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8화 〉 018. 그 사람에 관해서 (5)
* * *
꼬마의 이름은 설혜윤이라고 합니다.
올해로 10살이라는데 명랑하고 귀엽습니다. 제갈씨네 딸내미 둘이 이런 성격이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언젠가 성격을 고쳐주겠다고 결심한 저였습니다만 지금은 메이드고 나발이고 때려치우고 이러고 살고 있네요. 인생사 새옹지마라더니.
알몸으로 대화를 이어나가는 것도 껄끄럽고 저도 저 해야 할 일이 있다보니 후딱 탕을 나서고 옷을 입었습니다.
근데 이 설혜윤이라는 꼬마가 저를 졸졸 쫓아옵니다.
언니 예뻐요. 언니 뭐해요? 언니가 여기 왜 있어요? 언니 외국 사람이에요? 이런 성격이면 좋았다고 한 거 취소하겠습니다.
“따라오지 마세요.”
“싫어요!”
그러면서 더욱 바짝 저를 추격합니다.
이런 상태로 어떻게 문중 내부를 어떻게 수색합니까?
물론 설혜윤은 아직 초등학교 고학년 레벨에도 도달하지 못한 어린아이에 불과합니다만 어쨌거나 풍월검도의 내부인입니다.
제가 문중의 시설들을 뒤지고 다닌 걸 아무런 악의도 저의도 없이 다른 수련생들에게 알리고 다닐지 모릅니다.
“이 지도는 뭐예요?”
아, 깜짝이야.
티내지 않고 쥐고 있던 태유영의 약도를 설혜윤이 낚아챕니다.
얼마나 빠르게 낚아챘는지 모릅니다. 지정능력을 사용한 것이 분명하군요. 이렇게 어린아이까지 수련생인 걸까요?
넌지시 그런 뉘앙스의 물음을 던지자 설혜윤은 의기양양 스탠딩을 취합니다.
“네! 혜윤이도 지정능력자예요! B등급!”
실화인가.
시험 삼아 설혜윤을 중심으로 다중화면을 전개해 봅니다.
저는 저보다 위압이 강한 B등급 지정능력자에게는 제대로 화면을 띄우지 못하니까요.
그리고 그 결과는 설혜윤의 주장대로였습니다. 정말로 다중화면이 작동하지 못합니다.노이즈로 가득한 화면을 치워버립니다.
설혜윤은 뭔가 싶어서 고개를 갸우뚱거리지만 제가 알 바는 아닙니다.
“그래서 이 지도는 뭐예요?”
이게 제가 알 바죠.
“화장실을 찾고 있었습니다.”
“화장실? 화장실은 바깥에 있는데요?”
“안에 있을 수도 있죠.”
“………하긴 그러네요?”
납득하는 겁니까. 감사합니다.
이제 그만 사라져 주었으면 더 감사하겠는걸요.
“그럼 언니! 혜윤이하고 같이 화장실 찾아요!”
“아뇨, 괜찮습니다.”
“혜윤이도 화장실 가고 싶어요! 혜윤이하고 같이 찾아요! 네? 네?”
그러면서 설혜윤이 제 손을 잡아끕니다.
하, 귀찮은 게 달라붙었군요.
어쩌면 오늘 수색은 여기서 시마이일지도 모릅니다. 전부 목욕탕 같은 데를 기어들어간, 그리고 거기서 잡생각만 거듭하다가 발각된 제 탓이겠죠.
그러거나 말거나 설혜윤은 무식한 힘으로 저를 잡아 당깁니다. 고등급 지정능력자를 뿌리칠 기력이 제게 있을 리가 없지요.
“안 그래도 안에 화장실이 없는 게 이상하다고 생각했어요! 사부님이 어딘가에 숨겨 놓은 게 틀림없어요!”
참 그렇겠군요.
“사부님이란 청풍명월 어르신을 말씀하는 겁니까?”
“네!”
해맑게 대답하는 설혜윤.
이 아이도 그 사람에게서 지정능력을 배운 모양입니다.
하지만 조금 이상하군요. 둘이 사제 관계였다면 개인적인 친분도 있었을 것인데, 이런 어린아이가 스승의 죽음을 인지하고도 이렇게나 밝을 수 있는 걸까요?
너무 슬퍼서 정신이 나가버렸다고 생각하기에는 평범하게 밝습니다.
궁금증을 이기지 못하고 청풍명월이 어디에 계신 줄 아냐는, 다소 완곡된 물음을 던지자 설혜윤은 이번에도 역시나 티없는 대답을 돌려줍니다.
“사부님은 사부님 방에서 수련하고 계세요!”
“……무슨 말입니까?”
“말 그대로인데요?”
“사부님 방은 뭐고, 수련은 뭡니까?”
서로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얼굴입니다.
어쩌면 청풍명월이 살아 있으며, 그 사실을 풍월검도의 내부인들이 알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의문이 스쳐갑니다.
하지만 그건 잘못된 추정입니다. 청풍명월의 죽음을 풍월검도들은 물론 각종 수사기관과 언론이 확인했으니까요.
부검까지 이루어진 마당에 그들 모두를 속이는 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합니다. 따라서 청풍명월은 죽은 게 맞습니다.
상황을 조금 긍정적으로 재해석해 살아남은 청풍명월이 이 아이에게만 진실을 알려줬다고, 희망적인 관측을 할 수도 있습니다만, 그건 그야말로 다른 가능성과 합리성을 짓뭉갠 일종의 망상에 불과합니다.
따라서 우리에게 주어지는 결론은.
“사문의 다른 언니 오빠들이 그랬어요! 사부님은 지금 수련 중이시라고.”
이 어린아이에게 스승의 죽음을 알리지 못했다는 것.
잠시 말을 잃습니다.
저는 동정적인 인간은 아니라서, 안타까운 마음이 솟구치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감정적인 인간이기는 해서 이 아이를 이 이상 제가 건드리는 것이 옳은 일인가 아닌가를 고민하고 있는 것입니다.
즉, 저는 이 아이에게서 사부가 스승하고 있다는 방으로 안내해 달라고 부탁할 수야 있겠습니다만, 그것은 그야말로 도리에 어긋나는 일이 아닐런지요.
물론 도리 같은 것을 지키는 인간도 아닙니다.
어디까지나 감정적. 망설이게 되는 것입니다.
다음에 행동할 방향을 뻔히 알고 있으면서도.
“……청풍명월 어르신이라면 화장실 위치를 알지도 모르겠군요.”
“어, 그건 그렇네요? 그렇지만 장건 아저씨가 사부님의 수련실에 들어가면 안 된다고 경고하셨는걸요.”
“그건 혜윤이에게 내린 경고였지요. 그러면 저는 괜찮지 않겠습니까?”
“그것도 그렇네요!”
그러면서 복도를 우다다다 달려가는 설혜윤.
저는 약도와 현재 위치를 대조해가며 설혜윤을 쫓습니다.
그렇게 몇 분을 걸었을까요. 설혜윤은 복도 끝자락에서 멈추어 섭니다.
그리고 아무것도 없는 벽을 마주본 채로 저를 기다립니다.
약도에는 이곳에 특별한 표시가 되어 있지 않으므로 저는 설혜윤이 길을 잘못 들었거나 아니면 다른 방향으로 돌기 위해 저를 기다리는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제가 설혜윤의 발치까지 왔는데도, 그녀는 움직이지 않습니다.
“뭐하는 겁니까?”
“여기예요, 사부님의 수련실.”
다시 주변을 둘러봅니다.
“벽밖에 없습니다.”
약도에도 아무 표시도 없고요.
하지만 설혜윤은 아까처럼 의기양양한 포즈를 취합니다.
“이 벽이 출입구예요! 환술로 모습을 감추었거든요!”
“………환술?”
그러면서 벽면에 손을 대는 설혜윤. 직후, 어깨를 짓누르는 강인한 위압이 느껴집니다.
단순한 B등급 수준이 아닙니다. 똑같이 B등급인 한나진 씨가 불굴을 발동할 때도 저는 물리적인 압박감을 느끼지 않으니까요.
저는 설혜윤의 뒷모습을 가만히 응시합니다.
이 아이가 그 선배 눈치를 살펴 등급 상승을 미루었다는 수련생들 중 하나인 모양입니다.
정식으로 판정을 받으면 B+ 내지 A등급이나 될까요.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그때, 벽면의 모습이 서서히 뒤바뀝니다.
환술이라는 표현 그대로 시각을 방해하는 정체불명의 껍데기 같은 게 붙어 있었는데 설혜윤이 위압을 운용하는 방향에 따라 그 결이 서서히 벗겨지는 것입니다.
저는 저 환술이 일종의 영역지정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렸습니다.
그리고 결코 풍월검도의 이름에 걸맞은 검술이 아니라는 사실도요.
“원래 이런 게 가능합니까? 환술이라든지.”
“혜윤이하고 몇몇 분들은 돼요.”
“신기하군요.”
“그죠? 그죠그죠? 그게요, 사부님은 풍월검도를 열 가지 기술로 나누었거든요? 혜윤이는 그중에서 환술을 제일 잘 해요! 그래서 지금처럼 사부님이 바쁘실 때는 혜윤이가 환술을 가르쳐주고 그래요!”
실컷 자랑하는 설혜윤. 확실히, 이 정도 지정능력자라면 다른 사람을 가르치는 것도 가능하겠군요.
어디까지나 학습으로 전해지는 성질이 있는 풍월검도의 지정능력에 한한 이야기이겠습니다만, 아무튼 대단한 인재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이런 환술은 혜윤이만 해제가 가능합니까?”
“네! 사부님이 직접 쳐놓은 거니까요! 다른 언니 오빠들이 꽁꽁 숨겨놨지만 혜윤이가 풀어냈어요!”
그렇다는군요. 짝짝 박수를 쳐주니 설혜윤이 콧김을 휙휙 내뿜으며 기뻐합니다.
이대로 더 칭찬해주며 설혜윤의 귀여움을 감상하는 것도 괜찮은 아이디어이겠습니다만, 그건 환술로 문이 드러나지 않았을 때의 이야기입니다.
왜냐하면, 설혜윤이 문을 드러내자마자 주변의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졌기 때문입니다.
“……문 너머에도 위압이 있군요.”
그 말에 설혜윤이 고개를 끄덕입니다.
실제로도, 숨겨져 있던 이 문 너머에는 위압이 존재합니다. 아주 어마어마한 위압 말입니다.
제 곁에 서 있는 고등급 지정능력자 설혜윤의 위압이 단번에 가려질 만큼 거대한 위압입니다.
등급을 추정하는 것은 무의미합니다.
왜냐하면 이건, 사람의 위압이 아니니까요.
파계종입니다.
“이 위압, 특이하지 않습니까?”
저는 은근슬쩍 설혜윤을 떠봅니다.
그러자 설혜윤이 이번에도 방정맞은 대답을 내놓습니다.
“맞아요! 엄청 강하니까요.”
모르는 걸까요?
조금 더 직설적으로 대응할 필요가 있습니다.
“파계종을 본 적 있습니까?”
“아뇨?”
“한 번도? 맞서 싸워본 적도 없습니까?”
“혜윤이는 싸워보고 싶다고 했는데 사부님하고 언니 오빠들이 못 싸우게 했어요.”
시무룩하는 설혜윤.
물론 당연한 판단입니다. 청풍명월과 선화란을 비롯한 강자들이 넘쳐나는데 이 어린아이를 병력으로 차출할 필요는 없었겠지요.
그리고 그 탓에 지정능력자와 파계종의 위압을 제대로 구분하지 못하는 듯합니다.실제로도 둘의 차이는 미묘하니까요.
지정능력자의 위압은 동그랗게 뭉친, 일정한 방향성을 지닌 힘이라면 파계종의 것은 사방팔방으로 흩어지며 찌르고 할퀴는 느낌입니다.
문 너머의 위압은 분명히 후자고요.
잠시 문고리에 손을 올려봅니다.
돌리려면 돌릴 수 있겠습니다만, 그 너머에 뭐가 있을지를 모르지 않습니까?
만일 문을 열었는데 S등급의 파계종 같은 게 튀어 나온다면 청풍명월과 선화란이 없는 풍월검도는 당해내지 못하고 파멸할 것입니다.
저희 둘이 죽는 건 당연하고요.
애초에 이런 끔찍한 괴물이 왜 이 문 너머에 있는 걸까요?
그리고 어떻게 이렇게 얌전히, 문 안에만 머무르고 있는 걸까요?
저는 문고리에서 손을 뗐습니다.
지금 열어선 안 됩니다. 언젠가는 확인해야 할지 모르지만, 그건 큰 아가씨와 한나진 씨를 비롯한 다른 팀원들과 협의한 이후에 있을 일입니다.
오늘은 여기에 이런 게 있다는 사실만 보고하는 것으로 만족합시다.
그러려는데, 설혜윤이 깔깔 웃습니다.
“언니, 그거 어차피 안 열려요.”
“무슨 말입니까?”
“스승님이 엄청 강한 지정능력으로 막아놨어요. 혜윤이가 열 수 없을만큼 강한 지정능력이요. 혜윤이도 환술을 푸는 게 전부예요.”
“열려고 했습니까?”
“네! 처음 발견한 그때 바로!”
정말 미친 짓을 했군요.
청풍명월이 이걸 봉인해 놓아서 다행입니다.
안 그랬으면 어떤 사단이 벌어졌을지 조금도 상상할 수 없으니까요.
“………계획 변경입니다. 바깥 화장실을 쓰도록 하죠.”
“네? 여기까지 왔는데 노크라도 해보고 가요.”
“아뇨, 이렇게 꽁꽁 숨겨놓았는데 열어달라고 하는 건 예의가 아닌 것 같습니다.”
“음음, 그래요?”
“그렇습니다.”
“그럼 알았어요. 바깥 화장실 가요!”
그러면서 이번에는 반대편 복도로 우다다다 달려가는 설혜윤.
저는 곧바로 그 뒤를 따라가려다가 멈칫합니다. 다시금 모습을 감추어가는 문 너머의 위압을 감각합니다.
어째서인지 이런 형태의 위압을 알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S등급의 파계종을 실제 대면한 적도 없는데 말입니다.
제가 알 수 있는 건 없습니다.
다만 재빠르게 이곳을 돌아다니며 얻은 정보들을 전달해둡니다. 파계종의 위압이 감지되는 숨겨진 문이라면 크나큰 단서가 되겠죠.
저는 이 정도 소득으로 만족하며 오늘 처음 만난 꼬마와 푸세식 화장실을 사용하고, 뒤늦게 산행을 끝마친 풍월검도 수련생들을 마당에서 마주합니다.
그들 사이에 끼어 있던 류장건이 설혜윤을 발견하고 펄쩍 뜁니다.
“혜윤이 너! 또 수련을 게을리 하였느냐!”
“꺄악! 사부님 흉내내는 바보 아저씨가 쫓아온다!”
갑작스레 벌어진 추격전을 멍하니 바라봅니다.
소란을 알아차린 태유영도 마당으로 따라 나오고요.
뭐가 뭔지 하나도 모를 무렵, 무의식중에 켠 네이버 뉴스를 타고 지정능력자 연합회가 표결 회의를 시작했다는 소식이 전해집니다.
간혹 동남의 수호자들의 이세형 대표를 주목하는 뉴스도 보입니다. 한나진 씨가 만나러 간 인간이지요.또라이이기는 해도 딸내미가 붙어 있어서 쉽게 죽을 위인은 아닙니다. 왜 저 인간부터 만난다는 건지.
……설마 로리가 붙어 있어서?
아니겠죠.
그런 물음을 이어나가는 와중에, 어느새인가 나타난 큰 아가씨가 저를 부릅니다.
눈빛이 썩어 있습니다. 무슨 일일까요?
“지금 막, 동남의 수호자들 대표에게서 연락이 왔어요.”
그렇군요.
“그 사람, 오늘 죽을 계획이에요.”
……….
………….
그렇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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