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1화 〉 017. 우리 딸이 너무 강함 (3)
* * *
하늘을 뒤덮고도 남을 크기의 거룡. 그에 걸맞게 어마어마한 위압.
당연히 온 천하에 어그로가 흩날렸다. 그 결과 북한산에 숨어 살던 파계종이란 파계종들이 전부 이쪽을 향해 달려드는 지옥도가 펼쳐졌다.
나는 이미 랑을 들어올렸던 양팔을 단단히 고정하고, 불굴을 펼쳤다.
그러자 비로소 소영의 지정능력이 정확히 읽혀졌다.
[자기지정: 랑다 변신]
저 드래곤, 랑다라고 하는구나.내가 나무위키에서 읽은 신화 속의 랑다하고는 많이 다른걸.그 랑다는 드래곤과는 특별한 관련이 없는 백발의 마녀거든.
뭐, 소영의 랑다도 하얀 수염과 갈기털을 지니고 있긴 하니까 어떤 의미에서는 공통점이 있는 셈인데…….
지금 그걸 신경 쓸 때가 아니지.
“저기요! 대표님!”
나는 하늘 높이 소리쳤다. 위에서 나를 내려다 보고 있던 세형이 반갑게 손을 흔들어 주었다.
무슨 롤러코스터냐고.
“보호전이라는 건 알겠는데! 승리의 기준이 뭔가요!”
“아! 그걸 말씀 안 드렸군요!”
세형이 소영의 살을 툭툭 내려치자 소영은 자연스럽게 아래로 내려왔다.
아름드리 나무의 기둥만큼 굵은 양팔이 지면에 우뚝 섰다. 좀 일찍 달려든 파계종들을 소영의 꼬리가 일일이 쳐내고 있었다.
못해도 C등급은 되는 파계종들이 부챗살에 걸려든 파리처럼 쓸려나간다.
와중에 세형은 그쪽에는 신경도 안 쓰고 있고.
“이제부터 파계종이 몰려옵니다. 각 팀은 경호 대상을 지키면서 북한산 내부를 자유롭게 이동하고요. 그러다가 어느 한쪽이 도저히 못 버티겠다 싶어서 포기 선언을 하면 그걸로 승부는 종료.
단, 보호전이니만큼 보호 대상의 부상은 즉시 탈락으로 하죠.”
즉, 존버 잘하는 쪽이 이긴다는 뜻이다.
“참 쉽죠?”
세형이 어깨를 으쓱하며 물어왔다. 그쪽 팀에게는 정말 쉬운 일일지도 모르겠네.
하지만 우리는 사정이 다르다. 나도 버티는 것만큼은 그런대로 자신 있지만 지속시간이 짧거든.
어디 계산해 보자. 나 혼자만 불굴을 발동시키면 한 시간 정도 가고, 보호 대상에게 돌아가는 피해를 돌리는 기능을 켜면 15분 내외.
전자도 더럽게 짧은데 후자는 실전에서 못 써먹을 정도라서 타이밍을 봐가며 켰다 껐다 반복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다가 한 번이라도 삑사리나면 랑이 다친다.
머뭇거리는 나의 볼을 랑의 손가락이 쿡 찌른다.
“작전 있어?”
“지금 막 하나.”
“도망치기?”
인마, 그건 너무 돌직구잖아.
……라고는 해도 속으로는 고려해 봤다.어쨌거나 이 승부는 상대편이 포기할 때까지 버티기만 하면 되니까.
그러나 우리 작전을 눈치 챈 소영까지 힘을 비축하며 파계종을 피해다니기 시작하면 승부는 장기전이 된다.
그러면 지정력과 기동력이 한참 모자란 내가 포기 선언을 던지게 될 거고.
“정면돌파?”
그건 생각도 안 해봤다. 난 공격 능력이 엄청 떨어져서 파계종 때려잡는 속도가 월등히 떨어지니까.
굳이 때려잡아야만 한다면 맞아가면서 받아치면 되긴 되는데, 지금은 랑이 곁에 있으니까. 보호 대상과 파계종, 양쪽을 모두 챙길 여력은 없다.
그러니 짱박혀서 디펜스 게임을 굴린다는 전략도 포기하고.
“랑, 우선 나한테 딱 달라붙어서 따라와. 파계종을 몰고 다닐 거야.”
그러자 랑이 내 오른쪽 팔에 팔짱까지 감아가며 착 달라붙는다. 그건 너무 붙었고.
어쩔 수 없이 적정선을 만들어주니 그대로 지키는 랑. 평소와는 다르게 사뭇 진지하다.
나도 제대로 해야지. 언제나 챙겨 다니는 클로를 양손에 장착했다.
그 다음 불굴은 작동을 중지하고 클로에만 위압을 감는다.
간단한 준비 작업을 수행하는 동안, 세형 일행은 우다다다 산을 오르기 시작한다.
산사태 생기겠다. 진심으로.
“저기는 왜 비행 안 해?”
“대표님이 목 위에 대강 걸쳐 있는 상태에서 비행하는 파계종을 맞닥뜨리면 대재앙이니까.”
아니면 정말로 산사태를 일으키려는 것일 수도 있고.
이게 무슨 말인가 하면, 보호전의 규칙에 ‘서로 공격해선 안 된다’라는 조항은 없었다는 것이다.
물론 파계종까지 달려드는 와중에 지정능력자들끼리 붙기 시작하는 건 바보 같은 짓이다. 어느 쪽이건 관계없이 보호 대상을 기습에 노출시킬 위험이 도사리고 있으니까.
하지만 반대로, 싸우는 도중에 틈틈이 견제질을 날리는 건 가능하다.
저렇게 지형을 다 파괴하고 다니면서 상대방을 곤란하게 만들 수도 있고.
“허잇차!”
나처럼 파계종을 저쪽에 집어던질 수도 있고.
***
나는 지정능력 공익 근무 요원, 속칭 길앞잡이로 일했다.
파계지점이 발생하면 길앞잡이들부터 호출되는데, 그들은 초반에 쏟아지는 약한 파계종을 선두에서 받아내고 상황이 심각해진다 싶으면 도망치는 시시한 역할을 떠맡았다.
여기서 시시하다는 것은 새카만 칼날들을 비롯한 ‘제대로 된 지정능력자’의 시각을 빌린 것이었다.
우리에게 있어서 그 싸움은 결코 시시한 것이 아니었으니까.
C등급 지정종 하나가 어제까지 같은 사무실을 사용하며 함께 떠들던 선배의 머리통을 뜯어먹기도 했고, 누구는 스컬터의 발톱에 배를 찔려 죽었다.
그래서 처음 입소할 때까지만 해도 시끌벅적하던 초입 길앞잡이는 서너 달만 근무하면 하나같이 입을 다물었다.
말을 내뱉으면 그것이 기억이 되고 그 기억은 언젠가 추억이 되는데, 추억이 잡몹 하나에게 잡아먹힌다는 사실을 우리 모두가 경험적으로 알고 있었다.
그러니 그 복마전에서 살아남기 위해, 약자들인 우리는 적을 쓰러뜨리는 방법을 익히려 하지 않았다.
그딴 시도를 벌였던 인간들이 맨 먼저 죽었으니까.
그래서 우리는 치졸하고, 없어 보이고, 또 추할지라도 살아남는 방법을 궁리했고.
그렇게 해서 탄생한 전략이.
강한 놈은 강한 놈에게! 라는 것이었다.
……그렇게 말하면 과포장이지.
노골적으로 설명하자면 파계종이 달려드는 걸 근처에 있는 고등급 지정능력자에게 흘려보내는 기법이다.
내가 이걸 한월이한테 진짜 엄청 자주 시전했지.저등급 파계종도 어쨌거나 파계종인지라 던지기를 당하면 기분 나빠하는 인간들도 많은데 한월이는 여유가 넘쳐서 하나하나 다 받아줬다.
덕분에 이렇게 살아남아 있고.
그러니 이것들도 다 한때는 기억이었던 추억에 속한다.
나는 간만에 추억을 끄집어 내서, 내게 달려드는 파계종들을 하나하나 클로로 움켜잡았다.
그러는 틈을 타 파계종도 반격을 가하지만 짧은 순간에 불굴을 발동하는 것으로 커버.
당황한 파계종을 그대로 저 너머의 드래곤에게 던져버린다.
저등급 파계종은 머리가 나빠서 본래 싸우던 놈한테 달라붙느니 그냥 근처에 있는 인간부터 때려잡기 시작하고.
좀 치사한 전략이지만 뭐 어때.
이기면 장땡이지.
“허잇차!”
하나 더.
“어이쿠!”
하나 더.
“신입 받아라!”
하나 더.
한 스무 마리 정도 덕지덕지 달라붙은 뒤에야 소영은 우리를 돌아보았다.
모르는 척할 마음은 없었다. 솔직히 그럴 필요도 없었고.
상대적으로 등급이 높은, 그래서 호승심이 강한 파계종들은 알아서 소영에게 달라붙다 보니 저쪽은 거의 파계종 한 부대와 맞붙고 있었다.
물론 파계종을 털어내는 속도도 어마어마하다.
덩치가 작고 약한 파계종들은 꼬리짓 한 번에 쓸려나간다.
가끔 크기 좀 되는 놈이다 싶어도 앞발로 잡아챈 뒤 바닥에 찍어대면 얼마 버티지도 못하고 금세 나가 떨어진다.
열정적으로 잘 잡고 있는 걸 보니 마음이 든든하다. 몇 마리 더 보내주도록 하자.
마침 나한테 달라붙은 파계종 하나를 붙잡고, 잡아 던지려는 순간.
“키하아아아악──!”
소영이 울부짖었다.
파계종들을 향한 경고음은 아니다. 분명 나를 돌아보고 소리치고 있었다.
그러는 동안에도 온갖 파계종들이 소영의 팔을 타고 등 위에 올라탄 세형을 향해 스멀스멀 기어오르고 있었는데, 소영은 그것들을 억지로 무시하고 나를 향해 계속해서 포효성을 질러댔다.
아마 자기가 처치하는 속도보다 내가 붙이는 속도가 더 빠르다고 판단한 모양이었다.
“키학! 키하아아악! 캬하악─!”
대충 더 들러붙게 만들면 널 집어 던지겠다고 경고하는 듯했다.
난데없이 D등급 C등급 파계종들과 사투를 벌이게 된 소영이 안쓰럽기도 하지만, 뭐 어쩌겠냐. 승부는 승부인데.
나는 거리만 한참 벌린 뒤 다시 파계종을 던지기 시작했다.
그러자 소영은 아예 등을 돌리고 나를 무시하기 시작했다. 삐진 게 분명하다.
하지만 이대로 계속 파계종과의 협력 아닌 협력을 계속한다면 소영의 항복 선언이 먼저 나올 수도 있───── 다고 생각하는 순간.
소영이 공중으로 붕 날아올랐다.
순식간에 가속한 소영이 반동을 주며 하강한다.
그렇게 거룡의 전신이 지면을 강타한 순간, 진실된 의미에서 산사태가 몰아쳤다.
날아오는 바윗덩어리에 질겁한 나는 랑을 끌어안고 등을 드러냈다.
후두두두둑. 무엇인가가 머리 위로 맹렬하게 쏟아진다.
흙의 흐름을 온몸으로 느낀다.
그러고도 한참이나 유토가 쏟아지다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서서히 그쳤다.
눈을 떴을 때, 나는 우리는 흙더미 속에 파묻혀 있었다.
***
어둡다.
축축하고 습윤한, 그리고 비 오는 날 거리의 냄새. 이곳이 흙무더기 속이라는 것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었다.
그래서 정신을 차렸을 때의 나는 랑부터 찾기 시작했다.
그러나 굳이 여기저기 살펴볼 필요는 전혀 없었다. 딱 붙어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등으로 흙더미를 받아내고, 랑이 다시 내 밑에 깔렸는데 다행히 내 몸이 흙받이 역할을 하면서 랑에게는 움직일 공간이 있었다.
“안 다쳤어?”
“종아리 까졌어.”
그러면서 다리를 슬그머니 내미는 랑. 그 말마따나 아랫쪽 종아리에 빨간 핏물이 방울져 있었다.
활동에 거의 지장이 없는 경미한 찰과상이었지만, 그마저도 부상은 부상.룰에 따르자면 우리는 이미 패배한 것이 된다.
암만 그래도 소영이 일으킨 산사태에 휘말려서 다친 건 좀 너무하지 않나 싶은데…… 먼저 더티플레이를 저지른 건 나였고…….
일단 여기서 나가고 생각하자.
……근데 어떻게 나가지?
“파묻힌 깊이를 모르겠네.”
힘을 줘서 등 뒤로 밀고 나가려 해본다.
그러나 꿈쩍도 않는다. 힘으로 안 되면 지정능력으로 흙 부분의 공간을 일그러뜨려 빠져나갈 수도 있긴 한데, 만약 우리가 생각보다 훨씬 깊은 깊이에 갇힌 것이라면?
그래서 막상 지정능력까지 써서 큰 충격을 줬는데 단숨에 지면까지 뚫지 못했다가는 연거푸 산사태를 맞을 수도 있다.
함부로 움직일 수 없는 상황.
갑자기 식은땀이 흐른다.
“랑. 휴대폰 터져?”
“안 터져.”
진짜로? 하고 되묻자 랑이 자기 휴대폰 화면을 보여준다. 정말로 신호권 바깥이라는 문구가 떠올라 있었다.
파계지점은 원래 전파가 잘 안 터지고, 파계지점이 아니더라도 어떤 파계종은 전파를 방해하기도 한다.
그렇게까지 뜬금없고 드문 상황은 아니다. 아니긴 한데…… 우리는 지금 흙무더기 속에 파묻혀 있단 말이지.
이 상황은 뜬금없고 드문 것이 맞는다. 결국 어쩔 수 없이, 바깥을 향해 소리치기 시작했다.
“저기요!”
대답은 돌아오지 않는다.
“대표님! 소영아! 내가 잘못했어!”
여전히 대답이 없다.
아예 안 들리는 것일지도 모른다.
머뭇거리고 있는데 랑이 내 가슴을 콕콕 찌른다.
“공익, 지금까지 고마웠어…….”
“인마, 이상한 복선 깔지 마.”
“당연히 농담.”
그래 보이긴 하는데 왜 굳이 이 타이밍에?
“귀, 기울여봐.”
“응? 귀는 갑자기 왜?”
“나, 나한테 말고!”
랑의 입 근처에 귀를 갖다 대자 랑이 소스라치게 놀라며 허우적거린다.
안 그래도 불안정한 토굴 무너지겠다 싶어서 바로 떨어진다.
랑은 또 뭐가 불만인지 입술을 삐죽 내밀고는 말한다.
“바깥에서 소리 들리잖아.”
무슨 소리가……. 하고 생각한 순간.
쿵.
“어랍쇼.”
무엇인가가 세게 울리는 듯한, 조금 먼 소리가 들려왔다.
일단 소리가 자각되니 그 이후로는 계속해서 뚜렷이 들린다. 쿵. 쿵. 쿵. 무엇인가를 내려찍는 듯한, 어쩌면 파해치는 것 같은 소리였다.
깊게 생각하지 않아도 그것이 어떻게 만들어지는 소리인지 곧바로 추정할 수 있을 만큼 특징적이고 인상깊은 소음이었다.
“그 까무잡잡한 꼬마, 땅 파고 있어.”
“찾아주고 있긴 하구나…….”
새삼 나의 양심을 돌이켜 본다.
그러는 동안에도 소리는 점차 가까워진다. 위압을 통해 위치를 파악한 모양이다.
다시 쿵.
쿵.
이제는 거의 머리 위에서 나기 시작하는 소리.
“아.”
마지막으로 천장의 흙벽을 무너뜨리기 직전에야 나는 깨달았다. 나도 위압으로 바깥의 상황을 대강 파악할 수 있다는 것을.
그리고 지금 내 머리 위로 다가오는 이 손길을 감싼 힘은, 분명…… 파계종의 위압이라는 것을.
대처할 틈도 없이 하늘에 구멍이 뚫린다.
새어들어오는 빛과 함께, 늑대처럼 생긴파계종이 모습을 드러냈다.
곰처럼 반쯤 이족보행하는 굳건한 다리로 지면을 딛고 내가 묻혀 있던 흙을 앞발로 파내린 것이다.
그리고 그 결과 나는 놈에게 뻥 뚫린 기습 포인트를 허용했고. 나는 불굴을 발동하며 랑을 끌어당겼다.
반격은 준비하지 않는다. 나는 알고 있었던 것이다. 저런 파계종은 본 적이 없으니까.
그리고 내가 본 적이 없었다는 건, 미리 배우지 않았다는 뜻이고, 그건 다시 말해서.
배워도 별 의미가 없는 A등급 파계종이라는 것이지.
늑대의 앞발이 내 목덜미를 움켜잡았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