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생 용사는 평범하게 살고 싶다-30화 (30/92)

〈 30화 〉 카펠라

* * *

오랜만에 느끼는 감시당하는 듯한 시선. 이자벨라는 차를 홀짝이며 익숙한 듯 신경 쓰지 않았지만, 아일라는 그런 시선에 익숙하지 않은 듯 안절부절못하며 가만히 있지를 못했다.

평소와 다르게 초콜릿도 먹지 않고, 눈동자만 이리저리 굴리고 있는 아일라의 모습이 불편한 이자벨라가 입을 열었다.

“아일라 님, 너무 신경 쓰지 않아도 돼요.”

“네? 저 별로 신경 안 쓰는데요.”

“딱히 창피해할 일은 아니에요. 그냥 평소 하던 대로하세요. 초콜릿을 입에 가득 넣어서 다람쥐처럼 볼을 빵빵하게 하란 말이에요.”

“제가 언제 그랬다고 그래요…”

아일라는 퉁명스럽게 대답하고는 조심스레 초콜릿을 입에 집어넣었다.

가브리엘이 돌아가고 난 뒤 이자벨라를 호위하던 성기사들은 모두 바뀌었다. 강한 악마의 아이에 대처하지 못하는 자들이라 이자벨라의 안전이 걱정된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하지만 이자벨라는 그것이 진짜 이유가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가브리엘은 이자벨라를 의심하고 있는 것이다.

부활 직전의 마왕을 정화하는 것. 그것은 현재의 이자벨라로서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설령 용사인 아일라가 돕더라도 말이다.

아마 그 부분에서 의심을 받는 것이겠지. 그리고 자신을 감시하기 위해서 성기사들을 새로 보낸 것이다.

“요즈음 아일라 님 수련은 어떻게 돼가고 있나요?”

“별거 있나요. 이제 모노크롬에서 제 상대가 될만한 사람도 없고… 혼자서 마법 연습이나 하고 있죠.”

모노크롬에 있는 아이들은 당연하고 성기사들 조차도 이제는 아일라의 상대가 되지 못한다.

그것은 아일라가 용사로 선택받으면서 신체가 강화된 이유도 있지만, 가브리엘과의 대련에서 실력이 순식간에 성장한 탓도 있었다.

“사실 그럴 줄 알고 제가 특별히 베네쿠스에서 초대한 분이 있어요.”

“베네쿠스에서요?”

“네, 베네쿠스에 있는 여섯 마탑주 중 한 분이에요. 사실, 마탑주 여섯 분에게 모두 초대장을 보냈지만, 다른 분들에게는 거절당했어요.”

아일라는 마탑이라는 것도 모르고 마탑주가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는 모른다. 하지만 이자벨라의 설명을 들으니 쉽게 만날 수 있는 사람은 아닌 듯했다.

똑­똑­.

그때 방문을 노크하는 소리가 두 번 울려 퍼졌다.

“성녀님, 베네쿠스에서 오신 마탑주 카펠라 님이십니다.”

“네, 들여보내 주세요.”

끼익. 문이 열리고 아이보리색의 긴 곱슬머리에 보랏빛 눈동자를 가진 소녀가 걸어들어왔다. 언뜻 보기에는 이자벨라나 아일라보다도 나이가 어려 보였다.

“누가 용사라고?”

카펠라는 아직 앳된 목소리로 방에 들어오자마자 이자벨라와 아일라를 번갈아 보면서 물었다. 이자벨라가 조용히 손가락으로 아일라를 가리켰다.

“네가 용사야?”

“네, 네…”

카펠라가 자신을 쳐다보는 시선이 좋지는 않아서 아일라는 자기도 모르게 어깨가 움츠러들었다.

“그 사람 진짜 죽었구나…”

아일라를 머리부터 발까지 샅샅이 훑어보는 카펠라. 그리고 그 눈은 무릎 위에 고즈넉하게 올려져있는 손에서 멈추었다.

“야, 손 좀 보여줘 봐.”

카펠라는 아일라의 옆에 앉더니 아일라가 허락하지도 않았는데, 손을 만지며 왼손 약지에 있는 반지를 뚫어져라 쳐다봤다.

“이 반지 어디서 난 거야.”

“네?”

아일라의 손가락에 끼워진 반지를 빼보려고 낑낑대더니, 짜증 섞인 목소리로 다시 말한다.

“이. 반지. 어디서. 난 거냐고.”

또박또박 말하는 카펠라는 왜인지 화가 난 것처럼 보였다.

“오빠가 선물해준 거예요.”

“오빠?”

카펠라는 반지를 빼려는 것은 포기했는지 손을 놓고 눈살을 찌푸렸다.

“카펠라 님, 왜 그러시는지 여쭤봐도 될까요?”

초면일 텐데 카펠라의 아일라에 대한 태도는 어딘가 가시가 돋아있었고,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반지에도 신경을 쓰는 것 같았다. 그것이 신경 쓰인 이자벨라가 보다못해 말했다.

카펠라는 아일라의 손가락에 있는 반지를 가리키며 말했다.

“이거 원래 내 반지야. 내가 용사에게 금화 2000닢을 주고 샀던 내 반지라고.”

“제가 그 반지를 살 때 같이 있었는데, 모노크롬에 있는 액세서리점에서 팔고 있었는데요?”

분명 아일라가 화났을 때 애런과 같이 간 가게에서 샀던 반지였다. 그리고 가게에서는 금화 7닢에 반지를 팔았다. 금화 2000닢의 반지를 선심 쓰듯 싸게 팔 리는 없으니, 무언가 오해가 있는 것으로 생각했다.

“확실해. 너 이 반지 못 빼겠지?”

카펠라의 질문에 아일라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게 증거야. 내가 아티팩트로 만들면서 끼면 손가락에서 빠지지 않도록 마법을 부여해놨어.”

“그런가요… 그렇다면 이미 아일라 님이 반지를 끼셨으니, 못 빼는 게 아닌가요.”

“자르면 돼.”

진심인가? 이 사람은 지금 진심으로 반지를 가지기 위해서 손가락을 자르겠다고 하는 것인가. 그것에 대해서 생각하느라 방에는 침묵이 돌았다.

“자르고 손가락을 불태워서 반지만 빼내면 된다고.”

“그렇게까지 하시는 이유가 있으신가요? 돈 때문이라면 제가 어떻게든…”

“돈이 문제가 아니야. 나한테 소중한 추억이 담긴 물건이야.”

카펠라의 태도는 완고했다. 어떻게든 아일라에게서 반지를 뺏어가려고 할 것으로 보였다. 마법을 가르쳐줘달라고 초대했는데 일이 왜 이렇게 된걸까. 이자벨라는 이마를 손가락으로 누르며 한숨을 쉬었다.

“저, 저한테도 소중한 추억이 담긴 물건이에요…”

아일라는 손으로 반지를 감싸며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애런이 도망치고 난 뒤 선물 받았던 반지와 목걸이를 보며 견디고 있던 아일라는 반지를 넘겨주고 싶지 않았다.

“...”

그걸 본 카펠라는 한숨을 푹 쉬었다.

“그래, 잃어버린 내 잘못이지… 이런 어린애한테서 뺏어서 어쩌겠다는 거야. 그 사람도 이미 죽었는데.”

카펠라는 조용히 중얼거리더니 손을 뗐다. 스스로 한 말에 어깨가 처지며 얼굴이 어두워지더니, 혀를 차고 욕을 하기 시작했다.

“씨발놈. 그렇게 혼자 살다 죽으니까 행복했냐.”

욕을 하면서 화가 난 것처럼 보이지는 않고 오히려 슬퍼하는 것처럼 보였다.

“카펠라 님의 말씀을 들어보니까 저번 용사님과 아는 사이신 것 같으신데, 혹시 그것 때문에 와주신 건가요?”

“그래, 새 용사가 생겼다는 것은 원래 용사가 죽었다는 얘기니까 그걸 확인하려고 왔지.”

마탑주인 카펠라와의 시간은 아일라의 마법 수련을 위한 것이었지만, 이자벨라는 전부터 머리 한편에 자리 잡고 있던 의문을 풀고 싶었다.

“제가 전 용사님에게 관심이 있어서 그런데, 혹시 전 용사님에 대해서 아시는 것에 대해서 말씀해 주실 수 있나요?”

“해줄 수는 있다만, 얘기하느라 시간을 보내면 얘한테 마법 가르쳐 줄 시간이 줄어들 텐데. 괜찮겠냐?”

카펠라는 손가락으로 아일라를 가리키며 말했다. 이자벨라는 눈만 깜빡거리고 있는 아일라를 보며 물었다.

“아일라 님, 제가 전에 했던 말 기억하죠? 솔직히 궁금하지 않나요?”

“아… 성녀님 머리 뜯겼을 때 했던 말이요?”

“네.”

“저는 솔직히 그거 오빠가 한 헛소리라고 생각하거든요? 근데 뭐, 성녀님은 믿으시는 것 같으니까, 이걸로 판단할 수 있으면 괜찮은 것 같아요.”

둘의 의견은 같았다. 카펠라에게 들은 얘기를 나중에 애런을 만났을 때 말해서 안다면 정말 전생에 용사였을 것이고, 모른다면 그냥 중2병에 걸렸던 것이겠지.

하지만 이자벨라의 마음은 이미 애런은 용사의 환생이라는 것을 확신한 상태였고, 애런의 전생에 대해서 듣고 싶은 것이었다.

카펠라는 팔짱을 끼고 오래된 기억에 대해서 떠올리기 시작했다. 많은 일이 있었기 때문에 어디서부터 얘기를 할지에 대해서도 고민하다 관뒀다. 그걸 하나하나 다 얘기하다 보면 하루 동안 얘기를 해도 부족할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뭐 듣고 싶은 거 있어?”

“전생 용사님은 얼마나 잘 생기셨나요?”

이자벨라의 마음속에 있던 궁금증. 애런이 그렇게 입에 달고 다니던 지금의 자신은 전생에 비하면 오징어라던 그 말. 그것이 이자벨라는 너무나 신경 쓰였다. 카펠라는 예상과 다른 질문에 헛웃음을 지었다.

“고작 그런 게 궁금했어?”

“네, 엄청요.”

“말로 표현은 잘 못 하겠지만… 어느 정도냐면 내가 그 사람을 만나고 난 뒤로 다른 남자들은 고블린이나 오크처럼 보였으니까, 그 정도라고 알아서 생각해.”

“너무 궁금한데... 카펠라 님이라면 마법으로 보여주실 수도 있지 않으신가요?”

그 말에 카펠라는 손을 저으며 말했다.

“관둬라. 괜히 눈만 높아져.”

“그런가요.”

이자벨라는 아쉽다는 듯이 입꼬리를 늘어뜨리고 다음 질문을 했다.

“그럼 용사님의 성격은 어떠셨나요?”

“성격? 성인군자, 천사, 바보같이 착한 놈. 이렇게 불렸으니까 어떤 성격인지는 알겠지?”

“착하다..?”

자신이 기억하고 있는 애런을 떠올린다. 착했냐고 하면 착하기는 했다. 아일라한테는 말할 것도 없고, 자신을 대할 때도 행동이나 말에서 배려한다는 것이 느껴졌었다. 그렇다고 천사라고 불릴 정도는 아니었던 것 같았다.

“그렇게 잘생기고 착하셨으면 여자들한테 인기가 많았겠네요. 여자관계는 어떠셨나요?”

카펠라는 그런 것까지 궁금하냐고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이자벨라를 쳐다봤다. 그러나 눈을 반짝이며 자신을 쳐다보고 있는 것을 보니 대답을 해줄 수밖에 없었다.

“인기는 많았지. 내가 알기로는 그 사람이 마왕을 죽이고 난 뒤로 같이 살자고 했던 녀석들도 많았는데, 거절하고 혼자 은거하고 살았어.”

“네? 왜요? 혹시 동성애자셨나요?”

“그건 나도 모르지.”

“성녀님, 그런 거로 오빠가 한 말이 진짜인지 알 수 있는 거예요?”

아일라는 이자벨라의 질문을 조용히 듣고 있다가, 이게 애런이 전생에 용사였던 것을 확인하는 것과 무슨 관계가 있나 싶어서 물었다.

“아, 아… 그냥 제가 궁금해서 물어봤어요.”

“뭐예요. 그럼 제가 물어볼래요.”

몸을 돌려서 옆에 앉아있는 카펠라를 바라보며 직접적으로 묻는다.

“혹시 전 용사님만 대답할 수 있는 질문 같은 게 있나요?”

“그런 건 또 왜 물어보는지 알 수가 없네.”

“그게요. 제 오빠가 자꾸 자기는 전생에 용사였다고 했는데, 저는 아무리 봐도 헛소리 같거든요. 근데 성녀님은 그 말이 진짜인 것 같다고 해서요.”

아일라의 말에 카펠라는 눈살을 찌푸렸다.

“자기가 전생에 용사였다고?”

“네, 그렇게 말하는데 그런 일이 있을 리가 없잖아요?”

“아니 가능해. 흑마법이라면 그런 짓이 가능해.”

“네..?”

아일라는 눈을 깜빡거리고, 카펠라는 심각한 표정으로 손톱을 물어뜯으며 혼잣말을 했다.

“그 정도의 흑마법이 가능한 자라면… 누구지? 그보다 흑마법을 사용하는 마족이 용사를 환생시킬 이유가 있나?”

“확인해보게 조금 전에 물었던 질문에 대답이나 해주세요.”

“질문이 뭐였지.”

“전 용사님만 대답할 수 있는 질문이요.”

옛날부터 오빠가 했던 헛소리가 진짜라고? 병이 있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라 진짜일 수도 있다고?

생각해보면 어렸을 때부터 나이에 맞지 않게 성숙하기도 하고, 누군가에게 배운 적도 없는 검을 잘 쓰고 요리도 잘했다. 그게 환생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이미 오랜 세월을 살았던 사람이었기 때문이라면 다 말이 된다.

그러면 남이라고 봐야 하나? 다음에 만났을 때는 어떻게 대해야 하는 거지? 그런 생각에 머릿속이 혼란스러운 아일라는 대답을 재촉했다.

“뭐 없어요? 카펠라 님하고 전 용사님만 아는 기억 같은 거 말이에요.”

“있긴 한데…”

옛 기억을 떠올린 카펠라의 얼굴이 붉어지며 말하기가 곤란하다는 듯이 대답을 회피했다. 아일라는 답답한 마음에 카펠라의 어깨를 잡고 흔들었다.

“빨리 말해줘요..!”

“그건 말 못 해. 절대로.”

하지만 카펠라는 입을 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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