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을 입밖으로 꺼내는것이 두려웠기 때문이다.
“이번에 동간도에있는 조선인들의 정착촌을 습격한것은 어떤 놈들의 짓이요?”
“요동파견군에 속해있는 지르칼손의 기마부대라고 합니다.”
“지르칼손이라... 그자에 대해서 정보가 있습니까?”
“과거에는 연경(북경)에서 이름을 날리던 만주귀족 가문의 자손이였습니다. 하지만 연경에서 벌어진 만주 귀족들간의 파벌과 권력싸움에서 밀려 요동지역으로 좌천된 상태입니다. 그래도 만주귀족의 집안이라 요동에서도 만주족의 핵심인 팔기군을 지휘하고 있습니다.”
병조참지 박규수가 대답했다.
조회에는 조선인들의 정착촌이 청의 기마부대에 습격과 약탈을 당했다는 내용만 올라왔다.
그러나 박규수는 능력을 발휘해 추가적인 정보를 수집했고 이번 일을 일으킨 놈이 누구인지까지 알아낸 것이다.
박규수같은 인재를 발탁한것은 잘한 일이다.
그가 발빠른 움직임을 보일수 있었던것은 평소에도 요동지역과 만주쪽에대해 주시하면서 정보를 수집한 까닭이다.
“심양에는 요동파견군의 사령관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또한 만주지역과 요동지역의 팔기군도 원래는 요동사령관의 명령에따라 움직이는것이 아닙니까?”
“전하. 소신이 생각하기에 이것은 요동사령관이 명령을내려 실시된것이 아닌 지르칼손 그자가 단독으로 간악한 짓을 벌인것이 분명합니다. 현재 요동사령관은 특이하게도 한족인 엄세번이라는 인물입니다. 다만 그의 휘하에있는 만주족 기마부대나 팔기군들은 요동사령관인 엄세번을 우습게보는 상황입니다.”
“맞습니다. 전하. 과거에도 요동의 만주족 팔기군들이 계속해서 문제를 일으켰고 조선인들의 정착촌을 습격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이것도 모두 만주족 놈들이 자신들의 상관을 멸시하면서 벌어진것도 원인입니다. 그외에도 요동에있는 지휘관들은 한족이나 만주족이나 모두 휘하에있는 부하들이 선량한 마을을 습격하는 것에대해 묵인해주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이하응이 박규수의 의견에 동의하며 대답했다.
상황파악이 어느정도 되었다.
만주에 배치된 요동군이 작정하고 움직인다면 고작해야 조선인들의 정착촌이나 습격하고 있을 상황이 아니다.
이것은 요동군에 속해있는 지르칼손 같은 만주족 놈들이 멋대로 행동하면서 벌어진 것이다.
다시말해 막대한 규모를지닌 요동군 전체를 상대할 필요는 없다는 것인데.
그렇게되자 머리속으로 어떤생각이 떠올랐다.
“박참지가 보기에 지르칼손 그놈이 지휘하는 부대의 규모는 어느정도쯤 됩니까?”
“정확한 숫자를 파악하기는 힘들지만 대략 1500명에서 2000명 사이가 될것으로 예상됩니다.”
“적은 숫자는 아니군요.”
“그들중 상당수가 흉폭한 만주족의 기병이라는 사실을 염두해 두셔야 합니다.”
박규수가 덧붙였다.
보병 2000명과 기병 2000명의 전투력은 월등하게 차이가 나기 때문이다.
모두의 시선이 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신하들은 청제국과의 전쟁을 선포하는 무모한 짓을 하지 않을까 걱정하는 눈치다.
청과의 전쟁이 무모한 선택은 아니다.
지금은 청나라와 정면으로 부딪치는건 바보같은 상황이다.
준비도 안되었는데 덤볐다가 깨지면 완전히 무너진다.
그렇다고 반항조차 못하는건 더 등신같은 짓이다.
“청과의 전쟁이나 요동군과의 정면충돌은 과인도 원하는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조선인들의 정착촌을 습격하고 조선인들을 살해한 지르칼손과 그 부하놈들을 놔둘수는 없습니다.”
“그렇다면 전하께서는 조선군을 움직이실 생각이십니까?”
“조선군이 그놈들을 응징할 것입니다. 하지만 아주 소수의 조선군들이 막중한 임무를 담당할 것이고 과인은 그들이 성공할 것이라 장담합니다.”
“.....”
모두가 숨을죽였다.
요동군에서 지르칼손같이 지휘체계를 무시한 만주족 놈들이 단독으로 이번사건을 일으켰으니 요동군 전체를 적으로 돌릴 필요는 없다.
사건이 크게 확산되지 않는 범위내에서.
그리고 적당한 수준에서 이번 일에대한 복수를 진행하는것도 가능해지는 것이다.
그들은 조금전 나의 말뜻이 무엇인지를 깨달은듯 보였다.
그들도 청과의 전쟁은 아직도 시기상조라는걸 느꼈다.
하지만 조선인들을 학살하고 납치해간 지르칼손이란 만주족 놈은 용서할수가 없었으니까 말이다.
* * *
어둠에 쌓여있는 창덕궁의 뒤편-
이곳은 후문으로 연결된 곳이고 평소에도 사람들의 발길이 많이 않은 곳이다.
시간은 어느덧 삼경(밤 11시~새벽 1시)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두명의 무관들과함께 이동하는 박규수.
그의 표정은 굳은 상태다.
철종에게 지시받은 비밀임무를 수행하기위해 박규수는 며칠을 분주하게 움직였다.
드디어 오늘밤-
조선의 역사에서 혁명적인 사건이될 특수작전이 개시되는 것이다.
박규수도 100% 확신할수는 없었다.
하지만 임금과의 대화를통해, 그리고 상세한 지시를 받으면서 자신감은 더욱 커졌다.
반드시 해낸다-
그것을위해 고심해서 인원들을 선발했고 훈련도 시켰다.
“기왕이면 소인들도 참가하고 싶었는데, 기회가 오지 못한게 아쉽군요.”
“걱정말게. 이번에는 전하의 친위부대에서 소수의 인원들을 선발해서 보내는 것이지만 이후에는 호위청과 금군의 병사들과 지휘관들이 모두 동원되어야할 엄청난 일이 벌어질 것일세.”
“그것은 즉...”
“더이상 자세한 설명은 생략하겠네.”
“알겠습니다.”
두명의 무관들이 박규수를향해 고개를 숙였다.
그들도 현재 창덕궁에서, 그리고 조선에서 진행되는 거대한 변화와 폭풍전야의 기세를 감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것을 경솔하게 입밖으로 발설하는건 금기다.
얼마후 박규수 일행들이 창덕궁의 후문에 도착했고 거기에는 무장한 병사들이 보였다.
저마다 일당백의 전투력을 가졌다해도 좋을정도로 전의가 높았다.
“이번 임무는 상당히 중요하네. 한치의 실수도 있어서는 안될 것이야.”
“물론입니다. 참지 어르신.”
홍상준이 박규수를향해 대답했다.
주먹을 쥐었고 두눈에는 각오가 대단했다.
소문으로만 들었던 임금을 직접 알현했다.
그것으로 홍상준은 확신을 갖게되었다.
조선은 역대급 뛰어난 군주를 얻었다고 말이다.
뛰어난 성군?
그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역사에 나오는 패왕을 보는듯 했다.
패왕을넘어 조선을 제국으로 만들어줄 황제라는 느낌마저 든 것이다.
‘지금까지 병법서를 탐독하고 무예를 익히고 군략을 연구했지만 전하의 신묘한 지략에는 놀라울 정도다.’
홍상준에게 충격을 준것은 다른 부분이다.
소문으로 듣기에 강화도에서 농사나짓고 무예와 병법과는 연관이 없다고 생각한 임금이였다.
그런데 전장상황을 손금보듯 알고있는 것이다.
자신과 정예기병들이 휴대하고있는 백두철포.
이것도 임금이 군기시를 찾아가 장인들에게 제작법을 알려줬다고 했다.
그것을 소문으로만 생각했는데 실제였다.
홍상준과 정예기병들은 수차례 백두철포를 이용해 사격훈련을 실시했다.
그때마다 감탄했다.
화승총은 기마병이 사용하기에 불가능한 무기였다.
달리는 말위에서 화승심지에 불을 붙이는거 자체가 힘들다.
그리고 화승에 불을 붙이기 위해서는 불씨를 계속해 보관하고 있어야했다.
그러나 백두철포는 완전히 달랐다.
2개의 총열을지닌 백두철포에 미리 장약과 탄환을 장전하는것이 가능했다.
그리고 뇌관을 꽃아놓고 노리쇠를 당겨놓는다.
그것만 해놓으면 말을타고 가다가 목표를 발견하면 바로 백두철포를 조준해서 쏘면 되는것이다.
백두철포의 명중율도 좋았고 2열의 총열을통해 두발을 연속으로 사격하는것도 가능했다.
홍상준은 조선이 이처럼 엄청난 무기를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 이것을 임금이 군기시의 장인들에게 제작법을 알려줬다는 사실에 놀랐다.
더 기쁜 사실은.
‘드디어 백두철포를 실전에 써먹을 기회가 왔다. 그것도 청나라 뒈놈들을 향해서 말이다.’
아군의 숫자는 적에비해 열세다.
하지만 백두철포라는 신무기.
임금이 알려준 작전대로만 한다면 승산은 충분히 있었다.
“자네를 포함해 여기있는 정예병들은 내가 선발하였네. 나또한 참가하고 싶지만 그럴수 없다는 사실이 아쉽구만.”
“어르신. 소인들을 믿어 주십시요.”
“장하구먼.”
박규수의 표정이 만족스럽게 변했다.
임금의 명령에따라 박규수는 모든것을 비밀스럽게 진행했다.
믿을수있는 정예기병들을 선발하는것.
그들에게 추가적인 훈련을 시키고 임무를 알려주는것.
모든것이 박규수의 손에의해 진행된 것이다.
지금부터 자신이뽑은 정예병들에게 모든걸 맡기고 지켜보는 것만 남았다.
“성대한 환송식을 못해주는 것이 안타깝구만.”
“임무를 마치고 성공한뒤에 받도록 하겠습니다.”
“알겠네.”
박규수가 대답했다.
홍상준의 지시에따라 정예기병들이 말에 올랐다.
지금은 밤이 깊은 시각.
도성내 거리는 적막감으로 휩싸였다.
하지만 철종 이원범에게 특명을받은 기마병들은 지정된 경로를따라 이동했다.
그들이 먼저 도착한 곳은 군기시였다.
그들은 개개인이 2정씩의 백두철탄을 휴대하고 있었다.
이것으로는 부족했다.
앞으로 진행될 전투는 몇달의 장기전이다.
그 과정에서 필요한 군수품들도 많았다.
또한 전투에서 주력은 자신들이 담당하게 될것이지만 합동작전을 펼치게될 부대들의 무장도 필요했다.
끼이익- 병기고의 문이 열렸다.
“엄청날 정도군요.”
“여러분들이 오신다는 연락을받고 최대한 준비를 했습니다.”
군기시의 수석기술자 한기준.
그는 병조참지인 박규수에게 밀명을 받았다.
처음에 지시를 받았을때 무척이나 놀랐다.
지금도 군기시에서는 한기준의 지휘에따라 다수의 장인들이 구형의 화승총들을 개조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개조하는 작업이 느렸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속도는 빨랐다.
한기준은 개조작업의 효율을 높이기위해 장인들을 여러개의 그룹으로 나누어서 전문적으로 맡겼다.
즉 분업화인 것이다.
이것도 철종 이원범에게 나름 언질을받고 실시한 것이지만 효과는 놀라웠던 것이다.
잠시후 홍상준의 지시를받은 정예병들이 무기와 장비들을 운반했다.
준비된 마차에 개조된 백두철포나 보병총포들을 적재했다.
실전에서 사용할 화약들이나 뇌홍들도 챙겼다.
그렇게 적재된 양들도 제법 되었지만 홍상준은 오히려 뿌듯한 마음으로 바라보았다.
얼마후 준비를마친 홍상준과 정예병들이 출발을 시작했다.
뒤편에는 수석기술자인 한기준과 군기시의 장인들이 환송을 하였다.
대양해군을 키우는 방법
“더 늦기전에 준비를 해놔야 할건데.”
나직하게 중얼거렸다.
박규수를통해 홍상준 부대에대한 비밀작전을 진행시켰고 이후의 결과는 지켜봐야 될거같다.
지휘관이자 무관인 홍상준은 실력이 뛰어났다.
동시에 그의 지휘를받는 부대원들도 용맹한 병사들이다.
그들은 대부분 나의 친위부대인 호위청과 금군에서 선발된 정예들이기 때문이다.
어쨌든 작전의 결과가 나올려면 시간이 걸리는 상황이기에 임금인 내가 창덕궁에서 조바심만 내봐야 모양만 이상해진다.
대신에 지금은 조선의 능력을 키우는 것.
그중에서도 핵심중에 하나를 고민해봐야할 차례였다.
이것은 강화도에서 창덕궁으로 오고, 임금이 된뒤에 우선적으로 생각해둔 부분중에 하나다.
다만 그전까지 조선군의 상태와 무기가 너무나도 열악했기 때문에 먼저 그 부분을 강화하는데 집중했지만 말이다.
그렇다고 언제까지 미룰수는 없었다.
대양해군-
이것이 요즘은 머리속에서 떠나지않고 맴도는 부분이다.
조선군, 그중에서도 기병부대와 보병부대는 백두철포나 현무철포등의 신무기를통해.
그리고 새로운 전술을통해 빠르게 키울수 있었지만 수군에 대한것은 시간이 걸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