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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 3세는 조용히 살고 싶다-152화 (152/1,021)

* * *

김현탁 부장은 일등석에 있으면서도 마음이 편치가 않았다. 꼴 보기 싫은 최민혁의 옆자리에 앉은 탓에 마음이 더 불편했다.

그래도 비행기는 테러와 같은 특별한 사고 없이 인천 공항에 잘 도착했다.

김현탁 부장은 최민혁이 보기 싫어서 빠른 걸음으로 인천공항을 나서려고 했다.

하지만 최민혁은 그런 김현탁 부장 팔을 슬쩍 잡아당겼다.

“아, 현탁 형, 미안해요. 제가 비행기 안에서 버릇없이 행동했습니다.”

“…….”

‘이거 진짜 미친놈 아냐?’

오락가락하는 최민혁의 행동에 김현탁 부장은 영문을 알 수가 없었다.

최민혁은 거듭 사과하는 척하면서 김현탁 부장과 나란하게 걸었다.

그런데 갑자기 몰려온 육십 명의 인파 때문에 주춤 물러나고 말았다.

바로 기자였다.

그는 바짝 긴장했는데, 혹시라도 자신 때문이 아닌가 싶었다.

실제로 기자 몇몇은 김현탁 부장 앞으로 우르르 몰려왔다.

“최민혁 실장님? 아, 아니구나. 죄송합니다.”

고개를 꾸벅 숙인 기자는 매의 눈으로 주변을 살피다가 김현탁 부장 바로 뒤편에 서 있는 최민혁을 바로 발견했다.

“최민혁 실장님?”

“네, 맞습니다만?”

“와, 찾았다.”

몰려온 기자들 분위기는 마치 초특급 할리우드 배우를 찾은 사람처럼 시끄러웠다.

그 열기는 지나가는 모든 사람들의 시선을 끌었다.

주목받는 것을 좋아하는 김현탁 부장은 질투가 나서 몸을 부르르 떨었다.

최민혁은 김현탁 부장이 떠나가려는 것을 억지로 잡은 채 기자들에게 소개해 주었다.

“이 형이 DL 그룹 부사장 김희찬의 장남인 김현탁 부장입니다. 이번에 영국에 있다가 한국으로 복귀하는 셈이죠. 유명하죠. 영국에서 선진 금융 기법을 배웠으니까요. 네, 저랑 잘 아는 형입니다.”

간단한 소개다.

아마 평소라면 기자도 흥미를 느끼지 못했겠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랐다. 최민혁의 지인에 대한 것도 꽤 괜찮은 기삿거리였다.

십여 명은 기자가 단숨에 김현탁 부장에게 달라붙어서 질문했다.

김현탁 부장은 그제야 어깨에 힘을 준 채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아, 네, 맞습니다. 전 영국에서 선진 금융 기법을 배웠고, 앞으로 그 경험을 살려서 DL 화재에 반영할 생각입니다.

최민혁이 팍팍 밀어주자 단숨에 김현탁 부장의 기자 회견장이 만들어졌다.

최민혁이 옆에서 이번 톰슨 협상에서도 김현탁 부장의 도움을 받았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자, 잠깐만, 최 실장님, 그 부분에 대해서 자세히 말 좀 해주십시오!

아무래도 잘 아는 지인을 통해 프랑스에서 있었던 일화를 들을 수 있을 듯하자 기자들의 눈빛이 반짝였다. 김현탁 부장을 중심으로 카메라 플래시가 펑펑 터졌다.

김현탁 부장은 뜻밖의 사태에 희희낙락해서 비행기 안에서 있었던 일을 다 잊어버렸다.

그런데 결국 문제가 터졌다.

구두 발걸음 소리와 연이어서 나타난 공항 경찰과 경찰이 막 도착한 대한항공 376편 화물 항공편으로 들여온 것을 적발한 것이었다.

인천공항은 갑자기 생긴 일로 발칵 뒤집혔다.

최민혁의 인터뷰 때문에 몰려온 기자들도 부랴부랴 본사 쪽에 전화를 걸어서 확인했다.

그리고 그들 중에는 사복을 입은 형사도 있었는데, 그들이 막 인터뷰할 내용을 머릿속에 정리하고 있는 김현탁 부장에게 다가와서 바로 체포했다.

“김현탁 씨, 당신을 마약 밀수 협의로 체포하겠습니다!”

“……?”

경악한 김현탁 부장은 당황해서 그 어떤 말을 할 수도 없었다. 마약 밀수를 한 것은 맞고, 세관 공무원에게 뇌물까지 먹여서 한 일이기 때문이다.

도대체 그 사실을 어떻게 알고 형사들이 나왔는지 알 수가 없었다.

“여, 영장 있어?”

영장을 가져온 사람은 뜻밖에도 형사가 아니라 박두영 부장검사였다. 그는 조금 전에 받은 따끈따끈한 구속 영장으로 김현탁 부장 이마를 탁탁 쳤다.

“당신이 원하는 구속 영장입니다.”

“마, 말도 안 돼, 이, 이럴 수 없어!”

“돼!”

그가 손짓하자 김대영 수사관이 직접 김현탁 부장을 끌고 갔다.

아직도 최민혁을 취재하러 남은 기자들은 난리가 났다. 그들은 벌떼처럼 김현탁 부장에게 달려들어서 열띤 취재를 벌였다.

-기, 김 부장님, 이게 무슨 소리입니까? 마약 밀수를 하신 겁니까?

-항공 화물 편으로 대량의 마약 밀수를 했다고 지금 난리인데, 이게 사실입니까?

수사와 동시에 언론을 통해서 알려진 상황은 누가 봐도 이상했다.

하지만 끌려가는 김현탁 부장이나 끌고 가는 형사는 그다지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최민혁은 자신의 관심사가 팍 줄어든 상황에서 히죽 웃었다.

박두영 부장검사는 묘한 눈을 한 채 최민혁에게 다가갔다.

“오랜만입니다.”

“그러게요.”

방긋 웃는 최민혁.

설마 최민혁 실장님이 제보한 겁니까란 질문을 할까 망설이던 박두영 부장검사는 주변의 시선을 의식해서 살짝 눈인사만 한 채 몸을 돌렸다.

지금까지 옆에서 말없이 지켜만 보고 있던 조성돈 팀장도 그제야 뭔가 느낀 듯 최민혁에게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설마 최 실장님이 제보한 겁니까?”

“아뇨. 제가 점쟁이도 아닌데, 그럴 수는 없잖아요.”

“그렇지만…….”

그도 당혹스러운 이 사태에 영문을 몰라서 힐끗 김명준 과장을 쳐다보았다.

김명준 과장은 따가운 조성돈 팀장의 시선을 피해 버릴 뿐이었다.

최민혁은 억울하다고 꽥꽥 소리를 지르는 김현탁 부장의 모습에 만족했다. 이미 김기범 자택에 대한 압수수색이 진행된 것도 확인했다.

갈등하는 기자를 보면서 가볍게 손을 흔들었다.

“인터뷰합시다. 질문 받겠습니다!”

김현탁을 따라간 기자 외에 남아 있던 기자들은 죄다 손을 들었다.

최민혁은 느긋한 표정으로 제일 앞에 기자를 찍었다.

김현탁 부장에 대한 질문이 폭포수처럼 연이어서 터져 나왔다.

최민혁은 김현탁 부장의 이야기를 적절하게 넣어서 답변해 주었다.

이야기가 거듭될수록 DL 그룹의 김현탁 부장 이야기는 점점 많은 부분을 차지했다.

정작 유럽에서 한 활동보다는 오히려 마약 밀수에 관한 이야기가 주가 된 것이었다.

-아, 저도 마약 밀수는 여기서 처음 들었습니다. 현탁 형이 설마 대규모 마약 밀수를 할지는 상상도 못 했고요!

하지만 최민혁 말을 믿는 기자는 그다지 없었다.

‘DL 그룹이 과연 막을 수 있을까?’

김기범은 한창 뜨고 있는 최민혁을 막기 위해 준비하면서 이를 갈았다.

이번 기회에 최민혁을 완전히 매장해 버리겠다고 단단히 마음먹었다.

그는 최민혁이 좋아하는 여자 스타일의 연기 연습생 다섯 명을 사전에 준비했다. 이 과정에서 돈도 좀 깨졌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그런데 갑자기 일이 생겼다.

[검찰에서 나왔습니다!]

‘웬 검찰?’

서울 중앙지검 강력부의 최해진 검사가 수사관을 데리고 자택을 방문한 것이었다.

압수수색영장도 있었다.

김기범도 처음에는 변호사까지 찾으며 맹렬하게 반응했지만, 결과가 좋지 못했다.

-마약을 찾았습니다.

수사관이 숨겨 놓은 마약을 찾은 것이다. 아니, 정확히는 이번 클럽 파티를 위해서 사전에 준비해 둔 마약을 발견했다.

이번에 최민혁을 매장하기 위해서 50명 규모의 클럽 파티용으로 준비해 둔 코카인 양은 부족하기는 해도 적지 않은 양이었다.

“……!”

파랗게 질린 김기범은 당황해서 어찌할 바를 몰랐다.

최해진 검사는 피식 웃었다.

“좋게 갑시다. 설마 마약이 발견된 이 마당에 무죄를 우기지 않겠죠?”

“벼, 변호사 불러!!”

“아, 물론 변호사를 부를 겁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지난 클럽 마약 사건 때처럼 쉽게 빠져나가지 못할 겁니다. 당신 사촌 형인 김현탁 부장도 무사하지 못할 테니까.”

“뭐야?”

이번에는 진짜 화들짝 놀란 김기범은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크, 큰일 났다.’

* * *

중견 기업 재벌 3세, 전직 군장성 자제, 심지어 말만대면 아는 연예인 중에는 10대 후반에 외국 유학을 통해서 마약을 접한 경우가 많다.

이들이 국내로 들어오면 마약을 쉽게 끊을 수가 없다.

자연스럽게 지인이나 클럽을 통해서 마약을 다시 접하고, 섹스도 같이 즐긴다.

소위 말하는 마약 파티다.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이들은 주기적으로 마약을 찾게 되어 있다.

정관계 고위 자녀가 이들과 엮이면서 자연스럽게 마약도 쉽게 얻는다.

하지만 이런 범죄가 영원히 밝혀지지 않을 리가 없다.

가끔 내부자 고발을 통해서 적발되기도 한다.

물론 이들의 배후에 있는 이들은 자식들이 감방에 가는 것을 원치 않는다. 때문에 힘을 합쳐서 이 사건을 막아버린다.

그래서 검찰에서 마약 사범이 적발되었다는 뉴스가 나와도 얼마 가지 못한다.

심지어 화물 항공편으로 대량의 마약 밀수가 이루어진 사건은 쉽게 덮을 수 있는 사건은 아님에도 비슷하다.

다만 최민혁 실장의 인터뷰 중에 이 사건이 터진 것은 이전과는 달랐다.

그는 기자들이 ‘마약’에 대해서 질문하면 그것을 좀 더 부풀려서 계속 입방정을 떨었다.

[김현탁 형과 안면이 있는 것은 사실이고, 실제로 도움도 꽤 받았습니다. 하지만 마약 밀매에 대한 것은 모르겠습니다.]

[글쎄요. 설마 그 마약으로 톰슨 멀티미디어와 협상했다고 우기시는 겁니까? 절대로 아닙니다.]

[하하하, 독일, 프랑스 영업망을 뚫기 위해서 전력을 기울여야 하는데, 제가 마약을 할 리가 있겠습니까. 이번 대한항공 편으로 들여온 막대한 코카인에 대해서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제 개인적인 생각에는 베트남 내부의 마약 유통 업체 통해서 마약을 들여온 것이 아닐까요? 그건 누구나 다 유추할 수 있는 일입니다!]

최민혁은 심지어 지난 마약 클럽 사건에 대한 기억을 꺼내서 수십 명의 기자를 상대로 그때 있었던 일을 다 폭로했다.

[전 이보다 검찰이 이상합니다. 지난 클럽 마약 사건을 기억해 보면 전 억울하게 누명까지 썼습니다. 그런데 아무도 잡혀 들어간 사람이 없어요. 도대체 어떻게 된 것일까요?]

입만 열면 마약, 마약, 마약.

최민혁은 그야말로 KM 전자와 관련이 없는 마약 이야기로 인터뷰를 장식했다.

오죽하면 뉴스로 나오는 인터뷰 장면에서 마약에 관한 이야기가 3/4를 차지했다.

주가 폭등에 따른 KM 전자의 관심사가 마약으로 둔갑해 버린 것이었다.

그러니 마약 뉴스가 한국 언론을 다 장악하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문제는 이 인터뷰의 불똥이 김현탁 부장과 김기범 구속 때문에 결국 DL 그룹으로 옮겨 붙었다.

날이 갈수록 마약 수사 이야기로 시끄러워지자 크게 당황한 것은 역시 DL 그룹이었다.

DL 그룹 부사장실은 마치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쩌렁쩌렁 울렸다.

“야!”

평소 겉으로는 목소리 한 번 올리지 않는 김희찬 부사장의 분노는 하늘을 찔렀다.

DL 전자 김용만 전무는 식은땀을 흘리면서도 하소연했다.

“형, 기범이가 마약 사범으로 잡혀갔어. 나도 억울해 미치겠다니까.”

“그 새끼는 마약 중독자잖아. 그런데 현탁이는 아니란 말이야. 기범이 그놈 때문에 지금 현탁이마저 처벌받게 생겼단 말이다!”

김용만 전무는 식은땀을 닦았다.

“이미 박두영 부장검사 통해서 알아봤는데, 현탁이는 곧 풀려날 거래. 이상수 과장이 대신 책임을 지기로 했다면서.”

이번 일을 통해서 둘째 김용만을 압박하려는 일이 막히자 김희찬 부사장은 인상을 찌푸렸다.

“너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하냐?”

“그러지 좀 말자. 기범이 지금 심각한 상황이야. 지난 마약 클럽 사건과 같이 연결된 터라 이번에는 기범이도 그냥 덮을 수가 없어.”

“너 그러면 지금 영국에서 조용히 일만 잘하는 현탁이도 감옥 보내자는 소리야?”

“아, 씨발.”

“그러면 최민혁 저 새끼 입을 막으라고 했잖아. 저기 집에 가서도 계속 인터뷰하면서 마약 사건을 떠들고 다녀!”

“전화해도 안 받는 것을 나보고 어떻게 하라고!”

실제로 사람도 보냈다. 그런데 그들은 죄다 김명진 과장에게 두들겨 맞은 후에 병원 신세였다.

김용만 전무도 넥타이를 푼 채 비서가 가져온 냉수를 벌컥벌컥 들이켰다. TV에서는 계속 최민혁의 인터뷰 뉴스가 나오고 있었다. 정확히는 IFA 기조연설과 KM 전자의 행보에 관한 이야기가 나와야 하고, 그 뉴스도 저렇게 계속 반복될 일이 아니었다.

그런데 마약과 DL 그룹의 일이 같이 엮이면서 계속 뉴스에 나왔다.

“저 개새끼가.”

“…….”

김희찬 부사장은 겉으로는 크게 분노한 척했지만 내심은 달랐다. 그는 이번 기회를 이용해서 절박한 김용만 전무의 영향력을 끌어내릴 생각이었다.

“만약 이번 불똥이 DL 그룹 전체로 퍼져 나가면 용만이 너는 완전 끝장일 거다.”

“설마 아버지가 그렇게 말한 거야?”

“그래. 오죽하면 최용욱 회장을 직접 만나서 항의했겠나. 그러니 어떻게 해서라도 내부적인 문제를 잘 정리해야 할 거다.”

“…….”

‘이 새끼가.’

두 사람의 갈등은 생각보다는 첨예해졌고, 심지어 이번 일을 통해서 더 크게 벌어지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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