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9화 〉 39화 개인교습 2차전(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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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이 되었다.
보통은 고된 일정을 잊고 마음 편히 쉬는 날일 터.
그러나 저번주와 마찬가지로 내게는 그런 여유를 부릴 짬 따위 없었다.
“어으……오늘도 나가는 거야?”
“아, 깼냐?”
아침 댓바람부터 조심스레 나갈 준비를 하고 있었더니 다히트가 부스럭거리며 일어났다.
오늘은 저번처럼 안 깨우게 일부러 루나한테는 밖에서 기다리라고까지 했는데.
아침에는 약한 주제에 은근히 잠귀가 밝다.
“흐아암! 이번, 어으, 혀가 안 굴러가네. 이번엔 또 무슨 용건으로 나가는 거야.”
“오늘도 조별 과제야.”
“……고생이 많네.”
다히트는 정신이 번쩍 든 표정이었다.
얼굴이 대번에 썩어들어갔다.
“좀 쉽게 가지 그랬어. 나는 그러니까 한결 낫더라.”
“어쩌겠어. 성적 높게 받으려면 피곤해도 해야지.”
“너는 똑똑하니까 그런 도전이라도 해보겠구나. 우리는 영 아니야.”
입가에 씁쓰레한 웃음이 맺혔다.
“귀족 친구들이 족보라도 가져와줘서 망정이지. 맨땅에 헤딩하라고 했으면 백지로 발표했을 거다.”
“친구들?”
“아아, 응. 친구 먹기로 했어. 이야기 나눠보니까 말이 통하긴 하더라고. 여전히 까칠하긴 하지만 말이야.”
“오.”
나는 진심으로 감탄했다.
얘가 진짜 물건은 물건이구나.
이 짧은 시간 안에 벌써 귀족이랑 친구를 먹게.
“너 학생회 나가보지 않을래?”
“학생회?”
“응. 내가 보기에 너만큼 어울리는 사람도 없어.”
평민이면서 귀족과 쉬이 어울린다니.
친화력이 시에라 이상이었다.
시에라의 친분이 고위층에만 한정되어있음을 감안하면 다히트가 더 대단했다.
학생회에는 이런 재능을 가진 이가 필요했다.
그래야 나중에 계급 간에 분란이 벌어졌을 때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겠지.
“글쎄다, 일학년이 가능할까. 애초에 나 성적도 별로 안 좋은걸.”
“C반이면 문제없어. 지금 당장 하라는 것도 아니니까 천천히 준비하면 되겠지.”
“일단 생각해볼게.”
딱히 나서는 일에 거부감도 없는 걸 보니 얘는 이게 천직이었다.
때가 되면 내가 서포트 해주마.
학생회에 내 인맥이 생긴다면 나로서도 환영이었다.
“주인니임, 슬슬 나오시지 않으면 시간이…….”
“안녕. 좋은 아침,루나.”
“아, 깨셨나요? 좋은 아침이에요, 다히트 님.”
“나 깰까 봐 밖에 있었어? 그냥 들어와 있었어도 되는데. 내가 아침에 약하긴 해도 루나 얼굴 보고 하루를 시작하는 거라면 언제든 환영이야.”
“네에…….”
루나는 친근한 다히트의 태도가 부담스러운 듯 말끝을 흐렸다.
다히트랑은 이제 친해질 때가 되지 않았나.
천성이라기보다는 일부러 과도하게 친해지지 않으려고 선을 긋는 느낌이었다.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말이다.
“그보다 주인님. 설마 그렇게 나가실 생각이세요?”
“응? 뭐 어때서.”
“정말…….”
쪼르르 내게 다가온 루나가 두 손을 허리에 짚고 지적했다.
“공녀님 만나러 외출하는 거잖아요. 아카데미 내부가 아닌데 왜 교복이에요?”
“왜긴. 이게 편해.”
“편하기야 하시겠지만요…….”
아이린의 변덕으로 장소가 외부로 바뀌었을 뿐 목적은 교육이다.
마법 사용과 관련하여 외부에 이유를 댈 생각도 하면 교복이 최고였다.
“아무튼 안 돼요. 다시 차려입어요.”
“으음.”
“공녀님도 같이 있기 싫어하실 거예요.”
“하긴 그렇겠다.”
아이린의 화려한 외출복과 급이 맞으려면 교복은 좀 무리가 있었다.
약혼자 시절엔 관련해서 지적도 많이 당했지.
덕분에 귀족의 품위에 맞는 옷차림과 센스를 갖출 수 있었다.
“……생각해 보면 단둘이 다니는 건 오랜만이네.”
수행원들이 따라다니긴 하겠지만 그들은 귀족에게 있어 팔다리나 마찬가지였다.
이것도 데이트라면 데이튼가.
……아이린은 그런 생각 않겠지만.
부티크에서 남은 미련은 모두 떨쳤을 터.
만에 하나 미련이 있다 해도 이루면 안 될 처지였다.
내게 남은 시간이 얼마나 된다고.
엘릭서라는 보루가 있되 손에 넣을 확률은 희박했다.
어디까지나 가능성에 불과할 뿐.
그러니 내 행동은 언제나 최악을 가정한 채 이루어져야 했다.
“잡생각 말자.”
우선은 과제 발표 실패 위기라는 당면한 문제에 집중할 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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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외출증입니다.”
아카데미 정문 접수처.
상주 직원에게 나는 코팅된 증서를 내밀었다.
직원은 하부에 찍힌 도장을 돋보기로 세심히 검사하더니 반을 찢어 내게 돌려주었다.
“확인됐습니다. 복귀 시간은 20시까지이니 시간 엄수해주세요.”
“네.”
“몇 분 늦었다고 사정한다고 해서 안 봐드려요. 그대로 점수에 직결되니까 신경 쓰여야 합니다.”
“알겠습니다.”
이미 많은 이들이 같은 행위로 걸렸는지 엄정한 말투였다.
하긴 학생들이 교칙 어기는 거야 다반사 아닌가.
죄다 모범생처럼 규칙을 지킨다면 굳이 이를 정립하여 규제할 필요도 없었다.
“마차를…….”
“됐어, 돈 아까운데 느긋하게 가자.”
나처럼 지방에서 올라온 귀족을 위해 수도의 도로에는 무소속의 마차가 지나다녔다.
걷기 싫어하는 귀족들인만큼 이용률은 상당히 높았다.
물론 뭐든지 문제는 가격이다.
미리 크라운 백작가에 말했다면 진작에 마차가 대기하고 있었겠지만, 사람이 양심이 있지.
이런 잡스러운 일에까지 도움을 청하고 싶진 않았다.
“사람이 많지는 않네요.”
“아침이기도 하고, 거리가 거리니까.”
수도 내부 귀족의 활동지구다.
죄다 마차로 이동하지, 아침부터 느긋하게 거리를 산책하는 귀족이 있을 리 없었다.
아이린이 말해준 집합 장소는 제국 건국 황제의 동상 근처였다.
고개를 높이 쳐들어야 용안이 보이는 거대한 동상이니 길치라도 쉽게 발견할 장소였다.
“왔네.”
도착하여 얼마 지나지 않아 거대한 마차가 길가에 멈추었다.
차벽에는 창공으로 비상하는 매의 문양이 그려져 있었다.
제국 귀족이라면 모를 수가 없는, 레오나드 공작가의 문양이다.
달칵!
마차의 문이 열리고 한쪽 손을 내민 세실리아의 보좌 아래 아이린이 내렸다.
“…….”
나는 홀린 듯 눈을 떼지 못했다.
찬란한 아침햇살 아래 아이린의 푸른 머리카락은 보석처럼 빛났다.
타고나길 조각과 같은 이목구비는 화장기가 더해져 존재감을 강조했고.
봄날임에도 노출 없는 까만 드레스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절제됨 속 여성스러운 그녀의 몸선을 뽐냈다.
목덜미에는 커다란 아메시스트로 장식한 목걸이.
하얀 피부 위에 방점 찍힌 요염한 색채로 인해 나는 마른침을 삼켰다.
아이린이 차려입은 모습은 쉬이 수십이 아니라 수백 번을 보았다.
내가 그녀의 약혼자가 아니었더라도 유력 인사의 무도회에서 그녀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러나 아이린의 미적 아름다움은 횟수가 많다고 하여 절대 질리지 않았다.
하루하루 시간이 지나도 매력을 잃기는커녕 만개하는 꽃이다.
제국 제일의 보석이라는 그녀의 명성은 허명이 아니었다.
내성이 생겨있을 나조차 오랜만에 보니 새삼 넋을 잃었다.
다가온 아이린이 나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사람을 그렇게 뚫어져라 쳐다보면 안 된다고 예전에 얘기했잖아요.”
“아, 응?”
“차림새를 확인하려면 웃으며 시선이 읽히지 않도록 할 것. 까먹은 건가요?”
“……아니야.”
아이린이 알려준 귀족의 행동거지는 전부 기억하고 있었다.
애초에 사람을 빤히 바라보지 않는 건 귀족의 예법을 들 것 없이 당연한 일이었다.
“오랜만에 봐도 달라지지 않은 것 같아서 놀랐어.”
“……달라지지 않았다고요?”
“응. 언제나 그렇듯 예쁘네.”
공녀라는 무소불위의 권위가 없었어도 그녀는 분명 주인공을 위협할 라이벌이었으리라.
그 외모만으로도 사교계의 여왕이 될 자격이 충분했다.
엄격한 기준과 까칠한 성격 등은 그 앞에서 작은 단점에 불과했다.
“……입에 발린 아부하지 말아요.”
미에 대한 찬사는 아이린에겐 일상적으로 들어온 칭찬이다.
내게 들었다고 해서 딱히 기쁘진 않으리라.
아이린은 퉁명스레 중얼거리곤 휙 고개를 돌려 표정을 숨겼다.
“그런데 저번처럼 아디톤에서 만나면 될 걸 왜 외출증까지 끊으라고 한 거야?”
일단 변덕이라 치고 넘겼으나 뭔가 이유가 있을 행동이었다.
“아니면 시에라처럼 개인실에서 해도 괜찮았을 텐……아니, 이건 안 되겠지.”
아무리 교육 목적이라도 개인실은 좀.
시에라와는 경우가 달랐다.
시에라는 외부의 눈을 신경 쓸 필요 없는 평민이지만 아이린은 고위 귀족이다.
전 약혼자와의 개인실 행이란 행위는 자칫 불유쾌한 소문이 되어 퍼질 수 있었다.
“밖에서 해결해야 할 일이 있어서요. 겸사겸사.”
“흐음.”
“괜찮죠?”
“어쩔 수 없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이린이 바쁜 거야 주지의 사실이다.
아카데미에 입학했어도 그 입장이 달라지진 않았다.
일이야 찾으려고 들면 한가득 찾을 수 있었다.
“그럼 기다리고 있을 테니 먼저 해결하고 와.”
나도 오랜만에 바람이나 쐴까 싶었다.
아카데미에 입학하고 쉴 새 없이 바쁘게 살긴 했지.
루나랑 구경이나 다닐까.
하는 김에 잠깐 백작가에도 다녀오고.
“번거롭게 굳이 그럴 필요 없죠.”
아이린이 손짓했다.
“같이 가요.”
세실리아가 기다렸다는 듯 마차의 문을 열고 대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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