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생 용사는 평범하게 살고 싶다-29화 (29/92)

〈 29화 〉 말셀러스 저택

* * *

종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번식이 필수적이다. 그것은 인간은 물론이고, 천사와 악마에게도 적용되는 이야기이다.

인간은 남성과 여성이 있으면 새 생명을 만들어낼 수 있다. 하지만 천사와 악마는 다르다.

그들은 성이 있을지언정, 새 생명을 만들어내지는 못한다.

“그럼 너희는 어떻게 태어나는데?”

애런은 검을 쥐었다 말았다 하며 짜증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당장 눈앞에 있는 마족을 죽일지 말지 고민하고 있었다. 파이몬이 애런의 적이 아니라고 한들 모든 마족이 인간의 편은 아닐 테니, 긴장을 놓지 않고 있었다.

[우리는 인간으로부터 태어난다. 인간은 인간을 낳지만, 인간의 선함은 천사를 낳고, 인간의 악함은 악마를 낳는다.]

“뭐?”

애런은 난생처음 듣는 소리를 멍하니 듣고 있었다. 천사나 악마가 인간으로부터 태어난다? 이게 무슨 헛소리일까.

[천사는 신성 마법 같은 기적을 일으켜주고 인간들이 자신들을 믿고 따르게 하며 선함을 극대화한다. 그리하여 자신들의 수를 늘려 힘을 키우는 거지.]

“그래, 그놈들이 신앙심만 있다고 대가 없이 그런 기적을 일으켜줄 리가 없지.”

신앙심이 강하면 그만큼의 수준 높은 기적을 일으켜준다. 그걸 다른 사람들이 보고 천사를 믿는 자들이 더 생길 것이고 그들이 다시 신성 마법을 사용하고... 이 과정을 반복하는 것이었다.

원래도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결국 자신들을 위한 것이면서 선심 쓰듯이 기적을 일으키는 천사가 더욱더 마음에 들지 않게 되었다.

[악마는 인간을 죽여 공포에 떨게 하고, 부정적인 감정을 숨기지 못하게 해서 악함을 극대화하지.]

“너네도 천사랑 똑같네. 아니, 천사가 악마랑 똑같다고 해야 하나.”

[뭐, 진정하고 계속 들어봐라.]

씩씩거리며 천사와 악마에게 욕을 해대는 애런을 마왕이 진정시켰다.

[나도 내 딸의 계획이 무엇인지는 정확하게는 모른다만, 이 섭리를 끊으려고 한다. 그렇게 해서 악마는 굳이 인간을 죽이고 공포를 심어줄 필요가 없이 스스로 번식이 가능하게 하는 것이 목표라는 것은 알고 있지.]

“그럼 마족과 적대할 필요는 없다?”

[그건 아니지. 내 딸이 마왕이라고 해봤자 마족의 일각일 뿐이다.]

마왕이라면 마족의 왕이 아닌가. 그런데 왜 마족의 일각이라고 말하는 것인지 애런은 이해하지 못하고 물었다.

“마족의 일각?”

[마계에는 총 7명의 마왕이 존재한다. 인간의 칠죄종에 의해 태어난 강한 악마. 그것이 바로 마왕이다. 그리고 마왕을 다스리는 악마의 신, 마신이야말로 마족의 뜻 그 자체라고 할 수 있지.]

“허어…”

마왕이 하나만 있다고 해도 전생의 인간들은 버거워했다. 하지만 그런 마왕이 7명이나 있다고 한다. 거기에다 신 같은 존재도 있다고 하니, 그 소리는 그들이 마음만 먹으면 언제나 인간을 멸망시킬 수 있었다는 뜻이나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그러지 않은 이유는 인간이 없으면 악마도 태어나지 않으니까.

애런은 아무것도 모르는 인간들을 내려다보면서 자신들의 존재를 위한, 동물을 사육하듯이 인간을 기르는 것이 역겨웠다. 꽉 다문 입에서 뿌득 소리가 났다.

“그러니까 네 딸을 제외하고는 인간의 적일 수도 있다는 거지?”

[그렇다. 네가 죽었다는 사실이 알려진다면 그들은 인간계를 다시 침공하기 시작할 테지.]

“또 많은 사람을 죽이고 공포를 심어줘서 수를 늘리겠다고?”

그런 사실을 알고 있더라도 이제 홀로 마족을 막아낼 수 있는 강한 힘이 없는 애런은 그걸 막아내겠다는 소리는 하지 못했다. 지금의 애런은 사람들이 죽어 나가더라도 주변에 있는 사람을 지키는 것도 벅찼기에 마족을 비난하며 욕을 했다.

하지만 그런다고 상황이 바뀌는 것은 아니다. 애런은 여전히 무릎을 꿇은 채 땅을 쳐다보고 있는 악마를 내려다보며 묻는다.

“파이몬이 전한 얘기는 들었고, 그보다 이 저택에서는 무슨 짓을 하고 있던 거냐? 말셀러스 같은 인간이 악마의 아이를 만들어낸 것은 아닐 테고.”

악마는 땅을 보고 있느라 애런의 표정을 보지는 못했지만,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는 애런의 시선에서 소름이 돋을 것 같은 살기를 느꼈다. 비록 전생처럼 강한 힘을 가진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내용물이 바뀐 것은 아니었기에 이 정도는 가능했다. 악마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악마의 아이를 인공적으로 만들어내는 실험을 하고 있었습니다. 만약 모노크롬에 풀어놓은 강한 악마의 아이를 용사님이 마왕님을 몸에 봉인하지 않고, 어른이 되었을 경우를 대비해 강제로 악마의 아이로 만들기 위함입니다.”

“모노크롬에 풀어놓은..? 설마 그게 너네가 일부러 풀어 둔 거였나?”

애런은 검을 악마의 목에 갖다 댄다. 마기로 강화된 검은 힘을 실어 휘두르지 않더라도 악마의 목을 종이를 베듯 쉽게 베어낼 것만 같았다. 그렇다고 악마는 그 검을 피할 생각은 없었다. 자신의 주인인 교만의 마왕 파이몬이 무슨 일이 있더라도 용사와 대적하지 말라고 했기 때문이었다.

“... 네, 맞습니다. 파이몬 님은 용사님이 신앙심이 부족할 테고, 그 부족함을 메꾸기 위해서 마왕님을 몸에 봉인하리라 생각하셨습니다.”

“씨발년이.”

그 악마의 아이가 아일라의 목숨을 노렸다. 만약 그것 때문에 아일라가 다치기라도 했었더라면, 눈앞에 있는 악마를 죽이고 파이몬도 죽이려고 했겠지만 그런 일이 일어나기 전에 애런이 막았다. 설령 그런 일이 있었더라도 지금의 애런에게는 마왕을 죽일 힘도 없었다.

“하아…”

애런은 심호흡을 하며 겨우 화를 억눌렀다. 그걸로는 부족했는지 머리도 벅벅 긁더니 몇 번 정도 욕설을 내뱉었다.

“알겠다… 내 몸에 마왕이 있는 건 봤을 테니, 이제 저딴 실험은 그만하고, 나중에 자세한 얘기는… 파이몬이 못 오냐?”

“네, 파이몬 님은 마왕이 되신지, 얼마 되지 않으셨기에 그걸 못마땅하게 여기는 자들이 있습니다. 그 때문에 섣부르게 자리를 비우지 못하시는 상황이십니다.”

“그래, 얘기는 똑바로 들었다고 전해.”

“알겠습니다.”

악마는 고개를 숙인 채로 일어서더니 검붉은 색의 날개를 펼쳤다.

“먼저 물러나 봐도 되겠습니까?”

애런은 악마의 말에 대답하지 않고 그저 한숨만 쉬었다. 악마는 눈치를 보고는 창문을 조심스레 열고 밖으로 날아갔다. 애런은 그렇게 날아가면 눈에 띄지 않겠냐고 생각하며 창밖을 내다봤지만, 악마는 마법을 사용했는지 그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그럼 나도 내 일을 해야겠지…”

옆에 거품을 물고 쓰러져있는 말셀러스를 쳐다봤다. 꽤 오랜 시간 동안 마기에 노출되었던 것 같은 말셀러스는 그저 아아… 소리밖에 내지 못하며 제정신을 유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스윽. 부드럽게 휘두른 검은 말셀러스의 목을 베었다. 그리고 그 목을 가지고 무법지대로 돌아가려는 순간.

콰아아앙! 엄청난 충격이 땅을 타고 저택을 흔들었다. 애런은 무슨 일이 생겼는지 확인하기 위해서 창밖을 내다봤다. 쩌어어억! 말셀러스의 저택을 감싸고 있던 방어막에 큼지막한 금이 생기더니 유리가 깨지는 듯한 소리를 내며 부서졌다.

부서진 방어막의 잔해가 땅으로 떨어지며 저택을 지키고 있던 경비원들을 덮쳤다. 날카로운 잔해는 경비원들의 몸을 베고, 꿰뚫으며 사람들을 혼란에 빠뜨렸다. 그런 혼란 속에서 경비원들을 제압하고, 저택을 향해 걸어오는 검은 경찰복을 입은 자들이 보였다.

벨라가 1순위로 경계해야한다고 말했던 대테러 부대였다. 그들이 저택 안에서 일어나는 일을 어떻게 알고 온 것인지는 알 것 같았다. 지하실에서 악마의 아이를 죽이고 흡수하는 과정에서 새어 나간 마기를 느끼고 온 것일 테다.

스르르. 애런은 눈살을 찌푸리며 몸에 검은 갑옷을 둘렀다. 그렇다고 애런이 그들을 상대할 생각인 것은 아니었다. 빠르게 그들을 지나쳐 도망치기 위해서 비스듬하게 자세를 잡고 도약했다. 콰앙! 저택의 바닥이 무너지며 애런이 빠른 속도로 날아갔다.

그 상태로 빠져나갈 수 있었다면 좋았겠지만, 대놓고 탈출하려는 애런을 대테러 부대는 놓아줄 생각이 없었다. 정원에서 방패를 든 덩치 큰 남성이 뛰어서 날아가는 애런을 막아섰다.

“어딜 도망가려는 거지?”

애런은 공중에서 빙글 돌아서 방패를 걷어찼다. 앞을 가로막은 남자만 날려버릴 생각이었지만, 발이 닿는 순간 남자도 방패를 밀어내서 애런을 날려버렸다.

“과연 테러리스트를 제압하는 자들답게 실력은 있는 모양이네.”

땅에 착지한 애런은 곧바로 검을 빼 들고 경찰들을 향해 달렸다. 방패를 이어서 세우고는 애런을 막아서려고 하는 경찰들. 애런은 검의 마기를 채찍처럼 만들어서 휘둘렀다.

촤악! 가장 왼쪽에 있던 경찰이 채찍을 막았으나, 멈추지는 못하고 채찍에 밀려 공중에 붕 뜬 상태로 다른 경찰들을 밀어냈다.

“?”

애런은 자신이 그들을 밀어냈다고 생각했지만, 그들이 밀려난 것이었다. 양방향에서 애런을 감싸듯이 방패를 들고 돌진한다. 꽈앙! 방패가 부딪치며 요란한 소리를 냈다. 애런은 위로 뛰어서 방패 사이에 깔리는 것은 피했다.

“이대로 땅에 꽂혀라!”

그 모든 것이 계획되었던 것인지 애런을 막아섰던 남성이 공중에서 두 손을 깍지를 끼고 애런을 내려치려고 하고 있었다. 여러 훈련을 통해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연계는 대테러 부대가 제압하지 못하는 자가 없게 만들었다.

하지만 애런은 달랐다. 이미 전생에 뛰어난 연계를 하는 마족을 만난 경험이 있는 애런은 이러한 상황에 너무나도 익숙했고, 대테러 부대의 다음 수를 미리 내다보고 있었다. 마기는 애런의 등으로 모여 갑옷을 두껍게 만들었다.

투웅! 그대로 위에서 내려찍으려고 하던 경찰에게 먼저 부딪친다. 균형을 잃은 경찰은 다시 공중으로 부웅 떠올랐고, 애런은 반동을 이용해 땅으로 내려갔다.

땅에 착지하기 전 경찰 한 명을 밟아서 무력화시키고, 채찍질을 한 바퀴 휘둘러서 달려드는 경찰들을 떨쳐냈다. 잠깐이지만 정문으로 나갈 길이 생겼다. 애런은 그 틈을 놓치지 않고 경찰들을 무시한 채 밖으로 달려 나가 도망쳤다.

*

“쯧… 돌아왔나.”

의자에 등을 기댄 채 담배를 물고 연기를 뿜어대는 벨라는 말셀러스의 목을 들고 온 애런을 보며 아쉽다는 듯이 혀를 찼다. 애런이 어깨를 으쓱하자 어느새 어깨에 올라타 있는 여우도 몸을 들썩였다.

“고깃덩어리가 되지 않은 것이 그렇게 아쉽나요?”

“건방진 녀석… 네 주둥아리에서 단말마가 아닌 정상적인 말이 나온다는 것이 아쉽기는 하다.”

애런은 말셀러스의 머리를 벨라에게 던져줬지만, 벨라는 받을 생각이 없다는 듯이 주먹으로 쳐냈다.

“이딴 쓰레기를 나한테 던지는 이유가 뭐냐? 시비 거는 거냐? 싸워줘?”

“아니… 확인하라고요. 그토록 원하던 말셀러스의 목이잖아요.”

“됐어. 이 버러지 녀석의 얼굴을 보고 싶지는 않아.”

벨라가 손짓을 하자 어깨에 작은 불새가 생겼다. 불새가 날갯짓을 하자 불이 붙은 깃털이 날아가 말셀러스의 머리를 불태워 없애버렸다. 말셀러스의 머리에는 눈길도 주지 않은 채로 벨라는 묵직한 주머니를 애런에게 던졌다.

“이건 주기로 했던 보수.”

애런은 금화 1000닢이 들었는지 확인하지 않고 주머니를 품속에 넣었다. 벨라는 입에 물고 있던 담배를 재떨이에 던지고는 묻는다.

“돈도 많이 벌었는데, 이제 뭐 할 거냐?”

“음…”

이자벨라가 말했던 2년 후까지는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아있다. 애런은 이미 남은 시간 동안 뭘 할지를 생각해두었다. 애런이 죽은 것을 알게 된 마왕들이 인간계를 침공하게 된다면 힘이 얼마나 있어도 부족할 것이다. 적어도 그때가 되면 주변 사람들 정도는 지킬 힘이 있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마침 수련하기에 걸맞은 상대도 이곳, 무법지대에는 있다. 애런은 미소를 지으며 벨라에게 말한다.

“전에 못 보여줬던 진짜 실력 한번 보여주실래요?”

벨라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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