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9화 〉 카펠라의 마탑
* * *
콰앙! 쾅!! 하늘에서 유성우처럼 떨어지는 화염 마법에 베네쿠스의 거리는 불바다가 되었다. 그럼에도 마법사들은 눈길을 한 번 줄 뿐, 관심을 가지지 않고 자기 갈 길을 갔다.
이유는 간단했다. 악덕 마탑주 미호가 약해진 채로 베네쿠스에 돌아왔다는 소문이 퍼졌기 때문에 미호에게 원한을 가지고 있던 마법사들이 습격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진짜 쓸모없네요.”
도로시가 하늘에서 떨어지는 마법들을 소멸시키며 중얼거렸다. 그리고 애런의 뒤에 숨어서 벌벌 떨고 있는 미호를 확 째려봤다. 그 시선에 작았던 미호의 몸이 움츠러들어서 더 작아 보였다.
“어째서 미호 님 때문에 저랑 애런 님까지 피해를 봐야 하는 건가요?!”
“그… 뭐냐, 어쩔 수 없지 않느냐. 원래 동료란 서로 기대고 가끔은 민폐를 끼치는 사이가 아니더냐? 지금은 딱 내가 너희에게 민폐를 끼치고, 기대는 시간일 뿐이다.”
“누가 동료인가요? 굳이 따지자면 애완동물이나 다름없잖아요?”
“애완동물이라니…! 도로시, 네년은 나를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겠다?”
“ 도로시 님의 말이 반 정도는 사실인 것 같은데.”
애런은 쓸모없이 떨고만 있는 미호의 솟아난 귀를 만지작거렸다. 미호는 귀를 만지는 손을 툭 쳐냈다.
“마, 만지지 말거라! 귀는 민감한 부위…”
“두고 간다?”
“실컷 만지거라!”
애런의 말 한마디에 쳐냈던 손을 두 손으로 잡고 귀를 쥐여주었다. 푹신푹신한 귀를 만지며 마음의 안정을 취하면서 애런은 상황을 살폈다.
“몸으로 애런 님을 유혹하지 마세요. 하는 짓이 창녀랑 다를 바가 없네요.”
“창녀?! 감히 대마법사인 나를 보고 창녀라 했겠다?”
쿵쿵 걸어가서 열심히 마법을 막아주고 있는 도로시의 등을 때리려고 했지만, 능력을 발동한 도로시를 때리지는 못하고 부들부들 주먹만 쥐고 있다가 분한 표정으로 다시 애런의 곁으로 돌아왔다.
“이런 씨… 여우 구슬만 되찾아 봐라… 도로시, 저 고약한 년부터 실컷 괴롭혀줄 것이다.”
“오늘 밤에 소멸당하고 싶으세요?”
“... 미안하다.”
여러모로 대마법사의 자존심은 깨지다 못해 가루가 되어버린 미호는 자신의 신세에 깊은 한숨을 쉬었다.
최대한 구석진 곳에서 도로시가 계속해서 날아오는 마법들을 소멸시키고는 있다지만, 이래서는 도망을 치는 것도, 반격을 하는 것도 무리였다. 물론 소모전을 한다면 아무런 대가 없이 능력을 발동할 수 있는 도로시가 이기겠지만, 금 같은 시간이 아까웠다.
“미호, 내 마나를 계속해서 가져가고 있으면서 저런 허접한 마법사들을 해치울 마법 정도도 못 쓰는 거냐?”
애런의 말에 미호는 시선을 피하듯 고개를 푹 숙였다. 그걸 본 도로시는 어이가 없다는 표정이었다.
“애런 님, 저건 분명 무언가를 숨기고 있는 행동과 표정이에요.”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우물쭈물하며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중얼거린다.
“혹시 너희한테 버려지는 일이 있을까 봐 모아두고 있었다…”
“와… 진짜 추해요. 버리지 말라고 하면서 그런 상황까지 대비하고 있었나요?”
최악의 경우를 대비하는 것은 도로시와 같았지만, 적어도 도로시는 애런을 못 믿는 경우까지 대비를 하지는 않았다. 생존하기 위해서 철저하게 모든 경우를 생각하는 모습은 도로시조차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그럼 좀 도와줘. 어차피 쟤네 내버려 두면 계속해서 쫓아올 거잖아?”
“그렇기는 하다만… 애런, 네가 해치워주면 안 되겠느냐?”
“애런 님한테 부탁하지 마요! 안 그래도 몸 상태가 안 좋은데, 어디까지 염치가 없을 생각이신가요?”
솔직히 이 정도까지 오면 애런마저도 조금 실망스러울 정도였다. 뒤에 숨어있는 미호를 쳐다보자 눈이 마주쳤다.
“애런, 너마저 나를 그런 눈으로…”
“아니, 아무리 그래도 나한테 버려질 것까지 생각했다는 것은 조금 그렇네.”
“그렇지만 나는 버려지면 정말 죽는단 말이다…”
“챙겨주기로 한 이상 버릴 일은 없으니까 믿어줄래?”
미호는 잠깐 고민을 하더니 도로시의 옆에 가서 섰다.
“애런, 난 아무래도 도로시가 불안한데 말이야…”
“...”
도로시는 안쓰럽다는 표정으로 미호를 내려다봤다.
“대체 어떻게 살아왔길래 사람을 그렇게 못 믿는 거죠? 애런 님이 하지 않을 짓은 저도 안 할 거예요.”
“으으… 너희는 나를 아주 비참하게 만드는 재주가 있구나.”
금빛 꼬리 2개가 돋아났다. 꼬리 하나에 어느 정도의 마나를 저장해둘 수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가브리엘의 공격을 막아낼 때 꼬리 하나당 태양 하나를 막아냈던 것을 생각하면 상당한 양일 것이었다.
“oloclu oeem veao.”
빠른 영창에 날카로운 얼음이 생겨나 건물에 숨어서 마법을 난사하고 있는 마법사들을 향해 날아갔다. 공격이 정확했는지 더는 공격이 날아오지 않았다.
“... 벌써 많이 써버렸다…!”
꼬리는 하나도 사라지지 않았는데 미호는 중얼거렸다. 그걸 듣고 있던 도로시는 어이가 없어서 한숨을 푹 쉴 수밖에 없었다.
“어쨌든 숙소로 빨리 돌아가죠. 카펠라와 만나기까지의 일주일도 유익하게 써야만 해요.”
….
도로시는 애런의 곁에 껌딱지처럼 붙어있는 미호를 불편한 기색으로 바라봤다.
그놈의 마나... ! 그게 뭐라고 저렇게까지 달라붙어 있다는 것인가. 그렇게 효율 타령을 하더니 왜 여우 상태로 돌아가지는 않는 거란 말인가. 도로시는 미호를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자, 마법에 대해서 조금은 알려주마.”
미호는 애런의 다리 사이에 앉아서 설명을 하기 시작했다. 애런이 부탁해서 시작된 미호의 마법 강좌는 솔직히 도로시도 유익하다고 생각했다.
그냥 바라기만 해도 발동되는 신성 마법과는 다르게 원리가 있고,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마법의 결과가 천차만별이었다.
“그보다 나는 마나도 전혀 못 느끼는데.”
미호는 고개를 들어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애런을 올려다보았다.
“그런 사람이 존재한단 말이냐…?”
“몸이 워낙 평범해서 말이야.”
“그건 평범한 게 아니라 덜떨어진 것 같다만. 뭐, 못 느낀다면 마법은 사용할 수 없는데 말이야.”
신성 마법도 쓰지 못해, 마나도 못 느껴. 어떻게 되먹은 몸이냐고 미호는 중얼거렸다. 그러다가 생각이 바뀌었는지 갑자기 히죽 웃었다.
“아아… 이것 참. 마법을 쓰지 못하는 애런을 위해서 내가 옆에 붙어서 대신 마법을 써줘야겠네. 혼자서는 마나를 회복하지 못하는 나와 혼자서는 마법을 쓰지 못하는 애런, 꽤 어울린다고 생각하지 않느냐. 도로시?”
“... 쯧.”
“아니, 나는 내가 마법을 쓰고 싶은데 말이야.”
“그건 무리다. 마나 조차 느끼지 못한다면 도저히 방법이 없어.”
미호는 단정 지었다. 애런은 마법에 대해서 잘 알지는 못하지만, 대마법사가 얼마나 대단한 존재인지는 알고 있다. 그러니 미호의 말은 맞을 것이다.
“정말로 방법이 없어?”
“... 없다.”
“진짜예요? 그냥 이대로 애런 님 곁에 있으려고 거짓말하는 건 아니고요?”
“에에잇! 정말이다! 나보고 사람을 못 믿는다고 하더니 도로시, 네년이 나를 더 못 믿는 것 아니냐!”
도로시는 혀를 차며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사람을 못 믿는 것이 아니라 미호 님을 못 믿는 거예요… 애초에 사람도 아니면서 자신을 사람이라고 하는 건가요? 뻔뻔하셔라…”
“이녀니…”
이를 아득바득 갈면서 노려보지만 그래봤자 도로시의 손짓 한 번이면 다시 눈을 깔았다. 이 정도면 불쌍할 정도라고 애런은 생각했다.
*
일주일이 지나고 카펠라를 만나기 위해 약속했던 날이 되었다.
엘리베이터가 닿는 곳은 70층까지. 그 이후는 어쩔 수 없이 걸어가야만 하는 구간이었다. 나선 계단으로 끝없이 이어진 카펠라의 마탑을 오르는 것은 꽤 힘든 일이었다.
12년 동안 지하실에 갇혀있던 도로시, 마법으로 편리하게 이동을 하고 다녔던 미호, 정상까지 올라가기에는 체력이 너무나도 부족했다.
“애런 님, 죄송해요…”
애런은 현재 한 손으로는 도로시의 허리를 밀어주고 한 손으로는 미호를 잡아당기고 있었다. 아직 몸이 완전하게 회복되지 않은 애런보다도 둘의 체력이 더 문제였기 때문이었다.
“카펠라… 만나면 한 소리해야겠는걸.”
마탑의 엘리베이터가 70층까지 올라가지 않는 이유는 이후부터 10층 단위로 나오는 화려한 우주를 보여주기 위함이라고 한다.
확실히 올라갈 때마다 펼쳐지는 은하수나, 거대한 항성이 있거나, 별똥별이 계속해서 떨어지는 신비로운 광경이었지만, 이미 체력의 한계를 경험하고 있는 도로시와 미호는 바닥에 대자로 누워서 숨을 몰아쉴 뿐이었다.
그리고 드디어 마탑의 정상에 도달했다.
태양과 달, 작은 별들이 새겨진 거대한 석문은 카펠라의 방으로 가는 문이었다.
똑똑.
애런은 석문을 두 번 노크했다.
“들어와.”
방 안에서 몇 십 년만에 듣는 반가운 목소리가 들리며 문이 서서히 열렸다. 애런은 열린 문틈으로 서류를 작성하고 있는 아이보리색 머리카락을 보고 피식 웃었다.
“일단 중간에 있는 자부터 들어와.”
카펠라는 애런을 손가락으로 지목하며 말했다. 애런이 문을 지나자 석문은 다시 쾅 소리를 내며 닫혔다.
“... 바지.”
“?”
애런은 무슨 소리인지 이해하지 못하고 고개만을 갸웃거렸다.
“그거 죽을 때까지 묻어두기로 하셨잖아요.”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하는 카펠라의 얼굴이 점점 붉어져 갔다.
“묻어두기는 했잖아? 지금의 나는 그때와의 나랑은 다르니까, 약속은 지킨 것 아닐까?”
드르륵! 카펠라는 제 몸의 두 배는 될 것 같은 거대한 의자를 뒤로 밀며 일어섰다. 그리고 애런의 주위를 빙빙 돌며 환생한 애런을 살펴봤다.
“정말로 용사님이시네요... “
“그래, 나도 전생에 알던 사람을 만나니까 반갑다.”
그렇게 말하면서 애런은 카펠라의 머리에 주먹을 콩 쥐어박았다.
“...?”
카펠라는 자신이 왜 맞았는지 전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머리를 부여잡고 애런을 올려다봤다.
“아, 반갑기는 한데 내 여동생 괴롭혔던 거랑 여기 올라오면서 고생했는 것 때문에 한 대 때렸어.”
“????”
“마법을 자랑하고 싶은 마음은 알겠는데, 70층부터 계속 걸어서 올라와야하는건 너무 힘든 거 아니니?”
“... 여전히 제가 알던 용사님의 모습 그대로네요.”
“그런가?”
애런은 전생의 자신이 어땠는지 정확하게 기억이 나지 않았다. 딱히 전생처럼 살려고 하지는 않았지만, 옛날의 자신도 아는 카펠라가 보기에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 하고 생각했다.
“네, 똑같아요. 이렇게 저를 때리는 사람은 그때나 지금이나 용사님밖에 없는걸요.”
“그래?”
“근데 저는 그때랑 조금 달라졌거든요…”
그러면서 눈을 부릅뜨고 애런을 노려보며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제 반지… 용사님이라면 알아볼 수도 있었을텐데, 왜 여동생한테 선물로 주신 거죠?”
“아… 그거 말이지. 그게 또 이유가 있는데…”
“변명하지마. 나쁜 놈아.”
“응…?”
카펠라가 반말을 한 것도 당황스러웠지만, 나쁜 놈 소리를 들을 줄이라고는 예상도 하지 못했던 애런은 말문이 턱 막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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