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9화 〉 고난과 영웅(2)
* * *
화악!
눈 부신 빛이 쏟아져 나왔고 괴물들은 전부 한 점의 가루가 되어 사라졌다.
황금빛 마력을 가진 아자젤은 찬란해 보였다.
'이게…. 루스 교단의 사도….'
레이시는 먼발치에서 아자젤을 본 적이 있었으나 원작에서 나온 인물이 아니었기에 대수롭지 않게 넘겼었다.
자신이 살아남음에 대한 안도와 동시에 불안감도 드는 레이시였다.
'유다…. 너는 뭘 꾸미고 있는 거야….'
그 괴물 같은 메이드도 그렇고 유다에 대해서는 의문투성이였다.
하지만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괜찮나요?"
벌꿀 같은 황금빛 머리카락을 가진 그녀는 넘어진 레이시에게 손을 뻗었다.
"아…. 고마워요."
레이시가 감사를 표하고 그녀의 손을 잡으려는 순간. 아자젤의 뒤에서 거대한 그림자가 드리웠다.
'몬스터 로드!'
레이시는 다급한 마음에 반파된 무기를 겨우 부여잡고 움직였고 몬스터 로드와의 글레이브와 부딪혔다.
쩌엉!
무기 간의 부딪히는 소리가 아닌 굉음이 일어났고 레이시는 그대로 정신을 잃었다.
.
.
.
"저런…. 도움은 필요 없었는데…."
아자젤은 자신의 뒤로 오는 몬스터 로드를 인지하고 있었다. 레이시가 몸을 바쳐 막아낸 공격은 전혀 쓸모없음이었다고 단언할 수 있었다.
"그래도 용기 있는 모습이네."
그르르륵….
아자젤의 옆에서 가래 끓는 소리가 들려왔고 몬스터 로드의 글레이브와 아자젤의 대검이 강하게 부딪혔다.
둘 다 뒤로 물러서지는 않았지만, 아자젤은 손목이 쩌릿쩌릿한 감각을 느끼고 있었다.
"아직 신체 능력은 달리네요."
아자젤이 무심코 혼잣말을 중얼거리자 그에 대답한 것은 몬스터 로드였다.
"신의 장난감 주제에 건방지구나."
놀랍게도 몬스터 로드는 아주 정확하고 선명하게 말을 할 수 있었다.
"말하는 몬스터라니."
정작 아자젤의 표정은 아무렇지도 않았다.
"별로 놀라지 않는군."
"전혀 엄청나게 놀랐어. 어쩐지 유다가 관심이 있어 보이더니 말할 수 있었네."
아자젤의 말투는 놀란 말투였지만 표정만큼은 지나치게 무표정했다.
"신의 개. 충격적인 일을 하나 말해줄까?"
"충격적인 사실이라니…?"
"나를 만든 자는 신이고 신은 나에게 인간을 몰살시키는 지령을 주었지."
"흥미로운 사실이네."
아자젤이 너무나 태연하게 말하자 오히려 당황한 것은 몬스터 로드였다.
"원래 인간을 침략하는 일 따위는 신이 없었다면 전혀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신이 나에게 때때로 광폭화를 걸어 인간들을 침공하게 했지."
"그래서?"
아자젤이 조용히 몬스터 로드의 말을 듣고 있자 몬스터 로드는 기묘함을 느꼈다. 그리고 그는 그것을 아자젤이 자신의 말을 신뢰하고 있지 않다라 판단했다.
"어…. 나를 믿지 못해서 그런 것인가? 영혼의 맹세를 해주지."
영혼의 맹세까지 했음에도 별다름 없는 태도를 보이는 아자젤을 보고 오히려 몬스터 로드가 당황했다.
"아무렇지도 않은 건가?"
"무슨 반응을 원하는 거지?"
"보통 인간들의 성직자라면 내 말을 부정하던가…. 희미한 의심을 하지. 그런데 너는 너무 고요하군. 신의 추악함을 알아도 별로 상관없어 보여."
몬스터 로드의 말에 아자젤은 간단하다는 듯이 말했다.
"그거야 신을 믿지 않으니까."
아자젤의 말에 잠시 말을 잃은 몬스터 로드였지만 그는 잠시나마 글레이브를 내려놓고 미친 듯이 웃었다.
"신의 종이고 신성력을 사용하는 데에다가 신을 믿지 않아?"
"제가 믿는 것은 단 하나뿐입니다."
"그래…. 신을 믿지 않는 기사. 어쩐지 처음 볼 때 위화감이 느껴진다 했어."
아자젤은 미친 듯이 웃어젖히는 몬스터 로드에게 말없이 대검을 뽑아 들었다.
"이런…. 너무 말이 많았나? 그럼 시작하도록 하지. 부디 나를 꺾을 수 있기를 바라지."
몬스터 로드의 거대한 글레이브와 아자젤의 대검이 부딪혔다. 아자젤의 대검이 글레이브에 부딪힐 때마다 검날에 이가 빠졌지만, 아자젤은 절대로 물러서지 않았다.
'유다가 준 검인데….'
아주 튼튼한 검이었지만 몬스터 로드의 검까지 버텨내기는 무리였던 모양이었다.
빠득.
결국, 아자젤의 검의 위쪽이 조금이나마 날아가는 사태가 발생했다.
아자젤의 검이 부서지는 것을 본 몬스터 로드는 웃으면서 말했다.
"저런. 무기가 수명을 다했군. 아쉽지만 승패는 갈린 것 같군."
몬스터 로드는 여유만만했다. 하지만 아자젤에게는 패색의 기운을 볼 수 없었다.
"아니…. 아직 끝나지 않았어."
아자젤은 부러진 검을 들어 올렸다.
"유다가 검이라고 한 것은 검이야 절대로 변하지 않는 사실이야."
"나는 그렇게 믿어."
그러니 검은 부러진 게 아니었다.
"허…. 말도 안 되는 궤변이군."
몬스터 로드가 비아냥 대지만 아자젤은 자세를 다시 바로잡았다.
아자젤은 감을 휘둘렀지만, 검날이 일부가 사라졌기에 몬스터 로드에게 닿기는 한참 부족했다. 몬스터 로드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리고 그렇게 몸통 쪽이 얇게 베었다.
"어떻게? 투명 검인가?"
몬스터 로드 다이원은 오랜 기간을 살면서 많은 무기를 보아왔다. 그중에는 투명한 무기들도 존재했었다.
하지만 다이원이 보기에 아자젤의 검은 투명한 검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고유능력 중 하나라는 말인가…."
몬스터 로드의 예측대로 아자젤의 고유능력은 믿음을 구체화하는 것이었다.
몬스터 로드는 아자젤의 보이지 않는 검의 길이를 예측할 수 없었다.
"곤란한 상대이지만…. 나쁘지 않군!"
아자젤의 강함에 몬스터 로드는 미소지었다. 어쩌면 좋은 최후를 맞이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아자젤의 능력에 맞추어 몬스터 로드도 능력을 사용했다.
그는 서리어금니 부족에서 태어나서 태어날 때부터 큰 체구를 가져 부족의 1인자가 되었다. 그리고 그를 뒤받쳐준 북부의 제왕이 되게 만들어준 능력.
이 능력은 신에 마수에 걸렸을 때 강화되었다. 원래 대지를 영구동토로 만들 정도의 한기를 뿜어내는 능력이었지만 강화되어서 이제는 개념에마저 간섭할 수 있었다.
다이원은 신에 대한 안 좋은 감정은 별개로 매우 기뻤다. 최근에 자신이 인정할만한 호적수 2명과 싸우게 되었으니 말이었다.
"받아봐라! 재밌는 인간! 핌불베르트!"
몬스터 로드의 개념마저 간섭하는 힘이 발휘되었고 아자젤은 기묘한 감각을 느끼기 시작했다.
아자젤은 느려졌고 몬스터 로드는 빨라졌다.
마치 시간이 몬스터 로드의 편을 들어주는 것 같았다.
게다가 아자젤의 관절 부위부터 시작해 몸 전체가 얼어붙기 시작하며 둔해졌다.
'시간 개념이 이상하다.'
분명 몬스터 로드의 공격이 보였지만 막을 수 없었다. 몸이 안 따라주었다는 말이 정확했다.
그럼에도 아자젤은 꿋꿋했다. 유다가 북부의 적을 베라고 명령했기 때문에 아자젤은 묵묵히 수행해야 했다.
'이것은 유다가 나에게 준 시련. 분명 극복할 수 있어.'
끝없이 느려진 시간 속에서 아자젤의 검은 다시 원래의 속도로 움직였다.
아자젤의 믿음의 검과 몬스터 로드의 글레이브가 다시 한번 부딪혔다.
쩌저적….
무언가 갈라지는 소리가 나고 몬스터 로드의 글레이브가 폭발하듯 부서진 금속조각이 터져 나왔다.
부서진 금속조각은 몬스터 로드 본인에게 흩날렸고 그 결과로 다이원의 피부는 쇳조각에 숭숭 뚫리고 말았다.
멀쩡히 서 있는 아자젤과 온몸에 피를 흘리는 몬스터 로드.
"아무래도…. 승패는 결정 난 것 같군…. 신을 믿지 않는 인간족 최고의…. 전사…."
아자젤은 이제는 검의 손잡이와 약간의 날만 붙어있는 검을 들고 몬스터 로드에게 다가갔다.
최후를 직감한 몬스터 로드는 말했다.
"자네가 믿고 있은 자는 누구인가…."
다이원은 그녀가 믿고 있은 것에 대한 궁금증을 표했다.
"나의 우상, 나의 영웅, 나의 동생, 나의 버팀목 그리고 나의 신."
아자젤의 확고한 대답을 들은 다이원은 어이없다는 듯이 말했다.
"루스 교단의 성직자는 아니면서…. 광신은 똑같군. 마지막으로 신을 조심하게."
그 말을 끝으로 아자젤의 검이 휘둘러졌고 북부를 침공한 몬스터 웨이브를 일으킨 다이원이 죽었다.
아자젤은 편안히 눈을 감은 몬스터 로드의 시체를 보며 이제는 손잡이밖에 남지 않은 검을 천으로 닦았다.
"힘든 싸움이었어."
힘든 싸움이었지만 아자젤은 믿었다. 이 또한 유다가 준 시련이었고 극복할 수 있었다.
"시련은 나를 강하게 만들지."
아자젤은 검을 닦고 나서 통신 아티펙트를 꺼내 들었다.
캐시에게 연락하기 위해서였다. 바로 몬스터 로드가 말한 내용은 시크릿 클랜을 운영하는 언더로드로서 알아봐야 할 필요성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몬스터 로드의 시체에서 정보를 빼내려면 네크로멘서가 필요했다. 그것도 아주 수준 높은 실력자가 필요했다.
그리고 그 실력자는 아자젤이 아주 잘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언더로드님."
"캐시. 제나를 데려와 줄 수 있어?"
아자젤이 제나를 언급하자 순식간에 수정구에서 정적이 감돌았다.
"꼭 필요하신 일인가요?"
"꼭 필요해."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아 잠옷 차림의 제나가 나타났고 충격적인 소식을 가져왔다.
"아자젤 언니. 루스 교단이 습격받고 있데요!"
"유다님의 반응은?"
큰일이 났음에도 불구하고 아자젤은 유다의 반응을 물었다.
"평온하긴 한데…."
"모든 것은 유다님이 예측하던 거니 우리는 우리 할 일만 하면 돼."
그렇게 제나는 몬스터 로드의 영혼을 수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