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벌 3세는 조용히 살고 싶다-284화 (284/1,021)

#284.

송도연은 클럽 파티에서 나오는 순간부터 가슴이 떨려서 어떤 말도 하지 않았다. 그녀는 최민혁이 이끄는 대로만 따라갔다.

각오는 단단히 했다.

장소는 호텔이 될까, 별장이 될까 궁금해서 최민혁을 힐끗 쳐다보았다.

최민혁은 단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그녀는 김명준 과장의 따가운 눈총을 받으면서 중형 세단에 올랐다.

그런데 도착한 곳은 호텔이나 레스토랑이 아니었다.

사람이 많이 오가는 한 건물 앞이었다.

“여긴 어디죠?”

“KM 전자 사원 복지용 건물이야.”

“네? 아니, 왜 여기에?”

최민혁은 겁먹은 송도연 표정을 한동안 쳐다보았다. 인생 1회차에서는 마약이 든 술에 취해서 그녀를 제대로 알아보지 못했다.

그런데 멀쩡한 정신으로 보고서야 한숨을 절로 쉬고 말았다.

‘확실히 내 타입은 맞아.’

그런데 딱히 감정은 생기지 않았다.

이지수에 대한 감정 때문이다.

최민혁 스스로 한 여자에게 이렇게 충실한 것이 믿기지가 않았다.

‘죽을 고비를 넘기면서 변한 것인지도 모르지. 그것도 아니면 여자에게 질려서 그럴 수도 있고.’

인생 1회차에서 그가 건드린 여자는 세 자리를 훌쩍 넘어간다. 한마디로 최상급의 재벌 3세 망나니였던 것이다.

물론 송도연을 굳이 만나러 파티에 간 것은 그녀의 재능 때문이다.

“안으로 들어가면 알게 될 거야.”

“…네.”

송도연은 단호한 최민혁의 목소리에 반박하지 않았고, 한쪽에서 조용히 따르는 김명준 과장 때문에 먼저 최민혁을 유혹할 수 없었다.

아니, 꼬드기려고 해도 먹힐 것 같지가 않았다.

김명준 과장의 북극 한파처럼 차가운 한기 때문이다.

최민혁은 그런 송도연을 무시한 채 묵묵히 음악 연습실 빌딩에 들어갔다.

송도연은 영문을 몰라서 최민혁에게 몇 번이나 말을 꺼냈다.

“저, 저기 자, 잠깐만…….”

최민혁은 아예 그녀 이야기를 무시한 채 음악 연습실 안으로 들어갔다.

그녀는 뒤늦게야 건물 안의 적지 않은 사람을 보자 몸을 떨었다.

“어, 여긴…….”

단단히 마음먹은 송도연은 영문을 몰라서 눈만 깜빡거렸다.

이미 연락을 받은 조성돈 팀장은 고개를 갸웃한 채 송도연을 쳐다보았다.

오늘 같이 따라온 박상기 차장 역시 영문을 모르기는 매한가지다. 그는 말을 하다가 앳된 송도연 얼굴을 보자 입을 꿀꺽 삼키고 말았다.

“저기 저분은 설마 사귀는…….”

최민혁은 피식 웃었다.

“고등학교 2학년입니다.”

“네?”

조성돈 팀장은 눈을 동그랗게 떴고, 박상기 차장 역시 마찬가지다.

하지만 가장 충격을 받은 사람은 역시 성인 흉내를 내던 송도연이었다. 그녀는 눈을 동그랗게 뜬 채 최민혁을 쳐다보면서 손을 흔들었다.

“아, 아니에요. 저 고등학생 아니에요. 대학생이란 말이에요.”

“민증 내놔 봐.”

“그, 그건……. 아, 아직 못 받았어요.”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는 거야. 거짓말 그만하고, 일단 따라와 봐.”

그녀는 눈동자를 도르르 굴렸다. 따가운 시선을 받자 입술을 깨물었다. 최민혁은 어떻게 해서라도 유혹하려고 했는데, 실패였다.

송도연은 축 처진 어깨로 최민혁 뒤를 터벅터벅 따라갔다.

최민혁은 송도연을 잡아서 음악 연습실 안에 집어넣었다.

“……?”

-그 앞에 보면 악보가 있을 거야. ‘I’ll be loving you.’란 힙합곡이야. 악보는 볼 줄 알 거라고 생각하는데, 한번 불러 봐.

-저기 죄송한데요, 몇 년 전에 노래를 불러서 잘 못 불러요.

-교회 합창단에 있었잖아. 실수해도 좋으니, 그냥 할 수 있는 데까지 해봐.

“…….”

그녀는 생뚱맞은 표정을 한 채 멍하니 최민혁을 쳐다보기만 했다. 도대체 자신의 중학교 학창 시절을 어떻게 아는지 알 수가 없었다.

‘우리 실장님도 모르는 사실인데…….’

-저기 죄송한데요. 여긴 어디고, 뭐하는 분인지 말을 좀 해주면 안 될까요?

최민혁이 피식 웃으면서 한 가지를 말해주었다.

-혹시 콜린스는 들어봤지? KM 전자가 만든 대형 평면 TV 말이야.

-그걸 모르는 사람이 누가 있어요. KM 전자의 최 실장님이 얼마나 유명한데, 저도 알죠. 가, 가만… 설마 당신이…….

-재열이 그놈이 내가 누구인지는 말해주지 않았나 보네. 맞아. 내가 바로 그 최 실장이야. 억만장자로 유명하지. 시키는 대로만 해. 2~3억 정도는 얼마든지 줄 수 있으니까.

-……!

송도연은 애처로운 표정으로 멍하니 최민혁을 쳐다보았다. 눈물도 주르르 흘렸다. 그 처연한 모습은 보는 이의 시선을 단숨에 휘어잡았다.

그 모습이 얼마나 처연한지 김명준 과장이 넌지시 나섰다.

하지만 최민혁은 냉정하게 손을 들어서 김명준 과장을 막았다.

-네 연기 실력이 보통이 아니라는 것도 잘 안다. 그러니 되지도 않는 연기는 내 앞에서 하지 마!

-…에, 음.

송도연은 자신의 필살기도 통하지 않자 울상을 한 채 당황했다.

이제까지 많은 남자를 만나 봤지만 이런 경우는 또 처음이었다.

김명준 과장도 뒤늦게 자신이 속았다는 것을 알자 최민혁을 몇 번이나 쳐다보았다.

-자, 시간 없다. 할 일이 많으니, 우선 확인부터 해보자.

-…네.

* * *

송도연은 원래 미국에서 중학교 시절까지 다녔다. 어린 시절부터 미국 생활을 한 터라 영어 실력이 미국인 못지않았다.

거기에 중학교 때까지 합창단에 다녀서 기본적인 발성법 정도는 했다.

하지만 이게 다가 아니었다.

그녀는 음악에 천부적인 재능이 있어서 가창력 자체가 일반 아마추어와는 많이 달랐다.

미국인보다 더 발음이 자연스러웠다. 음정 자체는 곡이 처음이라서 잘 맞지 않았지만, 힙합 흐름 자체는 조금씩 나아졌다.

노래 수준 자체는 기본적으로 최민혁보다는 한 수 위였다.

어렸을 때부터 합창단을 하면서 꾸준하게 기본기를 쌓은 덕분이다.

최민혁 역시 몇 년 동안 연습을 했다면 비슷하겠지만, 그는 그럴 여건이 되지 않았다.

그는 힐끗 뒤를 돌아보았다.

입을 딱 벌린 조성돈 팀장의 표정이 그 증거다.

박상기 차장조차 커피를 든 채 마시지 못하고 있었다.

강력한 주기적인 비트와 어울려진 목소리는 시간이 갈수록 점점 자연스러워졌다.

팝콘처럼 톡톡 튀는 음악은 마치 생명을 가진 것처럼 날뛰었다.

최민혁은 참지 못해서 음악 연습실 안으로 들어가서 직접 피처링을 해주었다.

두 사람의 목소리는 마치 몇 년을 연습한 것처럼 자연스럽게 어울렸다.

송도연은 음악에 익숙해지고, 최민혁의 피처링 도움을 받자 이제 모든 근심을 떨친 채 노래에 폭 빠져 들어갔다.

후반부로 갈수록 이어지는 음정은 점점 더 강해만 갔다.

송도연 스스로가 노래에 빠져서 고음을 좀 더 올린 것이었다.

화음을 마치 자기 마음대로 다루는 그녀 노래 실력은 최고였다.

최민혁은 역시 예상보다 더 훌륭한 결과에 만족한 채 호흡을 맞춰주었다.

‘역시 타고났어.’

* * *

송도연은 회의실 안의 따가운 시선을 견디지 못해서 고개를 푹 숙이고 말았다. 그녀는 자신의 꿍꿍이가 들통이 난 것 때문에 부끄러워 얼굴을 들지 못했다.

그리고 차마 김재열에게 받은 제안을 이야기할 수는 없었다.

그런데 최민혁은 신기하게도 그 부분에 대해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그는 힐끗 조성돈 팀장과 박상기 차장을 쳐다보았다.

“어때요?”

“저는 가창력이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걱정되는 것은 미국에 출시하는 노래인데, 한국인으로 통할지 걱정입니다.”

“상관없어요. 어차피 우리가 원하는 것은 이슈이지, 노래 대박은 아니니까. 그리고 이 친구도 연습생으로 데뷔 자체가 더 중요합니다.”

“하지만 성적도 신경 써야 하지 않을까요?”

“조 팀장님은 이 친구 노래가 통하지 않을 것으로 생각합니까?”

조성돈 팀장도 조금 전의 송도연 노래를 다시 떠올렸다. 아직도 감흥이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마치 가수를 위해서 태어난 것 같은 사람이 송도연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솔직히 최민혁이 송도연을 어디서 데려왔는지 그게 궁금했다.

“…그건 아닙니다. 다만 한국인이라는 한계가 있어서 그게 좀…….”

“상관없어요. 만약 한글로 된 노래라면 문제가 있지만, 영어 가사라면 미국에서도 통할 겁니다. 최고의 성적이 아니어도 문제가 안 됩니다. 한국인이라는 것 자체가 또 다른 이슈를 만들 테니까.”

빌보드 성적이 어떨지는 알 수가 없다. 그래도 일정 순위에 오른다면 시선을 끌 만한 일이다. 만에 하나 단 한 곡이라도 10위권 안에만 들어도 대대적인 마케팅이 가능했다.

더욱이 상대는 들어보니, 기획사 연습생이라 더 문제가 될 것은 없었다.

“…알겠습니다. 그런데 연습생이라면 이미 다른 기획사와 계약이 되어 있지 않습니까?”

“계약이 있죠. 그거야 뺐으면 됩니다.”

“하지만 이렇게 재능이 있는 연습생을 과연 그들이 순순히 보내주겠습니까?”

“이 재능을 안다면 그럴 겁니다. 그런데 몰라요. 그들은 이 친구 음악 재능이 이 정도인지는 모르고 있죠.”

‘심지어 연기력은 더하죠.’란 말까지 굳이 하지는 않았다.

“…….”

송도연은 눈동자만 도르르 굴리면서 회의를 구경만 했다. 대화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영문을 알 수가 없었다. 그래도 눈치는 있었다. 최민혁이 기존 기획사에서 자신을 빼오려 한다는 것을 말이다.

최민혁은 그런 송도연을 보면서 일축했다.

“설마 미래 기획사에 남겠다는 이야기는 아니겠지?”

“하, 하지만…….”

“설마 계속 그렇게 기획사에 묶여 있고 싶은 거야?”

송도연은 가슴이 팡 터질 정도로 놀라서 최민혁을 멍하니 쳐다보았다.

“그, 그걸 어떻게…….”

“……!”

두 사람 역시 입을 딱 벌린 채 최민혁과 송도연을 쳐다보았다. 설마 두 사람이 그런 사이인지는 상상도 못 한 것이었다.

최민혁은 두 사람에게 일축했다.

“재열이, 이 인간이 꿍꿍이가 있어서 소개해 준 것뿐입니다.”

김명준 과장이 눈치껏 나섰다.

“파티에 갔다가 바로 이곳으로 왔습니다. 따로 만나고 할 틈이 없었습니다.”

송도연은 차마 부끄러워서 얼굴을 푹 숙인 채 들 수가 없었다.

최민혁은 송도연 이마에 알밤을 놓았다. 그는 송도연과 이렇게 편하게 대화할 수 있다는 것이 신기하기만 했다. 인생 1회차에선 이렇게 편한 사이가 아니었던 것이었다.

‘뭐 그때는 미성년자인지 몰랐으니까. 그래도 흠뻑 빠졌던 것은 사실인 것 같아.’

“나도 너에 대해서는 이름을 듣고 나서 알아볼 만큼 알아봤다. 그러니 여동생 백혈병은 걱정하지 마. 그건 내가 알아서 해줄 테니까. 2억도 주마. 그 정도면 빚은 갚을 수 있을 거야. 어떻게 할래?”

그녀는 믿을 수 없는 제안에 멍하니 최민혁을 보면서 몸을 떨었다.

“…계약이라면 조금 전에 부른 그 노래 계약 말인가요?”

“어, 다른 기획사와는 달리 그 노래 계약만 끝나고 나면 원하는 기획사에도 보내주마. 계약 조건도 여느 탑 가수랑 다르지 않을 거야.”

상상도 못 한 제안에 송도연은 입을 딱 벌렸다. 그녀가 김재열과는 달리 최민혁을 믿는 이유는 옆에 있는 다른 이들 때문이다.

그들과 같이 협상하면서 하는 이야기인데, 사기일 리가 없었다.

더욱이 상대는 돈이 넘쳐서 주체를 못한 최상급 재벌 3세였다.

“저, 정말요?!”

“그래. 대신 조건이라면 우리가 정한 노래에 최선을 다해야 할 거다. 어쩌면 학업에도 지장이 좀 있을 거야. 하지만 내가 장담하지만 넌 설사 대학 가도 정상적인 생활을 하기 힘들어.”

“무슨 말씀이세요?”

“넌 몇 년 안에 국내 최고의 연예인이 될 테니까. 배우와 가수 양 영역에서 말이다. 그러니 학업은 포기하는 것이 좋아.”

“……?”

송도연은 입을 딱 벌린 채 최민혁 얼굴만 멍하니 쳐다보았다. 도저히 믿을 수가 없는 이야기다. 그런데 최민혁 말은 묘한 설득력이 있었다. 자신은 정말 가수와 배우 양 영역을 석권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스스로의 판단 때문이 아니다.

대한민국 재벌 3세 중에 가장 유명한 최민혁의 평가였기 때문이다.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는 송도연은 내심 흥분을 감추기 어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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