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4화 〉 뒷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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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며칠 흐르고 나서 윈프레드 바타치스는 유다를 찾아왔다.
"내가 졌고 자네가 이겼어. 승자는 모든 것을 가질 수 있겠지."
윈프레드는 유다에게 완전한 항복에 의사를 표했다.
"그나저나 대단하더군. 바타치스 가문을 사지로 몰아넣고 올가미를 펼치다니."
'내가…. 그랬나?'
계획은 있었지만, 아직 대부분은 실행하지도 않은 유다였다.
"운이 좋았습니다."
유다 자신이 생각하기에도 이번 일은 운이 좋았다는 느낌밖에 안 들었다.
"겸손 떨지 말게. 완벽한 계획이었어. 나조차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윈프레드는 사람 좋게 웃었다. 유다는 눈앞에 인물이 부모님을 죽인 사람이라는 것에 거리감이 느껴졌다.
저렇게 윈프레드가 사람 좋은 미소를 지어도 안에 든 것은 괴팍한 취향과 이득을 위해서 모든지 할 수 있는 냉혈한 본성뿐이었다.
"일단 자네의 부모님에 관한 건은 사죄드리도록 하지."
"그런 말로 사죄가 될 것 같아?"
유다는 윈프레드의 말에 기폭 스위치를 눌린 것처럼 벌떡 일어났다.
"워워…. 내가 너무 성급하게 말했구먼. 자네가 이 싸움에서 이겼기에 내 가문을 망가트릴 수도 내 목숨을 파멸로 이끌 수도 있겠지. 나는 그런 자네의 심판을 패자로서 겸허하게 받아들이겠네."
유다는 처음에는 눈앞에 상대를 잔인하게 찢어 죽이고 싶었지만, 최근에는 신경 변화가 꽤 많았다.
"죽으라 하면 죽을 생각이야?"
"패자는 나고 어쩔 수 없이 따라야겠지. 물론 자비를 요청해보겠지만 말이야."
유다는 그런 당당한 윈프레드의 태도에 어이가 없었다.
"허…. 정말로 짜증 나네. 그래 지금 죽이지는 않을게 대신 너의 모든 것을 빼앗기고 난 후에 그때 모든 것을 잃은 너를 보고 비웃어줄게."
태생부터 명문가에 태어나 막힘없이 자란 윈프레드의 자신감을 뭉개버리고 싶었다. 그에게 자신이 느낀 슬픔을 느끼게 해주고 싶었다. 가문이 자랑스러운 그에게 오명을 안겨주고 싶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모든 것을 잃은 그를 비웃을 것이다.
유다와 윈프레드의 대화는 그렇게 끝이 났다.
유다는 적어도 항복했으니. 윈프레드에게 직접적인 위협을 가할 생각이 없었다. 대신 그는 매일매일 몰락해가는 가문을 느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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윈프레드 바타치스는 자신의 영지로 돌아왔다. 윈프레드의 성은 헤이스트 상단이 물건을 가져갔는지 텅텅 비어있었다.
"엊그제만 해도 창고에 가득 쌓인 재화가 있었는데…."
자신의 가문은 끝났다. 하지만 끝나지 않았다. 윈프레드 자신이 있는 한 가문은 부활할 수 있다는 희망을 품고 있었다.
윈프레드가 텅 빈 성을 걷고 있을 무렵 소식이 전해져왔다.
"금고의 문을 열 준비를 끝냈습니다!"
분명히 비밀 금고를 연다는 소식은 기쁜 소식이었지만 윈프레드는 찝찝했다.
그가 본 유다는 철저한 사람이었다.
'과연 금고 안에 재화가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두고 보았을까?'
윈프레드가 보기에는 아니었다. 하지만 그렇게 확신해도 윈프레드는 일말의 작은 희망을 품고 있었다.
혹시 유다 벨라레가 깜빡해서 금고의 재화들을 놓쳤다면, 이 재화로 가문의 부활을 노려볼 수 있었다.
윈프레드는 일말의 희망을 품고 비밀 금고가 있는 장소로 향했다.
"여…. 열었습니다!"
바타치스 가의 거대한 비밀 금고가 드디어 열렸다. 그 사실을 안 윈프레드는 비밀 금고 쪽으로 다가갔지만 기대하지는 않았다.
"열어보게."
"그…. 그게…."
"어차피 아무것도 없다는 것은 이미 예상하였으니."
비밀 금고의 문이 열렸고 안은 텅텅 비어있었다. 대충 추측하고 있었으나 확신을 받으니 씁쓸했다.
"그래. 모든게 유다 벨라레에 손아귀에 놀아난 것은 확실하군. 외통수였어. 항복하기를 잘했군."
만약 금고를 믿고 끊임없이 버티다가는 끔찍한 최후를 맞이했을 것이다.
윈프레드의 옆에서는 집사 루벨이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주인님…."
"그래. 이제 바타치스 가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겠군."
"그래도 아직 방법이…."
루벨에 말에 윈프레드는 고개를 내저었다. 윈프레드는 주위를 쓰윽 둘러보았다.
아마 우리의 최후도 여기일 거야. 그렇지 않나? 암살자 나리들."
윈프레드는 자신의 뒤에 있는 금고를 여는데 협조한 인부들을 보고 말했다.
"서…. 설마 네 놈들! 배신한 거냐?"
루벨은 윈프레드의 말에 인부들에게 삿대질했다.
"그만두게 루벨. 그들은 선택을 한 것뿐이야. 몰락하는 배보다는 비상하는 태양이 좋은 것은 당연한 이치이지."
윈프레드는 검을 뽑아 들었다.
"아무리 그렇다 한들…. 쉽게 가지는 않을 거지만."
"주인님!"
윈프레드의 옆에 있던 수행 인원들과 루벨도 검을 뽑아 들었다.
그렇게 인부로 위장한 암살자들과 그들이 팽팽한 대치를 하고 있을 무렵에
뚜벅뚜벅….
"역시. 한 가문의 수장은 썩어도 준치군요."
황금빛 머리카락을 늘여놓은 아자젤이 나타났다.
"어떻게 사도가 여기를…? 하하하하…."
윈프레드는 아자젤을 보고 놀라움을 표했다가 표정을 구겼고 미친 듯이 웃었다.
"모두가 속고 있었어…. 신앙심이 깊은 사도는 관여하지 못할 거라고…. 모두가 그렇게 믿고 있었건만…. 하하하…."
"실컷 웃어둬요. 어차피 죽은 자는 말이 없을 테니."
아자젤의 서슬 파란 경고에도 윈프레드의 입은 잘만 움직였다.
"아자젤 벨라레…. 유다 벨라레가 시키더냐? 내 목을 가져와달라고?"
"..."
"그 어린놈에 눈빛에는 증오가 비치기는 했지…. 그럼에도 날 놓아줄 거라는 생각이 들 만큼 연기가 뛰어났어. 내가 잘못 본 거야."
"그걸로 유언은 끝인가요?"
윈프레드의 말이 길어지자 아자젤은 대검을 뽑아 들었다. 그럼에도 윈프레드의 입은 멈추지 않았다.
"유언? 아직 안 끝났지. 벨라레 가문은 괴물들의 소굴이"
서걱!
"끄아아악!"
아지젤의 황금빛 검격이 윈프레드의 팔을 잘랐다.
"주인님! 괜찮으십니까?"
급히 집사가 다가와도 아무것도 할 수 있는게 없었다.
절반 부위에서 끝없는 고통이 느껴짐에도 윈프레드는 정신을 차리고 말했다.
"끄읍…. 살려달라고는 하지 않으마…. 자비가 있다면…. 편히 죽여주게나."
아자젤은 윈프레드의 요청에 응해서 검을 휘둘렀다.
서걱!
윈프레드 주위에 있던 기사들의 목은 싹둑 잘렸고 집사인 루벨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윈프레드만큼은 멀쩡했다.
"하하…. 죽기도 참 힘들군…."
윈프레드의 자조적인 말에 아자젤은 윈프레드를 살리리 위해 출혈이 일어난 팔 절단 부위에 검을 뜨겁게 한 후 갖다 댔다.
치이이익!
"끄아아아악!"
살이 익는 소리가 들렸고 윈프레드는 그렇게 기절했다.
"너는 유다를 위해서 아직 죽으면 안 돼."
그렇게 아자젤은 기절한 윈프레드를 데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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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 비밀을 알아버렸다.
바타치스 가의 차남인 에센 바타치스는 미친 듯이 도망가고 있었다.
그는 제국에 들이운 그림자를 보고 말았다.
"벨라레 가문이 테낙스 가문과 바타치스를 흡수하고…. 그 뒷세계의 클랜이 전부 벨라레의 영향력이었다면…."
제국 전체와 정면승부를 벌일 정도였다.
가장 무서운 점은 그 사실을 아는 자는 이제 자신뿐이라는 것이다.
"헉헉…."
에센은 추격자를 피해 도망쳤다.
"헉헉…. 씨발놈들…. 빨리 이 사실을 무성에게 알려야 하는데…."
아마 지금이 벨라레 가문을 막을 수 있는 데드라인이었다.
*데드라인: 마감시간
지금 막지 못하면 벨라레의 야욕을 막을 수 없었다.
에센이 딱히 황가에 대한 충성심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에센은 단지 힘의 균형이 유지되기를 바랄 뿐이었다.
무엇이든지 과하면 독이 되기에 에센은 그런 현상을 경계했다.
"도착했다…."
드디어 에센은 제국 7성 회의장으로 이동할 수 있는 장소에 도착했다.
부유섬은 물리적으로 오는 것이 불가능하기에 공간 마법진을 타고 이동해야만 했다.
그리고 그 공간 마법진도 허가받지 않은 이는 사용할 수도 없었다.
"잘 있어라. 병신들아!"
에센은 자신을 추격하는 이들에게 가운데 손가락을 올려준 후 마법진으로 회의장으로 이동했다.
회의장에 7성 회의를 호출했기에 이제 얼마 지나지 않아 제국의 별들이 도착할 것이다.
"휴우…. 좀만 쉬어야"
흠칫….
에센의 뒤에는 누가 서 있었다.
"마성이야?"
어두운 곳이기에 얼굴이 보이지 않았고 체형만 보이기에 에센이 물어보았다.
뚜벅….
에센이 마성이라 착각한 형체가 밝은 빛 쪽으로 나왔다.
"메이드복…?"
놀랍게도 침입자는 메이드복을 입고 있었다.
에센은 빠르게 단검을 뽑아 들었지만.
"큐브."
에센의 살점이 사각 블록처럼 떨어져 나갔다.
"제…. 젠장할…. 마녀의 일족이었나…. 다 죽인 줄…."
뚜둑….
에센의 목은 기이하게 비틀렸고 에센의 숨이 끊어졌다. 한때 시크릿 클랜이 나오기 전에 암흑가의 지배자였던 에센의 최후는 단순했다.
시간이 흐르고 제국의 별들이 도착했고 그들은 에센의 흔적을 발견했다.
"가지가지 하는군. 검성은 배신에 흉성은 실종. 마지막으로 암성은 회의장에서 사망이라…."
무성은 아파오는 머리에 이마를 찡그렸다.
"제국의 앞날이 어둡군."
가장 무서운 것은 누가 했는지 아무도 모른다는 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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