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가 흑막이라고요-6화 (6/79)

〈 6화 〉 제가 블랙리스트라고요?(2)

* * *

아르티아는 예전부터 동족들의 사상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도대체 왜 우리가 고기만을 고집해서 먹어야 하는가.'

그것도 다른 종족을 학살하다시피 말이다.

엘프는 자연주의적 생명체다. 엘프는 평화주의다. 하지만 엘프는 자연을 파괴하는 자들을 용서치 못한다.

그렇기에 자연을 파괴하는 자들을 죽이고 먹어 치운다.

엘프는 자연을 사랑하기에 역설적으로 육식을 한다. 자연을 파괴 시키는 생명체들을 먹어치우는 것이다.

'왜 우리 엘프는 다른 종족과 평화롭게 지내면 안 되는 걸까.'

그것이 어린날에 아르티아가 미몽에 사로잡힌 생각이었다.

그리고 어느날 아르티아는 식물의 열매를 먹게 되었다.

'달콤해.. 그리고 속이 뻥 뚫린 것 같은 느낌이야.'

엘프의 요리는 구워 먹기 쪄먹기 그리고 생으로 먹기밖에 없었기에 아르티아는 신선함을 느꼈다.

그렇게 다른 엘프들 몰래 자연에서 난 식물들을 조금씩 먹기 시작했다. 그리고 아르티아는 그 사실을 다른 엘프들에게 걸리고 말았다.

그때의 행동을 후회한다고 묻는다면 '아니'라고 대답할 수 있을 것이다.

아르티아는 그렇게 붙잡혀 죽을 위기에 처했지만 간신히 탈출했다. 하지만 추방자의 증표가 새겨졌기에 아르티아는 항상 심장의 고통을 안고 살아가야만 했다.

그렇게 헤이스트 상단에서 인간 사회에 대한 상식을 배우고 엘프 특유의 민첩함으로 정보 클랜을 차리게 되었다.

여기서 유다가 아는 세계와 달라진 점은 유다의 헤이스트 상단의 지분에 대한 영향으로 다른 이종족들을 인간 사회에 적응시켜주는 교두보를 헤이스트 상단이 했고, 그 덕분에 아르티아는 원래라면 혼자 운영하게 되었을 정보 클랜을 다른 추방자 엘프들과 같이 운영하게 되었다는 점이었다.

여인의 술집 내부

까만 머리칼에 눈을 떴는지 뜨지 않았는지 구별이 되지 않는 남자가 찾아왔다. 아르티아는 조용히 천장 위에서 지켜보고 있었다.

'귀족의 옷차림에 특이한 실눈까지. 손님은 유다 벨라레겠어.'

귀족과 실눈만으로 유다라는 것을 측정할 수 있었다.

'흐음... 잘 생기기는 했네.'

마법처리가 되어서 보이지 않는 천장에서 유다를 지켜보고 있는 아르티아였지만 유다와 딱 눈이 마주치고 있었다.

'눈이 마주친 건가..?'

실은 유다는 자신에게 보이는 허공의 소설의 내용을 읽고 있었을 뿐이었지만 말이다.

유다의 얼굴은 계속 웃는 얼굴을 지었기에 감정을 파악하기 어려운 아르티아였다.

유다는 계속해서 허공을 바라보며 입꼬리를 비틀었는데 그게 마치 '너는 내 손안에 있어'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괜스래 짜증이 났다. 자신은 과거 엘프중에서도 대전사에 해당되었기에 추방자의 저주가 있어도 인간세계에서는 자신만한 강자를 보기가 매우 힘들었다.

그런데 그런 자신이 고작 저런 사람에게 어려움을 느낀다고? 아르티아는 조금 초조해졌다.

하지만 초조해진 감정은 곧 경악으로 바뀌었다.

정체를 숨긴 같은 인간인 척하는 엘프 바텐더가 유다에게 물어왔다.

"뭐로 주문하시겠습니까?"

"떨어진 눈물의 맹세로 부탁할게."

'내가 뭘 들은 거지?'

방금 그녀가 들은 유다의 말은 유다가 오기 전에 막 바꿔버린 암호였다. 보통 3개월 주기로 암호를 바꾸는데 예전의 손님이 구식의 암호를 쓰면 다시 새로운 암호로 알려주는 형식이었다.

'그런데.. 누구에게도 알려주지 않은, 그리고 바꾼지 10분채 되지 않은 암호를 알고 있다고?'

순식간에 자신의 클랜원들에게 의문이 들었다.

'배신자가 있나?'

그들은 자신의 초장기부터 활동하던 같은 동료. 의심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일단 그건 나중일로 미루기로 한 아르티아는 빠르게 명령을 내렸다.

손가락을 들어 목을 자르라는 표시를 보내왔다.

'어쨌든 저 녀석 보통 녀석이 아니야.'

아마 자신이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 확률도 높았다. 그리고 주변 로비에 클랜원이 숨어있다는 사실도 알고 있겠지.

다 같이 저 남자를 죽일 수 있을까?

어쩌면 자신이 덤벼도 질 수도..

자신의 클랜원이자 정보원 그리고 살수들이 수상한 남자에게 들이닥쳤다.

클랜원에 단검에 눈 한번 깜빡하지 않은 유다였다. 그리고 그 단검은 유다의 옆에 있던 아자젤에게 막혔다.

'역시 옆에 있는 여자도 보통 실력이 아니군. 하긴 유다 벨라레라고 추측 되던 남자의 옆이니까.'

벌꿀 같은 금발 머리 붉은색 눈동자를 보았을 때 루스 교단의 사도 후보인 아자젤 벨라레임이 틀림없었다.

어느새 유다의 뒤에는 보기만 해도 오금이 저려오는 오라와 엄청난 강자의 기세를 풍기고 있었다.

하지만 제일 두려운 것은 유다의 등 뒤에 보이는 검은색 오라에는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마치 아무것도 없는 공허처럼 힘의 편린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아르티아는 곧바로 자신의 실수를 책망했다.

'남자의 앳된 모습만 보고 은연중 무시했던 거야….'

아직 15살도 되지 않는 유다의 기운은 자신은 범접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력했다. 하지만 저런 강력한 이적을 보이는 힘이 느껴지지조차 않는다니. 아마 그와 자신의 힘의 차이는 보지 않아도 자명했다.

유다의 표정은 한결같았다. 언제나 웃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웃는 표정 안에 여유로움이 느껴졌다.

아르티아는 그때 확신했다. 패배라고.

"누나 죽이지만 말아줘 봐."

"알겠습니다."

자신의 예상대로 상황은 흘러갔다. 클랜원이 죽지 않은 것만으로도 다행으로 생각해야 하나?

다행히 클랜원이 죽지 않았기에 그들과 끝까지 갈 필요가 없었다. 이르티아는 남몰래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유다의 표정은 끝날 때까지 여유로워서 이제는 나와야 하지 않겠냐고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아마…. 습격에 대한 사죄를 구해야겠지.'

저들보다 힘이 강력했다면 할 필요 없는 사과. 하지만 단지 저들보다 약자였다.

아르티아는 걸음을 옮겼다.

유다의 검은색 오라가 클랜원들을 집어삼키려 하기에 아르티아는 겨우겨우 외쳤다.

"그만 하세요."

유다는 그런 아르티아의 말을 들었는지 아르티아를 보면서 여전히 웃는 얼굴을 유지했다. 여전히 수상하고도 속을 알 수 없는 표정이었다.

확신한 것은 어떤 방식이든 아르티아에게 유리하지는 않을 것이란 생각이었다.

그런 불길한 생각이 꼬리를 물어 약간의 긴장감과 함께 아르티아의 귀를 떨게 했지만 아르티아는 알아차릴 수 없었다.

아르티아는 자신이 내보일 수 있는 최대한의 항복 표시를 하며 유다에게 다가갔다. 그것은 두려움, 호기심과 여러 가지 감정이 뒤섞인 결과였다,

"어떻게 저희가 새로 암호를 바꾼지 10분 만에 암호를 사용했죠?"

아르티아가 가장 궁금해하는 사실이었다. 어떻게 외부인인 존재인 유다가 알 수 있었을까 잠시나마 클랜원들을 의심했지만 그럴 리가 없다는 것을 자신이 더 잘 알고 있었다.

저 수상한 남자의 얼굴은 그런 아르티아의 질문에도 불구하고 평화로움이 느껴졌다. 하지만 딱 한번 유다의 얼굴이 바뀌었다, 마치 ‘이것 봐라?’라는 표정이었다. 그리고 나서는 마치 자비를 베풀어주듯 한 마디를 던졌다.

"그래.. 우리쪽 애들이 유능해서 말이야."

아르티아는 그런 유다의 말에 주변을 휙휙하고 둘러봤다. 느껴지지조차 않는 기운. 소름이 돋았다.

자비를 베풀어준 유다의 말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물론 유다의 말이 진실일 확률이 높았다. 당연히 우리 중에 배신자가 없는데 그 말을 알았다면 10분 전 암호를 바꿀 때 몰래 듣고 나서 유다에게 알려줬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쉽게 믿을 수 없는 이유는... 엘프가 거짓말을 잘 알아차리기 때문이었다. 엘프의 감각은 그 남자의 말이 거짓이라고 또는 진실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야말로 모순되는 감정, 오로지 혼돈밖에 없을지어니,

유다란 남자의 속을 본 느낌이었다. 유다의 속 그러니까 심연을 들여다본 결과는 참혹했다.

여태까지 살아남는데 도움을 준 감각체계가 완전히 박살난 듯한 감정이었다.

‘어떤 것이 진실이고 거짓인 건지.’

내가 살아있다는 것은 진실 혹은 거짓?

아르타아는 심연을 보았다가 나올 수 없었다. 엘프 특유의 감정을 판단하는 계기판이 망가졌다.

모르겠다. 아무것도 모르겠어. 혼돈을 형상화한 존재의 얼굴은 여전히 평화로웠다.

아아. 혼돈. 당신은 도대체 무슨 목적인걸까요?

"크읏.. 당신은 대체.."

아아. 혼돈 당신은 도대체 무엇을 원하시는 걸까요?

"도대체 뭘 원하시는 건가요.“

유다는 당당하게 아르티아를 가리켰다.

"널 원해 아르티아."

‘어떻게 자신의 이름을?’

이곳에 와서는 한번조차 자신의 이름을 입에 담지 않았다. 그렇다 이것은 거짓인 것이다.

모든 해석이 끝난 아르티아는 자신의 소매에 숨긴 짧은 단검을 휘둘렀다.

팅­!

물론 그런 시도는 아자젤에 의해 무산되었다. 만약 단검의 길이가 1cm만 길었어도 유다의 피부는 정교하게 갈라졌을 터이지만, 유다는 마치 그녀의 시도는 무산될 줄 알았다는 듯이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여전히 웃고 있었다.

"감히 주군께서 말씀하시는데..“

아르티아는 시도 실패의 대가를 치르고 있었다. 아자젤이 아주 낮은 목소리로 그르렁 대면서 아르티아의 목에다가 날카로운 검을 가져다 대었기 때문이었다.

유다는 그런 아르티아의 귀에다가 대고 웃으면서 말했다.

"스타더스트 필요하지?"

이제는 별로 놀랍지도 않았다. 마치 자신의 생각이 모조리 읽힌 느낌이 들었기에..

"그건 또 어떻게? 하긴 제 이름을 알았다면야.. 그런 것 쯤은.."

"그럼 내 부탁을 들어줄래?"

"제 선택권이 있나요?"

아르티아의 말에 유다는 웃음으로 답했다. 그런 유다의 모습을 본 아르티아는 드디어 조금은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윽.. 당신 진짜 수상해요.“

유다는 수상했다. 그리고 뒤이어 충격적인 말이 들려왔다.

"일단 꿇어."

하긴 그의 실력을 생각해보면 그녀를 많이 봐주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수상하게 항상 웃고 있는 표정과 감정을 보여주지 않는 눈, 절대 동요하지 않는 표정, 자신에 모든 것을 알 정보력, 게다가 벨라레 가문은 자금력까지 충분, 15살도 되지 않는 나이에 자신은 감지할 수 조차 없는 천외천의 무력, 끝도 모르는 혼돈을 품은 남자이자, 모든 것을 계획한 지력. 이 정도면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치기에 충분했다. 아니 오히려 충분하다 못해 넘쳐 흘렀다.

그리고 이미 자신은 그에게서 벗어날 수 없었다,

아르티아는 진심으로 무릎을 꿇고 그의 발등에 입을 맞추었다.

”망가진 저라도 괜찮으시다면 거두어 주시기를“

그렇게 아르티아의 클랜은 시크릿에 흡수되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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