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1화 〉 018. 그 사람에 관해서 (8)
* * *
화면 속에는 익숙한 얼굴이 있습니다. 중대발표와 사망 소식이라는 각기 다른 두 가지 사안으로 오늘의 뉴스를 가득 채운 남자, 이세형 대표입니다.
다중화면을 이용해 영상통화의 화질을 개선합니다.
그렇게 해서 드러난 이세형 대표의 상태는 결코 멀쩡하지 않습니다. 우선, 그는 침상에 누워 있습니다.
침상 후면의 벽은 새카맣게 칠해져 있어 어떤 시설인지를 알기 어렵게 만들지만, 주변에 늘어진 각종 기재의 수준을 감안하자면 일단은 종합병원급 이상의 치료시설에 자리잡은 것으로 파악됩니다.
[아, 맞습니다. 병원입니다. 정확히 어떤 병원인지는 말씀드리기 어렵습니다만, 비공개 요인 치료실 같은 거라고 보시면 됩니다.]
그렇다고 합니다.
이어서 말해볼까요?
다시 말씀드리지만, 이세형 대표의 상태는 나빠 보입니다. 침상에 누워 있고 그 주변에 각종 기재를 늘어뜨리고 있으니 당연한 얘기겠군요.
굳이 하나하나 나열하자면 그의 오른팔은 두터운 붕대로 뒤덮여 있습니다. 거기서 끝나지 않고 붕대는 가슴을 가로질러 허리를 감고 있습니다.
화면상으로는 잘 보이지 않지만 하반신의 상태도 썩 좋지 않은 듯합니다.
무엇보다 얼굴 한쪽도 완전히 가려져 있습니다.
“부상 수준은 어떻게 됩니까?”
[그쪽이 신경쓸 부분은 아닙니다. 무엇보다도 우리에게는 시간이 없어요. 이제 막 의식을 되찾아서 곧장 수술로 들어가야 하거든요. 가능하면 간결하게, 그리고 날카롭게 대화했으면 합니다.]
“알았어요.”
곁에 있던 큰 아가씨께서 대신 대답하셨습니다. 이세형 대표는 제 얼굴은 모르지만, 머즐드독스 총수의 장녀인 큰 아가씨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큰 아가씨가 한나진 씨와 함께 활동하고 있다는 소식도 알고 있어서, 이쪽에 연락을 취한 것이지요.
그래서 그 연락이 무엇인가 하면.
[힌트를 더 주지 못해서 미안합니다. 제가 살아있다고 알려진 동안에는 감청의 위험이 있었거든요. 부디 거기 계신 두분이 제 의사를 알아주었다면 좋겠군요. ………그래서, 습격자의 정체는 파악됐습니까?]
“대표님이 습격당한 순간에 풍월검도 내의 부재자는 설혜윤이라는 꼬마 한 사람뿐이었어요. 환영식 명목으로 전원이 현장에 있었기 때문에 확실한 정보고요.”
[꼬마라. 살인극을 범할 정도의 나이인가요?]
설혜윤에 대해서는 제가 말씀드리는 편이 낫겠군요.
“10살 언저리입니다. 단편적인 감상으로는 살인을 범할 정도의 위인이 아닙니다. 하지만 환술 계통의 지정능력을 쓸 줄 압니다.”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진실인지 모르는군요. 현재 위치는 파악이 됐나요?]
“그게…… 아뇨.”
다시 큰 아가씨께서 나섭니다.
“멋대로 수련장 바깥으로 도망쳤어요. 세종시에서의 습격 당시에는 제가 혜윤이를 찾으러 나서긴 했는데 지금까지 발견이 안 됐고요.”
[지금까지?]
“네. 물론 지금은 다른 수련생들이 수색하고 있어요. 대표님이 습격당했다는 뉴스가 알려져서 환영식이 취소됐거든요. 그런데도 아직 감감무소식이네요.”
[그렇다면 일차적인 의심의 대상은 당연히 그 꼬마가 되겠죠. 이 부분에 대해서는 두분께서 잘 해결하리라 믿겠습니다.]
과다한 믿음이었습니다.
본래 믿음이라는 것은 과다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만.
어쨌거나, 이세형 대표는 비로소 자신의 청사진을 드러냅니다.
[대강 짐작하셨겠지만 저는 의도적으로 습격을 유도했습니다. 죽을 각오를 했던 건 사실이지만 죽지 않을 수단 정도는 있었고요.]
“이제 와서 말씀드리자면 무모했어요.”
큰 아가씨께서 쓸모없는 힐난을 퍼붓습니다. 하지만 이세형 대표는 쓰게 웃을 뿐입니다.
[아주 무모하지는 않았죠.]
큰 아가씨는 여전히 납득하지 못하고 계시지만, 이세형 대표의 말은 사실입니다.
실제로 이세형 대표는 자신이 공격당할 시점을 조절할 수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기자회견이 끝난 직후부터 그는 철통같은 보호와 관심을 받게 됐을 운명이었으니까요.
이세형 대표를 죽여야만 했다면, 유일한 기회는 기자회견에서 강경파를 선언한 그 순간뿐입니다.
물론 그 순간에도 쉬운 타겟은 아니었죠. A등급 지정능력자인 그녀의 딸이 경호를 서주고 있었을뿐더러 다수의 기자들이 현장에 몰려 있었으니까요.
그래서 살인마는 어쩔 수 없이, 그런 수단을 선택해야 했습니다.
[일격에 기자회견장 전체를 분쇄.]
“최소한 A등급 이상의 지정능력자가 동원됐겠군요.”
그리고 그 지정능력자가 전력을 휘둘러 무식하게 힘으로 찍어누른 것이지요.
하지만 상대방에게 주어진 기회는 단 한번뿐. 게다가 타격의 성공을 확인하고 돌아갈 여유도 없습니다.
그렇게 만들어진 빈틈을 이용해 이세형 대표는 살아남았고, 모종의 방법을 이용해 안전한 위치까지 이송됐다는 것이 사건의 전말입니다.
물론 의심 많은 큰 아가씨가 모든 걸 쉽게쉽게 넘어갈 리가 없죠.
“그러면 사고 현장에 발생했던 파계지점은 뭐죠?”
필요한 질문이라고는 저도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대답을 구하기 어려운 질문이라는 사실은 저만 알고 있는 모양이군요. 뭐, 우선은 당사자의 말씀을 들어보도록 하죠.
[모르죠. 기자회견장 전체를 파괴한 일격에 휘말리며 의식을 잃었거든요.]
그렇다고 합니다.
겨우 살아남았을 뿐인 이세형 대표가 사고 현장의 상황을 일목요연하게 보고할 수 있을 리가 없지요.
다만 이 덕분에 이세형 대표가 주목할 만한 사족을 하나 흘렸습니다.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그때 제가 제 눈으로 파악한 건 쏘영이뿐이었습니다.]
쏘영이, 즉 소영이라는 사람은 이세형 대표의 딸입니다. 지정능력자인 그녀가 몸으로 막아낸 덕분에 딱 목숨만 건진 모양이군요.
결과적으로는 고기방패가 된 딸도 상당한 부상을 입게 됐고요. 그런데 새삼 자각하건대 이세형의 곁에 그의 딸은 보이지 않습니다.
다른 병실에 있는 걸까요?
[예. 다른 병실에 있습니다. 저와는 달리 일반 병동이죠. 쏘영이는 제가 살았다는 걸 모르거든요. 그리고 여기서 하나 짚어두고 가건대 끝까지 몰라야 할 겁니다. 이 사안은 지나치게 위험해서, 저는 가급적이면 쏘영이가 무력화되어서 건드릴 필요조차 없는 전력으로 취급받길 바라거든요.]
“이 사태를 벌인 건 딸 때문입니까?”
[아뇨. 그런 목적이 아예 없었다고는 말씀드리지 못합니다만, 결코 주된 목적은 아니었어요. 제 본래 목적은 제 존재 자체가 빚어내는 혼선입니다.]
“혼선?”
[관리국 상임이사들의 표결 말입니다. 이제 이틀 남았어요.]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표결은 두 번에 걸쳐서 이루어집니다. 강경과 화친 둘 중 하나에게 표결하는데, 어느 한쪽이 2표 이상 우위에 서면 2차 표결은 취소되고 1차 표결만으로 결론이 떨어집니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상임이사들간의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아 2차 표결까지 갈 수밖에 없다는 게 대내외의 통상적인 판단입니다.
굳이 숫자로 계산식을 그려보자면 정부 3인의 화친과 초상연구원장의 강경 1표로 시작해서, 연합회가 자기들끼리 합의한 대로 강경파에 1표 행사, 삼성과 머즐드독스 불참, 변경의 늑대들 표결 거부, 풍월검도의 강경파 1표 마무리로 정확히 3대 3이 됩니다.
이 역시 대내외의 통상적인 판단입니다.
[지금 그 통상적인 판단이라는 것 그대로 굴러간 게 있습니까?]
“……그건 그렇죠.”
곁에서 듣고 있던 큰 아가씨께서 호응합니다. 위험부담을 싫어하는 사람이니까 저런 말은 꼬박꼬박 수용하는군요.
물론 저도 수용하고 있습니다. 저까지 통상적인 판단을 의심하는 건 아닙니다만 어디선가 배신표가 나오면 바로 4대 2가 되는 구조이지 않습니까?
잘 만들어진 통계를 뒤집는 건 언제나 뜬금없는 새끼의 욕망인 법입니다.
그리고 그 예측할 수 없는 욕망을 이세형 대표는 자신의 등장으로 무마하려는 모양입니다.
[저는 표결 당일까지 계속 죽은 척하다가 표결에 문제가 생기면 갑툭튀할 겁니다. 휠체어 타고 말이죠. 그럼 배신표가 나와도 최소한 2차 표결까지 끌고 갈 수 있고, 어쩌다가 일이 잘 풀리면 우리 입장에 유리하게 표결을 끝낼 수 있는 거죠.]
“알겠어요.”
그러면서 큰 아가씨께서는 중얼거립니다.
“숫자까지 따져가며 떠들어야 할 줄은 몰랐어요. 우리 모두 왜 이렇게 겁쟁이가 된 걸까요.”
[경험만이 사람을 겁쟁이로 만들죠.]
큰 아가씨는 그 표현의 뜻을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어쩌면 이해하고 싶지 않다는 듯한 얼굴을 했습니다. 볼을 부풀리고 규칙적으로 바람을 푹푹 빼내는 그 동작 말입니다.
하지만 저는 귀여운 척하고 싶지 않아서 때문만이 아니더라도 아가씨와 같은 동작을 취할 수 없었습니다.
저는 이세형 대표의 발언을 이해하고 있었거든요.
무엇인가를 잃는 경험은 앞으로 나아가서 끝없는 불안을, 뒤로 뻗쳐가며 헤아림없는 후회를 남깁니다.
그리고 앞과 뒤를 향한 그 감각은 다시 현재를 앗아갑니다. 그래서 그들은 남에게 빼앗길 현재를 제 손으로 망가뜨리지요.
같은 원리에서, 파계종에게 지구의 절반을 내어줘도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어쩌면 이미 지구의 절반 이상을 빼앗겼다고 믿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잡설이 길었습니다.
그냥 멘탈 쿠크다스들이 많다는 이야기입니다.
제가 상념에 젖어 있는 동안 큰 아가씨께서 건설적인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그래서 저흰 그렇다 치고 나진 오빠는 어떻게 해요?”
[아, 그거 말씀을 안 드렸군요. 일단 한나진 씨는 아직까지 제가 살아있는 줄 모릅니다.]
“앞으로도 계속 그렇게 해요?”
[예. 그렇게 합니다. 한나진 씨는 연기력이 떨어질 것 같아서요.]
정확한 예감입니다.
[쏘영이에게든 혹은 다른 누구에게든 제 생존이 알려지면 곤란합니다. 두분께서만 알고 계시다가 정 필요하다 싶은 순간에 알려주세요.]
아마 그런 순간은 끝까지 오지 않을 것 같습니다만.
“근데 나진 오빠는 멘탈이 약해서 걱정이에요.”
“괜찮습니다. 한나진 씨는 폭발하기 전까지는 억지로 견디는 타입이라서 이틀은 충분히 갑니다.”
제가 팩트를 전달하자 큰 아가씨께서 눈을 가늘게 뜹니다.
“나진 오빠 마음이 괴로운 건 똑같잖아요. 금발은 그게 걱정이 안 돼요?”
“그 부분은 해법이 있습니다. 한나진 씨는 미소녀와 일하는 걸로 괴로움을 잊는 스타일이지 않습니까?”
저도 큰 아가씨를 잠시 노려보아 줍니다.
바라보는 각도는 다를지 모르겠습니다만 저와 큰 아가씨는 모두 한나진 씨에 대해 잘 알고 있습니다.
이쯤에서 우리 둘의 견해를 합할 필요성이 있겠군요. 참고로 포토샵 레이어 합성 단축키는 컨트롤 E입니다.
그럼 CTRL E 꾹.
“한나진 씨가 해주었으면 하는 일은 제가 적절히 지시해두겠습니다. 물론 제가 시키면 잘 안 들어먹으니 작은 아가씨를 통해서.”
“사고치지 마요.”
“참치마요.”
집에서 준비해 온 회심의 개그.
그러나 큰 아가씨의 입꼬리는 미동도 없습니다. 치킨마요까지 뇌절하려다가 그만둡니다.
아무튼 한나진 씨를 생각하고 있는 것은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나쁜 짓을 저지르지는 않습니다. 좀 피곤하게 만들려는 것뿐이죠.
언급을 삼가는 것은 한나진 씨보다도 큰 아가씨께서 거부감을 느낄 내용의 퀘스트이기 때문이고.
아무튼 그래서.
[대강 이야기가 끝났으면 저는 수술실로 들어갈게요. 몸 상태가 확 안 좋아져서.]
“네, 수고하셨어요. 꼭 쾌차하셔서 다시 봬요.”
[예예, 아가씨도 제 편의 봐주셔서 고맙네요. 일 끝나면 총수님께 안부 전해주시고.]
그러면서 화면에 간호사들이 나타납니다.
수술실로 직행하려는 모양이군요. 명줄이 저렇게 질긴 걸 감안하면 버틸 겁니다. 저는 걱정없이 다중화면을 꺼버립니다.
그러나 아직 꺼지지 않은 휴대폰 영상통화 화면 속으로 이세형이 불현듯 목소리를 높입니다.
[그, 보고할 게 하나 있어요. 깨어나자마자 보고받아서 경황이 없었는데 지금 생각이 났거든요. 거기 있는 백인 분이 말씀하신 파계종의 위압이 느껴진다는 문 말인데요, 그거 말이죠.]
“예?”
그 순간, 이세형이 갑자기 비명을 지릅니다. 젊은 간호사가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합니다.
조금 나이가 많은 다른 간호사는 한숨을 푹 쉬더니 화면 너머의 우리에게 전달합니다.
[무리하지 말라고 제가 몇 번을 말씀드렸는데 굳이 통화를 하시네요.]
그대로 병상이 옮겨집니다.
흐려지는 의식 속의 이세형이 마지막으로 이렇게 중얼거렸습니다.
[그렇게 안 보이겠지만 파계종이나 다를 바가 없습니다. 의심의 범위를 넓히세요.]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