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초에 이규동은 박규수가 병조참지로 들어오는거 자체를 못마땅했다.
병조참지의 자리가 비었다고해도 자신의 입맛에맞는 사람으로 끼워넣을 계획이였으니까 말이다.
“그때는 이런 상황이 올줄은 몰랐기에 그런것이요. 무엇보다 이하응 그놈의 성격을볼때 자신보다 못한 원범이 놈이 임금이라는 상황이면 그놈이 이원범을 우습게보고 더 날뛸것으로 생각했기에 그런것이요.”
처음에 김좌근이 철종에게 속아서 이하응과 박규수가 중앙으로 등용될때에 생각했던 부분이다.
지금 와서보니 이원범의 추천으로 요직에 올라갔던 두명은 완전히 충견이 되어있는 상태다.
여기에있는 안동김씨 패거리도 자신에게는 충견이지만 그것과는 차원이다른 부분이다.
안동김씨 패거리는 단순히 이익에의해 모인것.
그러나 철종세력은 진정으로 임금에대한 충정으로 모여들고 있었다.
눈치빠른 김좌근은 은연중에 그것을 감지했다.
사람을 모으는 능력.
그 능력을가진 사람이 임금이라는 위치에 있다면 파급력은 상상을 초월한다.
처음에는 자신감이 가득했던 김좌근이 위기감을 느끼는건 이부분이다.
여기에모인 이들중에 김좌근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태평했다.
“그렇다고 해봐야 예조와 공조, 그리고 승정원 정도가 원범이 놈에게 동조하고 있을 뿐입니다.”
“영의정도 행동이 수상한거 같더군요.”
“좌상(좌의정)과 우상(우의정)대감께서는 뭘하고 계시는 겁니까? 의정부의 실세는 좌상대감과 우상대감이지 않소이까?”
“그것이 영상대감의 고집이 워낙에 세다보니 면목이 없소이다.”
참석한 좌의정 손재명과 우의정 박기남이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좌의정과 우의정인 두명은 이조판서인 김좌근에비해 나이도 많고 직책도 윗급이였다.
안동김씨와 권력의 실세는 김좌근이다.
때문에 두명은 자신들보다 나이도 어리고 직책도낮은 김좌근에게 굽신거리는 상황이다.
영의정인 정원용을 두명의 정승들이 견제해주길 바랬는데 제대로 임무수행을 못한 것이다.
다만 정원용이 실권을 쥔것은 아니기에 크게 문제는 없었다.
하지만 대신들이 모이는 조회때나 국정회의에서 반대파의 목소리에 호응하는 관계로 껄끄러웠다.
‘정말로 호랑이 새끼인가? 아니면 젊은 혈기에 발악을 해보는 것인가?’
김좌근이 고개를 내저었다.
이제 19살밖에 안되는 임금이다.
세상 무서운줄 모르고 발악하는 것일수도 있다.
그런 상황이라면 안동김씨 일파가 한차례 밟아준뒤에 허수아비로 만들면 그만이였다.
한차례 큰 굴욕과 좌절을 맞보고 난뒤에는 더욱더 고분고분해 질테니까 말이다.
* * *
연못을 헤엄치는 물고기들-
한동안 멍하니 그것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평화로워 보이는 모습이지만 지금 나의 머리속은 복잡하다.
무엇보다 강화도에서 철종인 이원범의 육체로 환생하고 난뒤에, 그리고 창덕궁에와서 임금이 된뒤로 가장 빡치는 순간이다.
짱X 놈들이 조선의 백성들을 건들였다.
동시에 이것은 나를향한 도발이고 시비를 거는것이다.
내가 조선의 유명한 성군들처럼 엄청난 애민정신이나 백성들을위해 이한몸 다바쳐~~~ 어쩌구하는 인성은 아니다.
솔직히말해 내 인성 더럽거든.
그리고 나의 야망과 목표를 위해서라면 조선인들을 사지로 뛰어들라고 명령하고 돌격하라고 왕명을내릴 각오까지 되어있다.
“전하! 근심이 계시옵니까? 아까부터 부용정의 수면만 바라볼뿐 어떤 말도 없으십니다.”
“그렇게 보였나?”
송내관을향해 대답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후 송내관이 준비해온 차를 쟁반에 가져왔다.
이럴때는 기분을 전환시키는 아아메(아이스 아메리카노) 한잔이 그립네.
그러고보니 21세기 한국에 있을때도 별다방에 아아메-마시러 간적도 꽤 있었다.
“송내관 자네는 어떻게 생각하나?”
“소인은 전하의 질문이 무엇인지를 모르겠습니다.”
“그러니까 짱X, 아니 청나라 놈들이 이번에 저지른 천벌받을 짓을 말일세.”
나의 질문에 송내관이 당황했다.
그가 어전회의에 참가하지는 않지만 얼마전 어전회의에서 엄청난 문제로 다루어졌던 청군의 조선인 습격사건을 모르지는 않을 것이다.
동시에 송내관에게는 내가 창덕궁내의 소문이나 동향에대한 정보와 정세를 파악하는 임무를 내려놓았으니 말이다.
한동안 묵묵히있던 송내관이 말했다.
“소인은 미천한 내관으로서 전하의 모습, 그리고 지금까지 이룩하신 수많은 것들을 뒤에서 지켜봤습니다. 이미 전하께서는 조선군을 강하게 키우시고 대업을위한 준비를하고 계십니다. 뜻대로 하시옵소서!”
송내관의 대답을 들으며 시선을 주변으로 옮겼다.
임금의 경호를위해 부용정의 군데군데 도열해있는 호위청과 금군의 병사들.
그들은 군기시에서 개발한 신형무기와 자신감으로 가득했다.
잠시 눈이 마주친 호위청 군관중에 한명이 나를향해 고개를 숙인다.
그래 이미 조선군은 강군으로 커가고 있는 중이다.
언제까지 망설이고 있을 것인가?
이윽고 송내관을향해 명령을 내렸다.
“송내관, 대신들을 소집하게. 장소는 희정당이네.”
“알겠사옵니다. 전하!”
송내관의 입가에 미소가 떠오르며 힘차게 대답했다.
* * *
“전하!”
“어떻게 되었나?”
“하명 하신대로 신하들이 모여 있사옵니다.”
“알겠네. 그들을 데려오게.”
지시를받은 송내관이 나갔다.
며칠전 신정전 조회에서 벌어졌던 사건.
병조에 전달된 장계.
두만강 지역에 살고있던 조선인들이 습격받고 수많은 민초들이 살해당하고 납치되었다.
청의 기병부대가 저지른 악행에대해 어떠한 결론도없이 조회는 끝나고 해산되었다.
조회에서 결론이 날 문제도 아니였으니 말이다.
결정권을쥔 순원왕후는 사건자체에 충격을받아 지금은 침소에서 쉬고있는 중이다.
그녀에게 사태에대한 결정을 맡기는거 자체가 무리였다.
그녀가 어떤 결정을 한다해도 그에따른 여파는 상당할 것이고 각 진영의 반대 또한 큰편이다.
수렴청정을 한다해도 실권이없는 그녀였기에 한계는 분명했다.
몇달정도는 그녀에게 수렴청정의 역활을 맡겨둘려고 했지만 본격적으로 나서야할 차례가 온것이다.
지금도 실권의 상당부분을 쥐고있는건 김좌근과 안동김씨 세력이다.
이놈들은 피해를당한 조선인들에게 죄를 뒤집어 씌우는 상태다.
가해자이고 습격한 청나라를 옹호하는 상황이라니!
생각만해도 분노가 치밀지만 안동김씨의 처리는 시간을두고 진행해야했다.
그들이 실권을 쥐고있지만 즉위하고 몇달동안 나의 세력을 키웠다.
이제는 본격적으로 활용할 때가 온것이다.
지금부터 할 내용들은 공개된 장소에서는 불가능 하니까 말이다.
‘지금쯤 김좌근과 패거리들이 비변사에서 밀담을 주고받고 있겠지? 거기가 너희들의 친목장소인건 알고있었다. 어쨌든 비변사에서 마음껏 놀고있어라. 난 희정당에서 나의 세력들과함께 진행해 나갈테니까.’
비변사도 당장에 해체하고 싶었지만 일단은 김좌근과 안동김씨들이 거기를 중심으로 놀게 놔둘 생각이다.
욕망에찌든 놈들이 머리를 맞대봐야 이후에 어떤 식으로 나올지는 뻔하니까 말이다.
종걸이의 안내를받아 한명씩 들어왔다.
“소신 영의정 정원용! 전하를 뵈옵니다.”
선두로 들어온 정원용이 엎드렸다.
임금앞에서 예를갖추는 상황이라 뭐라 하기는 힘들지만 여기는 공식적인 자리도 아니다.
이래서야 얼굴을 맞대고 토론하는 분위기가 아니지.
“영상대감. 여기는 조회를하는 선정전이 아니니 편하게 앉으시요.”
“하오나.”
“경들을위해 저렇게 회의를위한 탁자와 의자까지 준비했는데 너무 예의를 차리면 불편합니다.”
정원용을향해 대답하며 자리를 가리켰다.
몇차례 망설이던 정원용이 일어났고 의자에 앉았다.
나머지 사람들도 착석을 시작했다.
이제야 좀 괜찮네.
공식적인 자리에서야 용상에서 신하들을 내려보며 국정회의를 한다.
하지만 지금같이 사적인 자리에서는 내가 불편하다.
저마다 생각을 드러내며 토론하는 자리인데 분위기가 편해야 그것도 잘되는 것이지.
과거에 팀장으로 있으면서 프로젝트를 진행해본 경험도 있었다. 팀의 리더가 꼬장꼬장하고 권위만 찾으면 제대로된 아이디어가 나오지 않는다.
영의정이 착석했고 예조판서와 공조판서, 그리고 의정랑인 이하응과 박규수 그외에도 특별히 불러들인 인원들이 참가했다. 이렇게보니 요직에속한 인원들만해도 10여명이 넘는다.
“전하께서 무슨일로 소신들을 불렀는지 궁금합니다.”
“얼마전 상참(약식조회)때에 벌어진 장계의 내용때문에 그런것이요.”
“.....”
저마다 숨을죽이며 침묵했다.
그들도 예상하고 있는듯 보였다.
수많은 조선인들이 참살당하고 수백명이 강제로 납치된 사건은 작은일이 아니니까 말이다.
“소신들도 그 사건에대해 분개하고 있고 생각중이지만 아직 어떤 결정을 내려야할지 모르겠습니다.”
영의정의 말을받으며 의정랑인 이하응이 대답했다.
박규수는 병조판서와 한차례 설전을 벌인만큼 그때의 일이 생각난듯 얼굴이 붉어졌다.
조회에서 병조참지인 그가 직속상관이나 다름없는 병조판서를향해 대들었다.
이것도 어찌보면 논란거리가 될수도 있었다.
내일부터 박규수를 엄벌하라고 상소가 올라오는거 아냐?
그럴 가능성도 있지만 박규수를 처벌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박규수를 병조참지에 등용한 이유가 그런걸 하라고 넣은거니까 말이다.
특수작전을 시작하다
“전하께서는 어떤 복안을 갖고 계시는지요?”
공조판서가 조심스럽게 질문했다.
나의 생각이라.
당장이라도 청나라를 쳐들어가서 도광제 할배를 꿇어앉히고 싶다.
도광제 할배요. 부하들 단속 똑바로 못하셔? 라고 해주고 싶지만 그건 머리속의 생각일 뿐이다.
다만.
“최소한 당한것만큼 아니 몇배는 돌려줘야하지 않겠소? 그러지 못하면 아까운 목숨을잃은 조선백성들의 넋을 달래줄 방법이 없소.”
“청국과의 전쟁이라도 생각하시는 것입니까?”
상참에서 강경발언을 하였던 박규수도 음성이 떨리고 있었다.
갑자기 너무 나가잖아.
전쟁 가능성을 생각한것도 사실이다.
그보다는 유연한 방법을 머리속에 그리고 있는것이지.
그전에 먼저.
“조선군을 대규모로 움직이기에는 사정이 좋지 않습니다. 비록 노쇠하였지만 청의 황제가 살아있는 상황이고.”
“전하께서도 알다시피 청의 군사력은 무시할수 없는 수준이고 여전히 막강하다고 생각됩니다.”
“지금의 황제가 살아있는 동안에는 쉽사리 흔들리지 않을겁니다. 하지만 내년에 새로운 황제가 나온뒤에는 더이상 그러지 못할겁니다.”
“내년이라시면? 지금 청의 황제가 죽기라도 한다는 뜻입니까? 나이가있어 노쇠하기는 하나 여전히 국정을 운영중이고 권력도 막강한 상태인데.”
저마다 놀라고 있었다.
아직도 멀쩡하게 살아있는 청의 도광제가 갑자기 죽는다는게 믿기지 않았으니까 말이다.
도광제도 올해까지는 나름 팔팔한 편이다.
하지만 내년이되면 달라진다.
건강이 순식간에 악화되며 후계자를 정하는 판단력도 흐려지며 눈물쇼하던 첫째태자인 혁저에게 황위를 넘겨주니까 말이다.
혁저의 능력치라면 역대 청나라 황제중에 최약체 수준에 들어갈 정도다.
조선에게는 준비만 잘해놓으면 내년부터 본격적인 기회가 생긴다는 뜻이다.
지금 시대를 살아가는 조선인들이 그것을 알수있는 방법은 없었다.
역사를 거슬러 이원범(철종)으로 환생한 나만이 알수있는 것이니까 말이다.
“전하께서는 어찌하여 그 사실을 알고계시는 것입니까?”
“확실한것은 아니요. 다만 청의 내부에서 흘러나오는 여러가지 소식들이 그것을 예상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일부러 둘러대었다.
이들도 내가 비밀 첩보조직을 운영중이고 여러가지 경로를통해 외국의 정보들을 수집중이란 사실을 알고있기에 더이상 캐묻지는 않았다.
“전하께서 말씀하신 부분이 실행된다 하여도 청국을 상대하는건 조선에게 힘겨운 부분입니다.”
“그때문에 청국과의 본격적인 전쟁을 할 생각은 없소. 아직까지는.”
“.....”
나의 뒷말에 저마다 숨을죽였다.
그들도 조선이 청의 간섭과 지배를 벗어나 스스로 일어나기 위해서는 결국 청과의 한판승부 또는 혈전이 예상된다는 것쯤은 충분히 알고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