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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 3세는 조용히 살고 싶다-7화 (7/1,021)

< #007 선 >

현금 66억은 결코 작은 아니다. 보통 연봉 1억 받는 샐러리맨도 세금 떼고 하면 실수령액은 고작 7천 정도에 불과하다는 것을 고려하면 대충 이 돈의 가치를 짐작할 수 있다.

설사 재벌 2세라고 해도 이 돈의 무게를 잘 아는 김용만 전무는 최민수가 한 이야기를 장남 김기범 통해서 듣고 나서는 줄담배를 연이어서 폈다.

“후유, 이제 좀 살겠다. 결국 기범이 네가 돈을 빌려준 덕분에 66억을 벌었다는 소리야?”

“......네.”

김기범은 성질 더러운 아버지 화가 머리 꼭대기까지 올랐다는 것을 깨닫고는 그저 머리를 숙인 채 눈치만 봤다.

“야, 너 지금 말이라고 해? 새끼야, 네가 1억을 한 번 벌어 봐. 그게 쉬운가. 주식? 주식으로 그렇게 돈 벌 수 있다면 내가 왜 이따위 짓이냐 하겠냐?!”

정말 더 화가 나는 일은 한 가지가 더 있었다.

“민혁 그놈이 매입 종목을 사전에 말해준다고 했다면서?”

“그게 깜빡한 것 같습니다.”

참다못한 김용만 전무는 집게손가락을 김기범 이마를 쿡쿡 눌렀다.

“넌 새끼야. 어떻게 40억을 빌려주고, 그냥 나 몰라라 하고 있었냐. 최소한 그 돈을 뭘 하는 지, 투자했다면 어떤 목적으로 하는지 잘 지켜봐야 할 것 아냐.”

“죄송합니다.”

머리를 꾸벅 숙인 김기범은 내심 변명이 많았지만, 굳이 내색하지 않았다. 명분만 주면 새벽까지 들들 자신을 볶는 것을 경험해봤기 때문이다.

김용만 전무는 결국 따가운 아내 시선을 의식하자 심호흡해서야 겨우 분노를 가라앉혔다.

“알았다. 뭐 인제 와서 어찌하겠냐. 다만 민혁 그놈이 무슨 꿍꿍인지 잘 알아봐.”

“네.”

김용만 전무는 66억이란 돈이 꼭 자기 돈 같아서 가슴이 터질 것 같았지만, 가까스로 참았고, 결국 수화기를 들어서 여동생 김여정에게 전화해서 사실을 알려주고 나서는 바로 끊어버렸다.

‘여정이 성격에 저 집구석도 한동안 시끄럽겠군. 그나저나 일이 계속 꼬이네. 하, 민혁 이놈이 골칫덩이가 될 줄은 몰랐어.’

***

사촌이 논 사면 배 아프다는 말도 있는데, 사촌이 무려 66억을 벌었다는 이야기 들으면 배가 터질 정도로 가슴이 아플 것이다.

최민수에게 자세한 상황을 충분히 들은 최훈열 전무 역시 심각한 정신적인 타격을 입은 후에 김용만 전무에게 추가로 확인까지 들은 김여정과 대판 싸웠다.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는 만약 이 일이 아버지 최용욱 회장 귀에 들어가게 되면 최악으로 흘러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애초에 최민혁이 최병문 유산을 상속받을 수 있던 이유가 최문경 부회장이 자신의 경영 실책을 덮는 것과 최훈열 전무 자신이 괜히 외부 투자금을 전용해서 생길 배임 문제를 피하기 위함이었다.

최용욱 회장이 이 묘한 역학 관계를 내버려둔 것은 최민혁이 KM 전자 기획실장으로 겸임하면서 경험을 쌓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서로의 역학 관계가 잘 맞아 들어가서 최민혁은 유산도 받고, 허울뿐인 KM 전자 기획실장 자리를 차지한 것이었다.

물론 전 기획실장은 최악의 사태에 자신이 법적 책임을 져야 하기에 2,000억 투자 자체를 반대했고, 결국 자발적으로 사표를 내버린 것도 한 이유다.

지금쯤이면 구치소에서 죽는소리를 하고 있어야 할 최민혁이 만약 투자에도 안목이 있다는 것이 드러나고, 최악의 상황에 경영 능력도 갖추고 있다는 것이 알려지면 상황이 아주 복잡해진다.

‘투자 자체는 아버지가 주도한 일이라서 그럴 일은 없겠지만......’

그는 결국 처남 김용만 전무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서 하소연을 겸한 분노를 마구잡이로 퍼부었다.

“이게 최선입니까?”

할 말은 많았지만, 암묵적인 거래를 명분으로 서로 손을 잡은 최훈열 전무를 무시할 수가 없는 김용만 전무도 그냥 들을 수밖에 없었다.

결국 이 분노는 김기범을 향했다.

욕받이가 된 김기범은 분노를 억지로 삼킨 채 최민혁을 다시 찾아갔다.

도서관에서 의자를 병렬로 늘어놓은 채 세상 모른 채 잠자고 있는 최민혁을 보자 분노가 치밀어 오르는 것을 억지로 참았다.

“미, 민혁아.”

하지만 최민혁은 계속 잠만 잤다. 어제 또 애들 데리고 노래방에 가서 새벽까지 놀아서 눈을 뜨지 못한 것이었다.

김기범은 몇 번이나 최민혁 어깨를 흔들어서 겨우 잠을 깨웠다.

“야, 너 강의 안 들어가?”

“아으, 귀찮아.”

“최소한 강의는 들어야 할 것 아냐?”

“도대체 누구, 어 기범 형이었어? 가만 기범 형이 그 소리 하니, 정말 웃긴다. 형은 강의 들어가기는 해?”

대리 출석, 대리 과제, 심지어 대리 시험까지 동원하는 김기범은 무안해서 시선을 피했다.

“흠흠.”

“웬일이야? 아, 빌린 돈 갚을까?”

김기범은 양손을 빠르게 흔들었다.

“아, 아냐. 그것 때문이 아니라, 너 투자할 때 종목 말해준다고 했잖아.”

“안 그래도 요즘 괜찮은 종목 하나 보고 있는데, 망설이는 중이야.”

하지만 김기범은 그 말을 액면 그대로 믿지 않았다.

“벌써 투자했구나.”

“형, 눈치 빠르다.”

아버지에게 며칠 동안 시달린 것을 생각하자 김기범은 버럭 소리쳤다.

“너 정말 그따위로 나올 거야?!”

안 그래도 작은 돼지 눈에 힘을 줘서 크게 떴는데, 그게 더 웃긴 탓에 최민혁은 웃음이 나오는 것을 억지로 참았다.

“농담이다. 여기다 준비해놓았으니, 한 번 보기나 해. 이건 내가 투자한 금액. 이번에는 70억만 투자했어. 이성종합건설이라고 형도 들어봤을 거야.”

이성종합건설은 고속도로, 철도, 지하철, 아파트, 아파트 분양사업을 해온 종합건설회사로 상장한 지 10년이 넘었다.

요즘은 SOC를 비롯한 해외공사와, 환경플랜트 쪽으로 영역을 넓혀갔다.

탄탄한 기반을 가진 중견 기업으로 투자 가치는 나쁘지 않았다.

최민혁은 달콤한 몇 가지 뉴스를 더했다.

“최근 한국도로공사에서 발주한 대규모 공사를 수주한다는 소리가 있어. 아마 그것 때문에 상승세를 타기 시작할 거야.”

김기범은 자료를 살피면서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건 어떻게 안 거야?”

최민혁은 꿈을 통해서 얻은 지식을 마치 수완 좋은 투자자처럼 장광일설을 늘어놓았다.

“이번에 마약 수사받을 때 알게 된 검사가 있는데, 그 지인 통해서 들었어.”

검사란 말에 마른 침을 꿀꺽 삼킨 김기범은 최민혁을 조심스럽게 살폈다.

“그게 누군데?”

“형도 참 남의 영업 비법을 맨입으로 알려고 하면 안 되지.”

“아, 미안.”

의심도 많은 김기범은 단추 구멍 같은 눈동자를 굴리면서 고민에 빠졌다. 이성종합건설은 확실히 나쁜 종목은 아니었다. 설사 투자가 잘못되어도 망할 것 같지는 않았다.

최민혁은 슬그머니 김기범이 도저히 거부하기 힘든 뉴스 한 가지를 던졌다.

“핵심은 역시 라오스 30억 불 공사 수주야. 아마 얼마 있지 않으면 그 뉴스 나올 거야.”

동공이 여지없이 흔들린 김기범은 마른 침을 꿀꺽 삼켰다.

“저, 정말이야?”

최민혁은 라오스의 사회간접자본 건설공사 뉴스를 직접 보여주었다. 일괄수주방식의 이 건설공사는 철도 부설, 수력발전소, 설탕, 농약 공장, 호텔, 심지어 대학까지 다 포함한다.

물론 기사는 라오스어로 되어 있어서 김기범은 봐도 무슨 말인지 알 수가 없었다.

놀랍게도 최민혁은 서투르지만 명확한 라오스어로 뉴스 기사를 간단하게 설명해주었다.

“????????, ???????????? ?? ?????????????????????, ???????????????????????????????????? EE Sung E&C ??????????????????. ????????????????????????????????????????????????????????.(투자관리위원회 사무총장 르안은 비엔티안에서 이성종합건설과 양해각서에 직접 서명했다. 이 사업은 라오스와 인도차이나 지역 경제에 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라오스어도 한 줄 알아?”

꿈속에서 라오스, 동남아, 동유럽에  건설 노동자로 돌아다니면서 일했던 최민혁은 그조차도 진짜 이게 가능하다는 것에 내심 놀라서 당황했다.

“......그냥 대충 읽고, 말할 줄만 알아. 중학생 수준으로 별것 아냐.”

‘이게 소위 말하는 회귀 특전(?)인가?’

“그런가?”

아무리 중학생이라고 해도 뉴스 기사를 저렇게 쉽게 읽어서 이해하기 힘들지만, 김기범은 차마 최민혁 능력을 인정하지 않았다. 그는 최민혁을 믿을 수가 없어서 기사와 자료까지 챙겼다.

최민혁은 혹시라도 김기범이 머뭇거릴까 싶어서 이성종합건설 투자 내역서를 보여주었다. 나머지 종목은 세명이었다.

두 회사 다 비슷한 규모로 큰 차이를 보이지 않았다.

그는 물론 한 가지 유의사항을 말해주었다.

“그런데 라오스는 아무래도 이런저런 문제가 많은 동남아 국가잖아. 그런 리스크를 좀 고려해서 투자해야 할 거야. 이왕이면 몇 종목 더 추가해서 투자하는 게 안전한 것 같아.”

“걱정하지 마라. 내가 설마 네 말대로 그냥 투자하겠어? 나도 한 번 개인적으로 확인한 후에 투자를 결정할 거니, 신경 쓰지 마.”

“어.”

최민혁은 상기된 얼굴로 떠나는 김기범 뒷모습을 보았다. 그런데 문득 복잡한 표정의 김명준 과장을 보자 피식 웃고 말았다.

“왜 그래요?”

“이런 말 하기는 그렇지만 제가 봐도 괜찮은 종목 같은데, 굳이 그렇게 조언할 필요가 있습니까?”

“어떤 종목이 괜찮다는 말이죠?”

“이성종합건설 말입니다. 저도 잘은 모르지만, 이 정도면 단기로 꽤 오를 종목 같은데......”

“그럴지도 모르죠. 그런데 장기로는 그렇게 오르지 않을 겁니다.”

“네?”

“혹시라도 꽤 큰 손실을 볼 수 있으니, 이 종목에 투자하지 마세요.”

“무슨 말씀이신지......”

“두고 보면 알 겁니다. 아 그리고, 이 두 종목에 투자한 투자금은 2주 안에 전량 회수하세요.”

“하지만 이 정도 호재라면 계속 주가가 상승세일 텐데요?”

“그럴지도 모르죠. 그런데 상황이 바뀌면 이야기가 좀 다를 겁니다.”

“?”

도저히 이해를 못 한 김명준 과장을 보자 넌지시 힌트를 주었다.

“도로 덤핑 공사는 수익성이 거의 없습니다. 그리고 라오스는 정치적으로 불안정하고요. 만약 예상치 못한 사태가 생기면 계약이 취소될 수도 있습니다.”

그도 어지간하면 질문하지 않겠지만, 이번 일은 이야기가 달라서 조심스럽게 물었다.

“설마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아니 그렇다고 하더라도 도련님이 그 사실을 어떻게 압니까?”

최민혁은 라오스 공사 관련된 다른 몇몇 기사와 정치 기사를 정리해서 보여주었다. 얼핏 생각하면 별 것 아닌 일인데, 하나로 합치면 큰 그림이 그려진다. 사무총장 르안 사촌에 대한 수사가 진행 중인데, 관련 대상 중에 한 사람이 이번 공사 책임자도 포함되었기 때문이다.

“나머지는 김 과장님이 한 번 스스로 알아보세요.”

“......네.”

김명준 과장은 최민혁이 정리해놓은 라오스 신문을 멍하니 살피면서 힐끗 악동같이 껄껄 웃고 있는 최민혁을 쳐다보았다.

***

김명준 과장은 사들인 이성종합건설 주식은 대거 정리하기 시작했는데, 예상대로 김기범 패거리 매수세가 들어와서 6% 정도 차이를 보고 다 정리했다.

이 작업이 끝나기가 무섭게 도로 공사 수주와 라오스 대규모 건설 수주에 대한 뉴스가 터져 나오기 시작했고, 이성종합건설 주가가 급격하게 오르기 시작했다.

이미 들어와 있던 작전 세력이 갑작스러운 대량 거래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나섰다. 그들은 의도적으로 최근 뉴스가 찌라시라고 퍼트리면서 혼란을 주었고, 주가는 -7%와 7% 사이를 오가는 냉온탕을 이어갔다.

최민혁은 곧바로 김명준 과장 통해서 이번 도로 공사가 덤핑 수주라서 이익이 별로 없고, 사무총장 르안이 사촌 통해서 뇌물을 받은 혐의로 구속될 것과 이번 라오스 건설 수주는 백지화될 거라고 퍼트렸다.

하지만 작전 세력은 오히려 이 소스를 이용해서 더 혼란을 부추겼고, 이성종합건설은 오히려 주가가 폭등하기 시작했다.

그는 딱 이 타이밍에 박두영 부장검사를 삼성동 명정이라는 고급 일식집에서 만나서 우선 선물부터 넘겨주었다.

“......왠 금입니까?”

깜짝 놀란 박두영 부장검사는 대략 5천만 원 가치의 금덩이를 확인하자 혀를 내둘렀다.

“앞으로 잘 부탁한다는 뜻입니다.”

하지만 신중한 박두영 부장검사는 금덩이를 받지 않았다. 그는 수상쩍은 시선으로 최민혁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청탁이면 받지 않겠습니다.”

최민혁은 뜻밖에 쉽게 금을 거절하는 박두영 부장검사 행동에 혀를 찼지만, 피식 웃었다.

“그런 거 아닙니다. 검사가 말이 좋아 검사지 박봉으로 고생하는 거 압니다. 그래서 경제적으로 좀 도와주고 싶을 뿐입니다.”

“그래도 안 됩니다.”

솔직히 최민혁도 박두영 부장검사가 마음에 들지 않지만, 미래의 법무장관 등에 빨대를 꽂아서 빨아먹기만 하면 된다는 생각에 내심을 드러내지 않았다.

“이번 주가 조작 사건에 연루된 투자관리자 한 명을 봐준다고 아는 지인과 사이가 소원해진 거 잘 압니다. 이거면 적당히 기름칠하기 좋을 겁니다.”

“!”

박두영 부장검사는 깜짝 놀랐다. 그 사실을 아는 것은 여의도 증권 담당 검사와 자신밖에 모르는 사실이기 때문이다.

< #007 선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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