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정육점이냐, 나만 빼고 A등급이게-61화 (61/112)

〈 61화 〉 010. 그래도 해야만 하는 일이 있어 (5)

* * *

그리고 윌리엄은 비명을 질렀다.

무엇인가가 분명히 잘못됐다. 윌리엄은 짐승처럼 울부짖으며 양팔을 휘저었다.

눈앞이 보이지 않았다. 윌리엄의 주변을 감싼 온 세상이 환한 빛과 지독한 어둠으로 뒤섞였다.

특히 오른쪽 눈이 말을 듣지 않았다.

윌리엄은 균형을 잡지 못하다가 뒤로 넘어졌다.

[어떻게 된 건가, 망할, 염병할, 어떻게 된……!]

윌리엄이 헐떡거리며 물었다.

그것은 단순한 자문이 아니었다. 그는 환청에게 묻고 있었다.

그러나 그 물음이 윌리엄의 불안을 더 부풀어 오르게 만들었다.

왜냐하면, 대답이 따라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빛과 함께 사라지는 감각 속에서 윌리엄은 다시 손목이 달린 왼팔을 들어올렸다.

그러나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아직까지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지만 윌리엄은 그 불쾌하고 나약한 감각을 지리하게 느꼈다.

윌리엄의 입가에서 신음성이 흘러나왔다.

한편, 제삼자의 시각에서 윌리엄은 그저 이상한 움직임을 취할 뿐이었다.

다른 것이 있다면 윌리엄의 동공에서 아주 강한 빛이 흘러나오고 있다는 것.

나진은 영문을 알 수 없는 채 랑에게 달려나갔다.

랑이 시원스럽다 못해 서럽게, 울기 시작했다.

“무서, 무서, 무서웠어어…….”

“이제 괜찮아. 괜찮아.”

다독이면서도 나진은 알 수가 없었다.

그때 마침 윌리엄에 멜라니를 부르기 시작했다.

[바렐라! 바렐라! 도망치게! 여기는 내게 맡기고 바렐라, 어서!]

그 외침이 향하는 방향에 멜라니가 있기는 했다. 그러나 그녀 또한 윌리엄과 마찬가지로 허우적거리고 있었다.

그녀의 동공에서도 마찬가지로 강한 빛이 흘러나왔다.

윌리엄과 다르게 파계종의 양팔은 그대로 유지됐지만, 그녀는 앞을 볼 수 없는 상황 탓에 혹여 윌리엄을 베거나 타격하게 될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었다.

이대로 돌격해야 하는지 아니면 조금 더 상황을 지켜봐야하는지 고민하던 나진이 클로를 거머쥘 찰나였다

뒤늦게야, 아주 뒤늦게야 아름답고 슬픈 목소리가 들려왔다.

“[믿기지 않는군요. 이렇게 별이 많은 도시인데…… 한때는 달빛조차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지 않습니까.]”

목소리는, 천천히, 나진을 향해 걸어왔다.

“[마을이 너무 밝으면 별빛을 가리는 법입니다.]”

그제야 나진은 알 수 있었다. 지나치게 밝은 빛은 앞을 볼 수 없게 만드는 것이다.

그리고 저들의 눈에는 빛이 비추어졌다. 눈부시고 따스하지만 동시에 휘황찬란한, 불빛이 켜졌다.

그런 빛을 만들 수 있는 사람은 하나였다. 그 목소리의 특징조차 나진은 알고 있었다.

그래, 이렇게 위태로운 상황에 무덤덤하게 [짜잔.]하고 말하는 목소리를 알아보지 못할 리가 없지 않은가.

“[주인 등쳐먹는 메이드 등장입니다.]”

영국식 억양이었다.

***

“[젠장, 바렐라, 바렐라 자네가 나설 필요 없네! 이딴 연놈들 내가, 당장에!]”

“[유감스럽지만 애초에 나서지도 못합니다. 누굴 ‘단일화면’으로 생각하는지요?]”

폴트는 싱긋 웃으며 멜라니를 돌아봤다.

그녀의 윌리엄과 크게 다를 바가 없었다. 앞이 보이지 않으니 정확히 적이 어디에 있는지 노릴 수는 없는 것이다.

목소리로 탐지를 하자니 폴트는 이미 윌리엄의 등 뒤에 붙어서 말하고 있었다.

설령 눈이 트이더라도 함부로 무기를 휘두르지 못할 거리에 대고, 눈을 감은 채 난자질을 행할 수는 없었다.

“[화면의 좌표는 동공입니다. 따라서 어떻게 떼어내려고 해도 할 수 없습니다. 심지어는 지사장님의 경우, 시각이 마비되었으니 그 미숙한 지정능력도 쓸 수가 없겠지요, 그렇지 않습니까?]”

“[젠장, 빌어먹을 년……! 고용됐으니 무엇이든 듣는다고 나불거린 주제에, 도대체 왜…….]”

“[마침 좋은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것에 관해 얘기하려고 온 겁니다. 그쪽과 마찬가지로 당장 파괴적인 공작은 벌이지 않을 테니, 잠시 들어주시겠습니까?]”

왼 주먹을 부르르 떨던 윌리엄은 결국 지껄여보라는 식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안면에 무시무시한 증오가 이글거렸지만 그로서도 뭔가 대응할 여지는 없었던 것이다.

그러자 폴트는 만족스럽게 웃으며 나진에게 손짓했다.

랑은 여전히 어리둥절해 하고 있었다.

설명은 나중에 해주기로 하고, 나진은 랑을 끌고 폴트에게 다가갔다.

나진이 코앞까지 다다르자 폴트는 느릿하게 말하기 시작했다.

“[저는 개인적으로 지사장님의 방식이 아주 틀렸다고는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그렇게 인정하고, 시작했다.

“[제가 봉사하는 방식과 비슷하다고 느꼈기 때문입니다. 저와 지사장님은 모두 목적주의자입니다.

정해진 원칙이 있고 그 원칙이 지향하는 결과가 따라온다면 수단은 거리낄 필요가 없다고, 그렇게 생각했지요. 도리어 그 수단에 몇몇 구실을 갖다 붙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갖다 붙인 구실이 나중에는 상당히 타당한 원리의 일부가 되기도 했지요.

가령, 주인을 위해 봉사하는 메이드의 본질이다. 혹은, 아이들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악인들은 죽여도 된다.]”

폴트는 그러고는 싱긋 웃었다.

“[저는 이래 뵈도 까다로운 여자입니다. 돈으로만 고용되는 사람은 아닙니다. 합리적인 면모가 있거나 개인적으로 존경하는 사람에게만 고용됩니다. 그래서 저는…… 당신을 따르겠다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지금 당장 저 애송이를──]”

“[말씀드렸지요. 주인 등쳐먹는 메이드라고.]”

폴트는 이번에는 웃지 않았다.

“[저는 당신과 제가 틀렸다고 말하고 싶은 겁니다.]”

폴트는 윌리엄의 뺨에 손을 얹었다.

정리되지 않은 수염을 폴트는 천천히 어루만졌다.그리고 그 고개를 억지로 돌렸다. 멜라니를 향해서.

마침내 시선이 멜라니 쪽으로 완전히 돌아갔을 때 윌리엄의 왼쪽 눈에서 빛이 사라졌다.

윌리엄은 받아들일 정도의 빛과 어둠에 젖어가는 눈동자로 멜라니를 내려다보았다.

“[스스로 결정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하나의 대원칙에 구속되어도 안 됩니다. 정말 소중한 사람이 곁에 있지 않습니까. 이 사람이 행복해졌으면 하는데, 그런데도 그 사람이 나와 엇나가서 자신을 희생하겠다고 하고 스스로 망가뜨리려 하고 있습니다.]”

지나치게 길고 뜨거운 빛을 보았던 탓일까. 윌리엄의 왼쪽 눈에서 눈물이 타고 흘렀다.

폴트는 목소리를 이어나갔다.

“[당신은, 네, 지켜주고 싶다고 바라고 있지요. 멜라니가 아니라 그 무엇이라도 당신의 손으로 웃게 만들어주고 싶지요.

그 바람을 이해합니다. 그 소망을 납득합니다. 당신이 하려는 모든 일을 부정하려는 게 아닙니다. 멜라니도 런던의 아이들도 전부 이곳에 버려둔 채 떠나라는 말이 아닙니다.

하지만 어느 지점부터 모든 것이 망가지지 않았습니까. 당신도 그 사실을 알지 않습니까.]”

“[하지만 내가 짊어지지 않으면…… 내가 짊어지지 않으면 안 돼. 왜냐하면, 누구도 그들의 곁에 서주지 않았으니까! 모두가 모르는 척했으니까. 넘어진 그들에게 손을 뻗어줄 사람이 없단 말이네!]”

“[그럼 그 사람들이 기뻐하던가요?]”

그때, 윌리엄은 어깨를 부르르 떨었다.

윌리엄은 충동적으로 반발했다.

“[당연히, 그들은 기뻐했네! 흉물이라 이름 지은 저 괴물을 영웅이라 칭송했단 말이야! 그게 기쁨이 아니면 도대체 뭐라는 건가?]”

“[기뻐하는 얼굴이 어떤 것인지 기억이 납니까?]”

윌리엄의 얼굴이 천천히 굳어갔다. 폴트는 고개를 저었다.

“[당신이 몸이 지탱할 수 없는 커다란 짐을 들고 있을 때, 누군가가 나타나 그 짐을 대신 들어줍니다. 그 사람 또한 마찬가지로 도저히 견딜 수 없는 무게입니다.

그런데 자기 몸이 짓눌러 터져가면서도, 그대로 비명을 지르며 곧 죽어갈 모습을 보이면서도, 그래도 괜찮다고 당신을 위한 일이라고 자위합니다. 괜찮다고, 나는 이 정도까진 끄떡없다고.

당신이 멜라니와 아이들을 소중히 여긴 것처럼 멜라니와 아이들도 당신을 소중한 사람으로 생각합니다. 그들의 소중한 사람이었을 당신이, 혼자서, 어깨에, 모든 것을 올리고, 고통받습니다.]”

침묵이 이어졌다.

폴트는 고개를 떨궜다.

“[기뻐하는 얼굴이 무엇인지 알고는 있습니까?]”

윌리엄은 아무런 말도 잇지 못했다.

그는 무엇이라도, 아주 간단한 것이라도 좋으니까 받아치고 싶은 듯했다.

자신의 방식은 틀리지 않았다. 설령 틀렸다고 해도 어쩔 수 없었다. 그렇게 목 놓아 울고 싶었다.

상대의 납득까지는 바라지도 않는다. 다만 어쩔 수 없다며 고개를 끄덕이게 만들고 싶었다.

그 간절한 바람의 끝에 흘러나온 목소리는 작아져 있었다.

“[하지만…… 그 짐을 누군가가…… 들지 않으면.]”

“[나눠 들 수도 있습니다. 아니면 아예 내려놓을 수도 있습니다. 여러 방법이 있습니다. 그런데 왜, 혼자 들려고 합니까. 왜 결과적으로 모두가 행복하면 나 혼자 모든 것을 짊어지는 수단은 아무래도 좋다고 생각합니까.]”

폴트는 작은 눈물을 아무도 알지 못하게 흘렸다.

“[그런 방법으로 도대체 누가 기뻐할 수 있겠습니까.]”

그때, 윌리엄은 천천히 무너져 내렸다.

그는 아까까지 그랬던 것처럼 짐승과 같이 울부짖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 안에 담겨있던 증오와 회한의 방향은 정반대로 돌아 있었다.

더 싸우려면 더 싸울 수 있다. 눈이 마비되어도 맨주먹을 휘두르고 발악할 수 있다.

그러나 도대체 무엇을 위해서? 명분도 나아갈 길도 없는 싸움을 이어나갈 수는 없는 것이다.

윌리엄은 이제 흉물이 아니다.

흉물은 어디에도 없다.

그 마음에 흐느끼는 윌리엄을 뒤로 하고 폴트는 멜라니에게 돌아섰다.

“[그쪽은, 더 하고 싶은 말이라도 있습니까?]”

“[폴트, 당신은 윌리엄을 망쳤어요.]”

멜라니는 멀어버린 시야 속에서 그렇게 중얼거렸다.

“[정정할 것이 두 가지 있군요. 우선, 제가 뭘 망쳤다는 겁니까?]”

“[그를 상처받게 했어요.]”

“[당신이 상처 입힌 겁니다.]”

폴트는 자신에게 타이르듯 그렇게 말했다.

“[저렇게 무거운 짐을 짊어지게 했습니다. 당신이 대신 짊어지겠다고 간혹 소리를 질러가며 위안을 해줬지만 그게 더 독이 됐습니다.

저 사람은 남이 자신을 위하면 위할수록 갚아주려는 사람 아닙니까. 당신이 괜찮다고, 나도 함께 하겠다고 말할 때마다, 그때마다 지사장은 더 무거운 것을 들어 올리려 했지요.

언젠가 온몸의 뼈가 다 부러졌을 시기가 있었을 겁니다. 그때부터는 멜라니도 뭔가 문제를 느끼지 않았나요?]”

“[하지만…… 그는 나의 영웅이었어요.]”

“[더 정확히 말하자면 우상이었습니다. 신전에 세워놓고 기도를 하는 원망기였고, 공물을 바치면 소원을 들어주는 대리자였습니다. 뭐든지 할 수 있다는 믿음은 뭐든지 해야 한다는 당위로 이어졌고, 그 과정 끝에, 저 사람은 망가졌습니다.]”

“[하지만 그건…… 모두 서로를 위한 거였어요.]”

멜라니는 입술을 깨물었다.

“[빌, 포기하지 말아요. 이런 적들을 마주친 건 하루 이틀 일도 아녜요. 이번에도, 넘어설 수 있어요. 지금껏 그렇게 해왔잖아요. 그래서 겨우 이 지점까지 왔는데……. 나는, 나는 당신이 말만 해준다면 당장이라도──]”

“[그만하게, 바렐라.]”

멜라니의 호흡이 정지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윌리엄은 눈길조차 주지 않고, 그저 런던의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메이드의 말처럼 무수히 많은 별들이 박혀 있었다. 버밍엄과 런던을 오가며 살았던 윌리엄은 고작 그 하늘을 바라보지 못했다.

까닭에 아무것도 깨닫지 못한 채 살아왔던 것이겠지.

“[이제 그만, 내려놓지.]”

그토록 밝았기 때문에 별이 없었던 것을.

* *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