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9화 〉 사랑은 근묵자흑(3)
* * *
제나는 테낙스가의 유일한 생존자이자 지배자가 되었다.
"원하는 권력을 손에 넣었으니…."
이제 정당하게 유다를 얻을 차례였다.
물론 지금은 아직 테낙스 영애로 활동해야겠지만, 성인이 되는 순간 부모님의 죽음을 발표하고 작위를 계승할 생각이었다.
"유다라도 그때쯤이면 나를 받아주겠지…."
제나는 코를 간질이는 감촉에 재채기했다.
"엣취잉…."
"흣…. 피…?"
제나의 코에서는 피가 조금씩 흐르기 시작했다.
'나도 중독됐나?'
그렇다고 하기는 출혈량이 너무 적었다. 피곤한가도 싶었지만, 마음에 걸리는 게 있었다.
다음날. 안개 낀 숲.
"스승님!"
"진정하렴. 제나. 아니 이제는 테낙스 공작님이라고 불러줘야 하나?"
흉성의 아리아나가 여유롭게 말했다. 아리아나가 입고 있는 까마귀 옷은 오늘따라 더욱더 흉흉해 보였다.
"요즘 몸이 아프고 출혈이 쉽게 발생해요. 아시는 게 있나요? 스승님?"
"그래서 내가 누누이 말하지 않았니. 나의 지식을 3년 동안 받아드리는 것은 평범하게는 불가능하다고."
제나가 아리아나의 지식을 3년 동안 전부 흡수한 데는 천부적인 재능도 있었지만, 약물로 효과를 증폭시킨 탓도 있었다.
약물의 효과로는 마시고 수련하지 않으면 아무렇지도 않지만, 수련의 성과가 늘어날수록 몸에 건강을 빼앗아가는 형식이었다.
"설마…."
"그래…. 내가 누누이 경고하지 않았니. 약물은 꽤 위험하다고."
거짓말이다. 제나에게 약물을 권한 것은 아리아나였고, 부작용에 대해서도 별 것 아닌 듯 스쳐 지나가게 말했을 뿐이었다.
"망자의 물약은 뛰어날수록 망자에 가까워지지. 3년 동안 내 지식을 흡수한 것 치고는 꽤 싸게 대가를 치렀네."
아리아나는 악의 없이 제나를 향해 웃었다.
제나는 그제서야 아리아나가 제국 7성 중 흉성이라고 불린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제나와 아리아나가 만난 것은 제나가 10살 때 3년이 흐른 제나의 나이는 13살이었다.
아무리 제나가 또래보다 성숙하고 똑똑하다 해도 어른을 당해낼 수 없었다. 하물며 제국 7성은 어떻겠는가.
아리아나가 보낸 호의에 제나는 너무 취약했다.
가르치는데 어떠한 대가도 원하지 않은 그녀였지만, 과연 진짜 어떠한 대가도 바라지 않은 걸까?
제국 내에서 다가가기만 해도 재앙인 흉성. 모두가 그녀를 꺼린다. 그녀는 자유롭게 제국을 떠돌아다니는 망령 같은 존재였다.
이제서야 흉성에 대한 소문이 정확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참. 그나저나 이에텔을 죽이는 데 썼던 약속을 이행할 시간이야."
제나가 어떻게 수백 가지의 독이 혼합된 약을 구했을까? 아리아나는 독을 제나를 위해 준비했고 테낙스 가문에 손해가 되지 않는 일 3가지를 들어주기로 계약서를 작성했다.
그제서야 믿고 있던 대상이 얼마나 위험한 인물인지 깨달은 제나는 불길한 기분이 몸을 솟구쳐 올랐다.
"분명. 그런 약속도 했었죠."
"어라? 배신감이 든다는 눈빛인데?"
제나는 아리아나를 믿었다. 유다를 제외하고 가장 좋아하는 사람이기도 했었다. 자신의 길을 알려준 스승이자 인생의 선배.
하지만 무언가 자신을 이용했다는 감각이 든 느낌이 들었고 그제서야 제대로 된 현실을 바라볼 수 있었다.
그리고 무언가의 마법적인 작용이 풀리는 느낌도 들었다. 마치 찬물을 끼얹는 느낌.
"나한테! 무슨 짓을 했어!"
"별짓 하지 않았단다. 단지 내게 호의를 조금 더 보내는 정도? 싫어하는 사람의 마음을 극단적으로 바꾸지는 못한단다."
순간적으로 자신이 유다한테 사용하면 어떨까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지금은 항의해야 할 차례였다.
제나가 아리아나에게 화를 내고 항의했지만 아리아나에게는 그저 아이의 징징거림으로밖에 들리지 않았다.
"어머? 나에게 욕설을 날린 거니? 예의 바르지 못하구나."
아리아나의 등 뒤에서 검은 까마귀 날개가 쭈욱하고 펼쳐졌다.
"내…. 내가 무서워한 줄 알고?"
누가 봐도 아리아나의 위협에 겁먹은 모습이지만 재나는 손을 들고 자신의 시체들을 꺼내기 시작했다.
제나의 최강병기. 무려 투성이라 불렸던 자신의 아버지였다.
아리아나를 지금 당장 이길 것으로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쉽게 지지는 않을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겨우 이것뿐이니? 나에게 배운 것치고는 시체의 지배력이 낮네."
무참히 패배했다.
"꼬맹아. 잘 들으렴. 네가 망령의 물약을 사용해서 몸이 폐인이 된 것은 상관없어. 하지만 약속했던 내 3가지 부탁은 들어줘야 하지 않겠니?"
만신창이가 된 제나한테 아리아나는 선심 쓴다는 듯이 무언가를 던져주었다.
"3번의 부탁을 사용할 때까지는 써먹어야 하니까."
아리아나가 준 것은 망령의 물약 진행 억제제로 일시적인 치료제였다.
"완벽히 치료하는 치료제는 재료가 없어서 없어. 그리고 혹시 몰라? 부탁을 잘 들어주면 언젠가 완벽한 치료제를 만들어줄지."
그렇게 웃으면서 아리아나는 떠났다.
"씨발."
욕은 유다 앞에서 실수로라도 하지 않으려고 자제했지만, 오늘만큼은 참을 수 없었다.
"가문 내에 비밀병기만 쓸 줄 알았어도…."
다른 가문들도 그러겠지만 공작가에는 공작가의 비밀무기가 있었다.
제나는 온몸에 포션을 뿌린 채로 가문 가장 지하 깊숙이 있던 곳에 있던 관 모양 상자를 만졌다.
"광증폭 상자."
"무슨 도구인지…. 모르겠어…."
관뚜껑을 열려 해도 열리지 않는다. 단지 마력을 넣는 투입구만 있을 뿐이다.
수십 분 동안 낑낑거리며 마력을 투입했지만 변하는 건 없었다.
"아…. 물어볼 사람도 없고."
유일하게 알고 있었던 아버지는 하늘나라에서 손을 흔들고 있는 중일 테고.
오늘따라 아버지가 원망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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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시간이 1년 정도 흐르고 부탁을 방지한 아리아나의 명령이 내려졌다.
"벨라레 가문 습격에 암묵적 동의를 할 것."
"에?"
순간적으로 아리아나의 부탁에 이해가 안 되었다.
"유다는 어떻게 할 생각이죠?"
"꼬맹이를 죽일 생각은 없단다. 포르스 벨라레의 목숨만 필요할 뿐."
'유다만 무사하다면 난 됐어.'
그렇게 제나는 3개의 공작가가 앞으로의 제국의 흐름의 방향을 정하는데 벨라레 가문 습격에 대해서 동의했다.
계약을 어기고 유다한테 말해서 벨라레 가문의 가주가 피습되는 것을 막을 수는 있겠지만, 계약서의 대가로 여태 모았던 마력이 전부 증발할 것이다.
차마 유다가 피습된다면 계약서를 어겼겠지만. 제나는 벨라레 가문의 습격을 방관했다.
유다가 모든 것을 잃고 자신만 바라봐 주기를 바라는 마음과 유다가 행복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충돌했다.
그래서 제나는 죄책감에 벨라레 가문이 습격 된 뒤로 한동안 유다의 얼굴을 보지 못했다.
유다를 차지하기 위해 테낙스 가문과 성을 점유했지만, 오히려 그 힘이 자신의 발목을 잡고 있었다.
제나는 한순간에 힘이 눈이 멀어 자신을 지켜주던 전 테낙스 공작의 방패를 치운 셈이 되었다.
"내가 잘못한 거야?"
아빠가 그랬잖아요. 사랑은 쟁취해야 한다고. 소유해야 한다고….
유다에게 진실을 말할까 했지만, 유다가 뱀파이어에게 보내는 증오를 보니 차마 말할 수 없었다.
"유다. 너를 가지고 싶었던 게 내 잘못일까?"
제나에 물음에는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3년이란 시간이 흘러 아카데미에 제나가 입학했다.
그리고 아리아나의 마지막 부탁이자 명령이 도착했다.
"쿨럭…."
손가에 핏자국이 튄다.
"작위 승계는 성인이 되고 나서 부모님의 부고 사식을 알려 유다한테 위로받을 계획이었는데."
아카데미 졸업 전에 할 줄이야.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두근거림에 심장이 더욱 아파졌다.
"흐흫…. 유다를 낚을 최고의 덫."
제나는 유다가 걸려 들을 수밖에 없는 덫을 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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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나가 아카데미에서 떠난 지 단 3일.
유다에게 편지가 하나 왔다. 바로 제나한테 온 편지였다.
유다는 그 편지를 본 순간 종이를 구겨버릴 수밖에 없었다.
"제나…. 테낙스….“
"캐시. 아카데미에는 병결신청을 해줘."
유다는 자신의 코트를 입고 테낙스 가문으로 목적지를 돌렸다.
다그닥…. 다그닥….
마부가 바쁘게 마차를 모는 소리가 들려왔다.
유다는 편지에 내용을 회상했다.
그 편지안내용에는 제나에게 알리지도 않았던 가문이 습격을 당한 그 날의 일이 적혀있었다.
그리고 그곳에 쓰인 제나의 마지막 문장.
진짜 범인을 알고 싶어?
유다는 제나를 의심하지 않았다. 단지 제나가 진실을 알고 유다에게 말해주려는 것 뿐일 거다.
제나는 자신의 가족이니 믿고 또 믿었다.
아니. 사실 내 추측이 틀리기를 바랄 뿐이었다.
마차는 테낙스 영지로 향하는 잘 정돈된 길을 힘차게 지나갔다.
유다의 심란한 마음과 함께 꽤 오랜 시간이 지나고 난 후에야 테낙스 가문의 영지로 들어설 수 있었다.
유다는 마차에서 휴식을 취할 수 있었지만 그러지 못했다. 유다는 단지 슬플 뿐이었다.
자신의 모든 추측이 틀리기를 바랄 뿐이었다.
유다는 그렇게 캐시조차 놔둔 채 혼자 테낙스 가문의 성문 앞에 도착했다.
캐시조차 두고 온 것은 유다가 제나를 믿기에 제나와 담판을 벌이려고 한 짓이었다. 제나는 자신의 가족 자신을 속일 리가 없었다.
만약을 위해 누나에게 연락을 넣어 놓았다.
'캐시라면 짐만 될 수 있으니까. 놔둬야지.'
유다는 테낙스의 고고한 성을 두들겼다.
"제나!"
그그극…….
유다의 외침에 맞게 거대한 문이 열렸다.
문 안쪽으로 보이는 것은 거대한 어둠뿐. 심연 그 자체였다.
그리고 그런 어둠으로 유다는 발을 뻗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