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가 흑막이라고요-68화 (68/79)

〈 68화 〉 고난과 영웅(1)

* * *

레이시는 미친 듯이 뛰고 또 뛰었다. 그러는 도중에 몬스터들을 하나하나 베어갔으며 자신이 숨을 쉬고 있는 것에 감사했다.

워우우우우­!

워울프를 타고 다니며 레이시의 일행을 추적하던 오크 무리 때문에 별동대의 숫자도 많이 줄었다.

"허억…. 허억…."

'내가 식량을 포인트로 살 줄 몰랐는데….'

아까운 상점 재화 사용이지만 아낄 때가 아니었다. 레이시에게는 목숨이 더욱 소중했다.

레이시는 자신이 업고 있는 무성에게 응급처치를 해주었다.

과연 높은 경지에 오른 무인이 아니랄까 봐 그런 상처를 입고 위험할 정도로 피를 흘렸는데도 아직도 살아있는 모습이었다.

레이시의 일행들은 너무너무 지쳤으나 멈출 수 없었다. 멈췄다가는 모든 것이 끝이었다.

도망치던 중에 누군가가 지원병력이 올 것이라는 연락을 받고 모두의 사기를 이끌어 올리는 이도 있었다.

하지만 그 사실을 알리고 있는 사람의 목소리조차 흔들렸다.

레이시와 별동대는 억지로 미소지었을 뿐이다.

"레인 힘내보세요."

참고로 레인은 레이시가 용병의 이름으로 사용하는 가명이었다.

별동대들의 희망찬 말속에서는 숨길 수 없는 불안감이 가득했다.

체력적으로 너무 지친 별동대는 결국 몇 분간 쉬기로 했다.

"레인 무겁지 않으세요?"

레인이 용병을 시작했을 때부터 알고 지낸 동료가 말을 걸어왔다.

"괜찮아요."

사실 그들에게 무성을 맡기는 것이 걱정되기도 했고 몰래 자신은 활력의 물약을 먹고 있다는 죄책감의 발로에서 무성을 업고 있었다.

"그나저나…. 처음 보았을 때 괴물 신인이라 생각이 들었는데…. 정말로 체력적으로 대단하네요."

동료가 칭찬할 때마다 약간의 죄책감이 들기는 했지만, 레이시는 태연함을 가장했다.

"칭찬해줘서 고마워요."

레이시는 동료들의 말을 긍정해주었다. 사실 그들처럼 현실을 받아들이기 힘들어서 더욱더 그들의 말을 긍정하는 것도 조금이나마 있었다.

그럼에도 레이시에게는 미세하지만, 조금의 희망은 있었다.

"출발합시다!"

어느새 몇 분의 시간이 흐르고 별동대는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역시 사용해야겠지….'

잠시간의 휴식시간 동안 레이시는 생각을 정리했다.

레이시가 신에게 받은 레이시 최후의 패.

"거래는 원작보다 부강한 세계를 만들 것이지만…. 별로 개입하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으시군요."

"아니…. 그런 게 아니라…. 아주 최소한의 개입만으로…."

레이시가 자신의 생각을 읽고 있는 신에게 무어라 말하지만 신은 싱긋 웃으며 말했다.

"상관없습니다. 어떤 방식으로 거래를 성립하기만 하면 되기 때문이죠. 하지만 언젠가 폭풍으로 들어가야 할 때가 있을 것입니다."

신의 말에 레이시는 자신은 절대로 안전한 일만 할 것이기에 신의 말에 속으로 코웃음 쳤다.

"자. 이번 세상이 오래 버텨주길 바라는 저의 선물입니다. 제가 준 선물을 사용한다면 앞으로 폭풍 속에서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운명이란 그런 것이죠."

"참고로 이것에 비용은 0입니다. 불운과 행운이 모두 깃들어 있죠. 잘 선택해서 사용하시기를."

그때 레이시는 신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신의 날카로운 음색과 경고의 뜻만은 알 수 있었다. 그렇기에 쉽게 사용할 생각을 못 하는 것이었다.

이런 위기 상황에 몰려서도 레이시는 사용할까 말까 고민하고 있었다.

참으로 아이러니했다. 어떠한 효과를 줄 수 있을지 모르는 것에 대해 고민하는 것은 레이시의 심력을 많이 소모하게 했다.

레이시가 자신의 마지막 패를 사용하려던 순간.

"저기 사람들이 보입니다!"

별동대 한 명이 소리쳤고 레이시는 희망을 품었다.

'살았다.'

하지만 그 희망은 곧바로 사라져버렸다.

그들은 북부 카네브케움을 떠난 사람들의 피난무리였기 때문이었다.

카네브케움의 민간인들이 피난한 지는 몬스터 세력이 오기 전 2일밖에 되지 않았었다.

저들은 싸울 수 있는 병력이 아니고 레이시의 뒤쪽에서는 날랜 정예 오크 워울프 병력들이 끝을 모르고 달려오고 있었다.

"하…."

그 사실을 깨달은 별동대는 절망했다. 그들은 이제 도망갈 힘조차 있지 않았다.

그리고 그들의 절망에 레이시는 일어서서 소리쳤다.

"그렇게 모두 그러고만 있을 거예요! 죽더라도 발악이라도 해보고 죽어요!"

레이시의 언변은 좋지 않았지만, 레이시의 진심만큼은 전해졌다.

레이시는 여태까지 모아둔 모든 포인트를 소비했다. 그리고 다가올 전투를 위해 신이 준 선물도 사용했다.

폭풍 속을 걸어갈수록 견고해지지만 사지에 있지 않으면 끔찍한 불행이 다가오는 특성이었다.

레이시는 이제야 신이 말한 내용을 일부 이해할 수 없었다.

'이제 다시 평범한 삶은 불가능하겠지.'

별로 오래된 기억도 아니지만, 아카데미에 다녔을 때가 떠올랐다.

레이시는 각오했었다. 어차피 자신이 선택한 길이었다. 저 피난민을 두고 도망친다면 살 확률이 0%보다는 컸을지도 몰랐다.

레이시는 자신이 아카데미에서 도망친 기억을 떠올렸다.

'이제 도망치기는 지쳤어.'

레이시는 검을 들었고 별동대보다 압도적인 숫자에 워울프들이 습격했다. 이미 별동대의 뒤에 있던 피난민들은 공격받고 있었다.

레이시와 별동대는 검을 휘둘렀다.

레이시의 검이 워울프들을 베고 지나갈 때마다 레이시는 자신의 안쪽에서 말할 수 없는 무언가가 완성되는 느낌을 받았다.

베고 벨수록 검의 경로가 깔끔해졌고 신체는 견고해졌다.

지치면 미리 사둔 활력의 물약을 쥐어짜 내서라도 마셨다.

활력의 물약은 연속적으로 마시면 부작용과 효능이 줄지만 그런 것을 상관 쓸 때가 아니었다.

레이시의 검은 점점 빨라졌다.

"고마워요!"

레이시의 목숨을 받은 별동대원들이 레이시에게 감사를 표했다.

레이시의 손에 몬스터들이 쓰러질 때마다 사람들의 시선이 레이시에게 몰렸다.

"레인!"

어느새 레이시의 발밑에는 몬스터들의 시체가 가득했고 사람들은 레이시의 가명인 레인을 연호했다.

레이시는 그 소리에 한순간이지만 충만함을 느꼈다.

'이래서 영웅심이라는 게 있는 건가.'

기분만큼은 좋았다.

하지만 그 기분은 곧바로 절망으로 바뀌었다.

두두두두….

멀리서 거대한 먼지구름이 몰려오더니 끝없는 몬스터의 군세가 보였다. 자신이 쓰러트린 몬스터는 정찰대의 일부였다는 것을 레이시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바로 본대가 올 줄 상상도 못 했다. 어째서 원작에서 몬스터 로드에게 승리한 무성이 후퇴했는지를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게다가 레이시의 티끌만 한 희망마저 부수는 몬스터 로드까지 레이시의 눈에 똑똑히 보였다.

아무래도 하늘은 레이시의 죽음을 바라는듯했다.

.

.

.

오늘도 유다가 정해준 목표를 따라갔다. 언제나 만큼 충만한 삶이었다.

"사…. 살려주…."

서걱….

아자젤의 검이 깔끔하게 움직였고 자비를 바라던 적의 목이 떨어졌다. 아자젤은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검을 휘둘렀다.

"역시…. 사도님이십니다. 주님에 대한 강렬한 믿음이 있기에 망설임이 없으시군요."

아자젤의 모습을 본 교단원들은 감탄했지만, 아자젤은 무감각했다.

아자젤은 유다의 말만을 신뢰할 뿐이었다.

아자젤이 진리구제회의 함정에 빠져도 유다가 잔뜩 지원해준 아티펙트와 주문서 덕분에 무사히 빠져나왔고 오히려 깨달음마저 얻을 수 있었다.

그렇게 아자젤에 의해 진리구제회 총 교단은 박살 났고 아자젤은 무덤덤하게 그들의 신물을 루스 교단원에게 넘겼다.

"고마워요. 아자젤 사도."

'이걸로 유다의 목표 수행 완료.'

아자젤은 손을 쥐락펴락했다. 진리구제회를 부수면서 한층 더 강해진 탓이었다.

저 앞에 보이는 사도 2명도 이제는 전투 시 무난하게 승리를 점칠 수 있어 보였다.

'이 정도면…. 예전에 싸웠던 검성보다 훨씬 강해졌어.'

어쩌면 별들 중 최강이라는 무성한테도 꿇리지 않을지도 몰랐다. 아자젤은 자신이 있었다.

물론 그렇다 해도 자신이 유다보다는 약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유다의 근처에 있으려면…. 더 강해져야 해.'

아직 부족했다.

그렇게 생각하며 아자젤이 수련에 수련을 거듭할 무렵.

유다의 호출이 떨어졌다.

"누나 부탁할게."

아자젤은 유다의 명령을 받아 기용할 수 있는 모든 신전의 병력을 동원했다.

"아자젤 사도…. 너무 많은 기사단의 차출이 아닙니까?"

"아닙니다…. 더…. 더 필요합니다."

루스교단은 큰 공을 세운 아자젤의 의견을 무시할 수 없었고 결국 차출을 허가해주었다.

그렇게 아자젤은 유다의 명으로 북부로 향했다.

아자젤이 성기사단과 함께 강행군을 하고 있을 무렵에 아자젤의 앞쪽에서 거대한 기운이 느껴졌다.

아자젤은 주저 없이 성기사단과 이탈해 바로 달려나갔다. 아자젤의 이동 경로에는 오로지 금빛만이 넘실거렸다.

아자젤은 엄청난 속도로 지점에 도착하였고 기운의 정체를 볼 수 있었다.

기운의 정체는 몬스터 로드였다.

'이게 몬스터 로드….'

그리고 몬스터들을 처절히 막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과 유독 빛나는 소녀의 모습이 보였다.

'잠깐 어디서 본 기분인데….'

가시감을 느꼈지만 무시했다.

소녀가 몬스터를 막을 수 있던 이유는 포기를 모르고 분투해서이기도 하지만 몬스터 로드가 구경 중이었기에 막아낼 수 있는 기적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자젤은 소녀에게 감사함을 느꼈다.

'유다님의 말대로…. 무성을 살릴 수 있겠어.'

소녀는 몬스터들의 협공을 간신히 막아내고 있었고 아자젤의 대검이 그 몬스터들을 반으로 갈라버렸다.

그리고 아자젤은 소녀에게 감사를 표했다.

"당신의 분투는 훌륭했습니다. 감사를 표합니다."

그 말을 들은 레이시는 살았다는 기적에 안도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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