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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육점이냐, 나만 빼고 A등급이게-110화 (110/112)

〈 110화 〉 018. 그 사람에 관해서 (7)

* * *

이곳은 꼭 교회 같습니다.

영국에 지옥이 펼쳐졌을 때의 교회 말입니다.

그곳에는 남은 어른이 적고 어린아이는 많아서, 어린아이들끼리 이런저런 역할을 수행해야 했습니다. 만으로 13살이 넘으면 교회의 잡일을 도왔습니다.

저는 어떤 교회에 정착했을 무렵 딱 11살이었는데, 나이를 속여서 요리를 배웠습니다. 계속 코흘리개 사이에서 코만 흘리고 있다간 뒤질 것 같았거든요.

뭐, 실제로도 그렇게 됐습니다.

저를 포함한 눈치 빠른 아이들은 속성 메이드 교육을 받고 해외로 날랐는데, 나머지는 좁은 열도 안에서 굶어 죽든 먹혀 죽든 다 뒤졌으니까요.

……이 이야기가 왜 나왔죠?

아, 맞아요.

회상이었습니다.

이곳이 마치 그 무렵의 교회 같다는.

“어린아이들이 많군요.”

저는 무심결에 그렇게 중얼거렸습니다.

누구에게도 건네지 않은 말이건만 현장에서 가장 책임감이 강하고 또 책임이 무거운 류장건 씨가 저를 돌아보았습니다.

복도를 놀이터 삼아 뛰어다니는 아이들을 혼내다가, 다시 그들이 버린 쓰레기를 줍고 있었습니다.

“……제가 이곳에는 어울리지 않겠네요.”

홀로 30대인 류장건 씨가 그렇게 중얼거립니다. 그쪽 연령을 지적한 건 아닙니다만 괜히 찔리는 모양입니다.

그리고 말투도 돌아왔네요. 여러 의미에서 허술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뭐, 그러거나 말거나 아무튼, 말이 나온 김에 궁금하다고 생각하기는 합니다.

이곳에는 20대 중후반도 거의 없습니다.

21살이라는 태유영과 그보다 한 살 많다는 선화란이 각각 류장건의 차차순위와 차순위의 연장자입니다.

“사연이 좀 많습니다. 근원부터 따지자면 스승님의 뜻이죠. 혼자 먹고 살 수 있는 나이의 수련생은 받아주지 않으셨거든요. 그런데 풍월검도가 세워진 지 이제 고작 7년이 지났으니 첫 기수의 가장 나이 많은 제자도 스물을 겨우 넘겼을 뿐이고요.”

그건 잘 알겠고, 그래서 그쪽은 왜 이러고 있습니까?

“저는 조금 예외적인 경우입니다. 우연찮게 첫 기수가 된 고아들을 돌보고 있었거든요.”

“……좋은 일을 하고 계셨군요.”

“아닙니다. 그건 그냥 지옥에서 살아남기 위한 수단이었어요. 그때 남부 지방은 법적인 통제가 약해져서 머릿수 위주로 굴러갔거든요. 저는 살아남기 위해 어린아이들이라도 데리고 있어야 했고요.”

그래도 어린아이들을 돌보고 있었다는 건 좋은 일입니다.

제가 떠돌이였을 때 모질게 대해졌던 경험이 많아서 그렇게 느끼는 걸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저의 생각은 결국 저의 느낌에 따른 것이니까요.

“어쨌거나 저는 유일한 예외로서 스승님 밑에서 풍월검도를 배우게 됐습니다. 겸사겸사 아이들도 돌보고 있고요. 스승님께서는 바깥 사람들도 도우라며 수시로 출가를 명하긴 하셨지만 여태 버텼네요. 아하하…….”

민망하게 볼을 긁적거리고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자택에 취집한 백수로군요.

“스승님께서 허락하셨습니까?”

“예. 저는 사실 남을 도울 여력이 있는 몸이 아니라서요.”

조금 어두운 낯빛을 띄는 류장건 씨. 아까도 말했지만 그는 이 나이 먹도록 C등급 지정능력자입니다.

대오각성하고 불굴을 얻기 전의 한나진 씨보다 조금 강한 수준인데, 한나진 씨는 사무직 지망이기라도 했죠. 이쪽은 청풍명월 밑에서 7년이 넘는 시간을 수련한 1기 수련생입니다.

동기 중에는 선화란도 있고요.

재능의 문제겠지요.

아니면 청풍명월의 말마따나 ‘뜻’을 얻지 못했거나.

그런 사연에 특별한 관심은 없습니다.

“풍월검도는 봉사 단체의 도움을 전부 거절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그거야 그렇죠. 스승님께서는 일평생 이곳을 자력갱생의 학원으로 여기셨으니까요. 도움 받아야 하는 병자들의 수용소가 아니라.”

그것 참 이상적이군요.

저는 이상적인 사람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곁에 있을 때는 타인이 초라하게 느껴지니까요.

실제로도, 청풍명월이 남긴 이상의 한계를 남은 제자가 떠맡고 있습니다.

“그 가르침을 계속 지킬 생각이십니까?”

“모르겠네요. 스승님께서 그렇게 비참하게 돌아가신 마당에 그 고집에 무슨 의미가 있나 싶습니다. 사실,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풍월검도 수련장이 이 이후 존속할지도 불투명합니다. 풍월검도를 가르칠 인재가 없거든요.”

“아무도?”

“……이제 없게 된 것입니다.”

선화란을 말하는 모양이군요.

들은 바에 의하자면, 선화란은 청풍명월과 마찬가지로 풍월검도의 모든 기술을 구사할 수 있는 유일한 인물이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만일에라도 청풍명월이 죽게 된다면 그 의지를 이을 직계제자로 점지되었던 것이지요.

물론, 지금에 이르러서는 아무 의미도 없는 이야기입니다.

“선화란을 생각하면 아직도 속에 천불이 치밀어 오릅니다.”

“머즐드독스를 비롯한 저희 팀원들이 최선을 다해 돕고 있습니다. 너무 염려하지 마십시오.”

“예, 그 부분에 대해서는 정말 감사하게 생각하지만…… 그렇지만, 그 여자가 어떤 인물이었는지는 여러분들도 알아야 합니다.”

화풀이를 하고 싶은 모양입니다.

성토라고도 하죠.

저는 그걸 듣는 것을 싫어하지 않습니다.

사람은 타인에게 타인에 대해 화를 내면서, 은연 중의 자신의 일부를 흘리게 되거든요.

“선화란은 항상 다른 제자들을 깔보고 있었습니다. 저를 비롯한 모두를. 자신도 모든 기술을 다 구사할 수 있게 된 것은 아닌 주제에, 자신만큼 따라오지 못하는 다른 제자들을 욕보였지요.

그래서 나중에는 그 멸시와 분노를 스승님께 돌리곤 했습니다. 그 여자를 끝까지 신뢰해주는 스승님을 선화란은 몰래 증오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언젠가 이런 일이 발생할 거라고 예감했습니다.”

보세요. 조그마한 조각이 떨어졌습니다.

“선화란이 모든 기술을 구사했던 건 아닌 모양입니다?”

“아, 예.”

류장건 씨는 조금 벙찐 얼굴입니다. 아마 이 부분을 물고 늘어질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던 거겠죠.

그러나 선화란의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는 것처럼 어깨를 으쓱하며 가볍게 대답합니다.

“풍월검도의 절기 월룡비칠식의 마지막 한 획을 도저히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어려운 기술이긴 하지만 그래봤자 오래 배우면 익힐 수 있는 것이어서, 같은 기수의 유영이도 구사할 수 있는데도 말입니다.

그것 때문에 열등감이 어마어마했지요.”

그러면서 류장건 씨는 헛웃음을 흘립니다.

“참고로 저는 구사 못 해요. C등급이 다 그런 거죠 뭐…….”

그렇게 조금 가벼운 방식으로 끝난 대화.

저는 이 사람이 조금 나쁜 의미에서 한나진 씨를 닮았다고 확신합니다.

***

갑작스레 성립된 류장건 씨와의 착잡한 인터뷰가 끝나고, 수련장 대강당에 수많은 테이블이 나열됩니다.

꾸며서 말씀드리자면 연회장이고, 굳이 깎아내려서 표현하자면 잔칫상입니다. 어쨌거나 메뉴도 다양하고 규모도 성대합니다.

일견 지나친 환대가 아닐까 싶습니다만, 그렇지 않습니다. 류장건 씨의 말마따나 저희는 이곳의 고참 태유영이 모셔온 VIP이니까요.

그냥 VIP도 아닙니다. 관리국 상임이사 표결권이 주어진 머즐드독스가 직접 관리하는 VIP이지요. 스승님이 죽어 내부 단결이 무너질지 모르는 상태에서, 이런 인사들을 초청해낸 것은 현재 지도부 류장건에게 어마어마한 힘을 보태주는 요소입니다.

그리고 이왕 조력자가 온 거 더 비행기 태워서 큰일 해낸 것처럼 포장하는 것이지요.

누구 아이디어인지는 몰라도 제법 정치적입니다. 미래가 창창하네요.

뭐, 저희는 작은 아가씨를 등에 업고 맛있는 밥을 먹을 수 있어서 기쁩니다.

무엇보다 부재자를 실시간으로 알 수 있고 말이죠.

인원이 정해져 있으니만큼 의자의 개수는 기존 수련생들과 저희 둘을 더한, 딱 182석입니다.

선화란과 청풍명월이 쓰던 의자를 저희가 쓰게 되었으므로, 좌석 추가에 의한 혼선 가능성도 배제됩니다.

조장으로 불리는 조금 나이 많은 아이들이 인원을 하나하나 세어 나갑니다.

그렇게 해서 떨어진 결론.

“2명 모자랍니다.”

태유영이 난처하게 중얼거렸습니다.

이쪽은 부재자가 조만간 벌어질지 모르는 살인사건의 범인으로 추정된다는 사실은 모르고 있습니다.

그냥 차려놓은 식사에 비해 사람이 모자라니 쌀이 아깝다는 느낌입니다.

그런 건 아무래도 좋죠.

2명이면 정말 하늘에 감사한 숫자입니다.

……라고 생각한 순간.

“흐악! 늦어서 미안하드아! 아니, 미안하게 되었소!”

류장건이 대강당 문을 벌컥 열고 들어옵니다. 땀 범벅입니다.

부재자가 저 사람이었던 걸까요? 그럼 다른 한 사람은?

“헉, 헉, 아니 그게! 아까 혜윤이 혼을 좀 냈더니 애가 삐져서 산 속으로 도망쳤소!”

지치고 혼란스러운 류장건이 현대어와 사극투를 섞어 쓰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지금은 형식이 아니라 내용에 집중할 때입니다. 마침 눈치 빠른 큰 아가씨께서 묻습니다.

“그럼 부재자는 장건 아저씨하고 아까 그 꼬마였던 모양이네요. 계속 안 찾아봐도 되나요?”

“지리산은 저희한테는 텃밭이라서 당장 쫓아가야 할 만큼 큰 문제는 아닙니다. 무엇보다도 혜윤이는 엄청 강하고…….”

그 말대로, A등급에 준하는 지정능력자가 야산에서 조난 당할 일은 없습니다.

그 정도면 아마 자기가 길을 만들어낼 수 있을 겁니다.

그렇지만 눈치는 없고 정의감은 강한 태유영이 손을 번쩍 듭니다.

“암만 그래도 어린아이이지 않습니까? 몇몇이라도 나서서 찾아보는 게…….”

“제가 갈게요.”

큰 아가씨가 바통을 빼앗아버립니다. 나이스 플레이. 선수를 치지 않았더라면 부재자가 더 늘어난 채로 기자회견을 시작시켰을지 모르는 일입니다.

“식사까지 이렇게 준비해주셨는데 저희도 뭔가 돕고 싶어요. 마침 제가 염동력을 쓸 수 있어서 수색도 어렵지 않고요.”

“그래도 괜찮으시겠습니까? 아무리 그래도 여러분들을 위한 환영식입니다만…….”

“여기 있는 금발이 건배사도 전부 올린대요. 맞죠?”

아니, 잠시만.

굳이 수색을 시작한다면 다중화면을 사용할 수 있는 제가 가는 편이……?

그렇게 주장할 것을 눈치 챈 큰 아가씨께서 곧장 제게 달려와 속닥거리기 시작하십니다.

“괜히 상황 복잡하게 만들지 말아요. 여기 사람들이 가겠다고 하거나 우리 둘 다 가라고 하면 큰일이라구요!”

알고 있습니다.

블러디 헬입니다.

Bloody Hell이라구요.

저는 분명 창백해졌을 낯빛으로 착석합니다.

“……오늘 건배는 제가 책임집니다.”

크게 외치지도 않았는데, 곧바로 우와아아아아악! 하는 호응이 돌아옵니다.

중학교 수련회장의 조교가 ‘여러분들의 정성을 보아 오늘밤은 특별히 소등 시간을 정하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라고 선언했을 때 돌아오는, 혹은 그 이상의 환호성.

귀가 먹먹해집니다.

큰 아가씨께서는 제 희생정신에 엄지를 들어올리며 연회장을 나섭니다.

나는 나의 증오를 잊지 않는다. 언젠가 복수하고 말 것이다. 똑똑히 기억해두도록.

저는 그런 눈빛을 쏘아 보냅니다.

그래요, 어디 끝까지 가 봅시다.

그렇게 말하는 순간, 시계는 8시 28분을 가리킵니다.

만일 살인극이 벌어진다면.

그때까지 2분 남았습니다.

우리에게는 그것을 막을 수단도, 이유도 없습니다.

***

모든 채널에, 모든 뉴스에, 단 하나의 자막이 떠오릅니다.

지정능력자 이소영 중태.

동남의 수호자들 이세형 대표 사망.

***

바른생활 소녀인 큰 아가씨께서는 휴대폰은 거의 사용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그녀는 지금 뉴스를 보고 있을 겁니다. 저는 그 부분에 대해서는 제법 확신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지금 제가 궁금한 것은 설혜윤입니다. 아가씨께서는 설혜윤을 찾으셨을까요?

우리에게는 3가지 미래가 주어집니다.

첫째, 아직 설혜윤을 찾지 못했다면 우리는 설혜윤을 이번 사건의 범인으로 의심할 수 있습니다.

둘째, 설혜윤을 찾았다고 해도 사건이 벌어지는 동안 데리고 있었던 게 아니라면, 분명 이동시간에 대해서는 추가적인 설명이 필요함에도 불구하고 그녀를 범인으로 의심할 수 있습니다.

셋째, 설혜윤을 찾았으며 사건이 벌어지는 동안 그녀를 데리고 있었다면, 그래도 의심스럽습니다.

설혜윤은 A등급에 준하는 환각술사.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진실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지금까지 나타난, 그리고 앞으로 나타날 모습이 진상일지는 장담하지 못합니다.

모든 것을 의심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이쯤이면 답정너가 아닌가 싶습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유일한 활로는 설혜윤을 체포하고 쥐어박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하고요.

하지만 큰 아가씨가 돌아오게 되면서 우리는 조금도 예상하지 못한 어떤 변수를 맞이합니다.

새하얗게 질린 얼굴의 큰 아가씨는, 저를 향해 나지막이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이세형 대표 살아있대요.”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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