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벌 3세는 조용히 살고 싶다-135화 (135/1,021)

#135

말은 별것 아닌데, 감은 이상하다는 것을 느낀 티에리 브로통 이사는 눈살을 찌푸렸다. 하지만 뒤늦게 드리 부사장을 비롯한 톰슨 이사진의 표정이 완전히 바뀐 것을 보자 아차 싶었다.

콜린스 판매 독점권으로 얻게 되는 이익에 맛이 가버린 것이었다.

회의할 때는 똥고집을 부리더니, 막상 콜린스를 본 프랑스의 반응을 보자 지금까지 굴린 꼼수도 다 잊어버렸다.

콜린스 판매 독점권에 비하면 들은 적이 있던 것 같은 멀티미디어 특허 따위는 그다지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특히 콜린스 판매를 영업적으로 잘만 운용하면 기존 톰슨 이미지를 미화할 수 있다고 생각했고, 이런 분위기 전환을 잘만 활용한다면 부채 협상에도 유리하다고 생각한 것이었다.

이미 승리를 자신한 최민혁은 다시 한번 대주주로서 주주를 설득시켜야 한다는 점을 피력했다.

“톰슨 멀티미디어는 프랑스를 대표하는 대기업입니다. 만약 우리 회사가 톰슨 멀티미디어 원천 특허를 사들였다고 언론플레이 하면 불만을 품은 주주를 이해시키는 데 좋습니다. 뭐, 꼭 안 된다면 어쩔 수 없죠. 다른 회사는 많으니까요.”

냉정하게 몸을 돌리는 최민혁 실장의 팔을 다급하게 잡았다.

“아, 알겠습니다. 일단 내부적으로 알아보고 바로 연락을 드리겠습니다.”

“…잘 모르시는 것 같아서 하는 말이지만 독일 유통업체도 관심이 많습니다. 그런데 알다시피 판매권 수익 문제라서 이게 좀 쉽지가 않습니다. AS 문제도 있고요. 톰슨 멀티미디어는 이런 모든 부분이 잘되어 있어요.”

“당연합니다. 유럽 최고의 가전회사가 저희 톰슨 멀티미디어니까요. 그 인프라를 활용할 수 있다면 귀사는 자잘한 것은 아예 신경 쓰지 않아도 됩니다.”

“압니다. 그런데 시간을 많이 못 드립니다. 삼 일 드리겠습니다.”

멀티미디어 특허에 의구심을 드러낸 티에리 브로통 이사에게 은근히 협박했다.

“그런데 솔직히 걱정됩니다. 안 그래도 적자가 조 단위를 넘어가는데, 만약 경쟁업체에서 콜린스 모델 판매를 시작한다면 더 큰 타격을 줄 수가 있죠.”

입술을 살짝 깨문 티에리 재무이사는 자기 아들보다 어린 최민혁 실장을 째려보았다.

하지만 이번 일은 다른 일과는 달리 강압도 필요하다고 생각한 최민혁은 단호하게 나갔다.

“안 그래도 민영화 이야기가 계속 나오는데, 다음 분기 적자가 더 심해지면 티에리 이사님도 그 자리를 지키지 못할 겁니다. 기회는 이번뿐입니다!”

“…….”

통역을 해주던 정성근 대리도 최민혁의 협박에 눈치를 살피면서 식은땀을 흘렸다. 도대체 무슨 의도인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티에리 이사는 이를 부드득 갈면서도 결국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브라소 부장이란 사람은 우리 직원을 상대로 갑질까지 했다고 들었습니다. 솔직히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만 해도 기분이 나빴습니다.”

“저, 절대로 아닙니다. 오해가 있었습니다. 만약 일부 사실이라면 앙트 부장에 대해서는 조치하겠습니다.”

“그건 마음에 듭니다. 하지만 시간이 그렇게 넉넉하지 않아요. 콜린스는 지금 양산이 문제가 아니라 판매가 더 심각하니까요. 그 문제만 해결된다면 누구와 손을 잡아도 상관이 없습니다!”

큰소리를 뻥뻥 치는 최민혁의 행동에 티에리 이사를 비롯한 드리 부사장도 저자세를 취할 수밖에 없었다. 그들도 막상 콜린스 반응을 보고 나서야 자신들이 뭔가 큰 착각을 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때문에 MP3와 관련된 부분은 제대로 확인조차 하지 못했고, 이 자리에서 언급조차 할 수가 없었다.

최민혁의 제안은 생각보다 벼랑 끝으로 몰리고 있는 톰슨 멀티미디어에는 심각한 압박이었기 때문이다.

‘KM 전자가 사업 다각화 차원에서 마쓰시타와 협상할 수밖에 없었지. 결국 마쓰시타 가전제품을 국내 KM 전자 대리점 통해서 팔아야 했으니까. 아마 우리 제안은 지금 톰슨에게는 거부하기 힘든 것이겠지.’

* * *

KM 전자와 톰슨 멀티미디어 협상은 KM 전자 본사에도 당연히 통보되었다.

최근 콜린스 이후에 바뀐 회사 분위기 때문에 신바람이 난 오영근 사장은 프랑스에서 온 최민혁의 일방적인 통보에도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그러나 문형섭 부사장은 뒤늦게 오영근 사장에게서 이 사실을 듣자 사장실로 달려왔다.

“사장님, 또 최 실장이 독단적으로 움직이고 있는 겁니까?”

“프랑스 지사 설립 이후에 파트너에 관한 이야기는 있었습니다.”

“아니, 그렇다고 그 대상을 왜 프랑스에서 자기 마음대로 결정합니까?”

아직 이사회에서 제대로 언급되지 않은 일이기에 문형섭 부사장도 마음이 편치가 않았다.

원칙대로라면 한국에 와서 검토한 후에 결정할 내용이었다.

오영근 사장은 좋은 게 좋다고 콜린스 인기 덕분에 굳이 최민혁을 부정적으로 보고 싶지 않았다. 월권을 행사하기는 하지만 결과가 더 좋았다.

그렇다고 문형섭 부사장의 이야기를 무시할 수가 없어서 결국 최민혁에게 전화했다.

[최 실장,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 건가. IFA 전시회도 끝난 마당에 왜 프랑스에 계속 있는지 모르겠어. 이제 돌아와서 상황을 보고해야 하지 않나?]

[톰슨 계약이 다급해서 당분간은 남아 있어야 합니다.]

[그 톰슨 계약 때문에라도 국내에 우선 들어와야 하지 않나. 안 그래도 그 일 때문에 대운 전자에서 말들이 많아.]

[여기 대운 전자 해외사업 팀 민경기 부장이 와 있기에 충분히 설명했습니다. 그런 의도가 없다고 분명히 했으니, 큰 문제는 안 될 겁니다. 아, 오성 전자의 권태성 실장도 와서 알아듣게 설명했습니다.]

[허, 권태성 실장이 프랑스 지사를 방문했다는 말인가?]

[아무래도 우리 KM 전자가 프랑스에서 본격적으로 움직이는 것을 걱정했던 거죠. 대운 전자 역시 민감한 이슈니까요.]

최근 갑자기 연락을 해오는 사람이 많아진 이유를 깨달은 오영근 사장은 혀를 내둘렀다. 설마 콜린스가 다른 대기업들의 프랑스 경영 전략에도 영향을 준다는 것을 몰랐던 것이었다.

문형섭 부사장이 냉큼 끼어들었다.

[최 실장, 지금 그렇게 중요한 일을 혼자 프랑스에서 단독으로 결정하는 것은 아니지 않나. 일단 국내로 와서 이사회를 거쳐서…….]

[처리할 급한 일이 좀 있습니다. 그러니 조금만 더 기다려 주십시오.]

[최 실장의 IFA 기존 연설을 통해서 분위기가 많이 바뀌었어.]

[압니다. 하지만 여기 일이 더 중요합니다. 몇 가지 확인한 것도 있는데, 이것은 다른 사람에게 맡길 수도 없습니다.]

[…도대체 프랑스에 왜 그렇게 집착하나. 설마 숨겨둔 여자라도 있는 건가?]

[하하하, 설마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가서 속이 시원하게 다 말씀 드리겠습니다. 톰슨 계약은 이미 보낸 계약서대로 바로 진행할 테니, 그것만 한번 확인해 주세요.]

[최 실장은…….]

최민혁은 바로 전화를 끊어버렸다. 문형섭 부사장은 어이가 없어서 수화기를 물끄러미 쳐다보면서 고개를 갸웃했다.

“도대체 왜 이러는지 모르겠습니다.”

오영근 사장도 이미 최민혁에게 된통 당한 경험이 있어서 마냥 문형섭 부사장의 태도를 무시하지 않았다.

“뭔가 다른 일이 있나 봐.”

“아니, 톰슨 계약 외에는 다른 일이 없을 텐데…….”

그는 한선화 비서에게 바로 연락해서 받은 계약서 내용을 확인하면서 고개를 갸웃했다. 계약서 내용은 그다지 이상하지 않았다.

“멀티미디어 특허 매입? 이건 또 뭘까요?”

“나도 좀 보세.”

오영근 사장도 계약서 내용을 확인하면서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특히 멀티미디어 관련 부분은 항목이 있지만, 너무 모호했다.

문형섭 부사장은 사내 법무 팀장을 불러 추가로 확인까지 해봤다.

“아무래도 이 멀티미디어 특허 부분이 좀 논란의 소지가 있을 것 같습니다. 왜 이런 식으로 계약서를 만들었는지 모르겠습니다.”

“…….”

이미 최민혁에게 콜린스로 단단히 당한 두 사람은 서로 시선을 주고받았다. 최민혁이 뭔가 다른 꼼수를 부린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런데 그게 무엇인지는 도저히 알 수가 없었다.

‘최 실장, 이 인간이 진짜.’

하지만 그들도 바보는 아니었다. 최민수가 회사에 입사한 것도 이미 안다. 내부적으로 최민혁에게 반기를 드는 인간이 없다고 할 수는 없는 상황이다.

즉 뭔가 일을 도모한다면 이사회에서도 믿을 수가 없었다.

이일태 이사가 대표적이었다.

그런데 달랑 김현우 상무와 친하다는 이야기만으로 이일태 이사를 자를 수는 없었다.

하물며 최근 나간 사람이 너무 많아서 더 자중할 수밖에 없다.

거기에 회사 분위기도 문제다.

만약 이일태 이사마저 무자비하게 자른다면 너무 맑은 물에는 물고기가 살 수 없는 것처럼 사내 분위기가 흔들릴 수도 있었다.

오영근 사장은 그제야 한숨을 내쉬었다.

“문 부사장, 일단 기다려 보세. 최 실장이 돌아오면 다 설명해 줄 거야.”

“…그래도 좀 갑갑합니다. 이제는 같이 머리를 맞대서 산적한 문제를 풀어가야 하는 상황인데, 아직 따로 노는 것 같으니까요.”

“그렇기는 하지만 대운 전자 분위기도 요즘 심상치 않아. 그래서 최 실장이 더 조심하는 것일 수도 있어.”

“그렇기는 하지만…….”

MP3 프로젝트 보고를 받기는 했지만, 구체적으로 돌아가는 내막을 두 사람은 알지 못했다. 특히 MP3 관련된 진행 사안은 제대로 보고도 올라가지 않았다.

최민혁은 자신이 프랑스에 있다는 명분으로 슬쩍 넘어간 것이었다.

내막을 잘 모르는 문형섭 부사장은 불만이 많았지만, 더 언급할 수는 없었다.

‘도대체 이 계약이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일까?’

* * *

최민혁이 제안한 계약서에는 모호한 설명만 나열되어 있었다.

MP3 특허는 그중에 아주 작은 일부분만을 차지했다.

그런데 MP3 특허는 이제 겨우 PC를 통해서 알려지기 시작했다.

노래에 대한 권리는 이미 다양한 저작권자가 다 가지고 있다.

이런 시기에 MP3가 돈이 될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멀티미디어 특허를 검토하던 티에리 영업 이사가 이런 MP3 가치를 알 리가 만무했고, 특허료 징수 권리를 가진 덕분에 쥐꼬리만 한 MP3 수익을 보자 더 확인하지도 않았다.

요식적인 행위로 톰슨 연구소장에게 몇 가지 확인만 했고, 혹시나 싶어서 이 특허 권리를 가진 칼하인츠 브란덴버그 박사에게 전화를 걸어 보았다.

[MP3 특허료는 아예 그 가치가 없어서 안 받기로 한 것 아닙니까.]

어이가 없는 것은 브라운호퍼 연구소조차 여기에 대해서 잘 모른다는 점이었다.

아니, 정확히는 기술 개발에만 관심이 있을 뿐, 수익에 대해서는 신경도 쓰지 않았다.

오히려 톰슨 멀티미디어 쪽에 일임했다.

[우리가 어차피 특허권 징수에 대한 권리를 당신에게 맡긴 것은 수익에 대해서는 신경을 쓰고 싶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 기술이 많은 사람 통해서 광범위하게 사용되기만 하면 됩니다. 톰슨은 지금까지 광범위한 투자를 진행했기에 믿고 맡긴 겁니다.]

아마 시간이 좀 더 있었다면 티에리 이사도 조목조목 따져봤을 테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이번 IFA 전시회 최고 작품으로 꼽힌 콜린스에 대한 러브 콜이 쏟아졌다.

당장 프랑스 독점권을 원하는 이들은 콜린스 모델에 미쳐 있었다.

고작 주어진 3일 안에 여러 가지 문제를 따질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콜린스와 이에 대한 사람들의 뜨거운 열기를 직접 지켜본 드리 부사장을 비롯한 톰슨 임원 역시 이전과는 태도가 달라졌다.

그들은 이미 대운 전자나 오성 전자 따위에는 신경도 쓰지 않았다.

“티에리 이사, 도대체 지금 와서 뭘 더 확인하자는 건가?”

한두 명이 아니라 이사진 전체가 난리였다.

특허권자조차 관심이 없는 MP3 특허권에 대해서 관심을 두는 이들은 아무도 없었다.

“티에리 이사, 멀티미디어 특허 중에 고작 MP3 특허 때문에 검토해야 하다니, 지금 당신 회사 사정을 알면서 그따위 소리를 할 거야? 당장 급한 불부터 꺼야 할 것 아냐. 당신, 이사회에서 잘리고 나서 지랄할 거야?”

“후유, 알겠습니다.”

뭔가 찜찜하다는 것을 느낀 티에리 이사였지만 이제는 더 질질 끌 수가 없었다.

그는 결국 최민혁 실장을 만나서 콜린스 독점 판매권에 대한 계약을 체결했다.

다만 이 계약서 안에 추가된 조건은 브라운 호프 연구소 MP3 특허권 매각이 되어야 한다는 전제 조건이 있었다.

이동호 교수와 최민혁 관계처럼 톰슨과 비슷한 관계인 브라운 호프 연구소 쪽에서도 이미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는 터라 이 부분에 대해서는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았다.

‘너무 서두르는 것이 아닌가 싶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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