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화 〉 002. 저는 일반인입니다. 쏘지 마세요
* * *
주말 전에도 출근은 해야 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출근이 아니라 기상이다. 나는 사무실에서 거의 죽치고 사는 편이다.
앞서 말했듯 나는 내 팀의 팀장이고, 따라서 내가 우리 팀의 규칙을 정한다.
일단 첫 번째 규칙은 사무실에서 생활해도 된다는 것이다.
간혹 감사가 오면 욕을 들어먹지만…….
월세를 아낄 수만 있다면 아무래도 좋아……….
어쨌거나.
어쨌거나 나를 제외한 둘은 출근한다. 지휘관 폴트와 금수저 랑 말이다.
사실 지휘관까지 우리 사무실에 머물러 있어도 되는가 싶었는데, 듣자하니 업무를 또 남에게 맡기고 있는 모양이었다.
이런 걸 보면 살아가는 데 있어서 돈과 권력보다 좋은 것은 없을지도.
“한심.”
폴트가 문을 열어주고, 랑이 들어오자마자 맨 먼저 내뱉은 말은 그것이었다.
소파에 앉아 꾸벅꾸벅 졸고 있는 나를 보고.
“업무 없어? 아침부터 놀아?”
“현장직이니까. 호출이 있으면 달려 나가고 없으면 여기서 쉬는 거지.”
“폴트, 이래도 돼?”
“규정에는 어긋나지 않습니다.”
에너지를 절약하는 삶이 어떻게 규정에 어긋날 수 있겠는가.
적게 먹고 적게 활동하는 것이 생물이 꿈꾸는 이상에 가깝다고 변명하고 싶을 지경이야…….
그러거나 말거나 폴트와 랑은 또 떠들기 시작했다.예의 음식에 관해 토론하는 것이었다.
이번 주제는 짜장면과 짬뽕이었다. 어느 것이 더 맛있는 음식인가부터 시작해서 ‘짜장면’이 맞는 것인가 ‘자장면’이 맞는 것인가 언쟁하는 데까지 이르렀다.
다른 건 몰라도 도입부의 논제에 관해서는 그냥 짬짜면을 시키라고 조언해주고 싶었다.
물론 소리 내어 말하지는 않고 꾹 참았다.
그러다가 둘은 또 이상한 주제로 빠지기 시작했다.
이번의 것은 음식에 관한 것이 아니었고, 자기들끼리 먼저 나누고 온 이야기를 이어서 하는 것 같았다.
이런 식이었다.
“폴트, 그래서 언제 하는 것.”
“아가씨, 말씀드렸지만 오늘은 곤란합니다. 지금은 한나진 씨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는 편이 좋겠습니다.”
……내 얘기가 도대체 왜 나오나 싶다.
“상부에서 내 안전을 걱정하고 있어. 폴트가 갑자기 이러니까 이상해. 사용인으로서 자질을 잃은 것? 아니라고 생각해.”
“물론 아닙니다. 다만 정말로 곤란한 사정이 있기 때문에, 이 문제에 관해서는 적어도 이번 주말이 지나면 얘기를 하는 걸로…….”
“너무 늦어. 하루 늦추는 것도 어려워. 당장 하든지, 아니면 나가. 내가 직접 할 테니까.”
뭔가 사업적인 얘기를 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러다가 뭐랄까, 예상도 하지 못한 일이 벌어졌다.
내 인식 속에서 폴트는 정중한 메이드였다.
그런 메이드가 주인으로부터 ‘시키는 대로 하든지, 아니면 나가.’라는 명령을 들었을 때 취해야 할 행동은 당연히 명령에 따르는 것이었다.
그러나 정석적인 흐름과 달리 폴트는 진짜로 나가버렸다.
문을 열고.
바깥으로 나온 뒤.
예의바른 태도로 소리 나지 않게 문을 닫는다.
직후, 침묵과 정적이 폭주하는 시간이 있었다.
“야, 공익.”
랑이 아무래도 나를 부른 것 같다.
물론 나는 무시했다.
“C등급.”
“이름으로 불러주겠니?”
“까다로워.”
상호간의 매너를 찾을 필요가 있지 않을까.내가 너를 갈랑이라고 부르지 않는 걸 봐서라도
“그럼, 오빠.”
“생각보다 많이 마일드해졌네.”
다짜고짜 아저씨라고 부를 줄 알았다.
이럴 때를 대비해 아저씨라 불렸을 때의 마음가짐을 예습해뒀건만…….
“그래서, 무슨 일인데?”
“별 건 없고. 내가 묻는 바에 대답하는 것.”
“묻는 바?”
“네 신상정보 뒤졌어. 보고서까지 포함해서 전부. 그래서 알아야 하는 게 생겼어.”
허어.
중요한 정보를 앞으로 빼놨군.
남의 신상정보를 마음대로 뒤지는 게 잘못됐다는 지점을 빠르게 생략하고 넘어갔잖아.
물론 나는 내 개인정보에 별다른 관심은 없다. 가난한 대학생의 개인정보는 보이스피싱 조직에서도 취급되지 않는 불순물 정도에 불과하다.
그보다는 랑이 무슨 소리를 하려는 것인가가 더 궁금했다.
“……의외로 학벌이 좋던데, 공부 잘했어?”
의외라. 네 질문은 의외로 평범하구나.
넘어갈 수도 있는 사항이었으나, 나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갑자기 질의응답을 하겠다는 것치고는 물음의 내용이 너무 평탄하다. 대학면접보다도 못하다는 생각까지 드는데.
나는 일단 성실하게 답해주기로 했다.
“아니, 남들이 시키는 대로만 하다보니까 어느새……. 솔직히 공부를 잘하는 타입은 아니라고 생각해.”
“좋아. 그럼 철학과는 왜 고른 것. 철학이 좋아서?”
별 창피한 소리까지 다하네.
“아니, 철학에는 아무 흥미도 없었어. 그렇지만 취직할 때를 생각해서……. 제일 커트라인이 낮은 학과를 넣은 거지. 그래야 대학 간판이 높아지니까.”
“소시민.”
그렇게 좋은 표현이 있었다니, 자주 써먹어야겠군.
소시민, 소(小)시민…… 그럼 당신들은 대(大)시민이란 말인가.
씁쓸하게 웃고 있는데, 랑이 질문을 이어나갔다.
“어렸을 때 꿈은?”
“저기, 근데 이 미친 호구조사를 하는 이유가……?”
“꼭 필요하니까. 오빠는 응답이나 해.”
오빠라고 불러주니까 갑자기 그럴 마음이 샘솟네.
너도 네 언니처럼 참 좋은 녀석이구나…….
“아마 만화가가 꿈이었던 것 같은데. 하지만 그게…… 도저히 돈을 벌 수 있는 직업이 아니라서. 일을 한 사람들끼리 나눠 먹는 게 아니라, 승자독식이거든.
그래서 그냥 때려치웠어. 집에서 도와줄 형편도 못 되고.”
“그래. 알았어. 그럼 다음으로, 지정자가 된 이유는?”
뭔가 슬슬 본질에 가까워진다는 느낌이 든다.
“그냥, 특별한 계기는 없는데. 기왕이면 생명수당을 받고 싶어서?”
“그럼 마지막 질문. 지정자를 관두고 싶지는 않아?”
“어?”
나는 진지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 거야?
“이거…… 강제복무인데? 당연히 그만두고 싶지. 언제든지.”
나는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그러나 대답을 들은 랑의 태도는 심상치 않았다. 그녀는 아까와는 달리 뭔가를 망설이기 시작했다.
나는 질문의 내용을 곱씹어봤다.
평범하다. 지정자를 그만두고 싶은가 그렇지 않은가.
대답 또한 간단했다.
일순간, 나는 얼굴이 빳빳하게 굳어버리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그것을 랑도 알아차렸다. 명백히 동요하는 시선.
남을 심문할 정도로 굳은 인간이 아니라는 것일까.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을까.
자기방어를 위해 억지로 둘러놓은 것 같은 가시를 헤치고, 랑은 계속해서 물었다.
“이유가 뭐야.”
“그만두고 싶은 이유?”
“그래, 그거.”
나는 크게 개의치 않고, 대답한다.
“하는 일에 비해 월급이 적어서.”
랑은 침묵한다.
그러나 그것은 그녀가 바라서 나타난 침묵은 아닐 것이다.
잘 보이지 않게, 랑은 자기 입술을 오물오물 씹어댔다. 그리고 발을 쭉 뻗어서 선반에 올렸다.
드레스에 어울리지 않게 슬리퍼를 신은 발가락이 꼼지락거린다.
“그래, 됐어.”
랑은 갑자기 일어선다. 그녀의 휴대폰이 진동하는 것으로 보아, 무슨 통화가 온 것 같았다.
그녀는 잠깐의 통화 끝에 내게 말했다.
“폴트 연락. 호출 떨어졌대. 주안역 인근.”
“벌써? 가야겠네.”
“차 태워줘?”
“아니…… 속이 좀 안 좋아서. 10분 이상 걸릴 것 같으니까 먼저 가 있어.”
“한심.”
랑이 눈을 가늘게 뜨고 나를 노려봤지만 알 게 뭐람.
나는 네 호감 따위 필요하지 않거든.
어쨌거나 랑은 먼저 나가버렸다.
다행히 택시비는 지원되므로 당신들 세단은 별로 필요 없다.
아니, 타기 너무 부담스럽고 막 좀…… 그래.
아무튼 나가줘서 고맙다.
사실 속 같은 건 아프지 않았어.
다만 생각할 시간이 필요했을 뿐.
랑은 이렇게 말했다. ‘네 신상정보를 뒤졌어. 보고서까지 포함해서 전부.’
하지만 그것은 이상하다. 나는 우리나라에 수천 명 정도 있다는, 거칠게 말해 남아도는 지정능력 대체복무자다.
신상정보가 따로 만들어져 있다는 것은 그럴싸하지만, 보고서가 올라가 있을 이유는 없다.
명백히 말하건대 나는 잔챙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럼에도 내 이름이 언급될 보고서가 있다면.
당신들이 정말로 ‘그따위 사건’을 기록해놓았다면.
내가 C등급으로 보상성 승진을 취한 것을 어딘가에라도 적어놓았다면.
“설마 그랬을까 싶긴 하지만…….”
당신들은 정말로 잔혹한 인간들이다.
주머니 속에서 만지작거리던 담배를 도로 집어넣었다.
주안역이라고 했던가.
***
인근 도로는 벌써부터 통제되고 있었다.
길앞잡이 팀 대다수가 와 있었기에, 나는 늦은 편이었다.
이번에도 어김없이 새카만 칼날들의 부지런쟁이 제갈유가 자기 팀들은 떼어놓고 홀로 도착해 상황을 감독하고 있었다.
“거기, 언니! 일 똑바로 하세요! 스컬터 하나도 못 잡아?!”
라든지.
“아저씨! 뒤에 스컬터 잡아요! 스컬터!”
라든지.
“온다던 수송기는 도대체 언제 와요! 신임 지휘관 금발! 당신이 부르는 거 아니에요?”
라든지.
고등급 지정능력자가 저급 파계종에게 지정력을 낭비하면 안 된다. 그런 지시만 없었더라도 혼자서 이 구역을 쓸어버리고 있었을 것이다.
유는 지휘봉 모양의 물건에 무구지정을 실행해 염동력과 음파를 발사하는데, 범위가 장난이 아니다.
“오빠, 이틀 연속 지각이죠! 게다가 오늘은 병원진료도 없었고!”
어제 성가신 부탁까지 해놓은 주제에 업무에 있어서는 거리낌이 없다. 이 어마어마한 공사 구분력이 이 녀석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겠다…….
“알았어, 알았어. 들어가면 되잖아, 들어가면.”
“저기 서점 안에 아직 사람들이 있을지도 모른다는데, 그쪽으로 가주세요. 쳇, 제가 가면 간단한 건데 대체 왜 가지 말래요?”
투덜거리는 유를 뒤로 하고 나는 서점까지 내달렸다.
***
……그렇게 해서 도착한 서점에 사람이 있던 것은 사실이었다.
그러나 위기에 처한 일반인이 있었다는 것은 어디까지나 헛소문이었다.
안에 있던 것은 일반인이 아닌 랑이었다.
늘 데리고 다니던 메이드는 어디 갔냐고 묻자, 랑은 내키지 않는다는 것처럼 입을 다물었다.
그래도 계속 물으니 대답은 돌아왔다.
“지휘관이잖아, 멍청아.”
“아, 그랬지.”
너무 전속 메이드스러워서 깨닫지 못했다.
딴 사람에게 업무를 분담시키고 있다고 아까 그러긴 했다지만,파계지점이 나타난 와중에 어떻게 아가씨를 모시고 다닐 수는 없지.
그건 직무유기 수준을 한참 넘어선다.
“여기서 뭐하고 있었는데? 혼자서.”
“시험.”
랑은 건틀릿을 내보여줬다.
그러고 보니, 그녀의 주변에 초주검이 된 스컬터들이 네 마리 정도 놓여 있다.
건틀릿으로 강화한 수준이 C라고 했지.
내가 보상성 승진이 아니라 능력에 따른 승진을 했다면 네 마리까지는 무리 없이 잡았을까
지금도 컨디션이 좋으면 가능한 얘기라지만, 아마 랑처럼 다치지 않고 잡지는 못했을 것이다.
결론적으로 말해, 건틀릿을 착용하면 랑이 나보다 뛰어나다고 봐야겠군.
[무구지정: 뒤틀림날]
나도 일단은 클로에 무구지정을 실행했다.
파계지점이 발생하면 지속적으로 차원의 틈이 벌어지고, 없던 파계종들이 공간 사이사이로 나타난다.
지금은 랑 주변에 쓰러진 스컬터들이 전부지만 언제 더 출몰할지 모르는 일이다.
다만 무구지정을 벌인 탓에 약한 현기증이 몰려와 나는 휘청거렸다.
“한심.”
“한심이라는 말이 아주 입에 붙었어.”
“진짜 한심해서 그러는 것.”
말을 말자…….
우리가 투닥이고 있는 사이, 책장 근처에서 공간의 균열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또 지긋지긋한 스컬터 두 마리가 튀어나왔다.
자연스럽게 왼쪽은 내가 맡게 됐고 오른쪽은 랑의 몫으로 돌아갔다.
빠르게, 행동지정.
[행동지정: 주변왜곡]
클로를 비틀 듯이 휘둘러, 무엇보다도 빠르게 스컬터의 목을 그어버린다.
한 마리는 결코 어렵지 않다. 스컬터의 발톱이 확 시야를 스쳐지나가기는 했지만 결코 몸에 닿지 않았다
떨어진 책들 사이사이로 처박힌 스컬터가 전신을 부들부들 떨어댄다.
일단 이쪽은 성공이고, 저쪽은…….
응, 완벽하군.
나보다 더 깔끔하게, 주먹질 한 방에 스컬터를 보내버렸다.
어쨌거나 무구지정에 이어 행동지정까지 마치니 피로감이 확 몰려왔다.
나는 책장 사이의 편평한 곳에 등을 기대고 풀썩 주저앉았다.
그런데 웬일이람, 나를 별로 탐탁지 않게 여기고 있는 듯했던 랑이 쪼르르 이쪽으로 달려왔다.
갑작스러운 이질적인 행동에 나는 랑을 가만히 쳐다봤다.
그러나 뭔가가 달랐다. 랑은 뭔가에 크게 놀란 것처럼 질린 표정을 짓고 있었다.
랑이 저 멀리를 가리켰다.
책장과 책장 사이.
그곳에는 무엇인가가 있었다.
전신이 양털 같은 것에 덮여 있고, 얼굴에 이상하게 생긴 가면을 뒤집어쓰고 있다.
사람인가? 확신할 수 없다.
체형과 덩치는 분명 사람의 것이지만, 어딘가가 이상했다.
양털에 쌓인 몸과 거꾸로 굽은 다리의 관절은 인간의 것일 수 없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파계종? 하지만…… 파계종도 아니다. 분명했다. 파계종일 리가 없었다.
놈은 책을 읽고 있었다.
인문철학 서가에서, 아무것이나 하나를 뽑아들었다는 느낌으로.
독서를 즐기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어느 틈엔가.
“으으으음.”
어느 틈엔가, 우리의 코앞까지 다가와서.
“무슨 구경이라도 났나?”
말을 걸어왔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