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벌 3세는 조용히 살고 싶다-282화 (282/1,021)

#282.

다만 아쉬운 점이 있다면 교복을 입었다는 점이다.

“…고등학생?”

“바로 그거야. 애가 고2이걸랑. 그런데 성인 옷을 입히고, 화장만 약간 해도 여고생이랑 성인은 구분이 잘 안 돼. 아마 고2를 강간한 최민혁은 사회에서 완전 매장당하겠지. 이 정도면 괜찮지 않아?”

두 사람은 김재열이 내놓은 계획을 처음과는 달리 심각하게 생각했다.

하지만 박태정 비서실장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런데 믿을 수가 있을까요? 만약 도련님이 먼저 건드렸다면, 나중에 반드시 문제가 될 겁니다.”

입맛을 다신 김재열은 툴툴거렸다.

“아, 내가 말했잖아. 정말 아깝다고, 이제까지 1년 넘게 공을 들였어. 그런데 손 하나 까딱하지 못했다니까. 얘 성격이 보통이 아니야. 억울해 미치겠어.”

“아니, 제 말은 이 아이가 우리 의도를 충실히 따르겠습니까?”

“그럴 수밖에 없어. 빚이 좀 있걸랑. 더욱이 여동생이 백혈병에 걸려서 돈이 제법 필요해. 내 제안을 거절할 수는 없어. 오죽하면 기획사 실장 통해서 나에게 성 접대까지 하려고 했겠어?”

정확히는 김재열과 미래 기획사는 악어와 악어새 관계였다.

김재열이 송도연을 보자 미래 기획사를 통해서 노예 계약으로 끌어들인 것이었다.

김현탁 사장도 손가락으로 테이블을 톡톡 치면서 김재열을 쳐다보았다. 솔직히 정형적인 재벌 3세 망나니로 집에서 버려둔 자식이었다.

아마 김기범이 감옥에 가지 않았다면 쳐다보지도 않았을 것이다.

‘마약과 여자에게 미친놈인 줄만 알았는데…….’

“…너 정말 할 수 있겠냐?”

“솔직히 돈이 좀 필요해. 내가 요거 작업한다고 돈을 많이 썼걸랑.”

“얼마면 되냐?”

“10억.”

“이 새끼가!”

“5, 5억, 저, 정말로 얘 때문에 돈을 많이 썼다니까. 만나서 계속 약값을 줘야 했어. 살살 달래려면 돈이 더 필요해.”

그는 혹시나 이 쓰레기가 미성년자도 건드렸을까 걱정했다.

“진짜 손은 안 댔고?”

“얼마나 고고한지 말도 못 해. 나도 강제로… 크흠, 내 말은 이제 고3 지나면, 대학생이 되잖아. 아, 애가 머리도 좋아서 서울대도 갈 성적이야. 그야말로 최고지. 크흐, 이건 정말로 아까운…….”

“좋다. 5억 주마. 하지만 실패하면 기획실장 자리에서 물러나!”

“그건 좀…….”

“그 정도 각오도 없이 이 일을 밀어줄 수는 없어. 최소한 책임감을 가져.”

김재열도 기획실장 자리가 아버지 김용만 전무가 김상구 회장에게 부탁해 어렵게 얻은 자리라는 것을 잘 알았다.

하지만 이번 기회를 놓칠 수는 없었다.

“알았어. 다만 성공하면 내가 기획실장이란 것을 정식으로 인정해 줘. 지금처럼 바지 실장 대우받고 싶지는 않으니까.”

“좋다.”

김현탁 사장도 영 김재열이 믿기지 않았지만, 계획 자체는 나쁘지 않았다. 그가 아는 바로 자신과는 달리 김기범과 김재열은 최민혁 실장과 자주 만난 것으로 알기 때문이다.

그는 힐끗 자기 앞에 놓인 사진을 쳐다보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예쁘네. 이 정도라면 가능성이 전혀 없지는 않아. 그런데 미성년자라는 것이 좀 불안하네. 이건 걸리면 끝장인데…….’

김현탁 사장은 싸한 느낌을 받았다. 본능이 이번 일은 아니라고 경고했다.

“재열아, 정말 문제없이 잘 끝낼 수 있겠어?”

“형은 나만 믿으세요!”

“사장님!”

“아, 참, 형이면 어떻고, 사장님이면 또 어때요? 다 같은 말이잖아요. 다시 말하지만 내가 이런 일을 한두 번 처리하겠어? 다 손발이 되는 이들이 있다니까요!”

“불안해서 그래. 넌 최민혁 그놈이 얼마나 술수에 능한 놈인지 몰라.”

김재열은 불안에 떠는 김현탁 사장을 향해 이죽거렸다.

“아, 참 걱정도 팔자입니다. 제가 알아서 최민혁 그놈을 매장해 버릴 테니, 그냥 굿이나 보고 떡이나 드세요.”

“쯧.”

그래도 그는 김재열을 믿을 수가 없어서 박태정 비서실장에게 김재열을 철저히 감시하라고 지시했다.

‘괜히 불안한데…….’

* * *

예상과는 달리 최민혁은 안재운 황태자의 초청장을 받고 나서는 휴지통에 버렸다. 그는 솔직히 안재운에게 관심도 없고, 괜히 그와 인맥을 쌓고 싶은 생각 자체가 없었다.

그보다 더 급한 일은 MP3에 탑재할 음악이다.

3곡을 추가해서 만든 4곡에 대한 조성돈 팀장의 평가는 이전과는 사뭇 달랐다.

“곡은 최고입니다!”

조성돈 팀장도 격찬을 아끼지 않았다. 이미 여러 차례 삽질해서인지 음악을 바라보는 안목이 대폭 올라갔다.

다만 문제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그가 내놓은 가수 목록 중에는 눈에 띄는 가수가 없었다.

‘아니, 어쩌면 이들 중에 성공하는 가수가 있을지 모르지.’

문제는 최민혁이 음악에 대해서 그렇게 다양한 지식을 가진 편이 아니라는 것이다. 대부분이 이지수가 좋아하는 노래가 그 기준이다. 그 자신이 아는 팝송 노래는 그렇게 많지 않았고, 있다고 해도 15년 후의 노래가 대부분이다.

그러니 기획 팀 제안을 확신하지 못했다.

최민혁은 그래서 고민이다. 그 자신이 아는 가수는 손으로 꼽는데, 이 시기에는 대다수 꽤 명성을 떨치고 있었다.

‘아 그녀가 있구나.’

문득 떠오른 것은 인생 1회차에서 이지수를 만나기 전에 알고 지낸 이 중에 하나다.

‘아냐, 지금은 너무 어려. 지금 고2 정도 되었을 텐데, 한번 연락이나 해볼까?’

그런데 기획 팀 보고서에 오른 가수 중에는 믿고 이번 일을 맡길 가수가 없었다.

‘…생각해 보면 대다수가 한 번씩은 뒤통수를 치는군.’

씁쓸한 기억이었다.

최민혁 자신이 기획사를 운영하면서 선택한 대부분 가수나 연예인 중에 믿을 만한 사람이 없었다. 대다수가 돈을 보고 자기 밑으로 온 것이니까.

문득 떠오른 한 사람을 고민하다가 한번 알아볼까 싶었다.

그런데 때마침 김재열에게서 갑자기 연락을 받았다.

[나야, 재열이다. 오랜만이다.]

[…김재열이?]

[야, 민혁이 이 새끼, 너 많이 컸다. 날 보고 감히 재열이라고 불러?! 인마, 형이라고 불러. 내가 4살이나 많아!]

별 시답지 않는 소리에 최민혁은 피식 웃고 말았다.

[그래, 재열 형이라고 해두자. 갑자기 웬일로 전화한 거야?]

[얌마, 너 말 함부로, 아, 좋아. 그렇다고 해두자. 야아, 사촌끼리 연락하는 것이 당연하잖아. 내가 너에게 전화하면 안 되는 거야?!]

[그렇긴 하지만 너무 갑작스럽잖아.]

정확히는 최민혁도 이미 김재열이 DL 스카이 기획실장이 된 김재열을 알았다. 언제고 사업 때문에 얼굴을 보게 될 것이라 예상했다. 다만 그가 갑자기 자신에게 연락한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너 소식 들었냐? 안재운 형이 이번에 크게 파티 한다고 한 거?]

‘아, 그것 때문이구나.’

[그런데?]

[이번 파티에 나와. 내가 정말 괜찮은 여자 소개해 줄 테니까.]

[됐어.]

[내가 너 스타일 잘 알지. 딱 거기에 맞는 여자야. 그러니 꼭 나와.]

최민혁도 여전히 거절하다가 그냥 전화를 끊었다. 그런데 김재열은 쉽게 포기하지 않았다. 계속 전화를 걸어온 것이다.

그도 짜증이 나서 화를 내려다가 문득 한 가지 사실을 떠올렸다. 인생 1회차의 기억이다. 자신에게 그 사람을 소개해 준 사람이 바로 김재열이기 때문이다.

[…여자 이름이 뭐야?]

[…송도연이라고, 연기 연습생이야. 그런데 스타일이 죽여준다. 네가 딱 좋아할 스타일이야. 보면 너 정말 놀랄 거다. 이 형이 널 생각해서 기회를 만든 거야. 너 정말 고마워할 줄 알아야 해.]

장황한 개소리는 패스.

‘송도연이라…….’

최민혁도 내심 송도연이라는 말에 깜짝 놀랐다. 설마 김재열이 벌써 송도연을 내세울 줄은 상상도 못했다. 시기적으로 본다면 몇 년 후의 일이기 때문이다.

‘하긴 내가 감방에 안 갔으니, 미래가 완전히 뒤틀렸어.’

당시 인생 1회차에서 최민혁을 괴롭힌 이들 중에는 김기범이 주연이었지만 조연도 있었다. 그중에 가장 티가 나는 조연 중의 하나가 김재열이었다.

그런 김재열이 소개해 준 사람이 바로 송도연이었다.

술에 취한 최민혁은 그걸 알아보지 못한 채 그녀와 만나서 잤다.

그리고 얼마 있다가 강간범으로 고소를 당했다. 미성년자 강간이었다. 마약 사범으로 감옥에 갔다가 가까스로 빠져나온 다음에 일어난 일이었다.

최민혁은 다시 미성년자 강간, 폭력, 마약으로 수사를 받았는데, 그때 받은 충격은 생각보다 컸다.

당시 사건은 조작이었지만 문제는 여자다.

아이러니한 일은 여기서 관계가 끝나지 않았다.

송도연은 뜻밖에도 김재열의 도움을 얻어서 드라마의 급 낮은 조연으로 출현했는데, 이게 그만 대박을 친 것이었다.

그녀는 그 기세를 몰아서 성공을 거듭했다.

그런데 다시 감옥에서 출소한 날 그녀가 최민혁을 찾아온 것이었다.

송도연은 뒤늦게 참회의 눈물을 흘렸고, 최민혁을 도와주었다.

그 덕분에 최민혁은 다시 부활의 날개를 펼 수 있었다.

‘물론 그것도 첫째 큰아버지 때문에 오래가지는 않았지.’

송도연이 자신과의 추문이 폭로되면서 자살한 것이었다.

배후는 김재열이라는 것은 굳이 말할 필요가 없었다.

그녀는 한창 인기를 구가하는 중에 뒤늦게 가창력 실력이 드러나면서 제2의 전성기를 보내야 할 시점에 죽어버린 것이었다.

최민혁은 자신이 떠올린 가수 후보가 송도연이란 사실에 혀를 찼다. 자신의 미래가 뒤틀리기는 했지만, 여전히 큰 흐름에서 벗어나지 않았던 것이다.

[…알았어. 이번 파티에 가지.]

[그러면 파티 날 보자. 꼭 참석해야 한다.]

최민혁은 결국 휴지통에서 초청장을 꺼내 김명준 과장에게 클럽 파티에 참석할 것이라고 말했다.

“안 간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마음이 바뀌었습니다.”

“굳이 좋은 의도도 아닌 것 같은데, 갈 필요가 있겠습니까?”

그는 김재열 이야기는 아예 하지 않았다.

“알아요. 하지만 TV 사업부 매각 문제, 향후 낸드 메모리 수급 문제 협상 때문에 굳이 오성 전자와 척을 질 필요는 없어요. 그러니 오성 전자 측 인물과 자주 얼굴을 볼 필요는 있어요.”

“알겠습니다.”

‘이 새끼를 어떻게 매장시켜 버리지?’

고민은 그렇게 오래 가지 않았다. 송도연의 자살 이후에 연예인 매춘 조직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김재열뿐만 아니라 여러 사람이 엮여 있었다.

최민혁도 그 파티에 참석했기에 그 장소도 잘 알고 있었다. 김재열이 분노하면 반드시 그 파티에 참석한다는 것도 말이다.

‘두고 보자.’

* * *

파티장은 강남의 한 호화 오피스텔을 빌린 곳이었다.

화려한 샹들리에, 흰색 대리석 벽, 그리고 빈티지 포도주와 고급 샴페인이 놓여 있었다.

화려한 옷을 입은 여자 중에는 쇄골을 아낌없이 노출했다.

가끔 TV 드라마 나오는 유명 연예인도 있었다.

물론 입가에 미소가 떠올라 있었지만 불편한 얼굴을 하는 사람도 많았다.

파티 주최자가 오성 황태자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나온 것이다.

특히 오성 그룹 광고에 출연한 톱 여배우는 빠지지 않았다.

마음에 맞는 이들끼리 방에 들어가서 따로 술 파티를 벌였다.

파티에 참석한 이들 못지않은 푸른색 원피스를 입은 여인이 들어서자 시선을 모았다.

“와!”

탄성이 절로 나왔다.

미모만 따지면, 그녀 못지않은 이들이 여럿 있었지만 청순한 면에서는 단역 독보적이었다.

김재열은 따가운 시선에도 오히려 어깨를 으쓱한 채 팔짱을 꼈다.

송도연은 반사적으로 팔을 빼려고 했다.

“또 이런다. 너 내가 얼마나 많이 봐주는 줄 알지? 너희 실장 때문에 계속 참아왔는데, 자꾸 그러면 못 봐준다.”

놀란 송도영은 팔에 힘을 뺐다. 그녀는 김재열이란 남자가 지긋지긋했다. 하지만 동생 병원비 때문에 그럴 수가 없었다.

김재열 말대로 그가 다른 남자와는 달리 신사적인 것은 또한 사실이었다.

그녀가 김재열을 처음 만난 것은 후원 계약 때문이었다.

물론 그녀는 김재열이 강제로 달려들 때 죽겠다고 협박해서 지금까지 버텼다. 하지만 여동생 건강이 계속 나빠져서 이제는 더 견딜 수가 없었다.

‘단역이라도 출연만 할 수 있다면 좋을 텐데…….’

그런데 기획사 실장은 계속 연기력이 너무 떨어진다는 이유를 내세워서 드라마에 내보내지 않았다.

그나마 김재열을 만나 돈을 받은 덕분에 간간히 버텨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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