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벌 3세는 조용히 살고 싶다-75화 (75/1,021)

#75

평소와는 다른 장승일 실장의 행동에 안현수 팀장은 그제야 피식 웃었다.

“아마 그렇게 되기는 어려울 겁니다. 그쪽 특허만 해도 수백 건, 아니 수천 건식 경쟁하니까요. 오성 전자가 그 문제에 대해서 예민한 이유죠.”

그는 새삼스러운 눈으로 안현수 팀장을 다시 쳐다보았다. 서울대 전기과 출신으로 사법고시에 합격한 그는 심지어 국제변호사 자격증까지 취득했다.

변호사는 특허를 담당하는 변리사일까지 할 수가 있는데, 안현수 팀장은 뜻밖에 그룹 원천기술 관리도 직접 담당했다.

“지난 최 전무 일은 죄송했습니다.”

“아닙니다. 당연히 해야 할 일이니까요. 이번 일도 마찬가지고요.”

“그러면 잘 부탁합니다.”

“그런데 최민혁 실장이 이번 일에 직접 절 파견 요청했다고 하셨죠?”

“네.”

“이상하군요. 전 최민혁 실장에 대해서 잘 모르는데, 어떻게 저를 딱 찍어서 도움을 요청한 것일까요?”

“뭐, 그룹에서 안 팀장님 명성이 워낙에 자자하니 당연한 것이 아닐까요?”

“그렇다고 해도 이미 STB 사업부 매각에 대해서는 저희 쪽에서 이미 확인을 했습니다.”

“글쎄요. 그건 직접 가서 이야기를 들어보는 것이 맞지 않을까요?”

“그렇습니까.”

“네. 아마 최 실장님을 직접 만나 보면 깜짝 놀랄 겁니다.”

“흠.”

안현수 팀장은 이 일이 흥미를 느꼈지만, 딱히 심각한 점을 찾지는 못했다. 도대체 최민혁이 왜 딱 자신을 찍었는지 알 수가 없었다.

‘오성 전자 때문일까? 하지만 그쪽에서 예민하게 반응할 만한 것은 보이지 않는데, 사업부 매각과 관련해서 뭔가 다른 것이 있다는 말일까?’

장승일 실장 역시 비슷한 고민을 해봤지만, 답을 찾지는 못했다.

‘하여간에 최 실장님이 하는 일에는 정말 끼고 싶지 않다니까.’

* * *

작년 오성 그룹의 사장단 인사는 이전과는 사뭇 다르게 진행되었다.

기존 사업 구조조정과는 달리 4개의 중핵 사업군을 따로 만들어서 각 계열사 사장, 이사, 전무, 부회장까지 다양한 변화가 있었다.

해외 진출에 본격적으로 뛰어들면서 그룹 내부 구조에 변화를 줬다.

특히 전자사업군은 큰 변화가 있었는데, 그중에 하나가 에머슨, 한국전산과 같은 관련 3개사를 매각시켜 버렸다.

비주력 업종을 정리하고, 경영 체질 개선을 통해서 체질을 강화한 것이다.

데이콤 지분 인수는 이런 전략에 따른 전략적인 움직임이었다.

다만 결과적으로 데이콤 주가가 폭락하면서 오성 전자도 고민했다.

특히 이 일을 담당한 권태성 실장은 이 문제 때문에 주변에서 적지 않은 압박을 받았다. 비록 황광수 차장을 내세워서 그 책임을 피한다고 해도 한계가 있었다.

그는 때문에 KM 전자의 STB 사업부 인수에 심혈을 기울였다.

‘자동차 사업 인수 준비 때문에 요란하게 난리를 치고 있는데, 자칫하면 정말 폭탄 맞아.’

“강 박사님, 어떻습니까?”

오성 전자 특허관리 팀 부장인 강상식 박사는 아직도 잘 믿기지 않은 눈으로 특허를 살폈다.

“이해할 수가 없군요. 도대체 KM 전자에서 어떻게 이런 기술을 고안할 수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렇게 중요합니까?”

“기존 방식보다는 효율이 높으니까요. 아마 방송국 엔지니어가 이 자료를 본다면 환호할 겁니다. 그들이 지금 진행하는 디지털 TV 방송하고도 관련이 있으니까요.”

“만약 이 특허가 우리 것이 된다면 그쪽에도 영향을 주겠군요.”

“방송 3사 쪽하고 협상을 해봐야 하겠지만 아마 일이 잘되면, 우선 시범적으로 프로젝트를 진행할 수도 있습니다.”

“역시 STB 사업부 인수를 해야 한다는 말씀이시죠?”

“그런데 이 일이 하루 이틀 소요되는 것도 아니고, 들어가는 비용도 만만치 않습니다. 그렇다고 꼭 성공한다는 보장도 없습니다.”

“리스크 말씀입니까?”

“네. 저야 도움을 요청하니, 제가 해줄 수 있는 대답을 한 것뿐입니다. 그런데 책임은 결국 권 실장님이 져야 할 겁니다.”

“압니다.”

권태성 실장도 안색을 굳히고 말았다. 지금도 그의 입지가 좋지가 않았다. 자동차 때문이라고 하지만 계열사 구조조정은 실제로 진행 중이다.

‘벌써 정리한 곳만 해도 열 곳이 넘으니까.’

추가로 10개 계열사 정도는 이미 구조조정 대상에 올라와 있다.

그 자신도 마찬가지다. 오너 일가와 관련이 없는 자신은 실적이 없다고 그 다음 날로 잘릴 수도 있었다.

‘여기까지 왔는데, 포기할 수 없잖아.’

* * *

오성 전자 내부적으로 여러 전문가를 불러 수십 차례 KM 전자 STB 사업부 인수를 통해서 얻을 가치를 확인한 권태성 실장은 황광수 차장을 비롯한 법무 팀 인수 전문가와 같이 이번 매각 협상에 임했다.

그들은 자산 실사를 명분으로 일단 STB 사업부 관련된 재산을 일일이 다 확인했다.

심지어 공장 부지와 공장도 다 살펴보았는데, 굳이 다른 업체 인수처럼 깐깐하게 나오지 않았다. 마치 요식 행위처럼 대충 확인만 했다.

인원 역시 마찬가지다.

비록 코스피 분위기는 좋지 않았지만, 한국 기업은 외형적으로 막대한 차입금을 빌려 와서 투자를 마구잡이로 했다.

따라서 인원이 부족한 터라 2년 고용 보장이라는 조건 때문이 아니라도 굳이 STB 사업부를 감원할 생각은 없었다.

결국 자산 실사와 협상은 생각보다는 순탄하게 흘러갔다.

황광수 차장은 평소보다 더 안색이 굳은 권태성 실장을 걱정했다.

“괜찮습니까?”

“어.”

“그렇게 걱정되시면 다시 한번 생각해 보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이미 그룹 본사에도 보고가 다 올라갔고, 그쪽에서도 허락한 사안이야. 인제 와서 내 마음대로 어떻게 할 수도 없어.”

“일이 잘되면 괜찮겠지만, 만약 문제가 생기면 이번에는 실장님에게 책임을 물을 겁니다.”

“알아.”

아니, 정확히는 권태성 실장도 몰랐다. 그 역시 최근 오성 전자 내에서 일어나는 계열사 구조조정 문제를 가볍게 생각했다.

막상 일이 점점 커지면서 이 일이 생각보다는 더 중요해져 버렸다.

황광수 차장도 당혹스러웠다. 오성 전자에 와서 잘 적응하나 싶었는데, 자칫하면 구조조정 대상자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설마 아니겠지?’

두 사람 분위기가 워낙에 심각해서인지 동행한 이들도 역시 안색이 좋지가 않았다.

그들 역시 이미 사전에 충분한 검토를 했지만, 특허 문제는 확신하지 못했다.

이유는 이 특허와 관련이 있는 경쟁 상대가 소니, 미쓰비시를 비롯한 다국적 기업이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이들은 협상장에 들어가면서도 계속 계약서 어구 하나하나를 다시 확인했다.

협상 자리에 미리 와 있던 KM 전자 협상 팀 역시 단단히 긴장했다.

그룹 본사의 장승일 실장을 비롯한 중요한 인물이 다 참석했다.

다만 한 사람이 아직 오지 않았다.

미팅 시간에 정확하게 맞추어서 나타난 이는 바로 최민혁이었다.

동안이라서 십대 후반으로 보이는 최민혁이 협상장 중앙에 떡 않았다.

이 자리에서 처음 최민혁을 만난 권태성 실장은 막상 자신이 들은 것보다 더 어린 최민혁 모습에 힐끗 황광수 차장을 쳐다보았다.

그런데 황광수 차장 역시 최민혁을 이 자리에서 처음 봤기에 놀랐다.

두 사람은 왜 장승일 실장이 최민혁 실장 옆에 달라붙어서 조언만 하고 있는지 영문을 몰라서 계속 눈을 껌뻑거렸다.

‘이거야 원.’

황광수 차장은 전 직장이 참 많이 망가졌다고 느꼈다.

‘설마 정말 최 실장을 이번 협상 책임자로 내보냈다는 말인가?’

이미 장승일 실장을 통해서 최민혁의 놀라운 수완을 듣고서 감탄한 최용욱 회장이 오영근 사장에게 직접 연락해서 이번 일을 맡겼다는 사실을 두 사람은 알 수가 없었다.

오성 법무 팀 쪽은 아예 KM 전자 내부 분위기를 몰랐기 때문에 처음에는 다들 장난인가 싶어서 최민혁을 계속 쳐다보았다.

여기까지만 해도 협상 자리는 휑한 바람이 불 정도로 어색했다.

KM 전자 쪽 담당자는 다들 최민혁 악명을 잘 알기 때문에 눈치만 봤고, 오성 전자 담당자는 여전히 영문을 모른 채였다.

그렇다고 당신이 책임자냐고 물을 수도 없었다.

최민혁은 이런 분위기에 아랑곳하지 않은 채 협상 자리에 오기 전까지 실무진끼리 어느 정도 이야기가 된 170억에 대해 말하지 않았다.

“지금 저희가 예상한 STB 사업부 매각대금은 900억입니다.”

“네? 90억 말입니까? 흠, 그 정도라면…….”

“아뇨. 900억입니다.”

“하하하, 농담도 잘하십니다.”

그 냉정한 권태성 실장도 어이가 없는지 실실 웃으면서 KM 전자 협상 팀을 쳐다보았다.

그런데 그들 역시 깜짝 놀랐다.

특히 조성돈 팀장은 당황해서 최민혁을 다시 쳐다보았다.

하지만 최민혁은 손을 들어서 자기 쪽 사람 입을 막아버렸다.

“이거 실망입니다. 그렇게 어물쩍 넘어가면 제가 모를 거라 생각합니까?”

이 자리에 빠진 김현우 상무와 이미 이야기를 끝낸 권태성 실장은 고개를 갸웃했다.

“무슨 말씀입니까?”

“정말 모른다고 생각합니까?”

‘설마 아니겠지? 김현우 상무 이야기로는 최 실장이 전혀 모른다고 했어. 설사 안다고 해도 그 의미를 알 수가 없어서 문제가 없을 거라고 말했잖아.’

그는 눈을 굴리며 의혹이 가득한 장승일 실장을 비롯해서 법무 팀 당사자를 확인했다.

‘모르고 있는 눈치인데…….’

최민혁은 피식 웃으면서 따로 챙겨온 비디오 관련 가짜 특허 열 가지 서류를 꺼내서 장승일 실장과 안현수 팀장에게 넘겼다.

“…이게 뭡니까?”

“저도 조금 전에야 서류를 확인했습니다. 한번 읽어 보세요.”

장승일 실장은 바로 그 의미를 알아듣지 못하고 힐끗 안현수 팀장을 쳐다보았다.

안현수 팀장도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은 눈으로 서류를 확인하다가 뒤로 넘기면서 안색을 굳히고 말았다. 그는 허겁지겁 뒤에 있는 나머지 특허를 확인하고 난 후에 황당한 눈으로 권태성 실장을 쳐다보았다.

그 역시 이쪽 분야는 잘 모르지만 기존 특허를 확인하면서 어느 정도는 파악했다. 그 덕분에 이 특허 가치를 보다 쉽게 이해한 것이었다.

‘젠장.’

권태성 실장은 엿 된다는 것을 느꼈고, 황광수 차장 역시 안색을 와락 굳히고 말았다. 쉽게 갈 수 있었던 협상이 어렵게 되었기 때문이다.

안현수 팀장 통해서 간단한 요약 강의를 받은 장승일 실장은 평소와는 달리 이를 으드득 갈면서 최민혁을 쳐다보았다.

“김 상무 짓입니까?”

“그건 따로 이야기하죠. 일단 이 협상부터 끝냅시다.”

장승일 실장이 다시 안현수 팀장과 900억이란 금액이 맞는지 확인했다.

하지만 안현수 팀장도 그 부분에 대해서는 확신하지 못했다.

표준화가 되었다면 그렇게 큰 금액은 아니지만, 지금 이 순간에는 오히려 많은 금액이었다.

장승일 실장은 새삼 놀란 눈으로 최민혁 실장을 다시 쳐다보았다.

최민혁은 이번 협상 자리에 참석한 다른 이들의 뜨거운 시선을 받으면서 소리쳤다.

“비디오 특허를 비롯한 관련 특허 가치가 꽤 매력적일 겁니다. 그걸 노리는 오성 전자 측에서 더 잘 아실 겁니다만?”

“으음.”

권태성 실장은 크게 당황했고, 그건 황광수 차장 역시 다르지 않았다.

심지어 법무 팀 역시 오성 종기원 쪽에서 몰려왔던 박사급 인물의 잔소리 덕분에 KM 전자의 특허 가치를 누구보다 잘 알았다.

다만 그걸 내색하지 않으려고 애를 썼다.

그런데 최민혁은 마치 그들의 내심을 들여다본 것처럼 알고 있었다.

“이런. 저희를 정말 호구로 봤군요. 오늘 협상은 여기까지 합시다. 다음 미팅에는 현실적인 금액을 들고 나오세요.”

벌떡 일어난 최민혁은 회의실을 바로 나가다가 한마디 더 남겼다.

“아, 다음 미팅에서도 현실에 맞지 않는 요구를 한다면 LC 전자를 비롯한 가전 3사와도 만날 겁니다. 다음에는 제대로 준비를 해오세요!”

“…….”

가전 3사라는 말에 충격을 받은 권태성 실장은 깊은 한숨을 내쉬고 말았다.

‘제기랄.’

* * *

최민혁이 고안한 열 가지 가짜 특허 중에 특히 비디오 관련 특허는 그 파급 효과가 만만치 않았다. 특히 앞으로 디지털 TV 시대가 열리면 그 영향력이 얼마나 클지 짐작조차 할 수가 없었다.

실제로 이런 문제 때문에 이 특허에 대한 권리 문제는 MPEG 위원회에서도 예민하게 다루었다. 미국, 유럽, 아시아 TV 시장에도 광범위한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물론 전제는 이 특허가 표준화가 되어야 한다는 조건이 필요하다.

그런데 이 비디오 특허는 겉으로 봐서는 다른 특허에 비해서 방송 장비가 좀 많이 복잡해진다는 취약점이 있지만, 확실히 강점이 많았다.

뒤늦게 이 특허를 확인한 박상기 차장은 900억이란 황당한 매각 대금보다 이 자료에 경악했다.

“…맙소사.”

“…….”

협상 자리에서 서류를 확인한 조성돈 부장도 당혹스럽기는 매한가지였다.

특히 배종대 과장은 자기 속내를 가감 없이 털어놓다가 이정원 과장을 쳐다보았다.

“야, 우리 실장님, 진짜 대단하시다. 아니, 언제 이런 것을 알았대? 이정원 과장님은 이런 사실을 몰랐던 겁니까?”

다른 기획 팀은 모두 STB 담당자인 이정원 과장을 쳐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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