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8화 〉 사랑은 근묵자흑(2)
* * *
아카데미 내에서의 유다를 건드리는 이는 없었다.
이는 교관이라 해도 교수라고 해도 마찬가지였다.
감히 누가 제국 내에 3개뿐인 공작가 바로 밑에 위치한 변경백을 건드릴까?
귀족 중에 상위귀족인 데다가. 그들의 자식이 아니라 한 가문의 가주였다. 그래서 그 누구라 할지라도 유다를 쉽게 대할 수는 없었다.
그건 황녀도 마찬가지였지만, 아카데미 습격 이후로 황녀의 지지기반이 많이 날아간 상황이라 다른 귀족들에게 만만하게 보인다는 모양이었다.
어쨌든 그 누구도 유다를 방해할 수 있었기에 유다는 당당하게 수업 도중 캐시를 시켜 업무를 처리하거나 책을 보았다.
하지만 아무리 유다가 작위가 높든 말든 그런 것은 신경 쓰지 않는 사람이 있기 마련이었다.
탁탁!
탁상을 내리치는 소리가 들리면서 인상이 깐깐해 보이는 여성이 유다를 향해 손짓했다.
"유다 벨라레 학생? 마력에 관해 설명해 보세요."
"마력은 세상을 변화시키는 힘입니다."
유다는 아주 간단하지만, 마력의 핵심명제를 꿰뚫었다.
하지만 그 깐깐한 교관은 성이 차지 않는지 찢어지는 목소리로 당당하게 말했다.
"음 대답이 아쉽군요. 하지만 괜찮습니다. 부족하면 배우면 되죠! 마력의 현재 발견된 종류만 해도 23가지의 각기 다른 속성을 띄고 있고 마력의 속성 친화력은 사람이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있는 고유 능력으로부터 비롯됩니다. 그리고 이곳은 아카데미이죠. 모두가 평등한 곳입니다."
아카데미 교관의 손짓에는 유다를 저격하는 말이 내포되어 있었다.
'딱 봐도 평민이군.'
생각이 없어 보이는 것을 보아하니 평민 같았다. 귀족이라면 아무리 공작이라도 유다에게 저렇게 말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뭐? 감히 유다한테"
유다의 옆에 있던 제나가 무슨 말을 하려고 했지만, 유다는 그런 제나를 제지했다. 당당하게 비난받은 이런 일은 당사자가 직접 나서는 게 좋았다.
'여기서 참는 것도 명예손실이지.'
유다는 소리가 나도록 일어섰다.
드르륵.
의자가 끌리는 소리가 나며 유다가 일어섰다.
"티판 교관. 마력에 대한 교육이 형편없군."
"유다 학생. 당장 앉으세요. 그리고 마력학 교관인 제가 유다 학생보다 뛰어납니다."
티판 교관이 화가 났는지 얼굴이 붉어졌다.
"누가 23번째 마력을 발견하고 논문을 썼는지 아나?"
귀족 가문들에는 숨겨놓은 지식이 있는 법이었다. 당장 유다의 가문에만 해도 25개의 마력을 기록하고 있는 책이 있었다. 그리고 유다는 마력 사용에 대한 재능이 없기에 책을 탐독하고 탐구했다.
논문까지 낸 이유는 그 당시 유다의 부모님이 죽었기에 귀족 사회에서 무시당하지 않기 위하여. 그리고 가끔 자신에게 지식 자랑을 하던 자들을 눌러주기 위해서였다.
"똑똑한 사람일수록 겸손해지지. 그대는 무지에서 오는 자신감이 틀림없겠군."
유다의 말이 티판 교수를 머리끝까지 화가 나게 한 모양이었다.
"당장 앉으세요! 이건 교관의 권리입니다! 유다 학생을 아카데미의 규정을 어딘 대가로"
'선을 넘었어.'
티판 교수가 말을 더 있기 전에 유다가 그녀의 말을 잘라먹었다.
"그거 아나? 프론티아 제국 내에서는 귀족이 평민을 죽인다고 해서 딱히 처벌받지는 않아."
"제국 내의 관리를 협박하는 것은 불법입니다! 유다 벨라레!"
"제국의 관리를 죽이는 것은 불법이지. 하지만 언제까지 그 자리를 유지할 수 있을까?"
뚝. 갑자기 티판 교관의 말문이 멈췄다.
"자네가 어느 뒷골목에서 안타까운 사고로 목숨을 잃을 수도 있지. 그러니 조심하게."
유다의 말은 반 안을 울렸다. 귀족들은 맞다면서 끄덕이고 있었고 평민들은 겁에 질린 표정이었다.
애초에 제국 자체가 평민에게 우호적이지 않았다. 평민들의 인권은 바닥이나 다름없었다.
그런데 혁명이 일어나지 않냐고?
일어날 수 있을 리가. 무력은 귀족이 독점한다. 인구수나 이런 것을 따질 이유가 아니었고 각자만이 독점해 온 마력 수련 방식은 평민들과의 차이를 크게 벌렸다.
정보의 제한으로 평민은 아무리 재능이 뛰어나도 마력을 쌓기 힘들었고. 귀족들은 강대한 일당백의 전력을 양산한다.
혁명이 일어나도 절대로 이길 수 없는 세계였다.
'뛰어난 한 명이 만 명을 상대할 수 있는 세계인데.'
평민들은 영원히 무력을 독점 당하고 지식을 독점 당하며 살아갈 것이다. 황실이 키워주는 평민들도 필요한 지식만 주입받았을 뿐 멍청하기 따로 없었다.
'안타까운 현실이지.'
파들파들 떨고 있는 티판 교관을 보았다. 무지했다고 해서 잘못을 저지르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물론 용서해줄 생각은 있었다. 유다는 저런 이들에게 기회를 주곤 했었다. 앞으로의 그녀의 행보에 달린 일이었다.
전생에 자신에게 적선하듯 그들에게 기회를 준다.
하지만 그런 유다의 상념이 이어가기 전에 급보가 들이쳤다.
"급보입니다!"
테낙스 공작부부가 자살했다는 소식은 아카데미를 강타했다.
아주 희귀한 케이스의 문제가 터졌다.
바로 한 가문을 이끌어가는 자가 죽고 그런데 그 후계자가 아카데미에 다니는 상황이었다.
아카데미의 다니는 것은 나락에 떨어진 황실이 만든 의무 중 의무.
제국 7성이든 누구든 지켜야만 하는 절대적인 법. 물론 루스 교단의 사도인 아자젤 빼고.
하지만 아카데미의 아주 밑에 밑에 자락을 찾아보면 이런 규칙이 있었다.
*특수한 상황이 생긴 경우 아카데미에서 처리하기 불가능한 귀족의 권리일 경우에 자유로운 활동을 일시적으로 허가한다.
귀족의 권리에는 작위 승계도 들어가 있다. 본래라면 대리인이 후계자가 아카데미를 끝낼 때까지 대신 가주의 자리를 대리하는 것이 맞는 선택이지만. 테낙스 가문은 극히 폐쇄적인 가문이었다.
당연히 대리인이 존재하지도 않았다. 유다가 벨라레 가문의 대리인을 숙청해서 바로 승계한 것과 다르게 별개의 문제였다.
하지만 제국법상 귀족이 나이가 어려 가문의 업무를 수행하기 어렵고 대리인조차 없다면 그 구역의 황실 관리가 담당할 수 있는 법이 있지만, 우연히 며칠 전 그 관리가 노화로 사망했다.
"어쨌든 제나가 고생이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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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년 전 10살 때.
안개 낀 그 날도 언제나처럼 유다를 만나고 집에 돌아오는 길이었다.
마차는 고급스러운 외형에 맞지 않게 바큇살이 갈라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끼드득..
결국, 마차가 멈춰서게 되었고 인생에 2번째로 큰 전환기가 찾아왔다.
안개 속에서 마부가 마차의 바퀴를 갈 동안 누군가가 찾아왔다.
"누구세요…?"
제나의 목소리는 미지의 두려움에 의해 떨렸다.
"오. 걱정할 것 없단다."
다행히 목소리는 갈라졌어도 따스함이 느껴졌다.
"이에텔의 중독된 머리 색깔과 똑 빼닮았구나."
"아빠를 아세요…?"
"그럼 알다마다. 예전에는 꽤 자주 봤었는데 말이야."
제나에게 말을 걸었던 인물은 제국 7성중 한 명인 흉성의 아리아나였다.
아리아나 폴윙. 그녀는 세계에서 가장 천대받는 네크로맨서의 정점이었다.
짙은 안개 속 제나와 아리아나는 여러 대화를 나누었다.
"그나저나. 아가야 너에게는 사령술에 재능이 있단다. 나에게 배워보지 않을래?"
제나는 고민했다.
'사랑을 쟁취하려면 무력이 필요해.'
그렇게 제나는 아리아나에게 사령술을 배우기 시작했다.
그렇게 4년 후.
"스승님. 아빠한테도 통하는 독이 있을까요?"
그런 제나의 물음에 아리아나는 난색을 표했다.
"웬만한 독은 통하지 않을 거란다. 그보다 차라리 정신을 파괴하는 계열이 어떠니? 정신 계열은 복용자가 아무리 정신력이 강해도 한번 흔들리는 일이 있으면 쉽게 무너트릴 수 있을 거란다."
그렇게 아리아나의 충고와 함께 제나의 계획이 가속되어만 갔다.
조금의 시간이 더 흐른 뒤
"이제 더는 내가 가르칠 게 없구나. 이제 마력이나 늘릴 방법을 찾으렴."
제나는 그렇게 흉성의 아리아나의 가르침을 전부 흡수했다.
그리고 자신의 엄마에게 편지를 썼다. 여기에 적혀 있는 말은 그녀의 엄마를 난도질할 것이며 결국 자살로 이끌게 될 것이었다.
왜냐면 그녀의 엄마는 제나를 위해 마지못해 살아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폭풍우가 치고 번개 치는 그날.
"쟈벳! 쟈아아아벳!"
아버지의 절규 소리가 들려왔다. 미로 같은 성에서 여기까지 들려오는 소리에는 절망만이 가득했다.
제나는 어머니가 감금되어 있었던 최상층으로 올라갔다.
그곳에서는 작은 과일칼로 자신의 손목을 그은 어머니의 시체와 옆에서 울면서 절규하고 있는 아버지도 보였다.
제나는 절규하고 있는 아버지에게 다가가서 말했다.
"역시 힘이 없으면 빼앗기는 법이네요. 그렇죠?"
"너…. 너! 쟈벳에게 무슨 짓을 쿨럭…."
"어머니가 만들어주신 식사를 드셨죠?"
"너어…. 너어…. 내가…. 쿨럭…."
"아버지의 말씀이 전부 맞았어요. 힘이 없으면 빼앗기고 힘이 있으면 빼앗을 수 있죠."
역시 제국 7성일까? 수백 가지의 독한 약재를 버텨내고 일어서고 있었다.
'뭐…. 얼마 안가 죽겠지만.'
제나는 마지막으로 심장 파괴자라는 아티펙트를 꺼냈다. 얇은 철심으로 되어있는 심장 파괴자는 사용하기 어렵지만 깔끔하고 강력한 아티펙트였다.
"아버지 곧 편히 보내드릴게요."
"내가…. 죽으면…. 쿨럭…. 어떻게…."
"걱정 마세요. 혼란을 방지하기 위해. 제가 성인이 될 때까지는 가주는 바뀌지 않을 거예요."
제나가 손짓하자 그녀의 어머니는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걸 본 죽어가는 테낙스의 가주는
"사…. 랑…. 하…. 오.. 쟈 벳…."
마지막으로 제나의 심장 파괴자가 그를 관통했다.
"히히…. 여기가 이제 유다와 나의 집…."
제나는 그렇게 테낙스 가문의 사병과 하인들을 죽은 자들로 일으켜 세웠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