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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육점이냐, 나만 빼고 A등급이게-8화 (8/112)

〈 8화 〉 002. 저는 일반인입니다. 쏘지 마세요 (2)

* * *

클로를 움켜잡았다.

“아니 뭐, 책이나 읽는데 너무 빤히 쳐다보길래. 내가 뭐 신기한 짓이라도 저질렀나 싶어서 말이다, 응?”

나는 멍하니, 놈을 쳐다본다.

가면 너머에 입이 달려있긴 한 것일까. 놈은 동굴 안에서처럼 울리는 목소리로 중얼중얼 내뱉었다.

그것은 확연하게 이질감을 더해줬다.

적어도, 이 존재가 우리와 같은 인간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특이형 파계종.

파계종의 수준은 저마다 제각각이다.

스컬터처럼 개에 가까운 지능과 행동양식을 보이는 종류가 있는가 하면 인간과 동등한 수준의 지각능력과 언어구사를 보이는 종류도 있다.

후자의 경우 소통과 협상의 여지가 있기에 따로 특이형 파계종이라 불린다.

“너무 긴장하는데? 숨은 쉬어야지.”

지금까지 발견된 특이형 파계종 중 B등급 이하의 개체는 거의 없다. 대부분 A등급 이상이다.

주변의 파계종을 통솔하고 인도하는 독특한 능력을 갖고 있다.

나는 놈의 충고를 받아들여 호흡을 가다듬었다.

어떻게 해야 할까. 상대방에게 태평하게 대답해서, ‘그쪽을 파계종이라 생각하고 있지 않다.’라는 인상을 줘야 할까?

그러나 저쪽은 이미 내 긴장을 알아차렸다.

책을 읽을 정도로 똑똑한 파계종이 긴장의 원인을 유추하지 못할 리가 없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바롱. 자칭은 아니고, 너희들이 그렇게 불러서 그렇게 써먹는 중이야.”

들어본 바 있는 이름.

놈은 이미 스스로가 무엇인지 규정했다.

인도네시아였던가, 혹은 동남아 일대였던가. 그곳에 출몰한 다른 파계종들을 통솔하고 여러 도시에 혼란을 야기한 A­급 파계종.

그러나 어느 순간 갑자기 사라져 행방이 묘연하다는 괴물.

해외특보로 뉴스에서 보도가 될 정도였기에, 나는 분명히 그 이름을 알고 있다.

그러고 보면 바롱이 뒤집어쓰고 있는 저 가면, 인도네시아의 신수(??) 바롱을 모티브로 하고 있다.

붉은 얼굴과 검고 하얀 수염, 튀어나온 새하얀 송곳니.

위협적인 동시에 무표정한 가면이 이곳저곳을 훑어본다.

“상대가 기껏 자기소개를 했으면, 너도 뭔가 말을 해야지. 아니면 말보다 실천이 앞서야 한다고 믿는 성격인가?”

바롱은 기묘한 소리로 웃었다.

마치 고양이가 갸르릉거리는 소리에 여자 웃는 소리를 섞어놓은 것 같았다.

아니, 웃는 소리야 둘째 치더라도…… 이 상황은 어떻게 해야 할까.

적막감이 감돈다.

나는 가만히 랑을 내려다보았다가, 다시 시선을 올린다.

겁에 질려 있다. 당당하던 태도는 거의 사라지고, 코앞에서 호랑이 따위를 마주한 어린아이처럼 굳어 있다.

그러나 상대가 호랑이 따위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 괴물이기에, 상황은 더더욱 절망적이다.

나는 타계책을 찾지 못했고.

협상할 수 없는 때의 사람은 그저 상대방의 충고대로 행하는 수밖에 없었다.

“한나진이에요.”

“워, 존대할 것까지는 없는데. 그럼 내가 너무 민망하잖아.”

바롱이 킥킥거리며 나를 비웃었다. 짧은 조소 뒤 바롱은 랑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네가 제갈랑이구나.”

바로 곁에서 랑의 호흡이 얼어붙는 것이 느껴졌다.

파계종까지 정체를 알고 있다니 유명인사라고 해둬야 할까.

아니, 유머를 섞을 분위기는 아니다.

제갈랑이 어깨를 움츠렸다. 나는 녀석을 내 뒤로 끌어당겼다.

힘의 우위를 따질 때가 아니었다.

랑은 어린애고, 나는 어른이다.

“이 녀석에게 무슨 볼일이야.”

내가 낮은 목소리로 말하자 바롱은 동작을 멈추었다.

얼굴이 가면 너머에 있었기에 (아니, 얼굴이 있는지도 모르겠지만) 무슨 표정을 짓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내 말의 뜻이 불손하게 받아들여졌는가, 나는 다만 그런 것을 생각했다.

하지만 잠시 후 바롱은 자기 목을 움켜잡고.

키드득, 키드드득─── 하고 기괴한 소리를 낸다. 그것이 진정한 의미에서 바롱의 웃음이었다는 사실은 잠시 후에야 깨달았다.

바롱은 사방에 떨어져 있던 책들 중 아무것이나 하나를 집어 들었다.

자리에 어울리지 않는 연애교양서였다.

“너무 긴장했다. 누가 잡아먹으러 왔대?”

바롱은 랑을 가리켰다.

랑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손가락으로 자기 자신을 가리켰다.

바롱은 고개만 끄덕거렸다.

“여기서 너희들의 사상이라든지, 아니면 논리라든지 문화 같은 걸 찾아보고 있었어. 내가 의외로 그런 데에 흥미가 많거든. 예를 들자면 이 가면도 너희들 거야. 원산지에서 훔쳐왔지.”

재밌는 신앙이 많았지. 바롱은 여행의 추억을 회상하듯 덧붙였다.

“문화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요즘은 머즐드독스라는 회사가 유행인 모양이야. 바다 건너 땅에서도 그 상표가 보이더군. 하기야, 요즘 같은 난세에 대장장이들이 얼마나 바쁘겠어.”

바롱의 목소리에서 웃음기가 걷혔다.

“그리고 그것들이 분란을 일으켰어. 너희는 우리와의 싸움을 위해 너희끼리 싸우는구나, 미개한 족속들아.”

여기에 있는 건 어린애야, 관련이 없어. 솟구칠 듯 중얼거리는 목소리를 간신히 가두었다.

사실을 말한다고 해도 자극제가 될 뿐이야.

다른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살아서 돌아가는 것.

아니, 그것 말고 고려할 사항은 없다.

랑이 희미하게 내 손을 붙잡는 것이 느껴졌다.

아까까지 한심하다고 투덜거렸던 주제에 꼴사납지만, 괜찮다. 너는 어린애니까.

“그럴 리가.”

바롱이 다시 키득키득 웃었다.

“어린애라서 괜찮다고? 어린애면 된 건가? 아니, 누구도 저 아이가 무고하다고 할 수 없어. 저 아이는 악성(??)을 타고 났어.

누군가가 이미 말했네. 인간의 본성은 악이요, 선이란 오로지 날조로만 구현되는 것. 아하하, 이렇게 말하면 너무 어려운가?”

생각을 읽어냈다…….

그리고 지금 이렇게 자각한 사실까지도 읽어내고 있겠지. 뒷덜미를 낚아채듯 공포감이 몰려왔다.

지정능력을 사용해야 할까?

아니, 도저히 그럴 수가 없다. 그 수를 던지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도 없을 것이다.

바롱은 지금도 내 생각을 읽고 있을 것이고, A­등급에 해당하는 파계종이 미리 읽어낸 내 공격에 대응하지 못할 리가 없다.

바롱은 계속해서 말했다.

“쉽게 말하지. 저 아이가 제 소유가 될 회사가 무관할 리가 있겠어?애초에 새로 개발한 무기의 시제품을 열다섯 먹은 꼬마애가 들고 다니는 시점에서 아웃이야.

저 아이는 머즐드독스의 중추야. 끊어버리면 밑으로 내려가는 신경이 모조리 끊어질 거라고.”

“잔말 집어치워, 이 아이한테 뭘 어떻게 하고 싶다는 건데?”

어차피 읽힐 생각이었기에 나는 되는 대로 지껄였다.

바롱은 가면 안에서 무참하게 말했다.

“죽일 생각이야.”

바롱은 연극하듯 과장된 몸짓으로 내게 털로 덮인 손을 뻗었다.

“너희를 위해서. 내가 이 세상에 분열을 주러 온 줄 아는 거냐? 천만에. 나는 평화를 주러 왔다.”

키드드드드드드드득── 웃음이 고막을 파고들었다. 랑을 뒤로 밀치며 함께 물러났다.

싸울 수는 없다. 도망치는 것이 유일한 방법이다.

클로를 내려놓고 랑의 손을 붙잡았다. 몇 걸음을 달릴 수 있을까.

인근와해를 이용해 잠시나마 시간을 벌 수 있을까.

그래, 그거라도 하는 수밖에 없다.

살아남으려면 그렇게 해야 한다.

[행동지정: 인근와해]

손을 뻗어 전방의 공간을 일그러뜨린다.

하나 범위는 언제나처럼 좁다. A­등급 파계종에게 유효한 타격은 결코 아니다.

기대할 수 있는 유일한 효과는 웃음을 터뜨리는 것.

그렇게 해서 ‘고작 이런 것들을 상대로 전력을 다할 수야 없지.’ 하고 우리를 갖고 노는 것으로 전략을 수정하게 하는 것.

벌 수 있는 시간은 너무나도 짧지만.

그 시간 안에 나타나줄지도 모른다.

편의주의적으로 시세에 알맞은 그놈이라면.

“하지만 이건 좀 무리수였지. 아아, 벌써 저지르는 건 좀 아니었나아. 무대가 준비되지 않았는데 배역들을 배치한다고 무슨 소용이 있겠어.”

바롱은 탄식하고.

“하여간에…….”

공중으로부터.

대검이 처박힌다.

[영역지정: 쇄도대지??大?]

그래. 이번만큼은 반갑게 말해주마.

영웅이 나타났다.

***

반경 수백 미터에 이르는, 다른 지정자는 결코 따라잡을 수 없는 영역지정. 일명 쇄도대지.

쇄도대지의 범위 안에서 한월이 적대하는 모든 존재는 속도의 대부분을 잃어버린다.

대다수의 파계종은 비디오 슬로모션처럼 느릿느릿 움직이게 되고, 만일 감속 디버프를 견뎌 내더라도 A급 고위 지정자를 상대로 맞서야만 한다.

그야말로 진퇴양난.

“우와, 심지어 둘씩이나 있네.”

바롱은 장난스럽게 투덜거렸다.

거기에 덧붙여서 이번에는 재인까지 왔다. 늘 입고 다니던 가디건을 대충 걸친 채로, 날카로운 눈매를 한 재인이 한월의 등 뒤에 선다.

저쪽은 저쪽대로 B+등급에 해당하는 강자다.

그래, 이 정도면 안심해도 되겠지.

저 둘이라면 A­등급은 속된 말로 떡을 친다…….

셋의 전투가 격화될 즈음 폴트를 비롯한 관계자들이 쏟아졌다.

대다수가 전조도 없이 A등급이 출몰했다는 소식을 듣고 몰려온 것 같았다.

다들 난전의 현장을 목격하기 시작했다.

나도 아무 곳에나 주저앉았다. 솔직히 말해서, 다리 힘이 풀렸다. 다시는 저 상황에 말려들고 싶지 않아서 남들보다도 더 긴 거리를 유지했다

열 명 정도 되는 사람들을 모두 수용할 수 있을 정도로 서점은 넓었다.

“아가씨, 죄송합니다. 다중화면을 사용해 확인을 하고 있었습니다만, ‘쇄도’가 다른 곳에 있었던지라…….”

랑은 대답하지 않았다. 아마도, 겁에 질려 있는 것 같았다.

결국 그 둘은 먼저 자리를 떴다.

나는 남았다.

랑과 마찬가지로 상당한 충격을 받긴 했지만 한월이 있다면 안전하다고 생각하기에 도망치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행동지정: 속독] [영역지정: 문예부실]

때마침 재인이 지정능력을 펼쳤다. 이곳은 서점이었고, 그녀의 지정능력에 더할 나위 없이 적합한 장소였다.

재인의 행동지정은 글을 읽는 속도를 비약적으로 상승시키는 다소 황당한 능력이다.

또한 그녀의 영역지정은…….

그녀의 영역지정은, 입으로 소리 내어 읽은 것을 현실화시키는 능력이다.

──M67수류탄RGO수류탄M24RKG­3대전차수류탄가몬수류탄밀즈수류탄ET­MP

아무래도 밀리터리 소설 혹은 사전 따위를 읽은 모양이다.

이 대목에서 ‘엥, 그런데 좁은 실내에서 수류탄을 저렇게 많이 던지면 다 죽는 거 아냐?’하고 의구심을 갖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그녀가 읽어서 생성한 기물들은 상황에 적합하게 변형된다. 그것이 영역지정인 이유다.

재인은 그녀가 생각하는 위치를 그녀의 생각대로 ‘지정’한다.

따라서 파계종에게 적중해도 튕겨나간다는 특성조차 그녀의 의사대로 지정되고, 저렇게 무차별적으로 수류탄의 이름을 읽어 불러들여도 폭발은 한정된 범위에서 그친다.

물론 한정된다고만 했지, 안전하다고는 하지 않았다.

──────────기이이이이이이이이잉.

폭발음이 겹쳐 고막을 파고든다. 그대로 살을 찢어버릴 듯 진동이 전신을 휩싼다.

바롱의 주변으로 무시무시한 연무가 피어나고 모든 것이 흐릿하게 가려진다.

하지만 멀었다. A등급은 저 정도로 진압되지 않는다.

안개 같은 회색 공기를 헤치고, 바롱의 털로 뒤덮인 손이 나타났다.

바롱은 실성하기라도 했는지 키드득키드득 소름 돋는 소리로 웃고 있었다.

“미친놈들아! 책 좀 읽자고 여기 있었더니 이러기냐! 어쩌면 니들한테 도움이 될지도 모르는 이 중요한 존재를……!”

무시하고, 대검이 치솟는다

.

[행동지정: 강속타]

어쨌거나 가장 강력한 타격을 입히는 것은 다른 누구도 아닌 한월이다.

바롱이 느릿느릿 움직이는 와중에 빛처럼 빠르게 달려든 새카만 위압이 번뜩인다.

유성우가 내리꽂히듯 날카로운 속도로 대검이 바롱의 머리통 옆을 스쳐간다.

스치고, 스치고, 스치고, 또 스친다.

키득키득, 비웃음이 찾아온다.

“와, 씨. 분위기 살벌하네! 니네 진짜 나 잡아먹으려고 그러냐! 서럽다, 서러워! 하젠야크트가 나타나면 니네는 나랑 얘기하지 않은 걸 후회하게 될 걸!”

“시끄러워요. 다시, ────M67수류탄RGO수류탄M24RKG­3대전차수류탄가몬수류탄밀즈수류탄ET­MP.”

재인이 끼어들자 또 한 차례 폭발이 일어난다.

하지만 뭔가가, 뭔가가 다르다.

이번에도 연기가 서서히 걷혔다.

그러나 바롱은 아까처럼 팔을 뻗으며 호전적으로 달려들지 않았다.

고요하게, 환풍구와 열린 입구를 따라 매연이 빠져나가고 그 너머에 아무도 서 있지 않은 서가가 드러난다.

한월과 재인, 그리고 나를 포함한 모두가 일순간 당혹감에 빠졌다.

***

……결국 그날은 별다른 소득 없이 모두가 돌아가야만 했다.

그러나 고위 파계종이 이렇게 뜬금없이 나타났다가 뜬금없이 사라지는 것은 좀처럼 있는 일이 아니었으므로 지휘관인 폴트를 비롯한 몇몇 인물들은 회의에 불려간 것 같았다.

낙하산 인사인 폴트가 제대로 상황을 전달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보다도 중요한 것은, 전투가 끝난 후 재인이 내 옆을 스쳐지나갔다는 것.

재인의 눈동자는 새카맣다. 그녀는 어떻게 보면 문학소녀의 스테레오타입 같은 외모를 하고 있는데, 긴 생머리하며 힘없는 걸음걸이하며 여러 모로 매력적인 여자애다.

하지만 그럼에도 안타까운 것은 나와 재인의 사이가 영 좋지 않다는 사실이었다.

재인은 나를 경멸한다.

증오, 혹은 저주가 담긴 시선. 그것에는 ‘당신이 망쳤어.’라고 말하는 인상이 깊게 배여 있었다.

하지만 정확히 뭘 망쳤다고 하는지는 알 수 없다. 목적어가 없다.

다만 눈먼 화살처럼 깊게 꽂히는 미움이 이어질 뿐이다.

………그런 고로, 그날 얻었던 소득은 고작 이 정도였다.

“야, 공익.”

돌아가는 길, 랑이 나를 불러 세웠다.

그녀는 한참을 망설였다. 길게 기른 앞머리에다가 사방이 어두웠던지라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래도 아까보다는 상태가 좋아진 것 같아 내가 먼저 말문을 트려는데, 랑은 조금 불안정한 어조로 말했다.

“……당분간 잘 부탁.”

바롱보다 뜬금없는 녀석이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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