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98화 (98/169)

* * *

“젠장! 등비. 당신을 철썩같이 믿었는데, 이게 무슨 꼴이란 말이요?”

“설마 이렇게 될줄은 꿈에도 몰랐소.”

동료의 질책에 양무가 고개를 숙였다.

반사적으로 머리를 움켜쥐었고 옆에있던 등비도 표정이 굳어진 상태다.

양무와 등비는 과거부터 친분관계가 상당히 있었다.

그리고 두명다 출세욕이 강하였다.

때문에 힘있는 연줄을찾아 아부하며 지금까지 생활해온 것이다.

그러던중 둘다 천기대신인 주광비의 휘하로 들어갔다.

그들은 부귀영화와 권력을 누린다는 생각에 들떠있었다.

조선에 파견된 청나라 사신단의 대표를 양무가 담당했다.

등비는 동료인 양무를 보좌하는 부사의 역활이였다.

조선으로 파견되는 사신단을 뽑을때 양무는 스스로 자청했다.

그럴것이 수년전에 조선을 간적이 있었다.

때문에 조선에대한 사정이 밝다고 생각해 천기대신 주광비가 허락한 것이다.

양무는 동료인 등비도 키워주기위해 추천했다.

두명은 조선으로 출발하는 과정에서 들떠있었다.

조선에서 받게될 화려한 접대는 물론이다.

조선왕을 엎드리게하고 대청황제의 성지를 읽으며 호통치는 모습을 상상했다.

수년전 양무가 사신단 일원으로 조선에 갔을대,

선임이자 대표를 담당했던 조방선이 그같은 행동을 하였다.

이것은 청제국의 사신단이 조선을 방문했을때 항상 벌어지는 상황이다.

조선은 대청제국의 앞에서 신하처럼 엎드리는 존재였으니 말이다.

이번에는 자신이 그것을 할려고 했는데 조선왕 앞에서 수모와 굴욕을 당했다.

또한 청제국의 사신단이 조선에서 굴욕과 수치를 당한것은 처음있는 상황이다.

더 큰 문제는 그 장본인이 자신들이라는 사실이다.

“이대로 연경(북경)에 돌아가면 무사할수 있을지 모르겠소.”

“당연한거 아닙니까? 그러니까 뭔가 방도를 마련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먼저 사신단의 정사와 부사인 자신들에게 문책이 떨어질 것이다.

그 문책이 가볍지 않을것이 분명했다.

청의 사신단이 굴욕을 당했다는 사실에 황제도 분노할 것이고, 천기대신 주광비도 마찬가지다.

이런 사태를만든 그들에게 내려지는건 참수형이거나 거열형, 또는 능지처참이다.

어느것이든 처참하게 죽는건 피할수 없었다.

그걸 생각하자 양무의 등뒤로 식은땀이 흘러갔다.

“경의말대로 이대로 그냥 돌아갈수는 없소.”

등비도 목에 칼이 들어온듯한 공포를 느끼며 몸을떨었다.

그러던중 두명이있는 숙소로 팔기무관이 들어왔다.

“무슨일인가?”

“조선인들이 양무 대표님을 만나러 왔습니다.”

“재수없는 예조판서 놈인가?”

양무가 발끈하며 소리쳤다.

그럴것이 양무는 예조판서 장우영의 당당한 태도에 당황했고 이후에는 영은각의 사신단에 대해서도 필요한 만큼만 해준것이다.

양무는 철종에대한 분노만큼이나 예판인 장우영을 씹어먹고 싶었다. 이윽고 양무의 신경질적인 반응에 팔기무관이 당황하며 대답했다.

“다행히 예조판서 놈은 아닙니다. 다른 인물인데... 자신을 이조판서인 김좌근이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게 정말인가?”

김좌근이란 말이나오자 양무의 표정이 변하였다.

수년전 사신단 일원으로 조선에 왔을때 상관이였던 조방선은 조선의 관료들에게 성대한 대접을 받았다.

그리고 서로 통성명도 하였다.

그때 선두에서 사신단에게 아부를떨던 인물이 김좌근이였다.

이윽고 양무가 팔기무관에게 지시했다.

“그들을 당장 데려오게.”

“알겠습니다.”

팔기무관이 대답하고 나갔다.

그러자 등비가 고개를 갸웃하며 질문했다.

“그런데, 김좌근이 누구입니까?”

“수년전 조선에 왔을때 보았던 사람이요. 그때에는 김좌근을 포함해 여러명의 조선관료들이 우리 사신단을 대접했는데. 사신단에대한 예의가 바르고 말이통하는 상대입니다.”

“정말입니까?다행이군요.”

양무의 설명을듣자 등비도 표정이 밝아졌다.

조선에와서 개취급을 당했는데 드디어 상황이 바뀔수도 있으니까 말이다.

얼마후 김좌근과 몇명의 인원들이 팔기무관의 안내를받아 들어왔다.

강철의 도시(The City of Iron)

“소인 김좌근이 대청제국의 사신단을 환영합니다.”

“그러기에는 너무 늦은것이 아니요.”

양무가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김좌근이 온것에 기쁘기는 했지만 상대는 조선인이다.

한껏 거만을 떨면서 행동했던 것이다.

양무의 표정에 김좌근이 안절부절 못하면서 사죄하였다.

“지금까지 벌어진 상황에대해 조선의 중신들을 대표해 사과를 드립니다. 부디 노여움을 푸시지요.”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요. 이미 대청제국의 사신단은 조선왕에게 능욕과 수모를 당했소. 무엇보다 조선왕이 대청황제 폐하의 성지를 무시했다는 것이요. 이후에 황제폐하와 자금성에서 이 사실을 알게되면 조선이 무사할거 같소?”

양무가 소리쳤다.

철종 앞에서는 꿀먹은 벙어리 신세로 버벅거렸다.

그런데 김좌근 앞에서는 당당해지고 있었다.

김좌근도 양무의 분노가 자신에게 떨어지자 속이 울컥했지만 어쩔수 없었다.

대청제국의 팔기군들이 조선을 휩쓸면 한양은 불바다로 변한다.

지금까지 이룩했던 모든것이 날아간다.

애송이 임금이야 강화도에서 농사나짓던 촌놈신세 였지만 김좌근은 달랐으니 말이다.

어떻하든 대청제국의 분노를 가라앉히고 비위를 맞춰야 한다.

그것만이 조선이 살아남는 길이다.

잠시 고자세를 취하던 양무가 표정을 바꾸며 말했다.

일단 상대의 기세를 죽여놓고, 그뒤에는 선심을쓰는 방법을 취한것이다.

“일단 경이 사죄를위해 오셨으니 들어나 봅시다.”

“감사합니다.”

김좌근이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양무는 상석에 자리를 잡았다.

김좌근과 같이온 중신들이 아래쪽에 위치했다.

드디어 양무가 그토록 원하는 조선이 자신앞에 굴복하는 모양새가 나오고 있었다.

이때문에 양무의 입가에 조소가 걸렸다.

“같이온 일행들은 누구요?”

“병조판서와 호조판서, 그리고 형조판서들입니다.”

“흐음!”

양무가 관심을 드러냈다.

조선의 중앙인 6조에서 4명의 판서들이 온것이다.

이것을통해 양무는 김좌근이 조정내 실권을 쥐고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조선의 군권을 갖고있는 병조판서까지 따라왔다는건 상당한 의미가있다.

“김좌근. 경은 대청제국의 사신단이 당한 수모와 굴욕에대해 단지 사죄만하러 온것이요? 경의 뜻에 대해서는 충분히 이해할수 있지만 조선왕이 대청제국을향해 반기를 든것은 그냥 넘어갈수 없소. 이후에 조선은 대청제국의 팔기군에의해 모든것이 불타버릴 것이요. 여기 한양도 마찬가지고.”

“.....”

양무의 말에 김좌근과 측근들이 몸을떨었다.

상상만해도 등뒤로 식은땀이 흐른다.

조선은 청나라 팔기군에게 박살난 경험이 있었고, 여전히 청제국을 두려워하는 상태다.

한양이 불탄다는 말에 김좌근만이 아니라 같이온 병조판서와 호조판서, 그리고 형조판서들도 겁을먹었다.

“소신들이 여기에 온것은 대청황제 폐하의 대리자인 경에게 사죄를 하는것과 동시에 요청을 드리기 위해서입니다.”

“단순한 사죄만이 아니란 뜻이요?”

양무의 표정이 몇차례 변했다.

“물론입니다. 소신들도 그놈이 대청제국의 사신들에게 취한 행동에대해 분노하고 있습니다.”

“그놈이라... 허허! 경들에게는 그래도 임금이지 않소? 그런데 그같은 취급을해도 괜찮은 것이요?”

양무가 일부러 떠보았다.

김좌근이 아무리 사신단 앞이라고 하지만 조선왕을 멋대로 취급 하는것도 이상했기 때문이다.

여기에 김좌근이 냉소하며 대답했다.

“어차피 애송이놈은 작년만해도 강화도에서 농사나짓던 촌놈이였을 뿐입니다. 선대왕의 사후에 새로운 임금을 즉위시키는 과정에서 그놈이 적당한거 같아서 조선왕으로 내세웠는데. 소인이 커다란 실수를 해버린거 같습니다.”

“그렇게 된것이군.”

양무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는 김좌근이 임금에대해 상소리를하는 이유를 알거같았다.

지금의 조선왕을 만든것이 김좌근이다.

그것은 허수아비 왕을 내세워 권력을 휘두르기 위해서였다.

말잘듣는 허수아비 놈일줄 알았는데 대청제국의 무서움도 모르는 미친놈 이였다는거.

“그런데, 경은 계책이라도 있다는 것인가?”

양무가 넌지시 질문하였다.

김좌근이 주위에있는 측근들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병조판서가 나서며 말했다.

“대청제국의 노여움을 풀고 조선을 바른길로 인도하기 위해서 우리들은 여기있는 이조판서 김좌근 대감을 조선의 새로운 임금으로 옹립할 계획입니다.”

“과연.”

대답을듣자 양무가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바로 이것이다.

양무와 등비가 찾아해매던 해결책이였다.

이것에 대해서는 예상조차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조선의 신하들이 스스로 찾아와서 반역계획을 털어놓은 것이다.

“성공할수 있겠소?”

“물론입니다. 어차피 애송이 놈은 허수아비일 뿐입니다. 여기있는 병조판서와 호조판서, 그리고 형조판서도 소인과 같이 행동할 것입니다. 따라서 창덕궁에있는 어린놈을 쳐내는건 충분히 가능합니다.”

“확실히 경의말대로 6조에서 핵심적인 중신들이 여기 모여있군. 경과 뜻을 함께 하는걸보니 실패할리는 없을거같소. 김좌근 당신이 조선의 새로운 왕이된다면 그보다 기쁜일이 어디있겠소?”

“감사합니다.”

김좌근이 양무를향해 고개를 숙였다.

“소신들이 여기에 온것은 다른 요청도 있기 때문입니다.”

“어떤것이요?”

양무가 질문했다.

김좌근이 설명을 시작했다.

철종을 폐위시키고 새로운 왕이되는 반역을 도모한 김좌근이 밤늦게 몰래 찾아온것은 또다른 이유다.

그중에 하나가 청나라 사신들에게 아부해 청제국의 분노가 조선에게 향하지않게 해달라는것.

김좌근에게는 철종을 폐위시키기전에 청나라의 팔기군이 조선으로 쳐들어오면 곤란해지니까 말이다.

두번째는 새로운 조선왕이 된뒤에는 그것을 청나라에서 인정해 달라는것.

상국인 청나라에서 인정받으면 지위는 확고해지는 것이다.

“정말로 훌륭하시요. 경의 결단으로인해 조선은 재앙과 화를 면할수 있게되었소.”

“그렇다면 저희에게 다시 기회를 주시는 것입니까?”

“물론이지요. 경과같은 조정의 중신들이 대청제국을 어버이처럼 여기고 있는데 기껏해야 조선왕의 행동때문에 조선을 불태울수는 없는거 아니겠소. 걱정하지 마시요. 이후 연경(북경)으로 돌아가면 황제폐하, 그리고 천기대신에게 이사실을 고하겠소. 당연히 폐하와 천기대신도 기뻐하실 것입니다.”

“그렇다면 다행입니다.”

“크하핫! 김좌근. 당신이야말로 조선의 임금이될 자격이있소.”

“정말로 감사합니다.”

김좌근이 고개를 숙였다.

자신이 원하던 때가 온것이다.

이번에 반역을 성공시켜 왕이된다면 상국인 청나라에서 두손들고 환영까지 해주는 상황이다.

거저먹는 것이고 반대하는 놈들은 대청제국의 이름으로 쳐내버리면 그만이다. 이윽고 김좌근은 곤룡포를 입고 창덕궁의 주인이된 자신의 모습을 상상하며 히죽거렸다.

* * *

콜브룩데일-은 영국의 철강산업을 대표하는 지역이다.

때문에 영국인들에게 이곳은 강철의도시(City of Iron)-라는 명칭으로 알려져 있었다.

1709년에 에이브러햄 더비가 이곳에서 최초로 코크스를 이용한 근대적인 제철법을 시작한 이후부터, 콜브룩데일은 철강산업에서 선두적인 위치를 유지하고 있었다.

콜브룩데일이 유명해진것은 이곳에서 생산되는 막대한 철강 생산량이다.

1850년대만해도 1년에 200만톤에 이르는 강철을 생산했다. 이런 막대한 제철능력은 영국을넘어 전세계에서도 전례가 없을 수준이였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