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75화 〉 주인 없는 짐승과 공국의 마녀 (75/90)

〈 75화 〉 주인 없는 짐승과 공국의 마녀

* * *

"...."

칠러웨이와 구레드는 빠르게 이동하는 남자들을 따라 숲속을 걷고 있었다.

"구레드님."

"헉... 헉.."

"업히시겠습니까?"

칠러웨이가 등을 내주었지만 구레드는 고개를 저었고 칠러웨이는 그대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예끼!"

"예?"

"한 번은 거절하는 게 예의인 거 몰라?"

"언제부터 예의를 챙기셨습니까?"

"됐고!"

구레드가 손가락을 까닥거리자 칠러웨이의 이마에서 주름이 만들어졌지만 온몸이 땀으로 젖은 그의 모습은 왠지 안쓰러워 보이기도 해 그는 어쩔 수 없이 무릎을 굽혀야만 했다.

"...."

"진작에 업어줬어야지!"

"진짜 땅에 던지기 전에 호의는 좀 받아들이세요."

"못하는 말이 없구만!"

한숨을 쉬며 구레드를 업은 칠러웨이는 주변을 살피며 남자들에게 들리지 않게 조용한 목소리로 그에게 말을 걸었다.

"저기 근데 구레드님..?"

"응?"

"저들이 공국의 기사들이라고 어떻게 확신하십니까?"

"간단하지 저 옷."

"옷이요?"

"그래 기사들의 복장은 수십 년.. 아니 몇백 년 동안 바뀌지 않는 경우가 많아."

"예.. 뭐 그게 그들의 상징과도 같은 거라고 듣기는 했습니다."

"내 기억 안에 저 옷은 좀 남아있어, 과거 이곳의 공국에 방문했을 때 그들이 입고 있던 것과 같군."

"... 저 얇은 천이 공격을 막아주는 갑옷이 됩니까?"

"모르는 소리 하지 말게, 저들의 주 활동지가 어딘가?"

"숲이죠.."

"숲에서는 지금 자네가 입고 있는 갑옷들은 그저 방해일 뿐이네."

"그런가요..?"

"그래, 갑옷은 방어력을 높여주지만 기동력은 한참이나 떨어지지 기본적인 상식 아닌가?"

"...."

"민첩하고 빠르게 움직여야 할 저들이 굳이 무거운 갑옷을 입고 뛰어다닐 필요는 없어."

"아.. 예."

"바보 같기는."

"...."

칠러웨이는 구레드의 비꼬는 듯한 말투에 부득 소리가 날 정도로 이를 갈았지만 그를 내팽개칠 수는 없었다.

"그러니까 결국 기동력에 초점을 두고 제작했다는 것 아닙니까.. 제국, 왕국들의 뻔쩍뻔쩍한 갑옷이랑은 다르게."

"오오 자네치고는 잘 이해했구만!"

"건들지 마세요."

구레드가 어깨를 툭툭 쳐주자 칠러웨이는 기분이 그리 좋지는 않은 듯 얼굴을 찌푸렸지만 자신에게는 구레드의 지식이 필요했다.

"그나저나 어디까지 들어가는 건지.. 아십니까 구레드?"

".... 곧 도착할 때가 됐을 텐데 한참이나 더 들어가는군.. 저들이 하려는 건 예상이 가긴 하지만..."

"저.. 설마 해서 물어보는 건데... 혹시 산적들 아닙니까?"

"쉿."

"읍.. 읍읍!"

칠러웨이가 자기도 모르게 크게 말하자 공국의 기사들은 뒤를 돌아봤고 구레드는 칠러웨이의 입을 막으며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손을 들었다.

"말 조심해, 어떻게 그렇게 생각나는 걸 전부 꺼내놓을 수 있나?"

".... 죄송합니다.."

"옷은 저래도 저 녀석들도 기사야 지금은 어느 정도의 실력을 가지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전에 저들의 실력은 전혀 알 수 없었어."

"비밀 조직 비슷한 것 같네요."

"그렇기도 하지만 기사라는 어떤 존재인지 자네도 잘 알 텐데?"

"예 그렇죠.."

"기사로서 저 하마드 공국에 들어가는 건 굉장히 영광스러운 일이었고 그들은 자부심이 굉장히 강했어, 아무리 세월이 지났더라도 자신들을 단순히 산적으로 평가한다는 것 자체가 안 된다는 걸세."

"생각이 짧았습니다."

"알면 됐어, 이제 조용히 하고 저들을 따라가세 혹시 모르니까 잡담도 하지 말자고."

"예."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칠러웨이의 얼굴에 땀이 송골송골 맺힐 무렵 기사들은 멀리 지어진 오두막을 가리켰다.

"도착했습니다."

".... 저기요?"

"예."

"...?"

하지만 구레드를 업은 칠러웨이가 오두막으로 들어가지 않자 기사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기다리며 그를 조용히 바라봤다.

"왜 그러나 칠러웨이?"

"... 그게 궁금한 게 있는데 또 여쭤봐도 됩니까."

".... 뭔데?"

"그... 혹시나 하는 궁금증인데 비밀스럽다는 공국의 기사들이라면 구레드님이 누군지 다 아는 겁니까?"

"무슨 개소리인가?"

"그게.. 처음 봤을 때도 구레드님이 나서자마자 따라오라고 했잖아요? 그렇죠? '비밀스러운 공국'의 기사들이 그런다는 건 좀 말이 안 되지 않나요?"

".... 아..! 그거 말인가?"

"예."

"내가 이걸 안 보여줬던가?"

칠러웨이의 등에서 내려온 구레드는 자신의 손바닥을 그에게 펼쳐 보였는데 손바닥에는 네 개의 검이 겹쳐진 문양이 그려져 있었다.

"... 그런 게 있으셨습니까?"

"진짜 못 봤나?"

"예."

"누구든지 대충 보자마자 알았지만, 자네 진짜 눈썰미도 없고 눈치도 없구만.."

"아니 자꾸.. 모르는 걸로 구박만 하지 마시고.. 알려 좀 주세요.. 진짜 자꾸 그러면 놓고 갑니다?"

"삐졌나?"

"아니에요."

"에이 삐진 것 같은데?"

"아니라니까요..?"

구레드는 시무룩해지는 칠러웨이를 보며 장난스럽게 웃고는 그의 등을 툭툭 쳤다.

"미안하네, 자네가 기죽는 모습이 재밌어서 말이야."

".... 하아.."

"자네들에게 조금 미안하지만 잠시만 우리끼리 얘기를 나누며 쉰 후에 들어가도 되겠나?"

".... 여쭤보도록 하겠습니다."

오두막으로 기사가 들어간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밖으로 나왔고 그는 칠러웨이와 구레드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용사님이 말씀하시길 '오는 길 힘드셨을 텐데 제대로 쉬지도 못하게 해드렸네요, 저는 일이 없어 기다릴 터이니 편하신 대로 하시길.'이라 말씀하셨습니다."

"고맙네, 이 늙은 몸뚱어리 때문에 용사님의 귀중한 시간을 뺏는구만."

구레드는 고개를 숙여 감사를 표하고는 칠러웨이를 끌고 바위 위에 앉았다.

"칠러웨이 가까이 앉아보게."

"예."

"이건 음... 조금 설명하기가 어렵긴 한데."

"그러니까 공국의 문양이라는 것은 대충 이해했습니다."

"그만 만지게."

"아 죄송합니다 이게 좀 신기해서.."

칠러웨이는 신기한 듯 구레드의 손바닥에 그러진 문양을 만지작거렸지만 구레드는 간지러운지 손을 빼며 그를 노려봤다.

"그러니까 한마디로 얘기하면 이건 용사의 문양이라네 '나는 너희들의 적이 아니요'라는 얘기를 하는 것과 같지."

"... 아.. 그러면 이곳의 통행증과 비슷한 것이겠네요?"

"그렇지.. 하지만 통행증과 다른 것을 이야기하자면..."

"....?"

"이 문양은 '약속'이야."

"약속?"

"그래 그 약속을 하게 되면 용사에게 정보를 대주는 첩자가 된다는 뜻과 같네."

"첩자요?"

"그래, 지금은 모르겠지만 각 나라의 정보를 제공하는 역할을 맡고 있는 이들이 몇 명 존재했었고 나도 그중 하나였지."

"용사는 평화를 위한 존재 아닙니까..? 그런데 왜 정보를 캐내는 파렴치한 짓을..."

"작은 공국이 용사 빼고 살아남기 위한 방법이 뭐가 있겠나?"

"...."

"때로는 평화를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아야 하기도 하네."

"예.. 뭐 방식 자체가 제가 생각했던 것과는 달라서."

"생각과 다른 것들은 얼마든지 존재하지."

전 세계에서 봤던 용사의 이미지가 그저 자신의 육체만을 믿고 세계를 위협하는 적에게 돌진하는 그런 모습과는 다르다는 말을 전부 할 수 없었다.

"그나저나 저곳은 도대체 뭡니까?"

"용사가 있는 곳 아니겠나?"

"이런 오두막에요?"

"공국은 어떤 나라라고 했지?"

"작은..."

"그렇지, 자원도 많고 또 희귀 식물들... 동물들.. 그런 곳인데 그 위치가 모두에게 알려졌다가 탐욕에 찌든 귀족 녀석 때문에 전쟁이라도 일어나면?"

"당연하게도 큰 나라가 침략을 해올수록 지키기 힘들겠죠."

"용사라고 해도 제국의 대군이나 칠라렌의 광신도들을 막기에는 힘들 거야, 그래서 공국에 들어올 수 있는 사람을 정해놓은 후 그가 방문을 할 시에 용사가 직접 나와 확인 절차를 직접 하는 거고."

"참... 그거 귀찮은 방법이네요 구레드님."

"그치? 나도 그렇게 생각해."

구레드는 칠러웨이가 빨리 이해하자 만족한 듯 고개를 끄덕였고 칠러웨이는 혹여나 기사들에게 들리지 않을까 계속해서 눈치를 봤다.

"비밀스럽다는 건, 아무래도 폐쇄적이라는 뜻이죠?"

"그래 어떤 나라보다 알려지지 않은 곳이 저곳일 거다, 용사가 무슨 생각으로 그런 걸 정한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용사의 나라 하마드 공국으로 불리고 있으니까."

"하마드 공국.."

칠러웨이는 저 오두막에 들어가면 무언가 좋지 않을 것이라는 느낌은 받고 있었지만 대륙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처리하기 위해서는 한 명의 강자라도 더 필요했다.

"가시죠?"

"칠러웨이."

"예?"

"먼저 가게."

"...."

"원래 '젊은 놈 먼저'라는 말도 있지 않는가?"

"늙은 사람 먼저 아닌가요?"

"빨리!"

울며 겨자 먹기로 칠러웨이는 침을 꼴깍 삼키며 기사들이 지키고 있는 문 앞으로 다가갔다.

"안 들어가고 뭐 하나?"

"살기 안 느껴지세요?"

".... 그래? 난 평범해서 잘 안 느껴지네."

안에서 흘러나오는 분위기에 칠러웨이는 다시 구레드를 돌아봤지만 구레드는 인상을 찌푸리며 손을 들어 올렸고 칠러웨이는 한숨을 쉬며 문을 열었다.

"저... 실례.. 합니다?"

파앗!

"히이익!"

하지만 갑자기 날아오는 단검에 칠러웨이의 뺨에는 피가 주르륵 흘렀고 그는 빠르게 문을 닫았다.

"허억... 허억..."

"뭐야?"

아무렇지 않게 자신을 바라보는 구레드에게 칠러웨이는 한방 먹이고 싶었지만 다시 심호흡을 하고 오두막의 문을 열었다.

팟! 팟! 팟!

연달아 단검들이 날아왔지만 칠러웨이는 월등한 신체능력으로 피해냈고 어두운 오두막의 안에서 미소를 짓고 있는 한 사람을 볼 수 있었다.

"다 피해내셨네요?"

높은 톤의 여자 목소리가 어둠 속에서 흘러나왔고 칠러웨이는 갑작스러운 공격에 화가 난 듯 으르렁거리며 여인을 바라봤다.

"왜 던지는 겁니까!"

"후후후... 당신은 제가 이 순간을 얼마나 기다렸는지 모를 겁니다."

갑자기 웃는 여인을 보며 칠러웨이는 방에서 나가려 했지만 오두막의 문은 순식간에 닫혔고 그는 어둠 속에서 걸어 나오는 여인을 바라봤다.

"반가워요, 하마드 공국의 주인이자 용사라 불리고 있는 왈츠 디 피올레라고 해요."

"....."

"부탁이 있는데 들어주시겠어요?"

"잠깐! 거기서 얘기하세요!"

"...."

칠러웨이가 얘기하는 그 순간 그녀의 금안이 번쩍 빛났고 칠러웨이는 왈츠 디 피올레에게서 느껴지는 이질적인 기운에 뒤로 물러서야만 했다.

"제 손에 죽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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