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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4화 〉 주인 없는 짐승과 공국의 마녀 (74/90)

〈 74화 〉 주인 없는 짐승과 공국의 마녀

* * *

"헉.. 허억... 잠깐."

"왜요."

"이.. 놈아...! 내가 나이가 몇..인데.. 헉... 헉.."

"... 에휴."

칠러웨이는 헉헉대는 구레드를 보며 한숨을 쉬고는 그에게 다가갔다.

"업히시죠."

"떼에에에엑! 내가 그 정도는 아니야!"

숨을 헉헉대던 모습은 어디 가고 자신의 말에 엄청난 기세로 화를 내는 구레드를 보며 칠러웨이는 인상을 팍 찌푸리고 산에 뛰어올라갔다.

"어... 어이! 자.. 잠깐!"

"왜요."

"미.. 미안하네."

작은 목소리로 말하는 구레드를 보며 칠러웨이는 피식 웃었고 허리에 손을 올린 채 당당하게 바위 위에 올라와 그를 내려다봤다.

"뭐라구요?"

".... 미.."

"예?"

"미친놈아!"

".... 예?"

"그렇게 빨리 가면 내가 어떻게 올라가!"

".... 아 예.."

구레드는 겨우겨우 칠러웨이의 옆으로 올라와 한숨을 내쉬었다.

"내가 잘못했으니까 업어주면 고맙겠네."

".... 진짜 뻔뻔하시네요 그렇죠 구레드?"

"....."

"업히세요."

칠러웨이가 몸을 숙이자 구레드는 말없이 그의 등에 업혔다.

"너무 마르신 거 아닙니까?"

"그 검은 물 안에 십오 년이나 갇혀있어보게 뭐 먹을 만한 게 있는지."

"... 그렇긴 하죠."

칠러웨이는 구레드가 갇혀있었던 감옥의 상황을 떠올리고는 조용히 산을 올라갔다.

"근데 여쭤볼 게 있습니다."

"뭐.. 물어볼 게 있나?"

"예.. 반역자라고 스스로 얘기하시던데... 좋은 일 하신 것 아닙니까?"

"...."

그의 질문에 구레드는 무언가 생각하는 듯 침묵했고 칠러웨이는 그의 대답을 기다리며 산을 탔다.

"... 궁금한가? 내가 나 스스로를 이렇게 부르는 이유를?"

"뭐... 예."

"... 어찌 됐던 로드웰 황제에게 반기를 든 것은 이 헬하임 제국에 반기를 든 거니까 맞는 말이지, 반란에 성공했으면.. 영웅이라 불렸으려나?"

"뭐.. 그렇죠."

"하하하하! 뭐, 지난 일이기는 한데 아쉽긴 하군.. 성공했으면 어땠을지!"

".... 모두 지나고 생각하죠.. 잃고 나서 아 저건 저 때 저렇게 했으면 안 되는데... 뭐 그런 거.."

"클클... 어쩔 수 없는 일이지, 그나저나.. 산을 타도 이렇게 멀지 몰랐는데.."

등에 업힌 구레드는 이곳저곳을 바라봤고 칠러웨이는 그의 시야가 더 잘 보이게 허리를 들어주었다.

"그나저나 그 용사라는 거... 진짜 농담 아닙니까?"

"농담?"

"예."

".... 자네 뭐 산에서 내려왔나?"

"...."

구레드는 마치 이상한 사람을 보는 것처럼 칠러웨이를 바라봤고 칠러웨이는 그저 머리를 긁적일 뿐이었다.

"... 모를 수도 있죠."

".... 그래 뭐 그럴 수도 있지 하지만 용사는 거리를 청소하는 노예들도 다 아는 이야기인데."

"그냥 좀 알려주시면 안 됩니까?"

"뭐 업어주었으니 그 정도는 사례라고 생각하고 알려주지."

구레드는 칠러웨이의 등에서 내려와 바위 위에 지도를 펼쳤고 헬하임 제국과 릴 왕국, 톤 왕국의 중앙에 있는 숲을 짚었다.

"칠라렌과 톤 왕국 사이에 레아인 숲이 있는 건 기억 나나?"

"예."

"이곳은 레아인 숲처럼 경계가 나누어져 있지 않고 나라 하나가 세워져 있네."

".... 예?"

칠러웨이는 지도에 그려진 숲을 자세히 바라봤지만 아무것도 없어 보였고 잘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 진짜 아무것도 모르는구만."

"그렇다니까요! 진짜... 그만 좀 하고 알려주세요!"

"깜짝 놀랐네! 갑자기 왜 소리를 지르고 그러나!"

"아니 자꾸 간만 보니까 그렇죠!"

구레드는 다시 한번 칠러웨이의 머리를 때리고는 지도에 무언가 슥슥 그리기 시작했다.

"뭡니까?"

"이 숲은 팔라렌 숲이라고 하지, 이곳이 용사가 있는 곳이야."

"... 근데 이 경계는 뭡니까?"

"공국."

"예?"

"초대 용사가 과거에 세운 공국이라고 할 수 있지, 지금은 용사의 피를 이은 후손들이 통치 중이고."

"그게 유지가 됩니까? 이 숲에서...?"

"물론."

칠러웨이는 구레드의 말에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듯 턱을 괴었고 구레드는 한숨을 쉬며 공국의 경계를 가리켰다.

"이 공국은 펑펑 쏟아져 나오는 지하수와 수많은 금이 매장되어 있는 광산이 있지, 게다가 용사의 후손은 어떨 것 같나?"

"뭐가요?"

"용사란 특별한 것인 거 알지?"

"예."

"그러니까 내 말은 데브라, 브라이언 공작.. 대륙에서 이름난 검사들과 비견해도 전혀 뒤떨어지지 않는 실력과 특별한 능력을 가졌다는 걸세."

".... 진짜요?"

"그래 아니면 더 뛰어날 수도?"

두 괴물과 비슷하거나 강한 괴물이 하나 더 존재한다는 것이 놀라운 듯 칠러웨이가 입을 벌리자 구레드는 피식 웃었다.

"그 반응을 보아하니 진짜 아무것도 몰랐던 거군."

"예.."

"아무도 공국의 잠재력에 대해서는 알지 못해, 그곳은 아무도 모르는 비밀스러운 나라다 이 말이지!"

"그런데 그 비밀스러운 나라에 가서 도움을 청하겠다는 겁니까?"

"용사라는 말이 괜히 나온 건 줄 아나?"

"...."

"용사가 움직이는 순간이 몇 개가 있지."

"그게 뭡니까."

"하나."

"...."

구레드는 중지를 들어 올렸고 칠러웨이는 괜히 기분이 나빠져 인상을 찌푸렸다.

"왜 그러나?"

"그거 일부러 들어 올린 겁니까?"

"아닌데?"

"아.. 계속하시죠."

"하나, 용사는 괴수들... 즉 키메라, 몬스터, 마족 등이 대륙에 셀 수도 없이 많아지면 스스로 나서서 사람들을 이끈다."

"마족이 있습니까?"

"없지! 아주 과거.. 즉 고대종들이 있었던 시기에 있었다~라고 전해지는 전설.. 뭐 그런 거지."

칠러웨이가 고개를 끄덕이자 구레드는 손가락을 하나 더 펼쳤다.

"둘, 대륙에 위협이 될만한 상황이나 될 것들을 미리 차단한다."

"그러면 구레드님이 갇히기 전에 요청했으면..."

"그게 말은 쉬워도 쉽지가 않아서 말이지... 다 때가 있는 거다."

"아... 예."

"셋, 칠라렌 성국의 요청."

"예?"

"칠라렌 성국의 요청."

".... 그거.. 그럼 결국 용사는 칠라렌의..."

"칠라렌의 앞잡이.. 뭐 그런 거 아니냐고?"

구레드의 물음에 칠러웨이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고 구레드는 걱정 말라는 듯 그에게 씨익 미소를 지어 보였다.

"이건 첫 번째와 같네, 요청이 있기 위해서는?"

"적도 있어야겠죠."

"그렇지."

구레드는 목이 마른 듯 칠러웨이가 들고 있던 물통을 뺏어들고 벌컥벌컥 마시기 시작했다.

"우리는 공국에 가서 두 번째 경우를 이야기할 걸세, 곧 있으면 도착할 테니 주변을 잘 살피게."

"숙이세요!"

구레드의 말이 끝나는 그 순간 갑자기 날아오는 창들에 칠러웨이는 그의 앞을 막았고 창들은 칠러웨이의 몸 이곳저곳을 뚫고 들어왔다.

"어이!"

"괜찮습니다, 좀 아플 뿐이죠."

창을 뽑자 흩뿌려진 칠러웨이의 피가 다시 그에게 돌아가는 것을 보고는 구레드는 놀란 표정으로 그를 바라봤다.

"거 잘 숨어 계십시요 영감님."

"누구 맘대로 영감이야..! 그래도 죽지는 말게 칠러웨이."

"방금 보시지 않았습니까 저 쉽게 안 죽습니다."

바위 틈으로 숨은 구레드를 보며 칠러웨이는 주변을 살폈지만 아무런 인기척도 느껴지지 않았고 조용할 뿐이었다.

"꼭꼭 숨어라.."

"커억!"

하지만 칠러웨이는 순간 귓속에 들린 숨소리를 놓치지 않고 작은 돌멩이를 들어 숨어있는 적의 머리를 맞춰 쓰러뜨렸다.

쿵!

"머리카락 보일라.."

"어어억..."

"꺼억..."

나무 위에서 떨어지는 나뭇잎을 놓치지 않고 칠러웨이는 바위 하나를 들어 집어던졌고 부러진 나무에서 떨어진 두 사람은 파르르 떨더니 기절해버렸다.

"어이!"

"...."

"이놈들 죽이기 싫으면 당장 나와."

"...."

칠러웨이가 기절한 세 사람을 자신의 끌고 나와 그들의 목에 검을 들이댄 순간 사방에서 얇은 천 갑옷을 입고 있는 남자들이 나타났다.

"비겁하게 인질을 잡다니!"

"너네들이 나한테 던진 창은 안 비겁하고?"

"...."

"왜 습격한 거지?"

"늙은 노인을 인질로 잡고 있지 않았나! 아무리 탈영했더라도 헬하임 제국의 황실 기사가 부끄럽지도 않은가!"

대장으로 보이는 남자의 말에 칠러웨이는 피가 묻은 자신의 옷을 바라봤고 한숨을 내쉬었다.

"구레드님!"

"왜? 끝났나?"

"와서 설명 좀 해보세요!"

"아직 안 끝났으면 부르지 말게, 십오 년 만에 밖으로 나와서 죽기는 싫으니."

"예?"

"끝나면 부르라고!"

"이 노인네가 진짜....!"

칠러웨이는 검을 옆으로 던지고는 바위 틈에서 구레드의 멱살을 잡고 끌고 나왔지만 숲에서 나온 남자들은 분노한 듯 얼굴이 붉어졌다.

"그 손을 놓게! 헬하임의 기사!"

".... 구레드 설명하세요!"

"아니 아직도 다 처리 안 했는데 왜 나를...!"

"죽기 싫으면 빨리하시라구요!"

칠러웨이의 다급한 말에 구레드는 남자들의 옷을 바라봤고 무언가 익숙한 듯 실눈을 떴다.

"호오.."

"호오는 무슨! 빨리 얘기하시라고요 구레드!!"

"아니! 칠러웨이! 옆에서 자네가 자꾸 이야기하니까 떠오를 듯 말 듯 하잖나...! 제발 좀 조용히 하게."

"읍!"

자신을 재촉하는 칠러웨이의 입을 더러운 천 쪼가리로 막고는 그의 손에서 벗어난 구레드는 옷을 툭툭 털고 앞으로 나왔다.

"어이!"

"...."

"나는 구레드 드 펠테로!"

".... 구레드?"

이름을 들은 남자는 고개를 갸웃거렸고 구레드는 예상한 반응이라는 듯 한숨을 쉬었다.

"당연히 모를 수밖에 없지... 나는 자네들의 머리를 보고 싶네."

".... 머리라면..."

"용사의 후손... 뭐.. 간단하게 용사라고 하지!"

구레드의 말에 남자들은 무언가 상의를 하듯 모여들었고 구레드와 칠러웨이는 조용히 그 모습을 지켜보며 속삭였다.

"근데... 구레드."

"왜 그러나 칠러웨이."

"쟤네들 제가 구레드를 죽이는 줄 알고 창 던진 것 맞죠?"

"... 아마?"

"그럼 사과받아야 하는 거 아닙니까?"

"자네 안 죽는다며?"

"...."

"나도 깜짝 놀라긴 했는데... 실수니까 좀.. 넘어가 주는 건 어떤가...?"

".... 예."

구레드의 말에 칠러웨이는 기분이 언짢기는 했지만 몸에 구멍이 뚫려있는 것도 아니었으니 한숨을 쉬며 고개를 끄덕였고 남자들은 상의가 끝났는지 구레드에게 다가왔다.

"누군지는 모르지만.. 용사님을 뵙고 싶으신 겁니까?"

"그렇네."

".... 그럼 따라오시죠.. 만약 용사님에게 해를 가하거나..."

"그럴 일 없네."

"저 사람도 일행입니까?"

"그렇네."

".... 조심하라고 전해주시길."

남자들이 자신을 째릿 쳐다보며 이야기하자 칠러웨이는 열이 올라왔지만 구레드는 그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어깨를 툭툭 쳤다.

"조심하래."

".... 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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