 물러나기로 했습니다.”

“정말 저 사태 배후에도 민혁이 그놈이 있어?”

“확신합니다!”

“그런데 이 보고서는 오성 전자의 권태성 실장이 나섰다고 되어 있잖아.”

“권태성 실장이 아무런 이유도 없이 DL 그룹을 공격하기는 힘듭니다.”

“하, 정말 그렇다면 민혁, 이놈은 정말 대단한 놈이네. 난 다른 것을 떠나서 무궁화 위성 퓨즈 문제를 어떻게 안 것일까 그게 더 궁금해.”

“사실 그 부분은 따로 전담 팀을 꾸려서 조사 중인데, 아직까지 밝히지 못했습니다. 록히드 마틴이 미치지 않고서야 무궁화 위성 부품 내역을 공개할 리가 없기 때문입니다.”

“…….”

최문경 부회장은 그제야 보고서에 마크된 ‘?’ 자료를 살피면서 눈살을 찌푸렸다. 이미 수차례 경험한 일이었다. 이제는 특별할 것도 없었다. 지오텍 문제만 해도 자신은 아무리 답을 찾을 수가 없었는데, 최민혁은 너무 쉽게 답을 찾았다.

권재홍 비서실장 역시 이미 유사한 경험을 한 적이 있기 때문에 오히려 다른 문제를 넌지시 걸고 넘어갔다.

“그런데 회장님이 정미선 씨가 촬영 중인 촬영장을 찾아갔다고 합니다.”

최문경 부회장은 안 그래도 최민혁에 대한 감정이 좋지 않은데, 최민혁 어머니인 정미선을 좋게 생각할 리 없었다.

“아니, 갑자기 왜?”

“확실한 것은 아닙니다만…….”

“권 실장, 자꾸 쓸 곳 없는 소리를 할 건가?”

“…아무래도 혼사 이야기가 나오는 것으로 압니다. 대상은 오성 그룹의 막내 안지연이라는 설이 있습니다. 나이가 어려서 당장은 약혼부터 먼저하고…….”

“하.”

최문경 부회장은 이마를 부여잡았다. 그 역시 사전 보고를 듣지 않았다면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 상황은 좀 달랐다.

KM 그룹과 DL 그룹의 갈등이 문제였다.

최용욱 회장 성격이라면 나올 대답은 뻔했다.

그런데 자신은 결코 이 혼사를 진행하게 둘 수는 없었다.

하지만 그도 바보는 아니다. 이제까지 옆에서 지켜본 최민혁 성깔이 얼마나 지독한지 잘 안다. 아버지 이야기에 최민혁이 따를 것 같지는 않았다.

“…설마 민혁이 그놈이 정략결혼을 따르지는 않겠지?”

“그렇게 생각은 합니다. 다만 정미선을 호적에 올리겠다는 제안을 한다든지 한다면 상황이 어떻게 될지 알 수가 없습니다.”

“아, 진짜 돌겠네.”

“…정미선 씨에 대해서는 제가 최대한 알아보겠습니다.”

“하지만 조심해야 할 거야. 아버지가 이미 손을 댔으니, 뒤에서 지켜보고 있을 거야. 괜히 긁어서 부스럼을 내지 마. 민혁이 그놈이 괜한 오해를 한다면 미친놈처럼 나설 수도 있어.”

“…알겠습니다.”

권재홍 비서실장은 한숨을 내쉬었다. 돌아가는 상황이 정말 마음에 들지 않았다. 안 그래도 복잡한 KM 그룹 내부에 정미선이 끼어든다면 정말 상황이 예측하기 힘든 방향으로 흘러갈 것이기 때문이다.

‘하아, 회장님 생각은 이해가 되지만 이미 다 지난 일을 왜 복잡하게 만들어서 평지풍파를 일으키려고 하는 것일까?’

* * *

정미선은 영화 촬영장 분위기가 최용욱 회장 방문 이후에 완전히 바뀐 것을 확연하게 깨달았다. 그녀는 상상도 못 한 일이었다.

더욱이 최용욱 회장 방문 후에 아들 최민혁 행보를 유심히 지켜봤다.

그런 중에 또 터진 것은 바로 DL 그룹 소송 사태였다.

대문짝만 하게 나온 뉴스 때문에 그녀도 모를 수가 없었다.

‘설마 저 일에도 민혁이가 연루된 것일까?’

사실 최용욱 회장에게 DL 그룹 이야기를 듣지 않았다면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런데 그 방법이 문제였다.

그녀는 아무리 생각해도 자식이 DL 그룹에 어떻게 손을 썼는지 상상조차 하기 힘들었다.

그녀는 대신 이미 촬영 시작부터 괴로워하던 김승연을 마음껏 위로해 주었다.

“우리 시아버님 대단하지?”

“선배님, 정말 고마워요.”

눈물까지 글썽이는 김승연은 이제까지 당한 고통을 가까스로 떨쳐냈다. 하지만 지금 남아 있는 마음의 상처가 문제였다.

김승연 모습은 그녀 자신의 모습과 다르지 않았다.

감수성이 예민한 그녀 성격이 바로 그랬기 때문이다.

정미선은 문득 아들 최민혁을 떠올렸다. 특히 중매 문제는 간과할 수 없었다. 만약 자신이 허락한다면 최민혁은 최용욱 회장이 소개한 여자를 만나야 했다.

그녀는 문득 아들 최민혁의 사정이 궁금했다. 간혹 뉴스로 아들 소식을 듣고는 있었지만, 자신이 너무 아들 소식에 무심했다는 것을 알았다.

과거에는 최민혁 소식을 듣는 것만으로 이미 죽은 남편을 떠올리기 때문에 고통스러웠지만, 지금은 사정이 달랐다.

이전과는 달리 정신적인 고통이 심하지 않았다.

‘시아버지의 방문 때문일까?’

정미선은 문득 자신이 달라진 것도 최민혁의 행보 때문이라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 특히 TV 뉴스에도 나온 IFA 기조연설을 할 때 아들 최민혁의 모습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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