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정령사 가문의 막내가 되다-343화 (343/415)

343화. 왜 안 돼?(2)

* * *

[…그 일 말하는 거 맞지?]

[내가 봐도 맞는 것 같아.]

[하지만 그건…….]

서로를 쳐다보는 정령들의 눈빛에는 당황함이 깃들었다.

[미안해, 카샬.]

라탄이 이번에도 먼저 사과했다.

어쩐지 닮았다고 생각했는데, 카샬이 바로 왕비의 아이였다니.

[…아니. 사실, 미안이라는 말을 꺼내도 될지 모르겠어. 이건 우리의 잘못이 맞아.]

라탄이 고개를 숙였다.

[그래. 우리가 잘못했어. 우리가… 너의 어머니를 죽이고 말았어.]

이어지는 사과에 카샬은 잠깐 흔들리는 시선으로 그들을 바라보았다.

이렇게 사과를 받을 줄은 생각도 하지 못했고, 사과할 거란 생각도 하지 않았기에 그저 멍했다.

화도 나지 않고, 그저 숨밖에 쉬어지질 않았다.

[그런데, 카샬. 너의 어머니는 우리에게 대항하러 온 게 아니라 부탁하러 온 거였어.]

'…부탁이라고?'

카샬은 몰랐던 사실에 귀가 번뜩 떠지는 기분이었다.

[더는 너를 무시하지 말아 달라고. 제발 그냥 사람답게 살아가게 해달라고.]

[맞아. 그렇게 우리한테 부탁했어.]

정령들은 고개를 끄덕이기 바빴다.

난생처음 듣던 말이었기에 더 기억이 났다.

[처음에는 화가 났어. 우린 그런 적이 없어. 너를 핍박하라는 말조차 꺼낸 적이 없으니까.]

[당연하지! 너희가 아무것도 하지 않은 탓이니까!]

아코가 으르렁거렸다.

[내가 너희에게 얼마나 많이 말했어? 정령사가 아닌 이들이 이 나라를 끔찍하게도 증오한다고. 그 증오가 어디로 갈 것 같냐고! 그러니까 제발 좀 주변 좀 살피고, 차별을 막으라고 그랬잖아!]

이빨을 들이민 아코의 주변에 바람이 일렁거렸다.

분노가 치밀어올랐다.

말하지 않았다고 해서 그 일이 없어지는 게 아니었다.

[차별에 암묵적으로 동의해 놓고 이제 와서 발을 빼겠다고?]

[아코.]

아라가 아코를 말렸다.

[지금은 싸우러 온 게 아니야. 아코가 무척 슬퍼서 화가 엄청 난다는 건 이 몸도 알아. 하지만 이 몸이 생각하기에 지금은 대화가 필요해.]

[…흥.]

아코가 콧바람을 내쉬다가 뒤로 몇 발자국 물러섰다.

[아코. 이건 변명이 아니야. 우리 말 좀 들어줘.]

[맞아. 그때 우리 내부에 네 말이 퍼져나갔어. 우리도 심각하게 받아들였고. 그래서 우리는 왕한테 가서 경고했어. 다시는 이런 일을 벌이지 말라고.]

"경고를… 했다고요?"

카샬은 당장이라고 거짓말이라며 외치고 싶었지만, 정령들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래. 경고하고, 너를, 우리에게 부탁하러 온 그 사람을 잘 보살펴달라고 말했어.]

[그럼 그때 왜 아무도 없었어? 왜 말리러 오지 않았지? 나뿐이었다고. 그곳에 나밖에 없었어……!]

아코가 이어지는 정령의 말에 기가 차 말을 꺼낼 수밖에 없었다.

[우린 그곳에 없었어.]

라탄이 머뭇거리다 말을 꺼냈다.

[없었다니?]

아코의 눈매가 더욱 날카로워졌다.

[왕이… 불렀거든. 우리를 위해서 연회를 열어준다고 그랬어.]

"……!"

카샬은 라탄의 말에 기억을 떠올렸다.

분명히 그날 연회가 벌어졌다. 어머니가 죽은 날, 정령들이 연회를 열었다는 말을 어떻게 잊을 수 있을까.

"역시 왕이 다 저질렀네."

하벨은 카샬이 하려는 결론을 먼저 꺼내주었다. 벌써 카샬의 눈빛이 그렇게 말하고 있었으니.

"내 그럴 줄 알았지."

"…왜, 그런 겁니까?"

카샬이 흔들렸다.

제발 답을 알려달라는 눈으로 자신을 보자 하벨은 바로 말을 꺼냈다.

"너와 너의 모친 문제로 정령들과 갈등이 생길 게 뻔하니 그냥 잘라버린 거야. 이게 더 큰 싹이 되지 않게."

왕으로서 정령사 왕국을 유지하려고 그런 결론을 내렸다는 걸 알지만, 가장 편하고 가장 최악의 방법을 선택했다.

하지만 마음에 걸리는 게 있었다.

겨우 그 이유로, 왜 이렇게 번거롭고 최악이 될 수 있는 수단을 쓴 건지.

"길게 이야기했지만, 결론은 쓰레기라는 거야. 왕으로서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해버렸으니까. 결국, 혼자만 이득을 봤잖아?"

하벨은 정령들을 바라보았다.

"그 사건이 벌어지고 너희는 왕에게 이유를 들었을 거야. 왕이 거짓말할 리가 없다고 생각하지 않았어?"

[…맞아.]

라탄이 힘없이 대답했다.

앞발을 꼼지락거리는 모습이 참 측은했다.

믿음이란 때론 다른 모습으로 돌아온다는 걸 저들은 몰랐겠지.

정령들은 언제나 누군가를 믿고 있었으니까.

"그렇게 잊혔을 거야. 너도, 그 사건도."

하벨은 잠깐 숨을 삼켰다.

카샬이 지금 어떤 마음을 먹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하벨은 최대한 객관적인 사실을 전달하는 데 애를 썼다.

"그래서 네가 탈출할 수 있었겠지. 너마저 건드리기가 껄끄러웠을 테니까."

카샬은 잠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무얼 생각하고 있을까. 눈동자에 잠깐 슬픔이 스치고 지나갔다.

"…도련님."

카샬이 숨을 섞으며 하벨을 불렀다.

"그래."

"…도와주십시오."

하벨을 바라보는 카샬의 눈빛에 간절함이 가득했다.

오미너스라는 존재로 헤스트리아 왕국의 권력이 땅으로 꺼진 지금이 아니라면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저를, 도와주십… 시오."

카샬은 이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이래도 되는지 모르겠지만, 하벨에게 짐을 떠넘기는 게 아닌지 모르겠지만, 자신이 배운 거라고는, 지금까지 해본 거라고는 그저 검을 휘두르는 것과 집사로서의 삶이 전부였다.

누군가의 삶을, 아니, 한 나라의 왕을 살아 있는 채로 통째로 빼앗아본 적은 없었기에 도움이 필요했다.

현실은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았으니까.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자신의 숨소리가 너무도 컸다.

'…무섭다.'

카샬은 저 입에서 무슨 말이 나올지 두려웠다.

사람이 두렵고, 권력자가 두렵고, 믿음이 두려웠다.

하지만 지금 가장 두려운 건 혹시나. 정말 혹시나 하벨의 눈빛이 어릴 때 보았던 싸늘한 시선으로 변하는 것이었다.

무능력한 자신을 바라보는, 가엾고 딱하다는 시선으로.

"물론이지. 뭐든, 도와줄게."

하지만 하벨은 부드럽게 웃었다.

언제처럼 믿음으로 가득한 눈빛을 보내며 흔쾌히 허락했다.

카샬은 마음이, 목소리가 떨려왔다.

"제… 결정이 옳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괜찮아. 나도 판단할 거니까. 아무 생각도 없이 너를 구렁텅이로 몰 생각도 없어."

"터무니없다고 생각하실 수도 있습니다. 어쩌면 기가 차서… 헛웃음을 내뿜으실 수도 있습니다. 제가 너무 못나서……."

"괜찮아, 카샬."

하벨은 눈웃음을 지었다.

도움을 요청한다는 사실이 카샬에게 얼마나 어려운 건지 아주 잘 알고 있기에 하벨은 그를 다독였다.

카샬은 자존심이 아주 강했다.

완벽이라는 이름이 붙을 수 있을 정도로 카샬은 집사로서, 검사로서, 정령사로서 매일 노력하는 것도 알고 있었다.

이제는 왜 그가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는지를 이해했다.

어머니라는 마지막 보금자리를 빼앗긴 아이는 이 나라를 도망쳤다.

그때, 얼마나 큰 절망감으로 가득 찼을까. 모르던 도멘을 따라간 건 마지막으로 꺼낸 절박함이었겠지.

사람들이, 이 세상이 얼마나 두려웠겠는가.

―저는… 말입니다.

그런 카샬이 자신한테 과거를 털어놓았을 때, 그 첫 울림이 그렇게 서글플 수가 없었다.

―저는 현실에서 계속 도망쳐 왔습니다.

자존심이 강한 카샬이 도망쳤다는 걸 인정했을 때, 어떤 느낌이었겠는가.

처음에도, 지금도 먼저 자신에게 괜찮다며 손을 내민 건 카샬이었다.

―저는 앞으로 도련님을 모시게 된 집사, 카샬 메르흔이라고 합니다.

"말해줘, 카샬."

하벨은 손을 뻗어 카샬의 옷자락을 잡았다.

"네가 원하는 게 뭔지."

강한 하벨의 울림에 카샬은 두려움이 순식간에 녹아 얼어붙었던 입술이 열렸다.

"왕권을… 빼앗고 싶습니다. 놈이 가진 모든 걸 다 가지고 싶습니다."

말 하나하나에 모든 걸 억누르는 게 느껴졌다.

"전부 빼앗고 싶습니다. 전부 다요."

"그럼 네가 빼앗은 왕권은 누구한테 줄 거야?"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저는 왕권만 가져갈 셈입니다."

카샬의 대답에 하벨이 싱긋 웃었다.

알맹이만 쏙 골라간 왕처럼 카샬 역시 똑같이 대응하겠다는 게 아닌가.

"제게 왕권을 가져갈 당연한 권리도 있으니 자격이 없는 건 아니잖습니까."

비록 헤스트리아 왕국을 나왔어도 이곳의 왕자라는 사실은 바뀌지 않았다.

"지금, 누가 반대를 하겠습니까?"

카샬은 비웃음을 드러냈다.

헤스트리아 왕국이 오미너스라는 존재 때문에 망가진 지금이 아니라면 왕의 모든 걸 벗겨낼 기회가 언제 있겠는가.

"알았어."

하벨은 카샬의 뜻을 이해했다.

"요컨대 왕이 가진 것들을 다 벗겨내 달라는 거지?"

장난스러운 미소가 하벨의 입가에 드리우자 카샬은 오늘따라 그렇게 든든할 수 없었다.

"예. 방법은 도련님께서 무얼 하든 상관없습니다. 그냥, 그냥… 그 자식을 끌어내려 주십시오."

하벨은 우아하게 유자차를 마신 뒤에 씨익 웃었다.

"그 방법 되게 마음에 드네. 내가 이전에 말했잖아? 헤스트리아 왕국을 돕지 않겠다고."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럼 이참에 뽑아 먹어야겠어. 티에라 가문에 뜯어간 것 이상으로 말이야."

하벨은 조용히 쿠키를 쥐었다. 사람 모양의 쿠키였다.

오도독.

머리를 뜯었다.

정령사 왕국이기에 일반 왕국에서 할 수 없는 부분이 무엇이겠는가.

오도독.

팔을 뜯었다.

바로 자연이나 마찬가지인 정령들과 함께 어우러지는 부분이었다. 이는 곧 자연과 관련된 부분에 있어서 어떤 식이든 사람으로서 할 수 없는 부분을 해낼 수 있다는 의미였다.

오도독.

몸뚱어리를 뜯었다.

광물이든, 곡식이든, 약이든, 무기든, 여러 부분에서 가능했다.

티에라 가문에 빨대를 꽂은 것보다 더 가져갈 수 있다는 소리였다.

마지막 남은 다리마저 입에 넣으며 하벨은 오도독 씹어주었다.

"…도련님, 눈빛이 무서워졌어."

칼리우스가 서늘해진 하벨의 눈빛에 말문을 열자 그는 눈을 깜박거렸다.

"아, 미안해, 용용아. 너한테 화낸 거 아니야. 그냥 생각 좀 했을 뿐이야."

하벨은 그제야 평소처럼 장난기가 가득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어?]

아라가 귀를 쫑긋 세웠다.

[얘들이 왔어!]

조금 전부터 말이 없던 레디나가 가장 먼저 일어났다.

"…도련님."

레디나의 표정이 어두웠다. 하벨은 그녀가 무슨 말을 할지 짐작이 갔다.

어머니가 죽었다는 말이 그녀의 기억을 찔렀을 테지.

"레디나. 심호흡부터 할래?"

"새끼손가락만 잘라도 돼요? 이건 안 죽는데요. 아니면 귓불 반만요. 이것도 괜찮아요."

"레디나."

"…저는요, 이런 빌어먹을 것들이 정말 싫어요! 저런 놈들이 잘 처먹고, 잘 살았다는 결말이 싫어요!"

그런 이들을 죽이는 역할이 바로 검은 달이었는데.

어서 검은 달의 본부로 가서 수장의 목을 베어버리고 싶었다.

"고마워, 레디나."

카샬이 말을 꺼내자 레디나는 입술을 잠깐 떨었다.

"나중에 도련님 몰래 슬쩍 말해줘요, 카샬. 제가 진짜 잘 잘라줄게요."

"그럼 저는 죽지 않게 치료하겠습니다. 상황상 일단 살아 있어야 하니까요."

슬쩍 말을 꺼낸 헤레스는 하벨의 눈치를 살폈다.

"어차피 사고 쳐봤자, 너의 집은 티에라잖아? 사고 쳐. 까짓거 수습하지 뭐."

라르웬은 팔짱을 꼈다.

"수습은 말로만 하는 게 아니잖아, 라르웬? 가뜩이나 클로저 일로 바쁜 네가 수습할 시간은 없을 거야. 이건 갑자기 한가하게 된 내가 해야지."

넬시아가 키득거리며 카샬에게 다가왔다.

"너 하고 싶은 대로 해, 카샬. 너는 그래도 돼. 내가 책임지고 수습할게. 내 손목이라면 제법 튼튼해."

카샬은 모두가 있는 뒤로 고개를 돌리지 못했고, 유일하게 그의 표정을 본 하벨만이 조용히 미소를 지었다.

"다들 너를 너무 좋아하니까, 질투가 나는데?"

"…예. 질투하셔도 됩니다."

카샬은 어깨를 부르르 떨다가 겨우 감정을 억눌렀다.

누가 뭐라고 해도 저들의 마음은 진짜였으니까.

티에라 가문이 진짜 자신의 집이었다.

"걱정하지 마. 사고는 내가 칠 테니까."

하벨은 카샬의 어깨를 토닥이며 가면을 썼다.

마치 신호처럼 모두가 가면을 하나씩 쓰며 분위기가 무겁게 가라앉아갔다.

"내가 문을 지키겠소."

여하가 먼저 말을 꺼냈다.

자신은 외부인이었고, 저들 사이에 끼어들 수 없는 시간이 존재했다.

"그럴 필요 없어."

하지만 이를 하벨이 부정했다.

"너도 여기 있어도 돼. 아니, 더 가까이 와 있어야지. 일단은 내 호위잖아?"

"…호위란 무릇 귀인보다 강해야 하오. 그냥 해본 말이라는 걸 아오."

"나는 이런 걸로 장난 안 쳐."

하벨이 침대 옆을 가리키자 헤레스가 여하에게 다가가 그를 살짝 밀었다.

"정말이에요. 도련님은 이런 걸로 장난 같은 거 치지 않아요."

"하지만……."

여하는 당황하면서 내빼려고 했으나, 칼리우스가 그를 잡아 이끌었다.

칼리우스의 힘이 왜 이렇게 강한지 몰랐다.

드디어 여하가 하벨 옆에 서자 그가 손가락으로 아래를 가리키며 확실히 말했다.

"기억해, 여하. 앞으로 네 자리는 여기야."

지금까지 말을 하지 못했지만, 하벨은 여하에게 할 말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온다, 와.]

아라가 두근거리면서 꺼내는 말에 모두가 숨을 죽인 듯 말을 하지 않았고,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라는 서둘러 하벨의 등에 붙어서는 숨을 몰아쉬었다.

쿵쿵 뛰는 아라의 심장 소리가 들려왔다.

스르르 열린 문을 바라보았다.

카샬은 평소처럼 자리에서 일어나는 하벨을 말리지도 못한 채로 숨을 길게 내쉬며 화를 억눌러야만 했다.

감금된 듯 정령들 사이에 걸어오는 놈이 바로 왕이었다.

카샬과 전혀 닮지 않은 탐욕만 가득 어린 패배자가 걸어오고 있었다.

화르르르륵.

랜턴에 갑자기 검은 불꽃이 타올랐다.

요컨대 저 왕이 문제란 소리가 아닌가.

'잘됐네.'

하벨은 세계의 파멸을 일으킬 문젯거리를 마침 하나 제거할 수 있어서 기뻤다.

꼴에 여유로운 걸음걸이를 유지하나 하벨 눈에는 왕이 얼마나 초조한지 눈에 보였다.

왕은 하벨 일행을 보더니 얼굴을 와락 구겼다.

겨우 이딴 놈들이.

이런 시선마저 보여 하벨은 가면을 썼다는 것도 잊어버리고 손으로 입을 가릴 뻔했다.

푸흡.

하벨은 그냥 웃음을 터트렸고, 왕은 불쾌한 시선으로 하벨을 바라보았다.

[우리 왔어요.]

정령들이 아라를 향해 목소리를 냈고, 아라가 발바닥을 내보이며 대신 인사했다.

[저놈에게 뭐라고 하면서 데려왔는데?]

아코는 주변을 돌아보더니 왕 근처에는 아무도 없다는 걸 알고는 말문을 열었다.

[아무 말도 안 했어. 그냥 따라오라고 했어.]

[순순히 따라왔다고?]

정령의 말이 믿기지 않아 아코는 다시 물어봤다.

[맞아. 예전부터이랬어. 새삼스러울 것도 없는걸.]

"고생했어."

예전부터 왕이 정령들의 발바닥을 핥으며 살아왔다는 좋은 소식에 하벨은 더욱 환하게 웃으며 정령들을 반겼다.

"…고얀 놈!"

왕은 바로 발끈했다.

"감히 정령님께 그 무슨 무엄한 말인가!"

"왜 안 돼?"

하벨은 왕이 아니라 그저 재활용도 안 되는 쓰레기로서 놈을 대했다.

"어허. 지금 그게 무슨 망발인가! 정령사라면……."

"하지만 생각해봐. 네가 바보가 아니라면 알겠지. 너를 이곳으로 데려오라고 정령들에게 부탁한 건 누구?"

[여기 있는 달님!]

라탄이 으쓱거리며 대답했다.

저 잘했죠?

라탄은 하벨 뒤에서 흔들리는 하얀 앞발을 바라보며 눈을 반짝거렸다.

"그리고 내가 바로 달님이야."

하벨은 자신을 가리키며 키득거렸다.

"이런데도 왜 안 돼?"

그대로 충격에 빠져서 입을 벌리고 있는 왕의 모습이 제법 볼만했다.

하지만 하벨은 저런 놈에게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았기에 바로 요구했다.

"널 여기로 부른 이유는 간단해."

하벨이 손가락을 아래로 가리켰다.

"이 나라는 이제부터 우리 가면단 거다. 내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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