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벌 3세는 조용히 살고 싶다-56화 (56/1,021)

#56

그 이야기를 들은 팀원들은 귀가 솔깃했다.

다른 경우와는 달리 이 경우는 대기업의 욕망이 얽혀 있어서 일어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더욱이 주식 매입을 권한 사람은 회사 내에서 알게 모르게 주식 투자의 대가라는 소문이 돌고 있는 최민혁 실장이었다.

결국 기획 팀 전원은 이전에 KM 전자 주식을 사들이기 위해서 했던 것과 똑같이 데이콤 주식을 93,000원에 사들였다.

뒤늦게 이 사실을 들은 최민혁은 지분을 어떻게 오성 전자에 비싸게 팔아치울까를 고민하다가 원래 데이콤 지분이 동양을 거쳐서 LC 전자로 넘어간 것을 기억해 냈다.

‘TV 사업부를 팔아치우기에 앞서 위밍업으로 데이콤 지분 매각을 이용하는 것도 괜찮겠어. 이왕이면 STB 사업부도 그럴듯한 특허를 이용해서 비싸게 팔아치울 수도 있으니까.’

* * *

최민혁의 오성 전자 장난 후에 코스피는 하락세를 이어갔다. 기술적인 반등 구간이 나오기는 했지만, 여전히 내리막이었다.

정부에서도 다양한 수단을 연구했지만 먹히지 않았고, 결국 800선이 무너지자 당황했다.

여론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그들은 결국 최훈열 전무의 재판 이야기가 서서히 가라앉는 시점에서 통신 산업 구조조정안을 전격 발표했다.

[통신사업자 지분 상한선을 다음 달부터 10%까지 확대한다!]

조금은 생뚱맞은 정부 발표안이었지만 매우 놀라는 이는 없었다.

이미 이전에 말이 나온 안건이었고, 시기가 문제일 뿐이었다.

아니, 코스피 하락세 와중에 나온 호재라서 오히려 많은 이들이 손뼉 쳤다.

다만 가전 3사는 이야기가 달랐다.

데이콤 지분 4.6%를 소유한 오성 전자는 시외전화사업에 관심이 있다고 대외적으로 이미 발표한 상황에서 데이콤 주식을 추가로 사들였다.

데이콤 지분을 노리고 있던 LC 그룹 역시 대대적으로 장외 매입에 나섰다.

심지어 HY 전자를 비롯한 대운 전자 역시 통신사업 진출 차원에서 물량 확보전에 뛰어들었다.

동양을 비롯한 다른 중견기업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한국의 내로라하는 모든 기업이 지분 경쟁에 돌입하면서 데이콤의 주식은 사흘 동안 무려 70만 주가 거래되었다.

비정상적인 거래량인 50만 주를 가볍게 뛰어넘은 수요 덕분에 데이콤 주가는 단숨에 10만 원을 회복했고, 그 이후에도 연일 상한가를 계속 치면서 결국 감리종목으로 지정되었다.

하지만 감리종목이 풀리고 나서도 여전히 상승세를 잃지 않아서 13만 원을 돌파하더니, 15만 원에 금방 안착했다.

“만세!!!”

손을 번쩍 든 이는 재테크에 관심이 많은 배종대 과장이었다. 그는 KM 전자 때와는 달리 이번에는 무려 2억을 대출받아서 모두 4억을 투자했다.

단순 이익만 2억이 훌쩍 넘는 상황에서 로또 당첨된 것이나 마찬가지다.

정성근 대리 역시 이번에 무려 1억을 퍼부어서 재미를 단단히 봤다.

다른 팀원 역시 큰 이익을 봤지만 한편으로는 더 투자해야 했다며 아쉬워했다.

“최 실장님이 대놓고 추천할 때 그 말을 무조건 믿었어야 했어.”

“KM 전자 내부자 거래를 고려해서 특별히 신경 써준 건데, 정말 아깝다.”

“아, 돈만 더 있었다면 투자했을 텐데.”

“진짜 이런 기회는 안 오는데, 너무 속상해.”

박상기 차장 역시 입이 벌어지기는 매한가지였지만, 한껏 들뜬 기획 팀 분위기에도 조용히 키보드만 두드리고 있는 조성돈 팀장에게 다가갔다.

“조 부장님은 어때요?”

“저도 재미 좀 봤습니다.”

“얼마요?”

“그게 좀…….”

“에이, 또 이러신다.”

“사실 전 실장님 조언을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는데, 제 아내 생각은 달랐습니다.”

“그래서요?”

그만 호기심을 느낀 것이 아니라 다른 기획 팀원 역시 우르르 몰려와서 조성돈 팀장을 쳐다보았다.

“아내가 처가에서 도움을 좀 받았나 봅니다.”

“그런 식으로 주식 투자하다가 패가망신합니다.”

“압니다. 저도 몇 번이나 충고했는데, 아내도 최 실장님에 대해서 좀 압니다.”

“얼마나 투자했습니까?”

“12억.”

“……!”

박상기 차장과 기획 팀원은 모두 입을 딱 벌린 채 무안한 표정을 짓고 있는 조성돈 팀장의 얼굴을 멍하니 쳐다보았다. 기획 팀원도 다들 황당한 얼굴로 바라보았다.

“도, 도대체 얼마나 번 겁니까?”

정성근 대리가 슬쩍 끼어들었다.

“7억이 좀 넘는 것 같은데, 아직은 안 파는 게 좋을 겁니다. 저도 아는 지인을 통해서 확인해 보니, 큰손이 끼어서 엄청난 물량을 매입했다고 해요. 데이콤 목표 주가가 20만 원이라는 소리도 있으니까요.”

“와아.”

기획 팀은 다들 입을 다물지 못했고, 뒤늦게야 이 상황을 짐작한 최민혁 실장의 안목에 깊이 탄식하고 말았다.

“실장님이 진짜 보통 분이 아니구나.”

“그러지 않고서야 지금 우리 사정이 말이 안 되잖아요. 외부에서 보면 다 망해가는 회사인데, 내실은 전혀 다르니까.”

늘 조용하기만 하던 이영란 대리가 불쑥 반문했다.

“그런데 왜 언론은 우리 회사 내부 사정을 잘 모르는 것일까요?”

세상 쓴맛을 경험한 박상기 차장이 피식 웃었다.

“그거야 우리 기획 팀만 아니까. 다른 사업부는 최훈열 전무 구속 때문에 자기 앞가림한다고 바빠서 그런 사정을 몰라. 결국 최 실장님이 입 다물면 아는 사람이 있을 수가 없어.”

“그렇구나.”

그제야 다들 이상한 점을 느꼈다. 주가에도 손을 쓰지 않는 최민혁 실장 행동이 이상했던 것이다.

하지만 박상기 차장은 굳이 이럴 때 주식 지분을 상속하면 상속세를 대폭 줄일 수가 있다는 점까지 말하지는 않았다.

조성돈 팀장 역시 상속세를 대략 계산하면서 암묵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작년에 17,000원이던 주가가 1/10로 떨어졌으니, 어쩌면 그럴지도 모르지.’

* * *

최민혁은 기획 팀 분위기를 듣고 나서는 피식 웃으면서 다음 계획으로 넘어갔다. 그는 김명준 과장을 통해서 우영민 과장에게 오성 전자와 어떻게 협상해야 할지를 지시 내렸다.

우영민 과장 역시 데이콤의 주가 폭등에 재미를 단단히 봤지만, 최민혁의 또 다른 지시에 혀를 내두른 채 황광수 차장에게 연락했다.

이번에는 기획실장 권태성까지 동행해서 나타났다.

“반갑네.”

“저 역시 높은 명성 잘 듣고 있습니다.”

무미건조한 목소리에 일벌레라고 소문이 난 권태성은 겉으로는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았다.

“정말 아쉬워. 왜 굳이 침몰하는 배에서 붙어 있는지 모르겠어.”

“배가 침몰할지, 아니면 더 높은 대양으로 나아갈지 결정된 바 없습니다.”

“자네가 있는 회사에 관해서 조사를 해봤는데, 외국계 투자회사더군. 차라리 투자에 관심이 있다면 오성 증권에 자리를 만들어줄 수 있어.”

“괜찮습니다. 그리고 제가 있는 회사 이야기는 그만하시죠.”

“알겠네.”

권태성 실장은 장승일 실장에 이어서 우영민 과장마저 스카우트하는 데 실패한 것에 아쉬워했다.

하지만 우영민 과장이 내놓은 것은 바로 데이콤 지분 10%의 대리인 위임장이었다.

“아니, 이건……!”

안 그래도 데이콤 지분 매입에 정신이 없던 두 사람은 깜짝 놀라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고 말았다.

비록 오성 전자 기획 팀에서 손가락만 빨고 있었지만 최근 데이콤 지분을 누군가 대거 매입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황광수 차장은 창백한 얼굴로 소리쳤다.

“서, 설마 자네 짓이야?”

“전 대리인입니다. 주식 지분 소유주는 따로 있죠. 이 자리에 나온 것은 대리인으로 권리를 행사하려는 것뿐입니다.”

“끄응.”

권태성 실장은 낭패한 얼굴로 힐끗 황광수 차장을 쳐다보았지만, 그 역시 이 사실을 여기서 알았다는 표정을 하고 있었다.

우영민 과장이 능력으로는 KM 전자 내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힌다는 사실을 떠올린 황광수 차장이 그를 다시 쳐다보았다.

하지만 우영민 과장은 오히려 어깨를 으쓱했다.

“너무 그런 눈으로 볼 필요 없습니다. 아, 분명히 말해두지만 저는 KM 그룹과는 전혀 관계가 없습니다. 그리고 이 일은 어디까지나 대리인을 대신해서 나온 것뿐입니다.”

대략적으로 투자회사에 대한 정보를 파악하고 있는 권태성 실장도 굳이 협상하러 나온 자리에서 문제를 만들지 않았다.

“원하는 게 뭔가?”

“요즘 김현우 상무랑 자꾸 만나면서 뭔가 꾸미는 것으로 압니다.”

불과 얼마 전에 황광수 차장에게서 보고를 받은 권태성 실장은 움찔했다.

“그건 오해네.”

“오해가 아니어도 됩니다. 자세한 이야기를 듣고 싶지 않습니다. 그 작업을 중단해 주세요.”

“아니, 김현우 상무 측에서 연락이 와서 몇 번 만난 것뿐이라니까.”

“앞으로도 그렇게 해주세요. 아니, 가능하면 연락을 받지 마세요. 안 그러면 이 지분은 LC 전자나 HY 전자 측으로 넘어갈 겁니다.”

냉혹한 한마디에 권태성 실장도 크게 당황했다. 제대로 된 정보가 없는 상황에서는 뾰족한 방법이 없었다. 문제는 만약 저 지분이 정말 LC 전자에 넘어가면 본사 그룹에서 자신을 문책할 것이다.

“…그거면 되겠나?”

“지금은 그렇습니다.”

“하면 우리에게 매각하는 것은 맞나?”

“그건 오성 전자에서 하는 것을 두고 봐야죠.”

권태성 실장은 잠깐 망설이다가 한 가지 사실을 더 변명했다.

“이번 VCR과 관련된 일은 딱히 KM 전자를 노린 것은 아니었네.”

“아, 지난 일로 협박할 생각 없습니다. 지금은 김현우 상무와 손 떼기만 하면 됩니다.”

두 사람은 잠깐 서로 시선을 주고받았다. 사실 김현우 상무에게서 꽤 흥미로운 것을 발견했지만, 데이콤 주식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알겠네. 하지만 약속을 지켜줘야 해. 혹시라도 우리와 협상하기도 전에 그 지분을 LC나 HY에 넘기면 가만히 안 있을 거야.”

“가장 먼저 오성 전자에 연락할 테니,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후유, 알겠네.”

두 사람은 겨우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우영민 과장은 번민에 빠진 두 사람과는 달리 통쾌한 얼굴이었다. 이제까지 오성 전자에 이런저런 경로로 압박을 받은 적이 많았지만 이렇게 숨김없이 그대로 공격해 본 것은 처음이었던 것이다.

‘최 실장님 능력이 진짜 대단하구나.’

하지만 그들은 떨떠름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는데, 차마 최민혁 실장이 저 지분의 주인이라는 것을 상상하지 못했다.

‘역시 최용욱 회장이 우리 오성 전자를 압박할 수단으로 비자금 이용해서 데이콤 지분을 매입한 것일까? 하긴 김현우 상무가 오너 일가인 최민혁 실장을 공격하는 것을 내버려 둘 리가 없을 테니까. 하지만 그렇게 보기에도 석연치 않은 점이 있어.’

* * *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오성 전자와 계속 접촉하고 있던 김현우 상무는 갑작스러운 사태에 깜짝 놀라고 말았다.

“황 차장이 연락을 안 받는다고?”

김현우 상무의 어머니 5촌 조카인 천선구 과장은 당황해서 말을 더듬었다.

“아무리 연락해도 전화를 안 받습니다. 오성 전자 기획 팀에 전화해도 출장 갔다고만 하는데, 어떻게 할지 모르겠습니다.”

술수라면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김현우 상무는 처음부터 오성 전자를 믿지 않았다.

“그놈들이 딴 꿍꿍이가 있나 보군.”

“하지만 황 차장이 특허에 관심을 보였던 것을 봤지 않습니까?”

“황 차장이 의사결정권을 가진 것은 아니잖아. 그 위에 있는 권 실장님이란 인간이 잘랐을 수도 있어. 그 특허도 KM 전자와 공동 연구 과정에서 나온 결과라서 법적으로 문제가 될 테니까.”

“하지만 방법은 많지 않습니까?”

그는 만약 최두진 사장이 이 사실을 알면 난리가 날 것을 떠올렸다.

“편법은 많겠지만, 부담을 느꼈을 수도 있어. 됐어. 오성 전자는 나도 석연치 않아. 차라리 또 다른 대안을 찾아.”

하지만 두 사람은 뾰쪽한 방법을 찾지 못했다.

이일태 이사나 원종상 전무는 요즘 들어서 출장을 핑계로 아예 본사에 나오지 않았고, 전화 연락조차 되지 않았다.

지난 좋은 시절을 떠올린 김현우 상무는 혼자 중얼거렸다.

“하, 최 전무만 있었다면 이런 문제가 생기지도 않았을 텐데…….”

천선구 과장이 손뼉을 쳤다.

“그겁니다. 최 전무님이라면 상무님에게 도움이 될 겁니다.”

김현우 상무도 새삼 최민혁 실장의 지독한 솜씨를 떠올리면서 몸을 부르르 떨었다.

“구치소에서 재판을 기다리는 최 전무는 아무런 힘이 없어. 지금 분위기 봐서는 거의 징역 7~8년 형은 족히 나올 거야. 악독한 최 실장 새끼, 진짜 대단한 놈이지. 자기 큰아버지를 그 모양으로 만들다니.”

“아뇨. 최 전무의 사모님이라면 이야기가 다릅니다. 그분 아버님께서 DL그룹 회장님 아닙니까?”

“DL 그룹이라…….”

DL 그룹은 중동에 진출해서 떼돈을 벌었고, 이 자금을 바탕으로 해서 자회사를 키워서 지금의 외형을 갖추었다.

소비재보다는 자본재 위주 그룹으로 철강, 금속, 화학 분야에 꾸준하게 투자했고, 전자, 반도체에 대해서 과할 정도로 집착했다.

이들이 KM 산업과 KM 전자에 눈독을 들인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었다.

최훈열 전무와 김여정의 결혼은 이런 역학 관계에서 나온 정략결혼의 부산물이었다.

그런데 지금 최훈열 전무는 구속되어서 실형을 받을 처지다.

DL 그룹 처지에서는 실로 당혹스러운 상황이었다.

김현우 상무는 기발한 아이디어에 천선구 과장을 치하하면서 김여정과 약속을 잡으라고 전했다.

‘지금은 물불 가릴 상황이 아냐. 최 실장 그 새끼를 묶어둘 힘이 필요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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