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0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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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외제약도 상황이 그렇게 나쁘지 않았다. 다른 제약 업체와는 달리 정기총회에서 전문경영인 출신을 회장에 선임할 예정이기 때문이다.
오너가 경영을 하는 제약업계 관행이 깨졌다는 것이었다. 즉 제약업계 자체가 보수적인 경영이 기준인데, 최근 경영환경이 변화되면서 변화가 생겨났다.
서울대 약대 출신의 전문경영인은 영업과 생산 쪽을 두루 거치면서 경험을 쌓아왔다. 그는 중외제약의 뛰어난 기술력을 토대로 세계화에 앞장설 것을 외부에 공표했다.
김명준 과장은 무려 81억을 이 종목에 조심스럽게 투자하면서 주가를 살폈다.
일단 외부 이정표 자체는 나쁘지 않아서 꾸준히 오를 것이라 예상했다.
그런데 생각도 못 한 일이 발생했다.
[중외제약은 퀴놀론계 항균제 제 2임상 시험에 착수하다!]
생각도 못한 호재였다.
전문 경영인은 이 새로운 임상 시험 결과에 대해서 확신했고, 3상 시험 역시 자신했다. 그는 자기 영업 능력을 최대한 활용해서 FDA에 대한 사전 정지 작업까지 진행 중이라고 언론에 밝혔다.
[우리 중외제약은 앞으로 항균제 신약을 시작으로 글로벌 시장에 도전할 것입니다!]
중외제약 주가는 무서울 정도로 출렁이기 시작하더니, 단숨에 100% 상승세로 바뀌었다.
놀라운 사실은 나머지 자금 81억으로 사들인 녹십자 역시 다르지 않았다. 이 회사에서는 에이즈 백신 개발 가능성을 자신했고, 심지어 수두백신 제품화에 대해서 적극적으로 홍보했다.
두 회사의 이런 활동 덕분에 주가는 서로 시너지를 보이면서 무섭게 치솟아 오르기 시작했다.
비록 무광약품 주가 조작 사건 때문에 잠시 주춤하기는 했지만 두 회사의 분위기는 상황이 달랐다. 건실한 매출 기반 위에서 자연스럽게 이루어진 주가 상승세였기 때문이다.
이 두 종목은 불과 한 달 남짓한 사이에 각각 270%, 141% 상승했고, 그 덕분에 투자 수익은 무려 288억에 달했다.
40억 자투리 투자 수익은 대략 70억 정도였다.
최민혁조차 무광약품 사태 이후에 제약업계 상승세가 뜨겁다는 것을 알았지만, 이 정도 결과일 줄은 상상도 못했다.
‘미래가 이랬던가. 흠, 트렌드가 그럴 거로 생각하기는 했지만, 반응이 좀 거시기한데......’
겉으로는 내색하지 않았다.
“괜찮네요.”
“맙소사 괜찮은 정도가 아닙니다. 무려 288억을 벌었습니다. 원금까지 합치면 450억입니다. 대출금을 제외하고라도 무려 400억입니다. 아니 70억까지 합치면 모두 470억입니다!”
“합쳐보니, 좀 많네요.”
“아니 도련님은 이 수익을 보고서도 흥분되지 않습니까?”
이미 어느 정도 큰 미래의 흐름을 잘 아는 최민혁 입장에서는 크지 않았다.
“그냥 그래요.”
“정말 대단하십니다!”
감정 없는 김명준 과장도 혀를 내둘렀다.
얼핏 생각하면 터무니없는 수익처럼 보이지만 다른 제약 업계 역시 분위기는 나쁘지 않았다. 소염진통제로 요즘 떠들썩한 삼진제약을 비롯한 유한양행, 동화제약 역시 저마다 100% 이상의 주가 상승을 기록했다.
이런 제약업계의 주가 폭등은 신약 개발에 대한 정보를 공개하지 않은 제약업계 관행과도 관련이 있었다. 주식 브로커가 이 정보를 부풀려서 왜곡 시켰기 때문이다.
실제로 증권가에서는 영업활동이 부진한 제약 회사 투자에 대해서는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고 적극 나서기도 했다.
하지만 최민혁은 또다시 2억을 까먹어서 벌써 4억이 날아간 자신의 증권계좌를 보여주면서 주식 투자의 위험성을 떠들었다.
“역시 주식으로는 패가망신하기 딱 좋아요.”
“의도적으로 그렇게 하신 겁니까?”
“설마 제가 주가 폭락하는 종목을 투자했다고 생각하세요?”
“......그건 아닙니다.”
“저쪽처럼 이쪽도 나름 조사해서 투자한 겁니다. 그런데 한쪽은 대박이고, 다른 한 쪽은 쪽박입니다. 주식으로 해서 돈 벌 생각하면 안 됩니다.”
“......네.”
김명준 과장도 할 말이 많았지만, 원론적인 이야기에 입을 다물고 말았다.
실제로 최민혁 역시 자기 능력을 한 번 믿고 투자해봤는데, 이번에도 2억을 까먹어서 무려 40%를 날려 먹었던 것이다.
‘역시 주식은 정상적인 투자로 돈을 벌기는 어렵다니까. 당장은 40억으로 70억을 번 것을 기범이가 알면 배 좀 아플 것 같아. 주식해서 패가망신이라는 것을 제대로 경험하게 하여야 할 텐데, 감방(?)은 덤이지. 작전주 종목으로 뭐가 좋을까?’
***
다음 작전 종목 찾는 것은 최민혁에게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나마 무광 약품과 관련해서 떠오른 종목 한 가지가 있었는데, 그게 바로 이성종합건설이다. 이 종목 역시 작전 세력이 노렸다.
‘덤핑 수주를 부풀려서 주가를 끌어올렸던 것으로 기억해.’
다행히 지금 주가는 5일선 평균을 따라서 큰 변화가 없었다.
최민혁이 기억하기로 제약 업계가 조정 국면에 들어갈 때 이 종목이 작업 들어가는 것을 기억했다. 구치소에 있을 때 제약 업종 폭등을 놓친 것에 아쉬워했고, 다음 주가 폭등주에 대해서 갈망했기에 이 종목을 떠올릴 수 있었다.
그는 굳이 서둘러서 쪽박을 깨고 싶지 않아서 느긋하게 행동했다.
우선 한국대 개강파티에 참석해서 동기 이름과 얼굴을 기억했다.
애초에 대학은 졸업할 생각이 없다 보니, 열성적이지 않았다.
그럼에도 단과 모임에 얼굴을 비춘 것은 인맥과 망나니 홍보를 위한 사전 정지 작업이었다.
3월 초순이 지나서 서로 이리저리 놀러 다닐 시점에도 가끔 모임에 참석해서 돈을 마구잡이로 뿌렸다.
식당 모임에 300만원씩 막 뿌리고, 심지어 근사한 술집에 천만원 넘게 썼다.
비록 조인트MT와 같은 활동에 나가지는 않았지만, 이 정도 행동한 것만으로 전자과 내에서 주목받는 것은 당연했다.
굳이 최민혁이 자기 신분 내역을 말하지 않아도 카더라 통해서 KM 그룹의 재벌 3세라는 소문이 파다하게 퍼졌다.
심지어 강의는 거의 다 빼고, 술자리는 은근히 자주 나가서 얼굴을 비추었다.
그 과정에서 숨김없이 그대로 그나마 얼마 없는 동기 여대생을 상대로 성추행했다. 가슴도 만지고, 기습 키스도 하고 말이다.
‘20년 후라면 철컹 철컹했을 테지만......’
지금은 그저 한소리 듣는 것으로 끝났다. 심지어 은근히 부추기는 이들도 있었다. 그리고 화를 내면서도 싫지 않은 모습을 보이는 이도 있었다.
카리스마라면 카리스마인지 의외로 전자과 내에서 인기가 좋았다.
아마 여기서 좀 더 나갔다면 문제가 생겼을 테지만 그때마다 최민혁은 지폐를 아낌없이 뿌리면서 망나니 역할을 제대로 연기했다.
“와아.”
아무리 한국대라고 해도 신입생이 여유가 있을 턱이 없다. 그런데 몇 백만 원씩 막 뿌리는 최민혁을 싫어하는 이는 별로 없었다.
다만 시간이 지나면 조금씩이지만 최민혁의 망나니 명성이 전자과를 넘어서 공대 전체로 퍼져갔다.
그리고 교양으로 듣는 전산학 개론에 최민수가 들어왔다.
“어? 민수 형도 이 과목 들어?”
“아, 시간이 안 맞아서 수강 정정할 생각이다. 그런데 너도 이 과목 들었어?”
“전자과는 기본적으로 이 교양 들어.”
“그렇구나.”
한국대 음대 2학년에 재학 중인 최민수는 주변에서 말이 많았다. 워낙에 실력이 없어서 부정 입학 이야기가 끊이지 않았다.
한국대에서도 잘 나가는 전자과 애들이 주도 듣는 교양 과목을 듣게 되면 학점 따기가 어렵다는 것을 뻔히 알았다.
하지만 최민혁은 굳이 그런 내색을 하지 않은 채 옆을 지나가는 여대생 각선미를 보자 습관적으로 엉덩이를 찰싹 때렸다.
그런데 여대생은 냉정하게 몸을 돌리더니, 최민혁 빰을 제대로 후려쳤다.
“야아, 너 미쳤어?!”
얼얼한 빰을 붙잡은 채 자신을 내려다보는 여대생 모습에 흠칫했다. 아는 동기라고 생각해서 장난삼아 행동했는데, 전자과 학생이 아니었다.
차갑게 굳어 있는 여대생의 미모는 전문 모델보다 더 우월했다. 평범한 옷을 입고 있지만 맵시가 워낙에 좋아서 그것마저 살았다.
그냥 입고 있는 옷도 마치 모델처럼 독특해서 표가 확 났다.
최민혁은 장난삼아서 손을 흔들어 주었는데, 교양 과목을 듣는 이들은 다들 혀를 내두른 채 최민혁에 대해서 수군거렸다.
그도 재벌가 망나니를 보는 듯한 시선에 내심 혀를 차면서 가자미 눈을 한 채 눈을 동그랗게 뜬 최민수를 쳐다보았다.
‘성공했군.’
이미 돈을 뿌리고 다닌다는 소문을 듣고 수강 시간표까지 알아내서 이곳을 온 것이다. 촉새보다 더 가벼운 최민수 저놈이라면 집안에 있는 개에게도 지금 일을 다 떠벌리고 다닐 것이 분명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할아버지는 설사 내가 망나니라고 해도 변치 않겠지. 심지어 내 지분을 다시 넘긴다고 해도 받지 않을 거야. 그것은 아직 투자 확정을 짓지 못한 큰아버지도 마찬가지고.’
무안한 분위기를 넘기기 위해서 슬쩍 주제를 바꾸었다.
“민수 형, 진짜 이 과목 들을 거야?”
“아, 그게 생각해보니, 좀 아닌 것 같아. 너희 전자과랑 같이 들었다가 내가 이 과목 날릴지도 몰라. 다시 과목을 바꾸어야겠어.”
하지만 최민수가 이 자리에 온 것은 그런 변명 하려고 한 것은 아니었다.
“요즘 어때?”
“별것 없지.”
“너 주식에 투자한다는 소리가 있던데......”
“그건 어떻게 알았어?”
“기범 형에게 들었어.”
“기범 형은 입이 너무 가벼워서 문제라니까.”
“그러면 기범 형 말이 사실이라면 이번에 주식에 많이 투자했겠네?”
사실 최민혁이 먼저 자랑하고 싶었던 내용인데, 굳이 판을 깔아주자 거절하지 않았다.
“좀 투자했어.”
“그런데 너 돈 있어? 내가 듣기로 주식 외에는 별로 받은 것이 없다고 아는데?”
“기범 형이 빌려줬어.”
“진짜?”
최민혁은 김기범이 제대로 된 정보를 주지 않았다는 것을 눈치챘다. 그는 순간 어디까지 정보를 공개해야 할지 고민했다.
하지만 역시 둔한 것처럼 보이지만 잔머리를 잘 굴리는 최민수 성격을 고려해서 말보다는 증거가 더 확실하다는 생각이 들자 이미 준비해둔 통장을 보여주었다.
40억 대출받아서 증권 계좌로 들어갔다가 다시 통장으로 돌아온 110억 내역을 직접 보여주었다.
“이번에 70억 벌었다.”
“응?”
최민수는 통장에 찍힌 금액이 11억이라고 생각해서 다시 한 번 확인하고서야 110억이라는 것을 깨닫자 입을 딱 벌렸다.
“4, 40억으로 한 달 만에 70억을 벌었다고?!!”
너무 큰 소리에 수군거리던 이들도 귀를 쫑긋한 채 두 사람 대화에 귀를 기울였다.
-저게 무슨 개소리야?
-저 최민수 선배 나 안다. 음대 다니는데, KM 그룹 재벌 3세로 유명해.
-최민수 선배라면 음대 유명인이지. 사학과 김기범 선배랑 같이 돌아다녀. 정말 유명하더라.
-뭐야? 그러면 저 말이 정말이야? 40억으로 70억을 벌었다는 거?
-이번에 입학한 최민혁도 우리 과 내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야. 돈을 펑펑 쓰고 하던데, 그 돈이 투자 이익금이었나 보다. 난 자기 부모에게 받은 돈이라고 생각했는데, 투자 이익금이면 진짜 대단하다.
-와아.
-한 달에 주식으로 70억을 번다고? 이게 실화냐?
최민수는 분위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최민혁 팔을 붙잡고 강의실 밖으로 끌고 나갔다.
최민혁은 달팽이처럼 질질 끌려가면서 싫다고 칭얼거리면 팅겼다.
하지만 이미 눈이 돌아간 최민수 표정은 단호하기 짝이 없었다. 그는 강의실 입구에 나가기가 무섭게 최민혁에게 질문했다.
“40억 빌려서 70억을 벌었다고?”
“어. 통장 보여줬잖아. 아, 맞다. 기범 형에게 종목 말해준다고 했는데, 깜빡했네. 형이 나중에 말 좀 전해 주라.”
이미 상승세는 끝나서 조정 국면에 들어섰는데, 인제 와서 종목을 알아봐야 소용없다는 것 정도는 아는 최민수는 짜증나서 버럭 소리쳤다.
“야!”
“왜 그래? 나 강의 들어야 해.”
“진짜 70억 벌었어? 손실은 단 한 푼도 안 나고?”
“아, 맞다. 내가 기존에 투자한 종목에서 이번에 2억 손실 났어. 기존 손실까지 합치면 모두 4억을 날렸어. 기범 형 덕분에 그 손실을 다 메꾼 셈이니, 정말 고맙지.”
“그, 그러면 원래는 4억 손해 놨는데, 기범 형이 빌려준 돈으로 70억 이익을 봐서 66억을 벌었다는 이야기야?”
“어.”
최민수는 계획한 모든 일이 김기범 때문에 박살 났다는 것을 깨닫자 반사적으로 욕설하고 말았다.
“씨발.”
“씨발?”
“아, 아니다. 너무 부러워서 그냥 욕 나온 거야.”
두 사람은 뒤늦게 담당 교수가 오는 것을 발견하자 강의실로 다시 들어갔다.
그런데 수강생의 눈빛은 조금 전과는 아주 달라졌다.
불과 몇 분 전까지만 해도 여자나 후리고 다니는 재벌 3세 난봉꾼을 바라보았는데, 지금은 투자 전문가 재벌 3세로 쳐다보았다.
힐끗힐끗 쳐다보는 각선미 여대생의 시선도 분위기가 많이 바뀌어 있었다.
의도적으로 만든 일이기는 하지만 내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어서 묘한 기분에 사로잡힌 최민혁은 피식 웃고 말았다.
‘나쁘지 않은데?’
뜻한 것은 아니지만 애초에 재벌가 망나니라는 시선을 받아서 그런 지 이제는 그런 행동을 해도 하등 이상해 보이지 않았다.
그것도 투자 전문가는 가볍게 찜 쪄먹을 안목이 있는 재벌 3세로 말이다.
물론 최민수는 강의가 끝나기 무섭게 로캣맨이라도 된 것처럼 강의실에서 사라졌다.
‘이제 미끼는 던져 놓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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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06 > 끝
ⓒ SSDHD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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