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화 〉 가족회의를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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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 회의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아버지 렌드로 앙겔로풀로스와 어머니 로렌나 앙겔로풀로스께서 기다리고 계셨습니다.
“평안하신가요, 아버님, 어머님.”
“우리 로렌나와 쏙 빼닮아서 귀엽고 착한 아그네스, 어서 오렴.”
“니콜라스 왕자님을 홀딱 반하게 할 정도니까요. 후후.”
가족에게 바치는 사랑이 무한한 아버지와 자식에 대한 평가가 높은 어머니가 반갑게 말씀하십니다. 덕분에 교활해진 아그네스가 부모님 앞에서는 착한 아이를 연기하고 다른 사람들에겐 포악한 영애로 자라버리긴 하지만요.
“저번 왕가 주최의 개국 기념일 무도회는 즐거웠니?”
“네. 니콜라스 왕자님께서 에스코트해 주신 덕에 즐겁게 보냈습니다.”
“흐음, 그래요?”
어머니께서 석연찮은 표정을 지으시는데, 무슨 의미실까요.
“요즘 왕족들은 약혼자를 내버려 두고 다른 영애와 춤을 추는 것을 ‘에스코트’라고 부르나 보죠?”
“여덟 곡을 추는 동안 쉬지도 못하게 해서 하루 내내 근육통에 시달리게 하는 것이 왕족이 파트너를 다루는 법이니?”
“어, 어떻게 그걸 아셨나요?”
마리? 마리는 입이 무거워서 이런 사사로운 일을 말하고 다닐 사람은 아닌데…….
“공작부인 정도의 위치가 되면 알아서 정보가 들어오는 법이에요.”
“그뿐만 아니라 네가 아파서 누워 있던 날 니콜라스 왕자와 세이타리디스 가문 영애가 사과하러 왔었단다. 네가 들으면 무리해서 맞이할 것 같아서 부르지 않았다.”
“하지만 걱정이 되긴 하네요. 첫 사교계에서 우리 아그네스를 힘들게 하는 일이 두 가지나 생겼으니까요.”
뭔가 이야기가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는데요. 이쪽은 제가 생각했던 이벤트가 아닙니다. 여기서 니콜라스 왕자나 아리아나 영애를 추궁하게 되면, 약혼자 자리를 아리아나 영애에게 양보하는 작전이 실패할 수도 있고……우선 부모님을 달래서 화를 거두시게 해야 겠죠.
“아리아나 세이타리디스 영애는 제가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제 부탁으로 니콜라스 왕자님의 상대를 억지로 떠맡았을 뿐이에요. 그리고 여덟 곡이나 춘 것은, 니콜라스 왕자님이 끊임없이 쉬지 않겠냐고 물어보셨지만 제가 즐거워서 멈추지 못한 제게 어쩔 수 없이 어울려 주셨습니다. 두 분 덕에 무도회는 정말로 즐거웠습니다.”
여전히 만족스러운 표정은 짓지 않는 두 분이시지만, 제가 이렇게까지 말하니 일단은 알겠다고 말씀해 주셨습닏.
“그렇구나. 그래도 다음에는 보는 눈이 많으니 첫 곡이 나왔을 땐 반드시 니콜라스 왕자와 추도록 하렴.”
“만약 정말로 우리 아그네스를 슬프게 했으면 약혼을 파기하려고 했는데, 그럴 필요는 없어 보이네요.”
“당연하지. 아무리 제1 왕자라도 우리 사랑스러운 아그네스를 눈물짓게 하면 안 되니까.”
……어?
설마 저 지금 니콜라스 왕자와 약혼을 파기할 수 있는 천재일우의 기회를 놓친 건가요?
“그리고 첫 사교계를 수수한 옷차림으로 갔던 건 잘했어요. 덕분에 우리 아그네스를 무시할 가능성이 있는 정적들을 추려냈으니까요.”
“너를 다루는 태도를 보고 니콜라스 왕자도 진심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세이타리디스 영애는 원래대로라면 명단 1순위겠지만, 바로 다음 날 진심으로 사과하러 온 것 같으니 정상참작 하도록 하겠어요.”
그래도 다행히 아리아나 영애와의 관계가 단절되는 일은 없을 것 같네요. 만약 그렇게 되어버리면 몇 년 뒤 나타날 주인공 캐릭터에게 의존해야하니까요. 그렇게 하는 것도 물론 저는 상관없지만, 보험은 많을수록 좋은 법이니까요.
“오늘 가족회의는 무도회에서 있었던 일을 여쭤보시려고 여신 건가요?”
가만히 있으면 무도회 때 있었던 이야기가 너무 길어질 것 같아서, 예상했던 오늘의 ‘진짜 안건’에 대해서 운을 띄웠습니다.
“역시 예리하구나, 우리 딸. 물론 우리 딸의 중요한 첫 사교계 데뷔 이야기도 중요하지만, 다른 중요한 안건이 또 있지.”
“혹시라도 파혼이 결정되면 이야기하지 않으려고 했어요.”
“니콜라스 왕자와 약혼한다는 것은, 차기 왕비라는 뜻이니까. 앙겔로풀로스 가문을 이을 사람이 없어지잖니. 낮은 가문의 영식과 결혼한다면 아그네스의 데릴사위로 데려오겠지만, 제1 왕자님을 상대로는 그럴 수 없지.”
“그렇기에 앙겔로풀로스 가문을 이을 아들을 입양하기로 했어요. 마음 같아서는 렌드로 씨와 제가 한 명 더 낳고 싶지만…….”
“아그네스를 낳을 때도 난임에다 난산이었으니까. 로렌나가 고통받는 모습은 난 더는 볼 수 없어.”
“렌드로 씨…….”
“로렌나!”
저 아직 회의실에서 안 나갔는데요. 일곱 살짜리 딸을 눈앞에 두고 갑자기 눈이 맞아 애정행각을 시작하지 않아 주셨으면 합니다. 몇 개월 전에는 제1 회의실에서 둘이 애정행각을 나누셨다가 며칠 후 영지 관리인분에게 어머님의 속옷이 발견된 사건도 있었으니까요.
너무 애정이 과해서 어머니가 또 임신하셔도 곤란하고요. 원작에서는 아그네스의 친동생은 등장하지 않지만, 어떤 변수가 또 생겨날지는 모르고……만약 그렇게 되면 어머니의 두 번째 난산으로 이어질 수도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어머니의 생명이 위험해질 수도 있고요.
“어쨌든, 그래서 우리 앙겔로풀로스 가문의 분가 중 하나에서 남자아이를 한 명 입양할 생각이란다.”
“혹시 아그네스는 또래의 남자아이가 집안에 들어오는 게 부담스럽나요?”
아무리 부담스러워도 지금의 부모님보다 부담스러울 순 없겠죠. 이미 반쯤 내려온 드레스의 어깨끈은 다시 추스르시면 좋겠는데요. 저 아직 회의실에서 안 나갔다고요.
“저도 가끔 오라버니나 남동생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말하니 부모님께서는 기뻐시하며 몇 장의 프로필 같은 서류를 제게 보여주셨습니다. 초상화와 가문의 이름, 가족 구성, 그 밖의 특이사항 등이 적힌 입양 후보의 아이들 목록이네요.
원래 게임에서는 아그네스가 ‘아무나 상관없어요.’라고 말해버리지만, 지금의 저는 그럴 수 없습니다. 이미 게임의 이야기가 조금 변해버렸기 때문에, 잘못하면 예상하지 못한 다른 인물이 제 오빠나 남동생이 될 수도 있으니까요.
게임에서의 성은 앙겔로풀로스로 바뀌어서 나오지만, 이름은 아마 그대로겠죠. 그 밖에 특이사항으로는 가문 특유의 파란색의 머리카락에, 3남 1녀 중 막내고, 저보다 한 살 어리단 것 정도일까요. 가진 정보를 토대로 서류 뭉치를 넘기다가, 한 명의 소년을 발견했습니다.
“이 아이는 어떠세요, 아버님?”
제이스 루바스. 루바스 백작 가문의 3남입니다.
아버지도 제가 건넨 서류를 보시더니 고개를 끄덕이셨습니다.
“역시 우리 딸. 우리도 이 아이로 생각하고 있었단다. 아그네스와 나이 차이도 크게 나지 않으니 사이좋게 지낼 수 있겠지.”
“가족회의에 시간을 내줘서 고마워요. 어머니는 잠시 회의실에서 아버지와 더 해야 할 얘기가 있으니, 먼저 가봐도 좋아요.”
어머니가 한껏 상기된 얼굴로 말씀하셨습니다. 회의실에서 무엇을 하시겠다는 건지 벌써 예상이 되지만, 전 아직 일곱 살의 여자아이니까요. 모르는 척 인사를 하고 자리를 비워 드렸습니다.
방으로 돌아와서 곧 남동생이 될 캐릭터에 대해 회상했습니다.
제이스 루바스. 『사랑과 운명 ~아스토리아~』에서는 제이스 앙겔로풀로스로 등장하는, 아그네스의 남동생입니다. 이 게임의 세 번째 공략대상이자, 어느 캐릭터를 공략하던 반드시 엮이게 되는 도우미 캐릭터이기도 합니다.
제이스는 루바스 가문의 영재 아이입니다. 걸음마를 떼기 시작하자마자 글을 읽을 수 있게 되었으며, 네 살이 되었을 때는 이미 루바스 가문에 있는 모든 과학 서적을 통달했습니다. 그리고 다섯 살이 되었을 때 처음으로 만든 약이, 마신 사람이 상대방에게 두근거리는 감정을 느끼게 하는 ‘두근거림의 묘약’입니다.
하지만 ‘두근거림의 묘약’의 제조법을 첫째 형이 가져가고, 아버지에게 자신이 발명했다고 거짓말을 해버립니다. 제이스는 당연히 아버지에게 자신이 만들었다고 주장했지만, 고작 다섯 살의 제이스보다는 스물세 살인 장남이 만들었다는 것이 더 타당했기에 아버지는 제이스를 거짓말쟁이로 여기고 훈육 차원에서 체벌합니다.
억울했던 제이스는 계속해서 자신이 만든 묘약이라고 주장했지만, 첫째 형의 이간질로 제이스는 루바스 가문에서 고립되고, 결국 아무도 믿지 못하는 인간불신자가 된 상태로 앙겔로풀로스 가문의 양자로 입양됩니다.
입양된 이후로도 인간불신자였던 것은 고쳐지지 않고 오히려 심해집니다. 양부모님과는 거의 대화를 하지 않고, 누나인 아그네스에게는 괴롭힘을 당하기 때문이죠. 그렇게 몇 년이 지난 후 아스토리아 왕립학교에 입학합니다.
아그네스의 부모님은 그래도 제이스를 위해 아그네스에게 두 사람분의 생활비와 용돈을 매번 기숙사로 보내지만, 아그네스는 제이스에게 한 푼도 건네지 않고 본인의 사치로 흥청망청 써버립니다. 제이스는 생활비가 없어서 학생들에게 자신이 개발한 ‘두근거림의 묘약’을 암거래합니다.
‘두근거림의 묘약’뿐만 아니라 앙겔로풀로스에서의 몇 년 동안 약 연구에 몰두했던 제이스는 새로이 개발한 마시면 사고가 깊어지고 기억력이 늘어나는 ‘지혜의 영약’, 피부가 맑아지고 머리카락에 윤기가 도는 ‘아름다움의 비약’, 잠시 주변 사람들에게 신뢰도가 올라가는 ‘믿음의 선약’ 등도 판매합니다. 이런 약들은 주인공이 공략대상을 유혹할 때 적절히 사용합니다.
물론, 약을 사용하지 않아도 캐릭터마다 공략하는 방법은 존재합니다. 그러나 난이도가 완전히 달라지고, 특히 제1 왕자인 니콜라스 알렉산드로스는 제가 마지막으로 한 시점에서도 ‘지혜의 영약’과 ‘믿음의 선약’을 사용하지 않는 공략법은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즉, 아리아나 영애나 주인공 캐릭터에게 니콜라스 왕자를 떠넘기기 위해서는 제이스의 약이 필수라는 이야기죠. ‘지혜의 영약’과 ‘믿음의 선약’을 제외하고도 ‘두근거림의 묘약’과 ‘아름다움의 비약’이 있으면 공략 난이도가 달라지니까 최대한 확보하는 게 좋겠죠.
게임 본편에서는 자금 운용이 힘들어서 모든 종류의 약을 확보하기는 어렵지만, 그건 아그네스의 자본력으로 해결하면 되겠죠.
그리고 제이스도 공략대상이라서 경쟁자 영애의 단죄 연출이 존재합니다. 다만, 제이스의 단죄 연출은 조금 특이해서 저랑은 아예 상관이 없으니까 괜찮겠죠. 제이스의 경쟁자 영애는 제이스의 약혼자인데, 제이스의 약혼자는 특수한 설정을 갖고 있으니까요. 그렇기에 단죄 연출을 받는 것도 그 약혼자분만 가능합니다.
무엇보다 제이스는 제 남동생이 될 아이인데 제가 신경 쓸 필요가 없습니다. 파노스 왕자와는 제 부주의로 인해 예상하지 못한 곳에서 만남 이벤트가 생겨버렸지만, 제이스에게 있어서 아그네스는 누나이니까요.
누나를 이성으로 보는 남동생이 설마 있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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