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9화 〉 레이시 수난시대(2)
* * *
"자. 이제 생각할 시간을 5초 더 드릴게요."
그 시간이 레이시의 목숨을 결정짓는 시간이었다.
"왜. 당신이 유다님의 관심을 받는 거죠? 당신은 특별하지도 않잖아요. 귀족이라도 널린 하급귀족에 불과하잖아요."
레이시는 저런 종류의 타입을 잘 알았다. 저런 종류는 통제가 불가능했다. 지금은 유다의 앞에서 얌전한 척할 것이다. 아니 평생을 유다의 앞에서만 얌전한 척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일을 단단히도 저지르겠지.'
레이시는 기억하고 있었다. 과거 그녀가 다니던 대학교에서 일어난 끔찍한 사고를.
"알았어. 유다와는 떨어질게."
아무래도 살기 위해서는 이 방법을 택하는 수밖에 없을 듯했다.
'원작에서 공간의 마녀는 주인공인 안드레아를 제외하고는 이길 수 없었지.'
비록 지금 당장 잠재력이 모두 개화하지는 않았겠지만, 그럼에도 너무 불리했다.
애초에 캐시가 가진 능력과 세상 대부분의 능력에 대한 상성이 안 좋았다.
"유다님과 떨어지신다니 다행이네요."
캐시는 무표정에서 환하게 웃는 표정으로 확 바뀌었다.
'소름 돋기는 하네.'
"자 여기 약속했던 돈이에요."
짤그랑….
묵직해 보이는게 금화가 많이 들은 분위기였다.
하지만 레이시는 빈궁한 사정에도 불구하고 거절했다.
"됐으니까. 지금 상황을 해결할 수 있게 도와줄래?"
레이시에게 중요한 것은 지금 상황을 해결하는 것이었다.
"좋아요. 간단하네요. 이렇게 처리하는게 서로의 거래가 깔끔하겠죠?"
캐시의 말을 들은 레이시는 캐시의 말을 듣고 보이지 않는 헛웃음을 지었다.
'거래는 개뿔. 협박에 불과하면서.'
물론 속마음을 캐시에게는 말할 수 없었다. 말했다가는….
상실만 해도 끔찍해졌다.
"그나저나 어떻게 처리할 건데?"
"이렇게요."
캐시는 손가락을 탁하고 튕겼다.
캐시가 허공에 손을 꽉 잡자마자 신기하게 노바 크리시가 허공에 대롱대롱 매달리고 있었다.
"이…. 이게 무슨 짓입니까! 이단입니다! 이단!"
그토록 두려워 보이던 노바가 무력하게 끌려 나오는 모습은 엄청난 충격으로 다가왔다.
'이게…. 원작의 대악당중 한명….'
원작에서 대적할 자가 없던 공간의 마녀였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지금 수준이…. 어느 정도지? 제국의 별? 아니면 대륙 수호자급?'
레이시는 마음속으로 머리를 굴렸지만, 어차피 레이시는 지금 납작 엎드려야 했다.
'노바도 전혀 약한게 아닌데….'
제국에 최초로 악을 흩뿌리는 단체의 소속이니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노바도 진리구제회의 사도였지만 캐시에게는 너무나도 쉽게 잡히고 말았다.
"큐브."
캐시가 손가락을 튕기자 노바를 구성하던 물체가 자로 잰 듯 반듯하게 정육면체 큐브들로 쏟아져 나왔다.
대롱대롱 허공에 매달려있는 노바의 발끝부터 예쁜 붉은색 큐브가 사방으로 흩어져 내렸다.
레이시는 그 큐브의 정체를 알고 있었다.
그것은 인간을 구성하는 살덩이였다.
"우욱…."
레이시가 헛구역질하는 모습을 보이자 캐시는 비스듬하게 미소지었다.
"저런…. 비위가 약하시군요. 그나저나…. 어떻게 그분의 관심을 받을 수 있었던 거죠? 당신은 너무나도 나약하고 쓸모없고…. 계획에도 도움이 되지 않을 텐데요…."
'계획? 계획이 뭐지? 전혀 들은 말이 없는데?'
캐시의 말을 들은 레이시는 무언가를 직감할 수 있었다.
'원작을…. 따라간다고 생각했지만…. 아니었어.'
아카데미를 습격한 진리구제회 사태. 분명 캐시가 마음을 먹는다면 쉽게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
게다가 그녀가 언급한 계획이라는 점.
'그렇다면…. 유다는 나에게 숨기고 있다는 정보가 있어.'
나름 억울했다. 자신은 모든 정보를 유다에게 넘겨주었지만, 유다가 자신에게 무언가를 숨기고 있다는 점은 꺼림칙했다.
물론 이해 못 하는 것은 아니지만….
'어쩌면….'
사실 유다와 레이시는 하하호호할 수 있는 사이라고 보기는 힘들었다. 레이시가 일방적으로 유다에게 목숨줄이 잡혀있을 뿐이다.
'그래…. 아무리 기반을 쌓은 유다에게 잡혔다고는 했지만…. 포기하고 싶지는 않아.'
어쩌면 낯선 세계에 왔기에 유다라는 안전한 틈에 안주했을지도 모른다. 자신이 가만히 있기만 해도 해결될 것이라는 알량한 믿음을 믿어왔을지도 모른다.
새는 알의 껍질을 부수고 나온다. 레이시도 이제 현실을 직시할 때였다.
이미 원작은 유지되어 보여도 유다에 의해 완전히 틀어졌다. 주인공의 성장에만 기대하기는 무리였다.
레이시는 어느새 가로세로높이로 압축된 붉은 큐브를 보고 있는 캐시에게 말했다.
"나를 도와줘. 그럼 유다의 앞에 평생 나타나지 않을게."
"정말이세요?"
"그래. 나는……."
레이시는 말을 지속하였고 캐시는 약간 미묘한 표정을 지었다.
"알겠어요. 그 정도쯤은…."
레이시는 조건을 받아들인 캐시에 안도했다.
'어차피 시간은 나의 편이야.'
이제 누군가에게 안주하지 않고 혼자서 나아갈 차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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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시가 현상 수배라…."
"죄송합니다. 유다님."
유다는 책상을 손가락으로 톡톡 두들겼고 캐시는 죄송하다는 듯 고개를 숙였다.
"레이시를 무죄로 만들 수 있다고 하지 않았어?"
"죄송합니다. 주인님…. 뇌물이 통하지 않는 자여서…."
캐시는 유다의 명령을 수행하지 못했다는 죄책감을 느꼈다.
유다는 그런 캐시의 침울한 기색에 다가가서 토닥토닥 두드려주었다.
"살다 보면…. 모든 계획이 제대로 굴러가지는 않지."
"죄송합니다. 주인님."
유다에게 안겨있는 캐시는 미소지었다.
"그래서 레이시의 위치는 알고 있어?"
"죄송합니다. 주인님. 전혀 신원 확보가 되지 않고 있습니다."
캐시의 말에 유다는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참으로 곤란한데…."
유다의 진심이 표정에서 엿보이자 캐시의 마음은 뒤집힐 것 같았지만 간신히 참아내는 데 성공했다.
캐시는 시크릿 클랜의 경고를 무시한 이번에 찢어 죽인 내각부 대장을 떠올렸다. 그랬더니 어느 정도 침착함을 얻을 수 있었다.
캐시는 자신을 안아주고 있는 유다의 품을 즐겼다. 이곳은 캐시의 유일한 안락처였다.
"아... 주인님.."
"캐시?"
잠시 몽롱해져 눈이 풀렸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원상태로 빠르게 복귀했다.
"레이시..."
지금 와서 느끼는 것이지만 유다와 레이시의 첫만남은 그렇게 좋지 못했다.
그렇기에 약간은 과거가 후회되었다. 좀만 더 친화적으로 다가갈 수 있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꼬리를 물었다.
'이미 지나간 일을 후회할 수는 없는 법.'
유다는 후회하지 않는다. 후회한다는 것은 자신을 구성하는 요소를 부정하는 짓이었다. 그렇기에 하고 싶어도 할 수 없었다.
말 그대로 인정할 수 없는 것이었다.
'레이시가 행방불명된 데에는 내 책임이 있겠지.'
레이시에게 유다가 헨리에 조사를 맡겼기에 진리구제회의 사도인 노바와 연관되었고 그걸로 인해 레이시는 범죄자로 오해받았다.
물론 그 오해는 아직도 풀리지 않았고 레이시는 행방불명되었다.
유다에게는 책임이 있었다.
"위치를 추적하는 아티펙트를 사용했는데…. 잡히지 않아…."
유다가 레이시의 목에 걸어준 목걸이는 위치추적등 다양한 기능이 내포되어 있었다. 하지만 그 위치 추적이 작동하지 않았다.
"위치 추적의 범위는 수도를 포함할 정도로…. 크지만…."
위치 추적이 실패하고 나서야 유다는 실감 낼 수 있었다.
진짜로…. 어쩌면…. 다시는 레이시를 볼 수 없을지도 몰랐다.
"아…. 그렇구나…."
나는 레이시를 꽤 소중하게 여기고 있었구나.
"레이시…. 너에 대한 복수는 내가 이루어줄게."
원래 계획에서도 황궁을 무너트릴 계획은 있었지만, 적극적이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제 제대로 칼을 뽑아 들 차례였다.
유다는 복수 말고 다른 것을 하는 방법 따위 모르기에 자신이 가장 잘하는 것을 다시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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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당장은 황궁을 뒤엎는게 불가능했다. 무성이 황제를 강력하게 지지했고 바타치스처럼 호락호락하게 끝나지 않을 것이다.
게다가 자칫하면 제국령의 영지들이 독립을 선언할 수도 있었다.
그리고 유다는 레이시의 문제 말고 고민해야 할 문제가 또 하나 있었다.
'원작대로라면…. 이제 제국의 북부 방어선이 뚫리겠지.'
제국 북부에는 야만인들의 왕국이 있지만, 그들에게 뚫릴 정도의 경계선이 아니었다. 원인은 바로 몬스터 웨이브였다.
'원작에서도 세상을 메울 만큼의 병력이라 했으니….'
원작에서는 제국 7성인 무성이 몬스터 로드를 잡는다. 하지만 몬스터 로드와의 부상으로 경계선을 뒤로 물리고 제국 황도로 향하는 골목을 막는 테레지움 요새를 틀어막고 동부와 서부로 포위를 해서 해결했다.
물론 주인공인 안드레아는 아카데미 여름방학이 끝나고 하필 그곳에서 사건과 휘말려 몬스터 웨이브를 대처하게 되는 아주 전형적인 클리셰였다.
관문에서 안드레아는 영웅이 된다. 그렇게 여름방학이 끝나고 승승장구하던 도중 용사로 선택받고 마왕을 잡으러 가는 아주 간단한 이야기였다.
"아…. 머리가 아프네…."
유다의 혼잣말에 캐시는 웃으면서 말했다.
"주인님. 이쪽으로."
유다는 캐시의 손에 이끌려갔고 캐시의 무릎 베게 받았다.
"이렇게 쉬니까…. 그나마 좋네…."
"저는 언제든 좋아요. 주인님."
유다의 눈은 점점 감겼고 곧이어 잠이 들었다.
캐시는 그런 잠든 유다에게 입을 맞추며 속삭였다.
"주인님…. 영원히 함께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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