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화 〉 편지를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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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와 다른 모습의 니콜라스 왕자를 만나고, 니콜라스 왕자를 사모하는 아리아나 세이타리디스 후작 영애를 만나고, 어린 시절의 파노스 알렉산드로스 제2 왕자를 만나는 등 여러 만남이 있었던 무도회가 지나고 2주 정도의 시간이 지났습니다.
여전히 니콜라스 왕자는 일주일에 세 번씩 방문하고 있습니다. 요즘 니콜라스 왕자를 만날 때마다 느끼는 것은, 처음 만난 날보다 머릿결이 찰랑거리거나 피부가 매끈해지고 있는 것일까요. 스트레스가 줄어든 게 원인이 아닐까 싶어 최근 기분 좋은 일이 있는지 물어보았더니 ‘아그네스 영애를 만나는 매 순간이 기쁜 일입니다’라고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서글서글한 미소로 적당한 핑계를 댈 뿐이고 실제로는 교육 시간을 줄여서 스트레스를 적게 받는 것이겠죠.
일주일의 절반을 니콜라스 왕자와 보내는 비극적인 이야기와는 별개로, 얼마 전 좋은 소식 하나와 안 좋은 소식 하나가 같이 도착했습니다. 우선 좋은 소식 하나는 니콜라스 왕자를 노리는 아리아나 세이타리디스 영애가 얼마 전 편지로 연락해 줬다는 거죠!
「고귀하고 아름다운 아그네스 앙겔로풀로스 님, 평안하십니까.
저, 아리아나 세이타리디스는 무도회 날 아그네스 님을 만나고 두근거리는 가슴을 멈출 수 없어서 매일 밤 잠들기가 힘들 정도입니다. 아그네스 님의 배려와 겸손, 하늘과 같은 은혜에 감복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날 오만한 생각으로 잠시나마 아그네스 님의 기분을 상하게 한 것과 저를 위해 희생을 감수하게 하신 점은 대단히 죄송하게 여기고 있습니다. 과거의 어리석은 자신을 진심으로 반성하며, 사죄와 감사의 의미를 전하기 위해 가까운 시일 내에 앙겔로풀로스 가문에 방문하여 아그네스 님과 이야기를 나누고 싶습니다.
봄처럼 포근하고 가을처럼 멋있는 사계절보다 더 신비롭고 아름다운 아그네스 님. 아그네스 님이 편하신 시간을 말씀해주시면 제가 그날에 맞춰 약소한 선물을 들고 방문하겠습니다.
아리아나 세이타리디스 올림」
아리아나 세이타리디스 영애에게서 일주일 전 도착한 편지입니다. 아리아나 영애가 저를 믿고 저와 협력해 준다는 것은 좋은 징조네요. 원작 게임에서 아리아나 영애는 아그네스만 아니었으면 니콜라스 왕자에게 접근할 기회가 훨씬 더 많이 있었으니까요.
이 편지에 나오는 두근거리는 가슴을 멈출 수 없다는 말의 의미는, 자신의 꿈이었던 니콜라스 왕자와의 약혼이 이루어질지도 모른다는 것에 대한 기쁨의 표현이겠죠. 그리고 사죄와 감사의 의미를 전한다……확실하지는 않지만, 감사의 의미는 니콜라스 왕자와 이어지는 것에 도움을 주겠다는 말에 감사한다는 말이겠죠. 사죄의 의미는…… 별로 중요하지 않은 것이 아닐까요?
아마 비밀리에 저와 접선하기 위해 적당한 핑곗거리를 둘러대는 것이겠죠. 편지를 제가 아닌 다른 사람이 읽게 되는 경우의 수도 발생할 수 있으니까요. 현명하게 편지에 모든 내용을 적지는 않은 모양입니다.
어쨌든 아리아나 영애와 비밀리에 접촉하기 위해서는 니콜라스 왕자가 방문하는 날을 피할 필요가 있습니다. 첫 번째, 세 번째, 다섯 번째 요일은 거의 무조건 니콜라스 왕자가 방문하는 날이니까, 주말을 제외하면 매주 두 번째 요일과 네 번째 요일에 여유가 있네요. 그렇기에 매주 두 번째 요일에는 시간이 빈다는 답장을 작성했습니다.
「세이타리디스 가문의 아리아나 영애에게
보내주신 친서는 잘 읽었습니다. 저도 무도회 날 이후 아리아나 영애와는 친교를 다지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무도회에서 있었던 일은 전혀 마음에 담아두지 않으니 그로 인해 마음에 부담을 느끼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아리아나 영애의 순수한 마음씨만으로도 감사하게 여기고 있습니다.
저에게 사죄하실 필요는 없지만, 아리아나 영애와 친교를 다지고 싶은 마음은 진심이므로, 만나서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싶습니다. 저는 매주 두 번째 요일 오후에는 일정이 비어 있으므로, 언제든지 방문해 주시면 맞이해 드리겠습니다.
아그네스 앙겔로풀로스 올림」
가장 가까운 두 번째 요일은 사흘 뒤이지만, 편지가 도착하는 시간과 아리아나 영애 측에서 준비하는 시간 등을 고려하면 아마 한 달 정도는 걸리겠죠.
그리고 안 좋은 소식 하나는 이 편지입니다.
「지혜롭고 아름다운 아그네스 영애에게
아그네스 영애, 2주 전 무도회에서 처음 당신을 만난 날이 마치 어제 일처럼 생생합니다.
제 소심한 성격과 말더듬증이라는 난치병을 고쳐주신 일에 대해서는 진심으로 감사하고 있습니다. 그때 당신의 모습은 정말 지혜의 여신보다 현명하고 미의 여신보다 아름다웠습니다.
그 날 이후부터 당신에게 어울리는 남성이 되기 위해 하루하루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약속드렸던 사교댄스도 다음에 만나 뵈었을 때 부끄럽지 않은 모습을 보여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당신이 제 형님의 약혼자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는 가슴이 아팠지만, 어째서인지 제 마음은 식을 것 같지 않습니다. 오히려 저는 당신의 곁에 남기 위해 조금 더 나음 사람이 되고, 조금 더 당신의 마음을 이해하고, 당신을 한계 없이 사랑하겠습니다.
언젠가 당신의 옆에 설 사람, 파노스 알렉산드로스」
언뜻 보면 로맨틱한 연애편지처럼 보이지만, 파노스 왕자의 미래를 아는 저에게는 살인 예고장으로만 보입니다. 제발 봐달라고요. 니콜라스 왕자의 고문도 싫어서 도망치려고 하는데, 파노스 왕자의 폭력이 좋을 리가 없잖아요.
무도회에서 니콜라스 왕자의 관심을 분산시킬 생각이었는데, 다른 공략대상과 괜한 관계만 더 맺어버렸네요. 이럴 줄 알았으면 쓸데없는 오지랖을 부리는 게 아니었는데……너무 성급하게 행동한 점을 반성해야겠죠.
하지만 저질러버린 일은 돌이킬 수 없습니다. 우선 니콜라스 왕자와의 약혼자 관계는 계속 유지해서 니콜라스 왕자를 방패로 삼아 파노스 왕자를 떼어 놓고, 최후에 니콜라스 왕자는 아리아나 영애에게 넘겨버리면 해결되지 않을까요. 계획대로 잘 될지는 모르겠지만요.
그러기 위해서는 파노스 왕자를 떼어 놓을 때까지 억지로라도 니콜라스 왕자와 친한 척을 해야 할까요. 명확한 결정은 내리지 못 한 채, 일단은 소극적인 태도의 답장을 썼습니다.
「파노스 제2 왕자님에게
낭만적인 편지를 보내주신 것에 우선 감사 말씀을 드립니다. 파노스 제2 왕자님을 처음 만난 그날은 저에게도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파노스 왕자님이 보여주신 단시간의 성장은 저도 놀라웠습니다. 이제 새로운 인연을 찾아가시기 충분한 능력을 갖추셨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저라는 사람에게 한정되지 마시고 언제든지 파노스 왕자님의 마음에 드는 인연을 찾으시길 바랍니다.
아그네스 앙겔로풀로스 올림」
일단 지금은 니콜라스 왕자의 약혼자 상태이니 너무 적극적인 편지를 보냈다가는 논란이 생길 수도 있고, 장기적으로 판단했을 때에도 파노스 왕자와 너무 긴밀해지는 것은 위험합니다. 그렇다고 왕족에게 답신을 아예 보내지 않으면 그건 그것대로 문제일 수도 있으니 적절한 선에서 감정을 절제한 편지를 썼습니다.
연속해서 생기는 피곤한 일에 지끈거리는 머리를 싸매며 편지를 쓰고 있으니, 방 밖에서 누군가가 문을 두드렸습니다. 작은 노크를 두 번 한 것 보니, 아마 마리가 아닐까요.
“아그네스 님.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마리? 들어와요.”
문이 열리고 마리가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무슨 말을 하려다가, 책상 위에 놓인 편지들을 보았습니다.
“니콜라스 왕자님의 약혼자에게 연애편지를 쓰는 대담한 사람들도 있네요.”
“저도 그것 때문에 혼란스러우니까 굳이 언급하진 말아 주세요.”
요즘 마리는 제 고민을 들쑤시는 말을 많이 하네요. 전생의 기억을 찾기 전에는 이런 메이드가 아니었던 것 같은데요.
“이 편지는 좀 더 명확한 거절 의사를 표현하시는 게 좋겠네요.”
마리가 아리아나 영애에게 보낼 답신을 읽더니 말했습니다.
“그건 괜찮아요. 아리아나 세이타리디스 영애에게 보낼 편지니까요. 애초에 아리아나 영애에게 온 건 사과문 겸 친서잖아요. 후작 영애와의 친목을 거절할 이유는 없잖아요?”
“사과문 겸 친서…….”
마리가 고개를 갸웃거렸습니다. 제가 뭔가 이상한 말을 했나요?
“전할 말이 있어서 찾은 게 아닌가요? 아직 식사시간은 아니니까요.”
“네. 렌드로 님과 로렌나 님께서 부르십니다. 제2 회의실로 모셔오라고 하셨습니다.”
제1 회의실은 아버지가 외부 인사나 영지 관리인들과 회의할 때 사용하는 곳이고, 제2 회의실은 앙겔로풀로스 가문 내의 일을 가족들과 이야기하는 데 쓰이는 곳입니다. 저택에 회의실이 두 개나 있는 이유는……다소 부끄러운 과거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 시기쯤 할만한 가족회의라면, 게임 줄거리 중에서 ‘그것’뿐이겠죠. 책상 위에 있는 답신들을 봉투에 넣고 정리해서 마리에게 건넸습니다.
“다녀올게요, 마리. 이 편지는 각각 세이타리디스 가문과 파노스 제2 왕자 앞으로 보내주세요. 제가 받은 편지들도 정리해 주시고요. 다른 사람들에겐 말하면 안 돼요.”
“네, 알겠습니다.”
전서를 받은 마리를 두고 제2 회의실로 걸음을 옮겼습니다.
“아무리 봐도 연애편지입니다만…….”
마리가 무언가를 말했지만 멀어져서 잘 들리지는 않네요. 아마 중요한 이야기는 아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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