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3화 〉 017. 우리 딸이 너무 강함 (5)
* * *
내가 말했다.
“맛집이네요.”
세형이 말했다.
“그죠? 시장에서 국밥 하나 먹을 돈으로 여기서 국밥 하나 사 먹는다니까요.”
소영이 말했다.
“아빠는 여기만 오면 저 얘기야. 재미 하나도 없는데.”
랑이 말했다.
“………분하지만 맛있어.”
원래 오던 식당 찾아온 이씨 부녀나 아무거나 잘 먹는 누렁이인 나는 그렇다 치더라도, 랑은 미각이 까다로운 녀석이다.
그래서 가게 전체에서 풀풀 풍겨오는 돼지고기 누린내를 마주하자마자 안색이 탁해졌고.
나중에는 국밥이 나와도 안 먹고 버티겠다는 걸 소영이 ‘무바라! 무바라!’ 하면서 억지로 떠먹였다.
한사코 거부하던 랑이 사약 들듯이 딱 한 수저 물었는데 입에 고기가 들어오자마자 표정이 바뀌더니, 나중에는 우물우물 꼭꼭 씹어가며 먹어댔다.
“근데 소영이 사투리 쓰는 거예요?”
“그랬으면 좋겠는데 아니네요.”
세형이 뭔 소린지 알아먹기 힘든 대답을 내놓았다.
자기가 생각하기에도 횡설수설이었는지 해설이 달라붙었다.
“기왕 부산에서 활동하는 거 사투리 쓰면 귀엽잖아요. 오빠야, 오빠야, 밥뭇나, 그래서…… 가르치려고 했는데…… 제가 사투리를 안 쓴단 말이죠……. 이게 안 되네…….”
아까 등에 업혔을 땐 무의식적으로 오빠야, 라고 하긴 하던데. 물론 조금 어색하게.
그보다 뭘 가르치고 자빠진 거예요.
“꼭 귀여워서만이 아니더라도 동남의 수호자들 대표 딸내미가 사투리 쓰면 기삿거리 만들기 좋단 말이죠. 뭐, 지금 같은 판국에 캐릭터 구축해서 무슨 소용이 있겠냐만은.”
한탄하면서 국밥에 다데기를 첨가하는 세형. 허술하게 행동하는 듯 보여도 여기저기 노림수를 박아두는 인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취권 같은 생존 방식이 지정능력자도 아닌 세형을 지정능력자들의 단체 대표직에 올렸겠지.
그리고 지금도 그렇다. 은근슬쩍 자기 말하고 싶은 주제로 빠진 셈이니까.
“한나진 씨, 시간이 많지 않아요. 우리는 연구소로 돌아가기 전에 세종시로 향해서 관리국 상주 기자단을 만날 겁니다. 그리고 약속한 대로 한나진 씨와 입장을 같이 하겠죠.
그렇다면 당연히 현재 자행되고 있는 강경파 암살의 새로운 표적이 됩니다. 저는 빈손으로 일을 벌이고 싶지 않군요.”
즉, 우리가 파악한 정보를 당장 공유받고 싶다는 뜻이었다.
입장을 밝힌 시점에서 우리는 세형과 한 배를 탄 것이나 마찬가지였으므로 숨기거나 늦출 정보는 하나도 없었다.
나는 선화란이 범인으로 몰리게 된 경위, 즉 살해된 요인들의 시신에 남은 상흔부터 시작해 제니퍼가 실시간으로 전송해주고 있는 이슈들을 세형에게 넘겨줬다.
가볍게 듣고 가볍게 읽어내린 세형의 표정은 그 어느 때보다 무거워졌다.
“풍월검도 안에 진범이 존재하는군요.”
“일단은 그렇게 보여요.”
“끙, S등급 지정능력자와 A등급 지정능력자를 살해 가능한 인물은 풍월검도 내부에는 선화란밖에 없다고 생각했습니다만, 꼭 그렇지도 않은 모양이군요.”
“의심 가는 인물이 있나요?”
“인물로 가닥을 잡지는 못했습니다. 하지만 방법에 대해서는 그쪽 요원이 보내준 자료 속에 정답이 있군요.”
자료 속에 정답이 있다? 꼼꼼한 제니퍼답게 잡다한 대화까지 하나하나 다 기록해놔서 나도 전문을 읽어 보지는 못했다.
그런 얼굴을 하고 있으니 세형이 자기 휴대폰 화면을 들이밀었다.
그것은 풍월검도의 수련장 내부 구조를 제니퍼 혼자서 몰래 들쑤신 기록들이었다.
그리고 그중에, 정말로 정답이 있었다.
정확히는 정답에 근접할 가능성.
화면을 꺼버린 세형이 중얼거렸다.
“뭐, 사람 둘이 죽은 시점에서 알고 있었습니다만 사태가 심각하군요. 풍월검도 인물은, 특히 이 가능성에 해당하는 인물은 완전히 피하도록 하죠.
그런데 한나진 씨는 이 자료를 우리끼리만 볼 계획인가요?”
“예. 일단은 저희하고 대표님하고.”
“그 ‘저희’에 선화란도 포함이 되나요?”
그건 특별히 생각해두지 않았다는 티를 내며 말을 잇지 못하자, 세형이 그럴 줄 알았다는 식으로 조언했다.
“선화란은 풍월검도 내에서 청풍명월을 제외하면 가장 높은 입지를 지닌 인물입니다. 자료를 찾았다면 그 해석은 그녀가 맡는 게 타당해요. 그리고 무엇보다도, 믿기로 한 사람은 확실하게 믿어야죠.”
세형은 내 쪽으로 손을 뻗었다.
“저도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한나진 씨.”
“예. 최선을 다할게요.”
나는 강하게 맞잡고 악수해줬다. 그러자 세형은 피식 웃어버린다.
“아하하. 못 볼 사람처럼 이러니까 좀 웃기네요. 저희 입장 발표 끝나고, 그쪽도 선화란과 상황 정리가 끝나면 다시 합류하도록 하죠. 연구소에서 보는 걸로. 자, 쏘영이도 인사 드리고.”
그러자 소영이 폴짝 뛰어서 내게 달라붙는다. 뭐하는 건가 싶었는데, 그대로 볼에다가 쪽 입맞춤을 하고는 떨어진다.
아무것도 못하고 지켜보던 랑의 낯빛이 새하얗게 뜬다. 그러거나 말거나 소영은 랑에게도 비슷하게 달라붙으려고 한다.
랑의 성격을 생각하면 당장 밀쳐낼 게 뻔했다. 받아내려고 내가 몇 걸음 앞으로 다가섰다.
그런데 의외로 랑은 소영을 부둥켜 안아버렸다.
“잘…… 부탁해.”
표정은 영 좋지 않지만, 그래도 꾹 참고 소영의 스킨십을 받아주는 랑. 이것도 성장이라면 성장인가.
그래봤자 지속시간이 짧은 성장이어서 랑은 몇 초 버티지 못하고 소영을 떼어내 버렸다.
그대로 자기 아빠를 따라가는 소영의 뒤통수를 랑이 지그시 노려본다.
아무도 모를 복수가 그곳에서 펼쳐지고 있었다.
잠깐의 원망을 끝낸 랑이 이번에는 나를 향해 따가운 눈초리를 보냈다.
어색하게 웃어주자 랑은 양팔을 벌려서 알 수 없는 각을 쟀다.
“뭐하냐?”
“덮으려고 했는데…… 무리.”
그러면서 평소처럼 같은 방향으로 서는 랑.
뭘 덮는다는 걸까.
그런 궁금증이 솟았는데 물어보기가 좀 그랬다.얼굴이 새빨갛게 변해 있어서 조금만 자극하면 죽어죽어 하면서 구둣발로 밟아댈 것 같았거든.
그러니 이 주제는 이만 접어두기로 하고, 아무튼.
“생각보다 좋은 사람들이었어.”
“응.”
우리가 그렇게 말하고, 꼭 저 멀리로 사라지는 부녀도 그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
세형의 조언에 따라 화란을 만나러 가기 전, 위치도 붙어 있겠다 연합회 건물을 찾았다.
잠깐 들르는 것처럼 묘사한 것은 연합회 전체를 당장 설득하는 게 매우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여긴 동남의 수호자들이나 변경의 늑대들과는 달리 여러 지정능력자 팀들이 잘게 쪼개져서 각자 목소리를 내고 있거든.
그래서 나와 랑도 특별한 기대는 않고 일단 한번 부딪쳐 본다는 느낌으로 연합회를 찾았는데…… 뭐랄까…….
“좋아! 대장 하자는 대로 하자고!”
“누가 대장이야, 누가.”
“여기서 제일 스타니까 대장이지. 그걸 못 알아들어?”
이 분위기.
“오늘은 회식이죠? 그렇다고 해요.”
“뭐 대단한 사단 치뤘다고 회식이야?”
“충분히 대단했거든요? 정부하고 정면 충돌 결정이니까.”
축제 다 끝난 분위기였다.
누가 개최하고, 어떤 내용으로 구성된 축제였는지는 알 수 없었다.
다만 뿌듯한 표정으로 발길을 돌리는 수많은 지정능력자들 하며, 간혹 가다가 불만을 토로하며 침을 뱉어대는 모습까지.
지나가며 누가 흘려 말한 것처럼 크나큰 사단을 하나 겪은 직후의 식어가는 열기가 그곳에 있었다.
누구 하나 붙잡고 물어보려 해도 연합회 본부에 아는 지정능력자가 있을 리 없었고.
그렇게 한참을 헤매고 헤매다가 만난 것이 백승도였다.
그 왜, 있잖아, 새카만 칼날들 팀의 S등급 지정능력자. 덩치 엄청 크고 우락부락하고 막무가내에…….
솔직히 말하자면 친한 사이는 아니었다.
아니, 친하고 자시고 아무 접점도 없는 관계였지. 갈룸 사건 전까지는 같은 건물 쓰며 얼굴 마주치면 어색하게 인사하는 정도.
그마저도 가벼운 목례. 갈룸 사건으로 몇 마디 대화를 섞게 됐지만 어디까지나 업무적인 대화였고, 무엇보다 저 인간은 자기 할 말만 다 끝내면 사라져버리는 타입이어서 말이지.
어쩌면 내 얼굴을 기억조차 못할지 모른다는 가능성도 있었다.
하지만 정말로 아는 얼굴이 저 인간밖에 없어서.
“저기요.”
“어어, 그때 그 친구로군. 여긴 어쩐 일이지?”
다행히 기억은 하는 모양이었다.
적당히 ‘그 친구’라고 표현하는 걸로 보아 이름은 까먹은 모양인데 넘어가자.
“상임이사들 표결 관련해서 이것저것 알아보러 다니고 있어서요.”
“아, 그러고 보면 거기 있는 아가씨도 표결권자에 속하는군.”
“예, 뭐 그렇게 됐네요.”
말은 그렇게 해뒀지만 사실은 아니었다.
랑의 어머니 마음은 우리가 건들 수 있는 영역에서 한참 벗어나 있었으므로 처음부터 설득 대상 목록에 오르지 못하고 있었다.현재까지도 마찬가지이고.
그러니 랑은 실질적인 표결권과는 한참 동떨어져 있는 상황에 처했다.
하지만 뭐 어때, 저쪽이 우리 존재를 납득하기 쉬워 보이고.
나는 굳이 정정하지 않고 묻고 싶었던 걸 묻기로 했다.
“지금 이거 무슨 상황인가요? 꼭 축제 현장 같은데요.”
“축제라기보다는 장례식이지. 계속 정체돼 있던 연합회 표결권의 행방을 막 결정지었거든.”
“네? 어떻게 됐어요?”
“파계종과의 항전을 결사하기로.”
백승도는 항전이라는 단락을 힘주어 강조했다.
“……어떻게 이렇게 갑자기?”
“그거야 뭐, 늘 있는 흐름이지. 한월이 큰 역할을 했다. 그 자식 일장연설을 그쪽도 들어야 했는데.”
안 들어도 훤하다.
이 상황의 근원이, 어쩌면 안 봐도 훤한 것처럼.
승도는 수고하라며 내 어깨를 툭툭 쳐주고는 제 갈 길을 가기 시작했다.
그의 뒤를 이어 기나긴 인파가 흘러갔다. 저마다 웃고 있거나 짜증을 부리고 있었는데, 웃는 사람들이 조금 더 많았다.
사람 뒤에 사람이 이어지는 그 행렬 끝에 회담의 주인공인 한월이 있을 터였다.
나는 한월을 피해야 한다고 정언적으로 생각하면서도 정작 발을 떼지 못했다.
이 행렬을 구성하는 사람의 수가 정확히 얼마나 되는지 알고 싶었기 때문이다.
나도 어느새 내 밥벌이 할 정도는 되어서, 그러고도 주변을 살필 여유 정도는 되어서 한 단체의 수장을 만나고 그에게 인정받았다. 손을 맞잡고 뜻을 함께 모으기로 했다.
그런데도 뭔가가 얹힌 것 같은 이 기분을 어떻게 할 수 없었다.
지난 싸움에서 갈룸은 죽이는 것으로 결론이 떨어졌는데. 내가 너를 이긴 셈인데.
어째서 너는 태연하게 살아갈 수 있는지. 왜 패배를 겪고도 망가지지 않는지.
왜 넘어질 때마다 주변의 무엇인가를 줍고 일어서는지.
그 모든 것들이 나 하나가 망쳐선 안 되는 좋은 일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아무 말도 않고 복도 너머에 숨어 있다가, 한월의 얼굴을 보자마자 도망치듯 회담장을 떠나버렸다.
한월은 이름 모를 여자아이 둘과 웃으며 걷고 있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