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벌 3세는 조용히 살고 싶다-283화 (283/1,021)

#283.

그런데 이젠 그것도 한계였다.

눈물이 흐르는 것을 억지로 참았다.

“야, 너 미쳤냐? 파티 자리에서 울면 어떻게 하자는 거야?!”

“죄, 죄송해요.”

김재열은 주변 시선을 의식해서 계속 미소를 짓다가도 송도연을 한쪽으로 몰았다. 그는 최민혁이 어디 있나 싶어서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아직 안 왔나?’

문득 김현탁 사장에게서 들은 이야기를 떠올렸다.

최민혁이 어떤 인간이고, 그를 조심하라는 경고를 수십 번이나 들었다.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지. 그 새끼가 아무리 변해도 그게 말이 되나.’

김재열은 김기범과 같이 어울려 다니면서 최민혁과 자주 만났다. 외가 가족 모임이 있을 때도 늘 그와 같이 지냈다.

그때마다 최민혁은 그의 밥이었다.

‘최민혁, 그놈은 최 회장이 내세우는 얼굴마담일 뿐이야.’

김재열은 최민혁을 계속 찾아다녔기에 가까이 와서 인사하는 이들을 대충 넘겼다. 심지어 송도연에게 관심을 보이는 이들조차 밀어냈다.

“아, 좀 물러나세요.”

“잠깐 이야기만 하겠습니다.”

“일없다니까!”

“아, 그 너무한 것 아닙니까. 파티에 온 것 자체가 인맥을 넓히려는 것일 텐데, 왜 당신이 일방적으로 나서는 겁니까?”

“나? 이 아이 오빠야. 그래도 무시할래?!”

눈을 부라리는 김재열 모습에 질린 이들은 뒤로 물러나고 말았다.

딱히 주먹을 휘두르지 않아서 파티장 곳곳에 서 있는 경비도 나서지 않았다.

김재열은 오히려 그런 이들을 노골적으로 비웃었다.

‘하, 발정이 난 개가 왜 이렇게 많아.’

다행히 얼마 안 있어 최민혁이 나타났는데, 김명준 과장은 파티 입구에서 물러났다.

김재열은 푸른 빛 정장 때문에 한눈에 시선을 끄는 최민혁 모습에 눈살을 찌푸렸다. 그가 아는 최민혁과는 확실히 달랐다.

긴 코트를 넘기는 행동이 그렇게 자연스러울 수가 없었다.

자연스럽게 피어나는 압도적인 기세가 주변을 완전히 휘어잡았다.

그런데 최민혁을 본 이들은 동경 어린 눈으로 멍하니 쳐다보았다.

[와, 저 친구가 그 유명한 최민혁 실장이야?]

[나도 소문으로 많이 들었지만, 실물은 생각 그 이상이야!]

인생 2회차 이후에 꾸준한 운동으로 다져진 최민혁은 외모만으로 시선을 끌었다. 연예인 어머니 유전자를 물려받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보다는 KM 전자를 둘러싸고 일어난 일이 더 컸다.

비록 최용욱 회장의 바지사장이란 소리가 있기는 하지만 KM 전자 현재 오너는 최민혁이 분명하기 때문이었다.

파티에 실망한 여자들이 최민혁에게 다가가는 것은 자연스러웠다.

하지만 최민혁은 힐끗 화려한 파티 분위기에 주눅이 든 사슴 같은 송도연을 쳐다보았다. 흥분으로 상기된 모습은 파티장을 찾은 다른 여인과는 확연히 차이가 있었다. 외모 때문이 아니다. 백지같은 그녀의 청초한 미모 때문이다.

김재열은 그래서 더 속상했다.

‘젠장 괜히 아깝네.’

하지만 이를 악물었다. 송도연을 이용한 결과는 그만한 가치가 있었다. 그는 송도연에게 귓속말에 다시 속삭였다.

“이번 일만 잘 끝내면, 약속대로 2억을 주마.”

“저, 정말이죠?”

“내가 언제 거짓말하는 거 봤어?”

“아, 아니에요.”

송도연은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2억이면 집안에 있는 빚도, 동생 병에 다 정리할 수 있다. 김재열의 요구는 별것 아니었다.

그가 지적한 남자와 같이 시간을 보내기만 하면 된다. 조작됐든 아니든 증거만 남기면 된다.

그녀도 나쁜 짓이라는 것을 알았지만,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좋아. 저기 보이지? 저놈이다.”

“아, 네.”

송도연은 힐끗 푸른빛 정장을 입고 시선을 끌고 있는 한 남자를 발견했다.

주변에 있던 여자 십여 명이 동시에 그 남자에게 다가갈 정도로 시선을 끌었다.

단순히 외모 때문이 아니었다.

뭔가 사람을 끌어모으는 힘이 있었다.

송도연조차 눈을 동그랗게 뜬 채 그 남자를 멍하니 쳐다보았다.

“하, 열받네.”

질투심에 열받은 김재열은 쉽게 화를 참지 못했다. 자신이 이곳에 왔을 때도 송도연만이 시선을 끌었다. 아예 자신을 쳐다보는 이가 없었다.

그런데 최민혁이 나타나자 마치 그가 이 파티의 주인공인 것 같았다.

놀라운 것은 최민혁이 크게 당황하지 않은 채 여유로운 모습을 보였다는 것이다. 심지어 자신을 발견하자 그는 천천히 다가왔다.

“재열아, 오랜만이다.”

안 그래도 감정이 상한 김재열은 버럭 화를 냈다.

“재열아, 오랜만이다라고? 이게 진짜 미쳤나. 야, 내가 4살이나 많다는 것을 몰라?!”

“4살 가지고 지금 생색내는 거야?”

“이 새끼가.”

최민혁은 김재열 성질을 살살 건드렸다. 분노한 김재열이 그다음에 향하는 곳을 너무도 잘 알기 때문이었다.

‘확실히 해둘 필요가 있지.’

“흠, 재열아, 나 바빠, 지금 나랑 그렇게 싸우자고 부른 거야?”

“하, 이 미친 놈이…….”

김재열은 따가운 주변 시선을 받자 입을 다물고 말았다.

최민혁이 무례하게 나오기는 했지만 두 사람의 사이를 알지 못하는 이들은 크게 개의치 않았다.

오히려 욕설을 퍼붓는 자신을 향해서 수근거렸다.

[저 새끼, 도대체 누가 초청한 거야?]

[정말 이상하네. 여기 안재운 파티 아냐. 왜 저렇게 덜떨어진 놈이 온 거야?]

[저 여자랑 동행으로 딸려 온 것 같은데, 정말 짜증나네.]

최민혁은 물론 김재열을 보다가는 힐끗 송도연을 쳐다보았다.

주변의 모멸 찬 시선에 분노한 김재열도 송도연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하는 최민혁의 모습에 쾌재를 불렀다.

‘됐다.’

“송도연이야, 지금은 미래 기획사에서 연습생으로 있어.”

“그래.”

“그래? 이 새끼가 너 정말 혀 짧다.”

최민혁은 힐끗 김재열을 쳐다보았다. 그는 첫째 큰아버지나 안재운 황태자와는 다르다. 굳이 잘 보일 필요도, 뒤도 생각할 필요가 없다. 그냥 조용히 정리해 버리면 다시는 볼 일도 없었다.

그는 송도연 만남과의 연결 고리면 충분했다. 그러니 김재열을 완전히 무시한 채 송도연 손을 잡았다.

“가지.”

“아, 네? 네!”

크게 당황한 송도연은 사슴 같은 눈망울로 최민혁을 힐끗 쳐다보았다. 그런데 강렬한 그의 시선에 그만 고개를 푹 숙이고 말았다.

꼬물거리는 모습을 봐도 최민혁이 싫지 않은 모양새였다.

아닌 게 아니라 이 파티에 참석한 여자 중에 최민혁에게서 시선을 떼는 여인은 없었으니, 그다지 이상한 것도 아니었다.

“…….”

김재열은 일 년 동안 공을 들일 때는 단 한 번도 보여주지 않은 송도연의 모습에 어금니를 바드득 갈았다. 생각 같아서는 계획이고 뭐고 다 때려치우고, 이 자리에서 그냥 깽판을 치고 싶었다.

송도연은 최민혁 손에 붙들려서 종종걸음으로 뒤를 따랐다.

“야, 최민혁!”

꽤 큰 고함에 주변에서 구경하는 이들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설마 안재운 주최 파티에 저렇게 막 나가는 인간은 처음이었다.

파티 경비를 하던 몇 사람이 슬그머니 다가왔다.

최민혁은 천천히 몸을 돌렸다.

“여자 소개해 준 것은 고맙다. 난 만날 사람이 있으니, 나중에 보자.”

김재열은 어금니가 부러지도록 이를 갈았다. 설마 이런 대우를 받을지는 상상도 못 했다.

“민혁 이 새끼, 너 정말 제멋대로네. 아직 옛날 일이 기억 안 나?”

목을 가볍게 돌리는 김재열은 단단히 화가 났다.

하지만 김명준 과장에게서 하루 한 시간 동안에 훈련을 받은 최민혁은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그는 오히려 손바닥을 들어서 한 대 치려는 그의 손을 잡은 채 몸을 가볍게 당겼다.

체중을 유지한 채 발이 옆으로 쭉 당겼다가 다시 체중으로 앞으로 돌리면서 쭉 밀었다.

그 단순한 동작에 김재열 몸은 앞으로 왔다가 뒤로 튕기면서 균형을 잃었다. 그 반동으로 비틀거리다가 뒤로 벌렁 나뒹굴었다.

때마침 뒤에 술잔이 늘어 서 있는 테이블이 있었으니.

김재열은 술이 범벅된 채 뒤로 넘어졌고, 결국 대리석 벽면에 가서 부딪치고 말았다.

쿵 소리에 다들 화들짝 놀랐다.

“피, 피잖아!”

난리가 났다.

최민혁조차 아차 싶었는데, 가볍게 밀친다는 것이 설마 일이 이렇게 될지는 몰랐다.

다행히 파티 경비원이 최민혁이 신분을 알아보고는 별다른 조처를 하지 않았다. 오히려 기절한 김재열을 바깥으로 데려갔고, 엉망이 된 테이블을 다시 정리한다고 바빴다.

“……!”

속이 다 시원한 액션에 송도연은 입을 딱 벌린 채 최민혁을 멍하니 쳐다보았다.

“소개받기로 한 거 맞지?”

“아, 네, 네!”

“따라와.”

송도연은 나름 예측한 시나리오와 달라서 최민혁 의도대로 따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게 또 싫지는 않았다.

‘이게 아닌데…….’

* * *

“괜찮습니까?”

이미 연락을 받은 안재운은 딱히 최민혁 실장을 탓하지 않았다. 그는 오히려 입가에 미소를 짓은 채 술을 따라주었다.

“글렌피딕 35년입니다.”

최민혁은 안재운이 따라준 술을 홀짝이면서 그 맛을 음미했다. 솔직히 고가 술에 익숙하지 않아서 뭐가 다른지는 몰랐다.

안재운도 그걸 아는지 굳이 술에 대해서는 더 말하지 않았다. 그는 이보다 소동의 원인이 된 송도연을 힐끗 쳐다보았다.

‘너무 어린데, 정말 성인 맞아?’

약간은 어리둥절했지만, 굳이 자세한 질문은 하지 않았다.

“배우는 무술이 있습니까?”

“아, 제 경호 팀장에게 기본적인 호신 무술을 배웁니다.”

“몸동작 보니, 보통이 아닌 것 같습니다.”

“보셨습니까?”

“사람이 많이 모였으니까요.”

“원래 사이가 안 좋아서 감정이 좀 있었는데, 오늘 보자 저도 참기 어려웠습니다.”

“하긴 사촌끼리 사이가 좋지 않은 경우도 많죠. 저만 해도 비슷하니까.”

안재운 역시 상속 문제 때문에 친누나와도 사이가 좋은 편은 아니었다. 그나마 있다고 한다면 막내가 예외일 뿐이다.

‘그리고 보니, 어머니가 막내와 이 친구 중매를 알아본다는 이야기가 있었는데…….’

아마 막내 안지연의 나이가 세 살만 더 많았어도 약혼 이야기가 나왔을 것이다. 지금은 나이가 19살이라서 약혼은 어려웠다.

다만 그때는 최민혁 실장의 능력이 드러나지 않던 시기여서 집안의 반대도 무시하기 어려웠다.

‘지금은 또 상황이 다르니까.’

안재운 목소리는 한결 부드러웠다. 그는 사업적인 이야기보다는 오히려 사소한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혹시 만나는 사람이 없다면 제가 소개해 줄 사람도 있는데, 어때요?”

최민혁은 안재운의 호감 어린 반응에 오히려 마음이 불편했다. 안재운을 호구 삼아서 등쳐 먹으려고 하기 때문이었다.

“마음만 받겠습니다.”

안재운은 의외로 소탈한 최민혁의 반응에 눈빛을 반짝였다. 그의 주변에 있는 사람은 어떻게 해서라도 자신에게 잘 보이려는 사람뿐이다. 아니, 그렇지 않은 이가 있다고 해도 대화가 일방적이다.

그런데 최민혁은 전혀 그렇지가 않았다. 놀랍게도 대화 상대가 되었다. 더욱이 상대는 자신을 특별하게 보지도 않았다.

이전 만남에서는 그저 안면만 익혔다. 그때와는 느낌이 좀 달랐다.

‘권태성 실장 말이 맞아. 확실히 보통 친구는 아닌 것 같아.’

그는 서로 편한 사이가 되자 조심스럽게 한 가지를 질문했다.

“이건 개인적으로 궁금해서 하는 말인데, TV 사업부 매각설은 그냥 가짜 뉴스였습니까.”

최민혁은 잠깐 머뭇거렸다. 그도 처음에는 아니라고 잡아떼려고 했지만, 호감이 가득한 상대 반응에 피식 웃고 말았다.

“그건 상황에 따라서 틀린 것 아닐까요. TV 사업부를 이끌어가기에 KM 전자 규모에서는 한계가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렇다고 캐시카우 역할을 하는 TV 사업부를 당장에 매각할 수는 없는 일입니다.”

“호오, 그렇습니까?”

“모든 일에는 때가 있기 마련입니다.”

이 정도면 충분했다. 최민혁이 하는 말을 알아들은 안재운은 고개를 끄덕였다.

“대답 감사합니다. 앞으로 양사 간에 좋은 관계였으면 합니다.”

“제가 하고 싶은 말입니다.”

최민혁도 간단하게 인사만 하고는 조용히 일어섰다. 그 역시 자신이 일으킨 소란 때문에 주변의 시선을 의식한 것이다.

송도연은 종종걸음으로 최민혁의 뒤를 부지런히 따라갔다.

그녀도 뒤늦게야 안재운이 그 유명한 오성 전자의 황태자란 사실을 안 것이었다.

‘세상에 저 사람이 오성 전자의 후계자였다니. 그리고 이 분은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은데, 누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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