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때문에 콜브룩데일에 건설된 제철소들의 숫자만도 상당히 많았다.
한편 콜브룩데일은 지리적 여건이 좋았다.
주변에서 생산되는 철광석 산지는 물론이고, 이런 철광석들을 제련하고 작업하는데 필요한 질좋은 석탄들도 많이나왔다.
치이익! 증기와 열기를 내뿜는 제철공장, 모턴스틸-의 내부에서는 다수의 사람들이 비지땀을 흘리면서 작업을 진행중이였다.
모턴스틸은 콜브룩데일에서 긴 역사를지닌 제철소들중에 하나다.
위치는 콜브룩데일 중심에서 떨어진 외곽이지만, 모턴스틸에서 일하는 직원들은 아시아에서온 동양인들에의해 새로운 활력을 얻은것이다.
“저기있는 조선인들은 정말로 대단해. 콜브룩데일에 온것은 불과 몇달밖에 안되었는데 단기간에 제철과 제련의 기술자들이 되어있으니 말이야.”
“듣기로 저들은 조선에서 대장장이와 철을 다루는 일들을 주로했고, 경험이 많다고 하던데.”
“역시 그런 이유였군.”
마틴이 동료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에도 마틴은 모턴스틸에서 일하는 조선인들의 실력에는 감탄할수밖에 없었다.
마틴을 비롯한 모턴스틸의 직원들은 처음에 낯선 동양인들이 제철소에서 일하는것에 당황했다.
일부는 동양인들이 일해봐야 얼마나 하겠냐...라는 생각으로 크게 관심조차 없었다.
하지만 몇달이 지나면서 상황은 급변했다.
이제는 모턴스틸의 직원들이 조선인들에게 많은것들을 배우며, 서로간에 기술과 정보를 교환하기도 하였다.
특히 20명의 조선인들을 이끄는 송대평과 송대진 형제의 실력은 탁월했다.
그들 두명은 조선제일의 대장장이인 송진우의 자식들이였다.
그리고 아버지의 권유에따라 국제유학생단에 참가했고 몇달전에 모턴스틸에 온것이다.
처음에는 현장일을 배우는 실습생 신분으로 들어왔지만,
이후에는 모턴스틸 제철소의 책임자인 해리스가 그들의 실력을 인정했다.
그뒤에 해리스는 두형제들이 지휘하는 조선인들에게 대형 용광로의 몇개파트와 제철 생산라인을 맡긴것이다.
모턴스틸에는 여러개의 용광로들이 있었고, 각각의 용광로들이 교대로 철을 뽑아내며 막대한 생산량을 자랑했다.
한편 모턴스틸은 광석에서 코크스를 이용해 철을 뽑아내는 제철만이 아니라 뽑아낸 철을 가공하는 제련과 제강부분까지도 진행하는 상당히 큰 생산라인을 보유했던 것이다.
“형님! 코크스를넣는 작업은 모두 완료했습니다.”
“수고했다. 이제부터 송풍기를통해 공기를 불어넣고 광석에서 선철을 뽑아내는 과정이다. 모두 안전과 점검을 시작해라.”
첫째인 송대평이 지시를 내렸다.
그에따라 20명으로 구성된 조선인들은 수직으로 세워진 대형 고로에 송풍기를 연결했다.
그들이 조선의 대장간에서 일할때에는 주로 풀무를 사용했다.
다만 모턴스틸에서 사용하는 송풍기는 대장간에서 쓰던 풀무를 대형으로 만든것인데, 증기기관을 이용해 작동시킨다.
송대평, 송대진 형제들은 모턴스틸에서 일하며 영국이 보유한 철강산업 능력이 얼마나 거대한지를 실감했다.
‘전하께서는 강대국의 조건으로 먼저 철을 대량으로 만들어내고, 그것을 자유롭게 사용할수있는 국가만이 될수있다고 하셨는데, 이제는 깊은뜻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되었다.’
둘째인 송대진의 뇌리로 철종이 한말이 스쳐갔다.
두명은 조선을 떠나기전 임금을 만난적이 있었다.
그리고 영국에 도착한뒤에 어떤것을 배우고, 조선의 철강업 발전을위해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를 말이다.
텅텅텅! 치익! 송대평의 신호를받자 대형 송풍기를 작동시키는 증기기관이 움직였다.
그에따라 고로내에서 가열된 코크스가 엄청난 열기를 사방으로 뿜어냈다.
한번 가열된 고로(용광로)가 내부에있는 석회석과 코크스, 그리고 철광석을 녹이면서 쇳물이 가득찰 때까지는 몇시간이 걸린다. 이때문에 제철소에서 일하는건 매일마다 뜨거운 열기와함께 인내심의 싸움이다.
“작업반장님! 2번 용광로에서 쇳물이 가득찬거 같습니다.”
외침을듣자 송대평과 송대진이 검사를 시작했다.
두명은 노트를 꺼내어 확인했고 자신들이 갖고있던 자료와 비교를 하였다.
이제까지 조선에서 쇠를다루던 대장장이들은 선대 장인들에게 배운 경험과 감을이용해 쇳물을 뽑아내었다.
이것이 소형의 용광로와 소량의 철을 생산할때에는 문제가 없었지만 모턴스틸같이 대형의 제철소에서는 전혀 통하지않는 것이다.
그것보다는 모든것을 하나씩 기록하며 과학적이고 체계적인 방법을 써야했다. 송대평과 송대진 형제들은 이런 선진기술을 제대로 흡수했던 것이다.
단순히 배우고 흡수한 수준을넘어 발전시키고 있었다.
“목탄의 재질을 이루는 흑연과 탄소-라는 물질에따라 철의 성질이 이토록 변화무쌍하게 변할줄이야.”
영국의 제철 기술자들도 이것은 경험적으로 알아낸 수준이다.
그런데 송대평 형제들은 매회마다 실시하는 용광로의 작업과 쇳물을 뽑아낼때마다 이부분을 철저하게 기록하며 분석했다.
이것은 질좋은 철을 생산하기위한 핵심중에 하나이다.
더 나아가 각종 탄소강을 만들어내는 밑바탕이되는 것이다.
“지금부터 쇳물이 나온다. 모두 준비해라.”
수직으로 세워져있던 용광로에서 쇳물이 흘러나왔다.
뜨거운 열기가 사방으로 발산되었지만 조선인 기술자들은 흘러나온 쇳물을 유도해 제련과 제강작업에 들어갔다.
용광로에서 흘러나온 쇳물은 보통 선철이라고 불리는 것으로, 이것을 곧바로 강철로 쓸수는 없었다.
때문에 용광로 작업과함께 중요한 것이 제련과 제강작업이다.
송대평 형제들은 여러차례의 경험과 실험을통해 용광로에서 나온 쇳물을 어떻게 냉각시키고, 이후에 어떤 공정을 하느냐에따라 쇠의 성질이 달라진다는 사실도 발견했다.
그뿐아니라 식어가는 쇳물에 다른 물질들을 소량으로 섞으면 철이 더 질기고 단단해지는 부분도 알아냈다.
이것은 기본적인 단계의 합금기술중에 하나였고, 철강산업을 선도하던 영국에서도 이제 연구되던 분야였을 뿐이다.
“형님. 이후에 조선에서도 영길리국처럼 대량의 철을 생산하게 된다면, 강철로 만들어진 철선(鐵船)을 만드는것도 가능할거 같습니다.”
“좋은 생각이다. 그러나 영길리국에서 생산되는 강철도 아직은 배를 만들기에는 튼튼하지 못한상태야. 하지만 다양한 실험과 연구를통해 더 강한 철을 만들어낼 기회는 얼마든지 있어. 따라서 그런날이 온다면 지금 조선수군의 판옥선보다 열배이상의 큰배도 건조할수가 있으니, 그야말로 엄청난 성과가 될것이다.”
송대평이 동생에게 대답했다.
대양함대를 보유한 영국도 여전히 목재로 만들어진 선박에 장갑을붙여 보강하고, 내부에는 증기기관을 설치한 차륜형의 증기선을 만드는 수준에 불과했다.
그런데, 두명의 형제들은 강철의 대량생산을통해 거대한 철선을 만들어낼 가능성을 생각해낸 것이다.
이처럼 두형제들의 혁신적인 사고방식과 재능은 영국에와서 본격적으로 빛을발하고 있었다.
적과의 내통
“전하. 이것이 지금까지의 상황입니다.”
“정말로 수고했네.”
간도 정찰대장인 박민준을향해 격려했다.
그를 궁궐로불러 만난것은 오늘밤이 처음이다.
그러나 홍상준이 장계에 올린대로 상당히 믿음직한 지휘관이였다.
박민준은 중앙군에서 활동한적도 없었지만 그의 군사적인 재능만큼은 탁월했다.
때문에 특수작전을위해 북방으로 파견한 홍상준에의해 현지에서 발탁된 군관인 것이다.
앞으로 박민준이 조선을위해 얼마나 큰 활약을할지 기대가 되는 부분이다.
“그런데, 한양에온 정찰대원들은 어떻게 지내고 있는가?”
“전하께서 안배해주신 숙영지에서 휴식을 취하는 중입니다. 그외에 부대별로 돌아가면서 훈련도 진행중에 있습니다.”
“훌륭하군. 당분간은 힘을비축해 두도록 하게. 이후에 그대와 간도정찰대가 활약할 기회가 올테니까 말일세.”
“.....”
대답을듣자 박민준이 고개를 숙였다.
영은각에서 밥만축내며 밍기적 거리던 청나라 사신단과 팔기들이 떠난지도 며칠이 지났다.
배동석이 보고한 내용에 따르면 한양의 백성들은 청의 사신들이 떠난것을 상당히 기뻐하고 있었다.
그런데 사신단 놈들이 괘씸한 부분도 있었다.
본래 외교관례상 타국에서온 사신단이 떠날때에는 해당국가의 군주에게 와서 우리들이 이제 떠납니다... 하며 보고를한뒤에 가는것이 정석이다.
그런데 이놈들은 창덕궁에와서 본국으로 돌아간다는 인사도없이 하룻밤 사이에 짐을챙겨서 가버렸다.
하긴 양무와 등비, 두놈이 창덕궁에 와봐야 내가 해줄말은 이거밖에 없지만 말이다.
- 그동안 더러웠고 다신 만나지 말자. 알겠지?
어쨌든 두놈에게 창덕궁과 내얼굴은 두번다시 보기 싫었을 테니까 대충 이해는 한다.
아마 저놈들은 북경으로 돌아간 뒤에도 한양이있는 쪽으로는 오줌도 안눌거같다.
어쨌든 그거야 저놈들의 사정이고 상관없지.
사신단이 떠난뒤에 영은각을 감시하고 있었던 정찰대의 부대장인 박민준이 그간의 상황에대해 상세한 보고를 한것이다.
“감시내용중에 중요한건, 이조판서인 김좌근이 측근들과함께 며칠밤을 계속해 영은각으로 찾아갔다는 것이군.”
“어떤 날은 수레 한가득 뭔가를싣고 방문한 적도 있습니다.”
박민준이 대답했다.
김좌근이 마차에 뭘 싣고 갔는지는 안봐도 뻔했다.
청의 사신단을 달래기위해 각종 금은보화등을 상자에 담아서 바쳤겠지.
그가 며칠밤동안 똥개처럼 다니면서 양무와 등비의 비위를 맞추기위해 어떤 짓거리를 해댔을지는 대충 그림이 그려졌다.
“전하. 김좌근과 그의 측근들이 밤마다 몰래 영은각을 방문해 청국의 사신단들을 만난것은 수상한 부분입니다. 겉으로는 청의 사신들을 달래고 비위를 맞추기 위해서라고 하지만...”
“정찰대장의 말대로 그외에도 무엇인가가 있다는 것이지.”
나의 대답을듣자 박민준과 배동석의 표정이 굳어졌다.
적과의 내통-
이것으로도 김좌근은 반역행위에 해당된다.
하지만 이걸 문책하기가 좀 애매했다.
잡아다 족쳐봐야 청국의 사신단 비위를 맞추기위해 뇌물을 좀 바쳤다고 둘러댈것이 분명하니까.
“전하께서 말씀하신 청 사신단과 김좌근의 사이에 더 음흉한 부분이 있다는 뜻입니까?”
“지금 청국의 상황은 김좌근이 사신들에게 뇌물을 바친다고 끝날수있는 부분이 아닐세. 그보다 더 확실한걸 바쳐야 되니까.”
나의 말에 두명은 충분히 알아들었다.
다만 역모란 말을 입밖으로 꺼내기는 힘들었기에 정찰대장인 박민준이 나섰다.
“전하께서 어명을 내리시면 당장이라도 소신이 부하들을 이끌고 김좌근의 집으로 쳐들어가 그놈을 잡아오겠습니다.”
“물론 그대와 정찰대원들의 용맹함은 충분히 알고있네. 하지만 아직은 때가아니고 좀더 기다리게.”
박민준을향해 대답했다.
지금까지 상황을보면 김좌근이 양무와 등비를 만나서 무슨 대화를했고 어떤 밀약을 맺었는지는 충분히 예상되었다.
반역을해서 조선을 뒤집고, 임금인 나를 사로잡거나 또는 목을 청나라에 바친뒤에 새로운 왕을 세우거나 자신이 왕이 되겠다는거.
지금 김좌근에게 남은 선택은 그것밖에 없으니 말이다.
나로서는 김좌근과 세력들이 위기에몰려 이런 선택을 할수밖에 없도록 함정을 파놓았고 거기에 놈들은 걸려든 것이다.
문제는 이것들을 확실하게 조지고 박살내기 위해서는 내쪽에서 조급하면 안된다는 것이다.
확실한 증거와 상황이 있어야 한다.
거기다 김좌근은 나의 양어머니인 순원왕후의 남동생이다.
나에게는 작은 삼촌이라는 복잡한 관계도 있기에, 단순히 역모가 의심된다고 족쳐봐야 내쪽에서 명분도 약하고 잘못하면 역풍이 나올수도 있었다.
“전하께서는 어떤 계책을 생각하고 계신겁니까?”
“일단은 시간을두고 기다리면 될것이네. 어차피 조급한건 역모를 꾸미는 쪽이네. 따라서 그들이 먼저 행동을 할수밖에 없네.”
“그렇군요.”
나의말에 박민준과 배동석이 고개를 끄덕였다.
김좌근이 원하는건 과거에 광해군을 끌어내리고 폐위시켰던 인조반정의 재현일 것이다.
이번에는 반정세력들이 대타로 내세울 인조같이 무능한 후보자는 없다.
따라서 김좌근도 왕에대한 욕심이 있으니 자기가 나설것이다.
내쪽에서는 김좌근이 본격적으로 덤벼들려고 할때 박살을 내는것이 최선의 선택이다.
그래야 김좌근과 붙어먹고 줄을댄 놈들도 한꺼번에 정리를 할수있으니까 말이다.
김좌근! 이제부터 네놈이 가진 능력을 총 동원해봐라.
어디까지 할수있는지 구경해주고, 그뒤에는 박살내버릴 테니까.
* * *
“뭘봐? X발! 눈깔아!”
뱁새처럼 눈이 양쪽으로 째진 사내가 외쳤다.
그러자 지나가던 행인들이 겁을먹고 움츠렸다.
이것에 다른 동료가 킬킬대며 좋아했다.
4-5명에 이르는 패거리들은 바닥에 침을뱉거나, 옆으로 지나가는 어린 여자들을 힐끗거리며 음흉하게 쳐다보았다.
그때마다 주변의 사람들은 분노했지만 감히 나서질 못했다.
그럴것이 저놈들에게 잘못걸리면 골치아프다.
얼마전에도 마을 청년중에 한명이 저들과 시비가 붙었다가 실컷 두들겨 맞았고 불구까지 되었다.
얼마후 그들이 도착한 곳에는 비슷한 행색을한 인원들이 모여 있었다.
“어라? 너희들도 왔어?”
“상구형님이 말하기를, 좋은 껀수가 있다고 하는데 기회를 놓칠수없지. 안그래.”
“당연하지.”
그들이 모인곳은 마을 입구쪽에 자리잡은 주막이다.
이들이 주막 한켠을 차지하자 다른 손님들이 힐끗거리며 자리를 피했다.
그리고 중년의 주모는 저놈들이 또 왔어? 라는 표정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조선에도 속칭 뒷골목 건달, 또는 양아치 놈들이 있었다.
통칭 왈패라고 불리는 패거리 들이고 마을에서도 사고뭉치의 존재들이다.
한편 조선후기에는 곳곳에서 주먹과 폭력을 이용해 주민들을 괴롭히는 건달패들이 생겨났다.
이들중에 흑계(黑契)-라고 불리는 무리들은 그 세력이 상당했고 곳곳에 자신들과 연계된 조직들이 있었다.
경기도의 가동촌에있는 건달패들도 흑계와 연결되어 있었다.
동시에 그들이 형님이라고 부르는 박상구가 흑계의 간부들중에 한명이다.
얼마후 박상구가 측근과함께 나타났다.
“형님. 오셨습니까?”
모여든 건달패들이 고개숙이며 인사한다.
그러자 박상구가 손을들어 답례했고 자리에 앉았다.
“동생들이 모두 모였구나.”
“그런데 형님. 무슨일인데 저희들을 불렀습니까?”
“이번에 짭짤한 일거리가생겨 너희들을 오라고 한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