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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령사 가문의 막내가 되다-324화 (324/415)

324화. 저는… 말입니다

* * *

빛 사이로 얼핏 하벨 티에라가 보이는 것만 같았다.

그럴 리가.

"제가 분명히 자기 비하하지 말랬죠!"

하지만 하벨 티에라의 목소리가 맞았다.

혹시 의식 속에서 보는 걸까 싶었지만, 이상하게도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진짜, 못 살아. 지금 용왕님의 영혼이 부족한 거 알아요, 몰라요? 아직 영혼이 몸을 거부하고 있단 말이에요. 제가 이걸 얼마나 달래고 있는데. 뭐가 됐든 조심해야죠. 그렇게 자신을 궁지에 몰면 어떡해요?"

자신이 잘못 보는 걸까.

혹시 꿈일까.

하벨은 모든 게 뒤죽박죽이라 느꼈다.

"…어휴, 거봐요. 제가 이래서 아직은 사라질 수 없는 거예요, 막내님."

하벨 티에라가 손을 뻗어 자신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저는 괜찮아요, 용왕님."

'그럴 리가 없다. 괜찮을 리가 없어.'

"용왕님께서 제 미래를 뺏어간 게 아니에요. 제 선택이고, 제가 멋대로 벌인 일이니까 제발 저를 원망해주세요."

하벨 티에라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어떻게 그렇게 생각할 수 있는 거지?'

"저야말로 알고 싶어요. 어떻게 저를 용서해주고 이렇게 생각해주는지를요. 이러면 더 미안해지잖아요."

'내가 다른 미래를 너한테 줬어야 했다.'

"아뇨. 다른 미래는 없어요. 지금이 미래고, 제 선택은 계속 용왕님일 거예요."

환하던 빛이 뿌옇게 눈앞에 보이나 싶더니 갑자기 아라가 보였다.

입이 움직이는 게 보였는데 무어라 말하는지 알 수 없었다.

그 순간, 소리가 귀를 때렸다.

[…대장! 대장! 숨을 멈추면 안 돼에!]

다급한 아라의 목소리에 하벨은 숨을 쉬었다.

"…허억!"

거친 호흡에 온몸이 흠뻑 젖어 있는 걸 느꼈다.

마치 바닥 끝에서 올려진 것만 같았다.

"하……."

하벨의 가슴팍을 압박하던 카샬이 손을 뗐다.

그가 비틀거리며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았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도련님."

카샬은 넋이 나간 듯 말을 꺼냈다.

"그렇게 몰아붙이는 게 아니었는데……."

카샬은 얼굴을 쓸어내렸다.

갑자기 하벨이 스위치가 나간 것처럼 침대로 쓰러졌다.

순식간에 벌어진 발작과 함께 숨이 멈췄다. 마치 실이 끊어진 인형처럼.

너무 무서웠다. 정말로 모든 게 사라지는 느낌이었기에 카샬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하……."

하벨은 숨을 길게 내쉬며 눈을 깜박거렸다.

어헝헝헝.

옆에서 울음을 터트린 아라를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쓰다듬었다.

"미… 안해, 아라야."

혀가 잠깐이나마 굳어버린 것 같았다.

[대장은…, 대장은 나빠……!]

아라가 엎드려서는 서러움을 토해냈다.

"미안해, 아라야. 내가 미안해, 카샬."

하벨의 눈에서 흐르는 눈물이 귓가를 적셨다.

자신을 나쁘다고 말하는 아라의 서러움이 가슴을 찔러왔다.

"내가, …내가 죄다 잃어버리기만 해서. 겁쟁이라서, 그렇게 말해버렸어."

찬찬히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서러움을 담고, 슬픔을 담은 소리에 카샬이 비틀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너희가 너무 소중해서. 다시 누군가의 가족이 된 게 너무 행복해서. 과거에 내가 한 실패가 다시 모든 걸 죽이게 될까 봐 무서워졌어."

간절함을 담은 하벨의 말에 아라는 울음을 멈추고 그를 바라보았다.

"과거가. 내가 선택한 결과가 자꾸 턱밑으로 와서 나를 찌르려고 하는데, 숨이 너무 막혔어."

그때도 버틸 수가 없었다.

그런데 또 그런 일이, 아니, 그것보다 더 큰 일이 벌어진다고 하니 무서웠다.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 무서워 도망쳐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무서워… 하셔도 됩니다, 도련님. 괜찮아요. 그게 당연한 겁니다."

카샬은 양손으로 자신의 눈을 꽉 누르는 하벨을 바라보자, 입안이 썼다.

무섭다.

하벨이 꺼내기에 상당히 이질적인 말처럼 들려왔기에 참 작아 보였다.

"그런데… 하벨 티에라가 용왕이었다는 사실을 듣자마자 내가 하벨 티에라의 미래를 뺏었다는 생각이 몰려왔어."

하벨의 입가가 파르르 떨렸다.

"…미칠 것만 같았어."

[대장이 그런 거 아니야. 이 몸은. 이 몸은 계속, 계속 말할 수 있어.]

아라가 하벨을 꼭 안아주며 절실함을 가득 담았다.

[대장이 얼마나 힘들었는지 이 몸이 알아주지 못해서 미안해. 이 몸이 대장을 더 꽉 안아줬어야 했는데.]

"미안해……."

카샬은 이어지는 하벨의 사과에 마음이 쓰라렸다.

이어 갑갑함이 몰려와 손끝부터 시작해 힘을 주고 주먹을 꽉 쥐었다.

"도련님. 저는… 도련님께서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 진짜 어떻게 이렇게까지 남을 생각해줄 수 있는지, 자신을 희생할 정도의 책임을 지고 있는지,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카샬은 꾹 눌러뒀던 말을 꺼냈다.

"저는… 말입니다."

아코의 눈이 컸다.

[카샬……?]

"저는 현실에서 계속 도망쳐 왔습니다. 정령사 왕국, 헤스트리아에서… 도망쳤습니다. 진짜 겁쟁이는 도련님이 아니라 바로 접니다."

하벨이 찬찬히 손을 내렸다.

"그곳에서 정령사가 되지 못했다는 이유로 절 유일하게 사랑해준 어머니가 죽었습니다."

"카… 샬?"

"정령사가… 될 수 없기에, 단지 그 이유 하나만으로 어머니가. 어머니의 목이 성밖에 걸려 까마귀밥이 되는 걸 보아야 했습니다."

카샬은 스스로를 비웃었다.

다시 생각해도 기가 찼다. 이런 말을 꺼내는 자신도, 그 일도.

그 고왔던 어머니가 썩어버린 고깃덩어리가 되는 모습은 아직도 생생했다.

그렇게 돌아가실 분이 아니었는데.

"제가 그곳에서……."

카샬은 말하다 말고 입을 다물었다.

그 말만큼은 도무지 나오질 않았다.

"…도련님. 저 역시 제 탓이라 생각했습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고, 유일했던 제 안식처였던 어머니가 죽은 게 제 탓이라 생각했습니다."

"…카샬."

하벨이 부들거리며 상체를 일으켰다.

이제야 배가 욱신거려왔다. 아픔이 밀려왔지만, 하벨은 카샬을 바라보았다.

"그래서 저는 그곳에서 도망쳤습니다. 주어진, 아니, 주어진 거라고 볼 수가 없네요, 참."

카샬은 잠깐 입가를 핥았다.

"그래서 제가 행복했을까요? 도망친 후에 기뻤을까요?"

여전히 자기 자신을 향한 비웃음을 달고는 카샬이 물었다.

"예. 행복했습니다."

하지만 말과 달리 카샬의 눈동자 어디에서도 기쁨을 볼 수 없었다.

오히려 절망감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너무도 비참했습니다. 죄책감이 떠나지 않았으니까요. 아무리 애를 써도, 어머니의 시체를 회수하지도 못한 제가 어릴 때와 다를 게 없어 정말로 싫었으니까요. 하지만, 도련님."

카샬의 미간이 살짝 찌푸려졌다.

자신의 세계는 이미 깨졌고, 다시 붙일 수 없을 만큼 틀어져 있었다.

"도련님께서는 아니잖습니까. 저와 달리 도망치지 않았습니다. 하나씩 제자리로 돌리고 있잖습니까. 기회가 있습니다. 아직 후회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맞아. 대장은 에른스트가 한 일을 다 부수고 있어!]

아라가 고개를 몇 번이고 끄덕였다.

"저는 셋째 도련님이 어떤 마음으로 이랬다고 대변할 수 없지만, 그래도 이곳에 있는 그 누구보다 아주 잘 알고 있습니다."

카샬은 살며시 웃었다.

"인생 최대의 결정을 한 겁니다. 도련님께 그냥 모든 걸 걸어버린 거죠. 셋째 도련님은 그런 사람입니다. 유약하고, 소심하지만, 한 번 내뱉은 결정은 되돌리지 않습니다. 그러니 안심하셔도 됩니다. 결코, 빼앗은 게 아닙니다."

카샬은 한쪽 무릎을 꿇고 하벨의 팔에 달린 랜턴을 잡았다.

"오히려 도련님께서 셋째 도련님한테 욕을 하셔야 할 상황입니다. 모든 걸 떠맡으셨으니 말입니다."

꽈악.

랜턴을 잡은 카샬의 손에 다시금 힘이 들어갔다.

"만약, 정말 만약에 이 모든 상황이 벅차 도련님께서 도망치신다면… 저는 기꺼이 따르겠습니다. 도련님께서 덜 후회하시는 방법을 생각하겠습니다."

"…미안, 카샬."

"저한테 미안해하실 필요 없습니다."

"이건, 그러니까, …투정이었어."

"그러셔도 됩니다. 저도 과거가 가끔 저를 찌릅니다. 아주 많이요. 거대한 성을 볼 때마다 생각이 나고 그럽니다."

"나한테… 말하지 않아도 괜찮았어."

하벨은 어느새 본인의 아픔을 지우고 카샬 자신의 아픔을 바라보고 있었다.

따악!

딱밤을 맞은 하벨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너무 놀라 고여있던 눈물마저 주르륵 떨어졌다.

카샬은 그제야 라르웬이 왜 하벨을 때리는지 알았다.

―카샬. 네가 좀 봐줘. 진짜, 막내는 안쓰러워 미치겠다니까. 항상 테두리 안에 자신만 없어. 보고 있으면 딱밤을 몇백 대나 때리고 싶다니까!

저렇게 본인은 모르고 남만 바라보고 있으니 속이 상할 수밖에 없었다.

"진짜 말을 더럽게도 안 들으십니다."

"…뭐?"

"저도 좋지 않은 과거를 가졌습니다. 병신이라며 두들겨 맞고, 거꾸로 매달리고, 추운 겨울에 성밖에 쫓겨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건 과거가 되었죠."

"아픔이라는 게 과거가 되었다고 해서 나아지는 게 아니야."

"그대로 되돌려주겠습니다, 도련님. 아픈 건 아픕니다. 그냥 누구든지 아픕니다. 도련님께서도 아픈 겁니다."

[그러니까, 이 몸은 대장이 대장을 더 살펴봐야 한다고 생각해! 잘할 땐 잘했다고, 착하면 착하다고 칭찬도 해줘야 하구!]

"옳으신 말씀입니다."

카샬은 아라가 꺼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아시겠습니까, 도련님?"

"모르겠는데?"

하벨은 정말 모르는 것처럼 눈을 깜박거렸다.

하.

카샬은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주인이 모르면 백 번, 아니, 만 번이라도 더 말해주는 게 집사의 미덕이 아니겠는가.

"도련님의 사건은 현재가 되었습니다. 그러니 왜 더 아프지 않겠습니까? 투정을 부리셔도 괜찮습니다. 오늘처럼 울음을 터트리셔도 됩니다."

"……!"

하벨은 그제야 다급히 얼굴을 닦았다.

"하지만 자신을 포기하지 말아 주십시오. 도련님의 잘못은 그 어디에도 없으니까요. 정말로 어디에도 없습니다."

카샬은 한 번으로 부족해 또 강조하고 말았다.

대체 얼마나 많은 죽음이 보았기에 하벨이 이렇게 희생적인 존재가 되었는지 몰라도 카샬은 안타까웠고, 안쓰러웠다.

"…고마워."

하벨은 아라와 카샬이 무엇을 말하는지 조금은 알았다.

자신을 돌보란 말이겠지.

사실 '하지만'이라는 말이 아직 입가에 맴돌았지만, 흐뭇하게 흔들리고 있는 랜턴을 보니 하벨은 더는 떠들어댈 수가 없었다.

하벨 티에라가 자신에게 '괜찮다'라고 말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걸 포기했는지 알기에 더는 어리광을 부릴 수가 없었다.

"노력해볼게. …정말로."

[노력이 아니라, 해! 무조건!]

아코가 하벨의 볼을 꾸욱 찔렀다.

[카샬이 어떤 마음으로 이걸 말했는지 너는 모를 거야! 정말 정말 너를 소중하게 생각하니까 이렇게 말한 거라는 걸…….]

카샬은 아코를 품에 안았다.

"조용히 해야지, 아코."

아코의 꼬리가 축 처졌다.

"이제 누우십시오, 도련님. 헤레스 씨를 불러오겠습니다. 아무래도 심장이 멈췄으니 이상이 생겼을지도 모릅니다."

"카샬."

"예, 도련님."

"여기서 갑자기 이런 말을 해서 미안한데."

"예?"

"헤스트리아 왕국에서 정령이 찾아왔어. 아, 이 말은 했었지?"

하벨은 창백하게 질린 표정으로 카샬을 바라보았다.

"어쨌든, 거기에 오미너스가… 있는 모양이야. 넌 어떻게 하고 싶어?"

카샬은 너무도 놀란 표정으로 하벨을 바라보았다.

헤스트리아 왕국에 오미너스라니.

* * *

"…다 처리하고 돌아왔습니다, 전하."

하벨이 공손하게 두 손을 내밀었다.

뭘 요구하는 건지 몰라도 드란트는 자신의 귀부터 의심해야 했다.

처리하다니.

대체 무엇을.

"이제 약속대로 레바놈을 넘겨주시죠."

당당한 하벨의 요구에 드란트는 당장이라도 자신의 이마를 치고 싶은 욕구를 느꼈다.

제대로 들은 거라니.

그럴 리가.

분명히 하벨이 정신을 잃고 이곳 왕실로 실려 왔을 텐데.

그걸 숨겨준 게 자신이기에 잘 알고 있었다.

"…농담인가?"

드란트는 당장 웃을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 정도의 아량이 있었으니.

"아뇨. 오늘 떠날 건데 그러면 되겠습니까?"

"그것도 농담인가?"

"농담입니다."

"하… 하하!"

드란트가 웃자 하벨 역시 씩 웃었다.

"농담입니다."

뚝.

드란트가 웃음을 멈추며 하벨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하벨은 거짓을 말하고 있는 건 아니었다. 그야 그럴 것이 지금 아주 자신만만하게 웃고 있질 않은가.

"…정말인가?"

드란트가 묻자 하벨은 공손하게 내민 손을 내리며 고개를 살짝 숙였다.

"예, 전하. 골칫거리를 다 처리했습니다."

"마법사의 탑 사건은 내… 들었네. 지금 이 사건으로 얼마나 떠들썩한지 알고 있나?"

"뭐, 그렇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정말로 남이 떠들든 말든 하벨은 관심이 없다는 듯 보였다.

"전하. 저는 말입니다."

하벨의 요구가 바로 튀어나오자 드란트는 갑자기 긴장됐다.

또 뭘 요구할지 몰랐다.

"지금이 딱 적기라고 생각합니다."

드란트는 잠깐 숨을 돌릴 시간이 필요했기에 말을 우회했다.

"현재 공에게 퍼진 소문을 들었는가?"

"예. 들었습니다. 제가 마법사 협회로 왔기에 마법사의 탑이 부서졌다는, 아주 부정적인 시선이 흐르더군요. 아마 이 소문의 출처는 이곳 귀족들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니 나 역시 공과 같은 생각이네."

드란트가 씨익 웃었다.

소문이라는 건 생각보다 아주 쉽게 바뀌게 되어 있었다.

부정적인 시선을 엎을 수 있을 만큼 엄청난 무언가가 있다면 오히려 더 큰 반항을 얻을 수 있을 테지.

"공이 바라는 대로 해주지. 마법사들이 오염된 물을 이용한 '오미너스'라는 걸 만들고 있었다고 말이지."

"감사합니다, 전하. 그럼 하나 더 해주시죠."

하벨은 자연스럽게 하나를 더 요구하고 있었다.

"말해보게."

하지만 드란트는 하벨의 요구가 오히려 달가웠다.

"제가 물 마법사이기에 물이 반응해서 이를 알려줬고, 마법사의 탑이 무너진 게 그 영향이라는 소문을 퍼트려주십시오."

"그대의 상징성부터 올릴 셈인가?"

드란트는 흥미를 가득 심으며 물었다.

"예. 물 마법사인 제가 마법사의 탑을 부쉈다는 것 자체가 너무도 큰 반발로 돌아올 겁니다. 그러니 지금은 자제해야겠지요?"

하벨은 더는 설명하지 않았다.

물 마법사의 등장에 사람들의 마음속에 여러 가지 환상이 있을 테지.

하벨은 그 환상부터 자극할 셈이었다.

물이 반응했다.

이 사실이 얼마나 달콤하게 들릴까.

오미너스라는 존재의 심각성은 헤스트리아 왕국에서 모든 게 드러날 테니.

"전하. 저는 헤스트리아 왕국을 들러 레놀드 왕국으로 갈 겁니다."

하벨은 드란트의 도움을 더 받을 셈이었다.

"레놀드 왕국에는 정식으로 초청장이 왔다는 소식은 내 들었네. 하지만 헤스트리아 왕국과 공식적인 행사는 없지 않은가."

"얼마 전, 헤스트리아 왕국에서 온 정령이 도움을 청하러 정령 기사들에게 찾아왔습니다."

하벨은 진실 속에 거짓을 살짝 섞었다.

드란트라면 오미너스를 결코 그냥 두지 않을 테지. 그건 꺼져서는 안 되는 그의 야심이 아닌가.

"오미너스가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니 도와주십시오."

"그대를 보면 참 이상해. 정말 아무렇지도 않게 내게 도움을 요청한다고 생각하지 않는가?"

"그럴 줄 알고 준비했습니다. 제가 마법사 협회에서 가지고 온 오미너스와 관련된 자료를 보신다면 마음이 바뀌실 겁니다."

하벨은 품에서 서류를 꺼냈고, 드란트는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손을 뻗었다.

성큼성큼 다가온 하벨은 드란트에게 목소리를 낮추며 말했다.

"오미너스가 혹여 전하를 노릴 수 있습니다. 충분히 가능성이 있기에 이걸 지니고 계십시오. 아무도 알게 하지 마십시오."

하벨은 서류 밑에 작은 병을 내밀었다.

이게 무엇이냐고 드란트는 눈으로 물었다.

하지만 하벨은 손가락을 하나 올릴 뿐이었다.

한 번.

드란트는 하벨의 의도를 알자마자 병을 자연스레 품속에 넣으며 만졌다.

하벨이 준 병에 든 저건 한 번 사용할 만큼의 양이었다.

드란트가 하벨을 바라보았다.

맞습니다.

그렇게 대답하는 것만 같았다.

'그럴 리가…….'

저게 정말로 오미너스라는 존재를 없앨 수 있는 액체라면 하벨 티에라가 손에 쥔 패가 얼마나 큰지 가늠이 되질 않았다.

'진짜라고?'

드란트는 의심했다.

'이게 진짜 오미너스를 없앨 수 있는 물건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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