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0화 〉 017. 우리 딸이 너무 강함 (2)
* * *
“……무슨 말인가요?”
“말 그대로예요. 여기, 제가 출발하기 전에 선화란하고 같이 찍은 사진.”
자기만 놓고 간다고 울상이 된 화란과 무표정한 내가 화면 속에 함께 있었다.
세형은 사진을 유심히 살펴보다가, 합성은 아니군요……. 하고 중얼거렸다.이 인간의 학력 무더기 속에는 영상편집 학과도 섞여 있었던 것이다.
세형은 비로소 흥미가 돋는다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머릿속이 좀 혼란스럽네요. 어떻게 된 건가요?”
그 질문에는 ‘설마 네가 암살자 대장인데, 드디어 날 죽이러 왔고 지금 이건 최후의 순간 정체를 드러내는 일말의 예의 같은 거냐?’라는 의미가 있는 듯 없는 듯 내포돼 있었다.
나는 그 오해부터 종식시켜야 했다.
“부산에서 선화란의 소행이라고 보도된 사건이 발생할 무렵, 저희는 인천에서 그녀하고 같이 있었어요. 살인은 그녀 소행이 아닙니다. 일단 여기, 사진 찍힌 시각하고 창문 바깥의 도시 형태 확인하시고.”
“허어. 흥미롭군요.”
“예. 그래서 저희 팀의 다른 멤버들이 진범을 수색하고 있어요. 대략적인 개요가 이미 그려졌고요.”
“……그래서요?”
“대표님, 입장을 발표하건 안 하건 암살 위협 자체는 존재합니다. 표적 순위가 조금 다를 뿐이죠. 문제는 대표님에게는 적절한 정보가 없어요. 죽은 변경의 늑대들의 수장을 비롯해 여러 단체가 하나같이 선화란에 대비하고 있는데, 정작 선화란은 범인이 아니어서 대비는 의미가 없습니다.”
“즉.”
“저희와 입장을 같이 하시면, 실시간으로 정보를 드리겠습니다.”
“허어어…….”
세형은 앉아있던 회전의자에 올라탄 채로 한 바퀴를 빙그르르 돌았다.
“한나진 씨 아이디어는 매우 반갑게 생각하고 있어요. 저도 암살위협만 없었다면 강경파 입장을 밝혔을 것 같고요. 그래서 뭐야, 진범에 대해 안전할 수만 있다면 한나진 씨에게 동조하는 게 낫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다만…….”
“다만?”
“그 진범이라는 거, 윤곽만 잡힌 거 맞죠?”
의표를 찌르고 들어오는 세형.
그렇지만 반박할 수 없는 사실이다. 풍월검도 내부에 진범이 있을 것 같다는 판단 속에서 유유 시스터즈와 제니퍼를 투입하긴 했지만, 딱 그것뿐.우리가 세형에 비해 앞서가고 있는 측면은 많지 않다.
따라서 지금 당장 제공할 수 있는 진범에 대한 정보도 제한적이고.
결과적으로 세형이 느끼는 우리의 매력도는 그렇게까지 높지는 못한 것이다.
굳이 수치화하자면, 정확히 51대 49를 만들 정도.
세형은 다시 의자를 한 바퀴 굴려댔다.
“아, 이거 어떡해야 되냐아……. 쏘영아, 아빠 어깨 좀 주물러줘.”
참고로 아까부터 꾸벅꾸벅 졸던 소영은 지금 랑 옆에서 쿨쿨 자고 있다.
세형은 그런 딸을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다가, 문득 이렇게 중얼거렸다.
“솔직히 말하자면 호위 인력이 모자라요.”
“예?”
“말 그대로입니다. 저를 호위할 인력이 모자라다고요. 그쪽 말을 귓등으로도 안 들은 게 아니라, 들어도 별 소용이 없는 셈이죠.”
“동남의 수호자들만큼 큰 단체가 인력 부족을?”
“큰 단체라서 문제예요. 다시 말해서,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믿을 만한 녀석들’ 영역에 속하는지 모른다는 거죠. 한나진 씨와 제갈랑 양처럼 단편적인 관계가 있을 리 없죠.”
우울하게 주절거리는 세형.
비로소 나는 얼핏 느끼고 있던 의문을 구체화할 수 있었다.
“그럼 따님이 호위를 맡고 있는 것도…….”
“쏘영이말고는 믿을 인간이 없거든요. 저도 지정능력자고 뭐고 딸내미를 고기 방패로 세울 생각은 전혀 없어서 차라리 혼자 숨어 있겠다고 했는데, 얘가 아빠 걱정이 좀 많아야죠.”
그러면서 세형은 이어나갔다.
“정보 제공은 정말 환영입니다. 무릎이라도 꿇고 싶어요. 하지만 호위 인력이 차지도 않은 상태에서 강경파 입장을 드러내는 건 리스크가 너무 높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이렇게 합시다. 그쪽이 제 경비를 도와주시죠.”
“예?”
“저 좀 도와달라고요.”
“말씀은 고마운데, 그, 저는 신뢰할 만한 인간인가요?”
“꽤 오래 전에 한나진 씨 문건을 흥미롭게 읽었거든요.”
“……방금 전이 아니라 오래 전에요? 제 문서를 대표님께서 왜…….”
“우리 와이프가 바롱한테 죽었거든요. 인도네시아에서 연구활동 하다가.”
그러면서 세형은 시선을 돌렸다. 아마 표정을 보여주고 싶지 않은 것 같았다.
나는 뭐라고 말해주면 좋을지 알 수 없었다.
그래서 그저 입을 다물고, 의자 등받이에 반쯤 가려진 세형의 등을 바라보았다.좁고, 외로워 보였다.
그게 보인다는 걸 뒤늦게 알아차리기라도 했는지 세형은 다시 돌아서 나를 직시했다.
“단, 실력도 확실해야 해요. 정으로 가는 멤버는 사절이라고요?”
“정확히 어떤 의미인가요?”
“뭐, 말 그대로입니다.”
세형이 소영의 머리 위에 살며시 손을 얹었다.
“우리 딸을 이기면 한나진 씨 하자는 대로 할게요.”
***
아침 11시, 북한산을 올랐다. 공기가 맑구나.
랑은 무겁고. 어린애라서 그런지 체중이 금방금방 늘어난다.
그래봤자 원래 또래보다 체구가 작아서 별 티도 안 난다만.
그러고 보면 얘 키가 몇이지. 마지막으로 쟀을 때는 143cm인가 그랬는데.
체중은 또 몇이지. 이건 쟀을 때도 안 보여줘서 모르는데.
물어보면 칭얼거리겠지.
그런 생각을 하며 품에 안긴 랑을 내려다보고 있는데, 그게 또 불만이라고 쫑알거린다
쫑알거리는 내용의 두서가 없는 걸로 보아 단순히 부끄러운 것 같다.
이 자세가 싫으면 업혀야 하는데 그럼 속옷만 걸친 네 엉덩이를 내가 손으로 받아줘야 한다고.
아니면 내려가든가.
“등산은 싫어…….”
그렇다고 한다.
그런데 등산은 너만 싫어하는 게 아니다. 나도 싫어한다.나는 밀레니엄 세대 현대인이라서 결과물이 수치로 보이지 않는 운동은 다 싫어하거든.
그리고 우리만 그런 게 아니라, 저기 저 아저씨 세형도 싫어한댄다.아마 여기 있는 네 사람 중에서 가장 싫어하지 않을까.
그렇다고 어필이라도 하는 것처럼 아까부터 곧 쓰러질 것처럼 다리를 휘청대고 있거든.
정작 북한산 오르자고 주장한 건 저 인간인데.
“헉, 헉……. 느려서 미안하네요……. 흐어, 헉, 파계지점이 없으면, 학, 쏘영이가…… 변신 허가가…… 안 떨어지거든요…….”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모르겠네요.”
“아, 이제 알게 됩니다……. 쏘영아? 쏘영아?”
“거기 아니고 앞이야.”
소영이 한심하다는 듯 제 아버지에게 툴툴거렸다.
자기 몸 하나 건사할 여유가 없었던 세형은 그제야 비로소 소영이 우리 일행 최전방을 지키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닌 게 아니라 소영의 등산력은 거의 무한에 가까웠다.
단순히 산을 잘 타는 게 아니고 무슨 동네 마실 다니듯 뚜벅뚜벅 산길을 밟아댔다.
북한산 산세가 거칠다는 걸 감안하면, 그저 체력이 좋은 어린애라고는 생각하기 어려웠다.
그보다는 지정능력의 부산물 같은 것이겠지.
중턱 쯤에 이르고 나서야 세형은 잠시 휴식을 선언했다.
그러면서 삼다수 작은 페트 하나를 벌컥벌컥 비워버린다. 앞서나가다 뒤로 돌아온 소영이 자기 물을 다 뺏어먹은 세형을 목격하고 끼이잉, 하고 비명을 지른다.
세형의 얼굴에 절망의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그러거나 말거나 소영은 세형을 마구 갈구기 시작했고.
한참이나 영혼을 탈곡당한 끝에 안식을 얻은 세형이 말했다.
“알고 계시겠지만, 파계지점 바깥으로 벗어난 파계종들은 야산으로 도망치는 경우가 잦아요. 그래서 북한산 같은 경우 등산 금지령까지 내려졌고요. 위압을 두른 인간이 둘이나 돌아다니고 있으니, 지금쯤이면 파계종들도 눈치를 챘을 거고요.”
“아, 예.”
감지능력이 떨어지는 나로서도 인근에 파계종들이 존재한다는 것 정도는 느끼고 있었다.
그러니 방금 세형의 설명에 내가 느꼈던 궁금증에 대한 대답은 하나도 없었다.
정작 내가 알고 싶었던 것은, 그래서 나를 여기로 왜 데려왔느냐.
세형은 분명 ‘일단 한숨 푹 자고! 내일 날이 밝으면 쏘영이하고 승부를 내는 겁니다!’ 같은 소리를 했다.
그래서 진짜로 한숨 푹 자고 랑과 소영까지 제정신이 돌아올 무렵까지 기다렸던 건데, 이후로 제대로 된 설명도 없이 북한산에 끌려왔다.
승부를 보려면 여기가 최적격이라면서.
굳이 그럴 필요가 있었던 걸까?
“두 가지 이유가 있어요!”
있다고 합니다.
“하나는 승부의 규칙 때문이죠. 뭐어, 한나진 씨와 쏘영이가 주먹으로 겨루게 된다면 그건 그거대로 흥미로운 얘기가 되겠습니다만, 결국 한나진 씨가 이기지는 못할 거예요. 우리 딸이 너무 강하니까.”
딸바보가 따로 없네.
……라고만 말하고 넘어가기는 어렵다. A등급 지정능력자가 강한 것은 사실이니까.
“게다가 말이죠. 사실 그런 정면승부는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어요. 목적은 경호이니까요. 다시 말하자면, 적대 세력을 몰살해도 주인을 잃으면 경호원으로서는 빵점인 거죠. 그 결과, 저는 이 상황에서 가장 합리적인 승부 방식으로…… 보호전을 제안하는 겁니다.”
“보호전.”
“예. 보호전. 말 그대로 한나진 씨는 제갈랑 양을, 쏘영이는 저를 지키면서 파계종과 겨루는 승부입니다. 정확히는 곧 들이닥칠 파계종과 맞서 싸우며 각각 보호 대상을 지키는 승부가 되겠지만 말이에요.”
단순한 모의전이 아니라 파계종을 끌어들이는 실전. 양쪽 진영에 지정능력이 없는 약골이 하나씩 있었으므로 리스크가 높은 승부 방식이었다.
그래서 나는 승부 방식을 바꾸자고 제안하기 시작했는데, 그럼에도 세형의 태도는 제법 완강했다.
우리가 동남의 수호자들을 위해 얼마나 내놓을 수 있는지, 그들을 끌어들이기 위해 얼마나 투자하고 있는지 알아보려는 것이었다.
결국 보다 못한 랑이 나섰다.
“공익, 그냥 해.”
“너 다칠 것 같아서 그러잖아.”
“나는 공익 믿어.”
“내가 나를 못 믿어서 그래.”
그렇게 투닥거리는 나와 랑.
그래봤자 결과적으로는 늘 그랬듯이 랑의 주장을 따라가게 된다.나는 마지못해 세형이 제안한 승부 방식에 동의했다.
그 과정을 멀찍이서 지켜보던 세형은 어느새 아빠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나는 느끼한 눈매가 별로 마음에 들지는 않아서 화제를 돌려버린다.
“그래서 두 번째 이유는 뭐예요?”
“네?”
“아까 북한산을 무대를 선정한 기준이 두 가지라고 했잖아요. 하나는 산에 숨어 있는 파계종들을 이용한 보호전을 승부 방식으로 삼고 싶었고, 다른 하나는 어떤 이유인가요?”
“아, 그건 말이죠…….”
“보면 알아.”
소영이 세형의 말을 끊어먹고 대꾸했다.
그러면서 소영은 정말로 보여주기 시작했다. 무대를 이곳으로밖에 삼을 수 없었던 이유를.
그건 그냥, 잔치를 벌이기엔 기존의 무대가 너무 좁았기 때문이었다.
이게 무슨 말인가 하면, 소영은 엄청나게 커다란 것으로 변신했다.
아, 설명하기 어렵네. 그러니까…….
소영의 등 중심, 척추 부분으로부터 거대한 위압이 터져나왔다.
그것들이 꼭 날개나 촉수 가닥처럼 사방팔방으로 뻗어나가면서 위압뿐만이 아닌 물리적인 실체를 이루어냈다.
그렇게 커진 부분들이 다시 다른 형태를 형성하고, 그것들이 또 다른 형태를 형성. 마치 생물이 세포를 분화하며 성장하는 모습 같았다.
여기서 ‘같았다’라는 표현을 사용한 것은 실제 생물의 성장과는 많이 달랐기 때문이다.
이때의 차이점 하나는, 그 속도가 비약적으로 빨라서 소영의 변신이 끝나기까지는 1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는 점이었고.
다른 하나는.
소영만큼 커다란 생물은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직경으로 보았을 때 최소 수십 미터, 어쩌면 100미터를 초과했을지도 모르는 거대한 드래곤이 모습을 드러냈다.
변신 과정을 눈앞에서 목격한 나는 그 거룡이 소영이라는 사실을 머리로는 부정할 수 없었다.
그러나 그것을 가슴으로 받아들이기는 건 여전히 어려웠다.
두뇌와 심장의 의견 대립으로 사고가 둔해지는 가운데 소영은 목과 등 사이에 해당하는 부위에 자기 아빠를 태워놓고는, 공중으로 두둥실 떠올랐다.
“보셨으니 아시겠지만!”
어느새 2층 건물 높이에 위치하게 된 세형이 나와 랑을 향해 소리쳤다.
“우리 쏘영이가 좀 많이 큽니다! 이래서 도심에서는 애로사항이 많아요!”
예. 그래 보이네요.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