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벌 3세는 조용히 살고 싶다-136화 (136/1,021)

#136

티에리 이사는 결국 브라운 호프 연구소에 직접 전화를 걸어서 MP3 특허 매각을 주도적으로 이끌었다. 이건 마치 최민혁이 이동호 교수에게 전화를 걸어서 비디오 특허를 매각하고 싶다는 의견을 밝힌 것과 다르지 않았다.

[알겠습니다. KM 전자 임직원이 오면 바로 MP3 특허권을 매각하겠습니다.]

최민혁은 답을 듣자 즉시 독일의 브라운호퍼 연구소로 향했다.

* * *

브라운호퍼 연구소는 독일의 대표적인 정부출연연구기관이다. 독일 전역에 67개 연구소를 두고 있을 정도로 규모도 크다.

이 연구소는 산업 분야에 광범위한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원천기술이 목표다. 이익만을 추구하는 기업과는 그 개념 자체가 달랐다.

바로 흑선을 발견한 요제프 폰 브라운호퍼의 이념에 따라서 연구소가 운영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독일 정부의 주도와는 달리 자율성이 풍부하다.

연구 자금 대부분이 민간 기업과 정부 기관의 프로젝트 계약으로 발생하기 때문에 독립적으로 연구를 진행할 수 있는 것이다.

브라운호퍼 연구원도 연구만을 원하는 인재를 골라서 선별한다.

그러다 보니 돈이 아니라 순수한 연구 인력 자체가 그 중심이 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이들은 특허료에 관해 그다지 큰 관심을 두고 있지 않다.

오히려 톰슨 멀티미디어 같은 회사에 그 징수권을 넘겨서 연구에만 집중한다.

얼핏 생각하면 이해하기 힘든 모습이다.

그런데 그 연구원이 돈보다는 자신의 기술이 더 광범위하게 사용되기를 원한다고만 생각하면 된다.

일반인이 생각하는 것처럼 특허료로 재벌이 되겠다는 생각보다는 자신의 기술이 인류 기술 발전에 도움되는 것을 꿈으로 삼기 때문이다.

심지어 MP3 특허권에 대해서는 아예 방임할 정도였다.

그런 이유 때문에 톰슨 멀티미디어도 MP3 특허료를 제대로 걷지 못했다.

그러니 톰슨 멀티미디어에서는 MP3 산업 미래가 어떤지 알 수가 없었다.

물론 이제 걸음마 단계이다 보니 MP3 산업 자체가 적은 것도 한 요인이다.

브라운호퍼 연구소 MP3 특허에 핵심적인 이바지를 한 칼하인츠는 특허료 매각 때문에 이곳을 찾은 디이터 교수에게 말했다.

“왔나?”

그나마 엘랑겐 대학 교수로서 이해관계에 밝은 디이터 교수가 툴툴거렸다.

“도대체 어떻게 돌아가는 상황인지 모르겠네. 아니, 톰슨은 왜 갑자기 이런 식으로 계약을 밀어붙이는지 알 수가 없어.”

칼하인츠 박사는 최근 진행하는 비디오 알고리즘 시뮬레이션 결과를 보면서 툴툴거렸다.

“어차피 달라질 것은 없잖아. 다른 것을 떠나서 올해 특허료는 아예 없어. 도대체 내가 왜 그렇게 열심히 이 일을 했는지도 모르겠다니까.”

“내 생각은 달라. 자네도 콜린스 모델 봤을 것 아냐. 그런 제품을 만든 회사에서 아무런 생각도 없이 MP3 특허권을 사들이겠나?”

“MP3 특허권이 아니라 멀티미디어 특허를 요구한 것으로 알아. 그중에 같이 껴서 꼽사리 신세로 팔려 나간 거래.”

자존심이 꽤 상한 칼하인츠 박사.

실상 브라운호퍼와 관련된 특허는 오디오 신호 전송 방법을 시작으로 해서 여러 종속 채널의 디지털 신호의 전송을 다룬다.

심지어 디지털 부호화 방법과 관련된 특허는 그 영향력이 가볍지가 않았다.

나름 꽤 괜찮은 특허라고 생각하지만, 세상은 이를 알아주지 않았다.

오히려 KM 전자만이 이 특허에 관심을 둬서 지금은 KM 전자가 고마웠다.

“솔직히 지금 톰슨을 봐. 망하기 일보 직전이잖아. 차라리 그런 회사보다는 혁신적인 생각으로 가득한 KM 전자가 훨씬 나아.”

디이터 교수는 톰슨 분위기가 일방적으로 흘러가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는 몇 번이나 전화를 걸어서 이 안건은 그렇게 허술하게 처리하면 안 된다고 전화했다.

이미 콜린스라는 마약에 푹 빠진 톰슨 멀티미디어 이사진이나 이들의 지원을 받는 브라운호퍼 연구소 이사회 역시 자신의 말을 아예 듣지 않았다.

그나마 특허권자라도 자기 말을 들었으면 하는데, 아예 먹히지 않자 가슴을 쳤다.

“자네는 스스로 만든 특허의 가치를 너무 과소평가하는 거야!”

“그러는 자네는 MP3 가치가 뭔지 알고서 그런 소리를 하는 거야? 어차피 저작권에 묶여 있어서 큰 의미가 없어.”

이제 PC 동호회에서나 가끔 언급되는 MP3 가치에 대해서 두 사람이 알 턱이 없었다.

아무리 이해타산면에서 칼하인츠보다 낫다고 해도 디이터 교수 역시 MP3 미래 가치에 대해서 확신할 수가 없었다.

얼마나 많은 시간이 흘러야 MP3 산업이 성장할지는 몰랐다.

‘하긴 적어도 20년은 지나야 할 테니, 마냥 고집하기도 그렇고.’

디이터 교수도 마른하늘에 뚝 떨어진 KM 전자가 MP3 특허권을 요구하자 머리가 띵했다.

황당한 것은 MP3 특허료 징수권 권리를 가진 톰슨 멀티미디어 측에서 이 계약을 적극 나서서 옹호한다는 점이다.

심지어 그들은 수백만 달러의 추가 지원까지 약속한 상황이었다.

아니, 한 걸음 더 나아가서 브라운호프 연구소에도 압력을 넣었다.

톰슨 멀티미디어와 브라운호프 연구소는 여러 가지 이해관계로 얽혀 있어서 이 제안을 거절하기는 쉽지가 않았다.

게다가 그들은 추가 지원금에 눈이 멀어서 이미 내부적으로 다 결론을 내버린 상황이었다.

다만 그들도 특허권자인 두 사람을 압박할 수가 없어서 좋게 설득하는 중이었다.

설득하러 온 디이터 교수도, 다 포기한 칼하인츠 박사도 고집을 피워봤자 좋은 꼴을 볼 수가 없다고 생각하자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도 이건 아닌 것 같은데…….’

* * *

디이터 교수도 열심히 칼하인츠 박사 설득에 들어갔지만, 최민혁은 그들 예상보다는 더 빨리 브라운호퍼 연구소에 나타났다.

‘진짜 빠르네. 출발하기도 전에 전화부터 먼저 한 건가?’

같이 동행한 이들은 조성돈 팀장, 배종대 과장, 정성근 대리였다. 그들 역시 느긋하기만 하던 최민혁의 급격한 행동 변화에 당황했다.

설마 톰슨의 도움을 얻기가 무섭게 바로 독일행 비행기를 탈지는 몰랐다.

최민혁은 주변 분위기 따위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그는 오직 MP3 특허권에만 집중했다. 필요하다면 살인까지 할 분위기였다.

그들은 약속대로 찾아온 심각한 최민혁을 보자 별다른 감정을 가질 수가 없었다.

“칼하이츠 박사입니다.”

최민혁은 이런 두 사람의 심정을 누구보다 잘 알았기에 태도는 그 어느 때보다 정중했다.

“KM 전자의 최민혁 실장입니다. 이렇게 두 분을 뵙게 되어서 영광입니다.”

“아, 네.”

두 사람도 처음 보는 동양인의 정중한 자세에 오히려 움찔 놀랐다. 지금 자신들은 영광 소리 들을 정도는 아니니까.

막상 동양인에 대한 선입견을 품고 있었는데, 상대는 그런 자신을 너무도 잘 아는 눈치다.

기분이 묘했다.

디이터 교수조차 최민혁을 긍정적으로 바라봤다. 사실 MP3 특허 작업은 비디오 특허를 진행하는 과정에 진행된 일이었기 때문이다.

비록 MP3 프로젝트의 프런티어 역할을 했다고 해도 아직 알아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하지만 최민혁 입장에서는 MP3 가치를 누구보다 잘 알기에 두 사람을 공경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이야 제대로 된 평가를 받지 못하지만, 후일 디지털 시대를 열어간 선구자 중에 한 사람으로 평가받으니까. 난 그 가치를 슬쩍 가로챈 것이고.’

그렇게 불만을 토로하던 디이터 교수조차 최민혁을 조심스럽게 살폈다.

“혹시 나이가…….”

“이제 대학교 1학년입니다.”

“…정말 놀랍습니다.”

디이터 교수도 한국 재벌가에 대해서 제법 알았다. 게다가 이미 이곳에 오기 전에 KM 전자에 대해서는 따로 조사를 해봤다.

‘하지만 한국 재벌가 일원이라고 해도 저 나이에 기획실장을 할 수가 있나?’

이런저런 의문이 많이 들었다.

그런데 주렁주렁 달고 온 인원은 다들 최민혁 눈치만 봤다. 일방적인 행보가 아니라 리더로서 존경도 받고 있었다.

KM 전자의 새로운 변화에 관한 기사도 살펴보았는데, 그 변화의 중심에 저 최민혁 실장이 있다는 것도 깨달았다.

‘놀라운 친구구나.’

“갑시다, 내가 우리 연구소 한번 견학시켜 줄 테니까.”

거절할 이유는 없었다.

“알겠습니다.”

* * *

최민혁에게 호감을 느낀 두 사람은 선뜻 브라운호퍼 연구소를 안내해 주었다.

독일 12개 주에 흩어져 있고, 60개가 넘는 연구 기관을 가진 브라운호퍼 연구소 내부는 첨단 연구 장비와 전문가로 가득했다.

연구원은 조용히 자기 맡은 일에만 집중한 채 움직였다.

정밀 기계를 통한 샘플 작업의 열기는 깊은 심해처럼 조용하게 진행되었다.

최민혁은 브라운호퍼 연구소 내부를 돌아보면서 새삼 원천기술에 대해서 많이 고민하고, 번민했다.

‘아쉽게도 내가 아는 전문 분야는 많지가 않아.’

이동통신을 비롯한 몇몇 분야의 아이디어가 떠오르기는 했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문제는 과연 이런 기술을 얻을 수 있을까 하는 부분이었다.

스스로 욕심이 과하다고 느낀 최민혁은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견학 과정에서 보다 발전된 브라운호퍼 연구소의 내부 구조를 경험한 조성돈 팀장은 아무런 말없이 그저 조용히 필기만 했다.

칼하인츠 교수는 문득 최민혁의 시선을 보면서 슬그머니 입을 열었다.

“혹시 콜린스 모델도 당신 작품입니까?”

“우리 KM 연구소 엔지니어의 피땀 흘린 결실일 뿐입니다.”

“그걸 주도한 것은 당신이겠군요.”

“전 단지 기획을 했을 뿐입니다. 우리 회사 엔지니어의 장인 정신은 독일 제조업을 이끄는 이들과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흠.”

독일 장인에 대한 인정.

디이터 교수도 최민혁을 도저히 싫어할 수가 없었고, 칼하인츠 교수는 아빠 미소를 한 채 최민혁은 은근히 쳐다보았다.

사실 디이터 교수는 콜린스 분해된 자료도 살펴보았기에 최민혁 주장을 순순히 인정했다. 다른 TV와는 격이 다른 수준의 작품이라는 것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결국 꼬투리를 잡으려고 했던 디이터 교수조차 한동안 침묵했다.

자신의 제자 같은 최민혁 실장의 모습에 칼하인츠 역시 피식 웃었다.

“최 실장을 보니, 따로 걱정할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과찬입니다.”

오늘따라 유독 겸손한 최민혁.

“…….”

조성돈 팀장을 비롯한 두 사람은 생소한 최민혁의 반응을 물끄러미 쳐다보기만 했다.

그래서일까.

시작은 역시 나쁘지 않았다.

콜린스라는 공감대가 생기자 MP3 특허는 오히려 주목의 대상이 아니었다.

다만 디이터 교수도 계속 의문을 토로했다.

“자꾸 톰슨 멀티미디어 특허 같은 엉뚱한 핑계 대지 마세요. 도대체 귀사는 MP3 특허권을 왜 사들이려고 하는 겁니까?”

최민혁도 꼼수를 부리다가 결국 진심으로 말했다.

“그건 특허 매각 서명을 해주시면 해드리겠습니다. 아무래도 두 분이 마음을 바꿀 것 같아서요.”

디이터 교수도 이미 반쯤 포기했다.

“걱정하지 마세요. 이미 다 결정이 난 일을 어떻게 돌리겠습니까.”

최민혁은 넌지시 의문에 다른 제안으로 응수했다.

“아마 이동호 교수 팀의 비디오 특허에 대한 것은 이미 아실 겁니다. 두 분에게도 이동호 교수 팀과 공동 연구할 수 있도록 제가 손을 써드리겠습니다.”

MP3 산파 역할을 했던 두 사람은 실제로 비디오 특허에 더 관심이 많았다. 그들이 소니 전자와 불협화음을 일으키고 있는 KM 전자의 비디오 특허를 모를 수가 없었다.

돈보다는 기술에 관심이 많은 두 사람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저, 정말입니까?!”

“그럼요. 제가 이래 봬도 그 연구 지분을 일부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니 절 대신하는 것이니, 이동호 교수도 반대할 수는 없습니다.”

그는 말보다 이동호 교수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서 영문을 잘 몰랐지만, 최민혁의 압박을 받은 이동호 교수의 흔쾌한 대답을 받아냈다.

두 사람은 도저히 호기심을 참을 수가 없어서 계약서에 최종 서명을 했다.

“좋습니다.”

하지만 최민혁도 절대로 손해 볼 생각으로 이 제안은 한 것은 아니었다.

‘MPEG 위원회 내에서 소니의 파워를 무시할 수는 없어. 최근 오다 히로 부사장이 계속 압력을 넣는 것도 그것 때문일 테니까. 이동호 교수 힘만으로는 한계가 있으니, 이들 지원은 큰 도움이 될 거야.’

최민혁의 꿍꿍이를 잘 모르는 두 사람은 바로 질문했다.

“도대체 이 특허로 뭘 하려는 겁니까?”

“기존의 음악 기기를 대신하는 MP3 전용 모바일 시장을 열어볼 생각입니다.”

“그런데 거기에 왜 MP3 특허가 필요하다는 말입니까?”

“이게 있어야 음원을 돌릴 수 있는 모바일 기기를 개발할 수가 있습니다.”

특허 없어도 개발은 가능했다. 단, MP3 로열티만 낸다면 말이다.

“다른 것보다 이미 대형 음반사가 저작권을 다 쥐고 있는데, 그게 가능하겠습니까?”

“쉽지 않은 문제이지만 그건 제가 걱정할 사안이 아닙니다. 세상에 능력 많은 분은 많으니까요.”

‘스티븐이 알아서 할 문제겠죠. 전 스티븐 등에 빨대를 꽂기만 하면 되니까. 그래서 이 특허가 필요한 것이고요. 흠, 이 말까지는 못 해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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