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0화 〉 40화 개인교습 2차전(7)
* * *
창밖으로 거리의 풍경이 느긋하게 스쳐 지나갔다.
마차가 향하는 방향은 역시나 귀족의 활동지구를 벗어나지 않았다.
잘 보면 교차하는 마차마다 길의 외곽을 달릴 만큼 우리 마차와는 한참을 떨어져 있었다.
이것이 공작가 마차의 위엄이었다.
성골인 중앙 귀족이 즐비한 수도에서조차 대로를 전세 낸 듯 편안히 달릴 수 있는 권위.
나는 창밖에서 정면으로 시선을 돌렸다.
쏟아지는 뙤약볕 아래 다소곳이 두 손을 모으고 앉은 여인이 보였다.
걸리적거린다는 듯 손가락을 들어 귀 뒤로 훑은 옆머리.
언뜻 드러난 귓바퀴에는 작은 보석이 박힌 귀걸이가 반짝거렸다.
“……?”
금빛 눈동자가 나와 마주쳤다.
할 말이 있냐고 묻는 듯싶었기에 나는 입을 열었다.
“정말 나랑 같이 가도 되는 거 맞아?”
“아무 문제 없어요.”
“공녀로서의 업무로 돌아다니는 거라면 내가 같이 있어선…….”
“문제의 소지가 있는데 제의했을 만큼 제가 바보로 보이나요?”
아이린은 귀찮다는 듯 손을 저었다.
“됐으니까 그만 쫑알거려요. 걱정됐으면 처음부터 거절했으면 됐잖아요. 마차에 오른 지가 언젠데 아직도 그런 소리를 해요?”
“그럼 내릴게.”
“재미없으니까 장난치지 마요.”
아니, 난 진심인데.
그러나 아이린은 더는 같은 화제로 떠들고 싶지 않은지 팩 고개를 돌렸다.
본인이 괜찮다니까 괜찮기는 할 것이다.
아이린이 감정적이긴 해도 정치적으로 문제 생길 일은 안 한다.
기본적으로 그녀는 제 위치를 알고 활용하는 똑똑한 영애였다.
하지만 그렇기에 궁금했다.
대체 할 일이 뭐지.
구태여 바깥으로 나왔으니 아무래도 사람 만나는 일일 가능성이 큰데.
“……잘 된 거 맞지?”
“네. 방금 전……확인 마치…….”
내가 머리를 굴리는 사이 아이린은 제 시종과 소곤소곤 말을 주고받았다.
일부러 목소리를 줄인 걸 보니 내가 들으면 안 되는 이야기기인 것 같아 귀를 닫았다.
“도착했습니다.”
마차가 멈추고 세실리아가 문을 열었다.
한데 움직이는 이가 없었다.
대신 장내의 시선은 모두 내게 향해있었다.
“……나도 내려?”
“당연하죠.”
“음.”
주인이 내리라면 내려야지.
그 말에 따라 나는 먼저 마차의 밖으로 발을 내디뎠다.
탁!
손을 내민 것은 본능적인 행동이었다.
어찌 행동할지 생각하기보다 앞서 몸은 습관을 따라 움직였다.
내민 손에 약한 압력과 함께 보드라운 감촉이 느껴졌다.
장갑 너머로도 확연히 알 수 있는 비단결과도 같은 피부의 감촉.
아이린의 손길이었다.
“…….”
뇌가 명령하지 않은 반사적인 행동에 나도 놀랐다.
다행히 아이린은 전혀 신경 쓰는 기색이 아니었다.
은근히 띄워진 미소는 자못 유쾌해 보이기까지 했다.
본인이 신경 쓰는 기색이 아닌지라 나 또한 한시름 돌렸다.
아이린은 까탈스러운 여인이다.
에스코트는 예의라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쉽게 접촉을 허락하지 않았다.
역시 정이라는 건 무시 못 하는지, 나는 아직 그녀의 몸에 손을 대도 괜찮은 사람인 모양이었다.
“그건 그렇고…….”
도착한 장소는 눈에 익되 낯선 장소였다.
정확히 표현하자면 어떤 장소인지 알되 발 한 번 들여본 적 없는 곳이었다.
“……검은 마탑?”
하늘을 찌를 듯 높게 솟은 탑.
검게 칠해진 외벽을 타고 말라비틀어진 덩굴이 치장하고, 음산한 기운이 서늘하게 발목을 어른거렸다.
마법사의 꿈, 인류 지혜의 총화라 불리는 마탑이었다.
……물론 눈앞의 탑은 마탑의 제국 수도 지부에 불과하다.
본부는 제국 서부 금지된 땅에 존재하고 있었다.
하지만 마탑은 마탑이었다.
탑 내부에 상주하는 이들은 동시대 손에 꼽는다는 재능을 가진 진짜배기 마법사들이었다.
음산한 외양으로 볼 때 계통은 흑색.
일반적으로 연금술에 특화된 파벌이었다.
“여긴 왜 온 거야?”
설마 목적지가 마탑일 줄은 몰라 상당히 당황했다.
그것도 흑색이라.
백 보 양보해서 과제 관련이라 할지라도 흑색 마탑은 전혀 연관이 없었다.
“뭔가 걸리는 점이라도 있어요?”
“마탑에 볼일이 있는 거라면 미안하지만 난 여기서 대기할게.”
목적지가 마탑인 줄 알았다면 마차에는 안 탔을 것이다.
가로수에 등을 기대고 턱짓하였으나 아이린은 내게 물었다.
“마탑의 제안을 거절해서 마탑 소속 마법사와는 보기 껄끄러운 건가요?”
마탑의 제안을 세 번이나 거절했다.
마탑이 제국의 권위에 굴복하지 않는다지만 귀족의 방문에는 마땅한 대우를 해주었다.
공녀라면 물어볼 것도 없이 지부장급이다.
그리고 지부장 정도 되는 인사가 나를 몰라볼 리 없었다.
내 얼굴에 내가 금칠하는 일이긴 한데, 마탑 고위층 중에 내 얼굴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거다.
아직 날 고평가하여 영입하려 하든 질시하든 나만 귀찮아지는 일이었다.
“대충 그런 셈이야.”
그뿐만이 아니다.
흑색 파벌의 마법사들과 내 사이는 썩 그리 좋지를 못했다.
괜히 원한 산 놈과 만나기라도 했다간 도심 한복판에서 전투가 벌어져도 이상하지 않았다.
상상만 해도 끔찍하네.
나보고 죽으란 소리였다.
“걱정 말아요. 마탑엔 안 들어가도 되니까.”
“그럼 여긴 왜…….”
“흑색 마탑이잖아요.”
“아.”
나는 그제야 그녀의 의도를 깨달았다.
“이쪽이에요.”
아이린의 발걸음은 흑색 마탑을 지나쳐 떨어진 위치의 한 건물로 향했다.
분명 마탑의 영향력 아래에 있는 건물.
그러나 흑색 마탑의 음침한 외관과는 정반대로 깔끔하고 깨끗한 신축이었다.
나는 정면의 간판을 확인했다.
[흑색 마탑 거래소]
“어서 오세요.”
정문에 다가가기 무섭게 손이 닿기도 전 활짝 문이 열렸다.
정문 너머 맞이한 이는 깔끔한 정장 차림의 젊은 처자였다.
생글생글한 미소와 서글서글한 분위기.
한데 묶은 말총머리가 고갯짓을 따라 통통 튀었다.
“흑색 마탑 거래소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안으로 진입하자 마찬가지로 손을 대지 않았음에도 문이 닫혔다.
마법으로 구현해낸 일종의 자동문이다.
“부재하신 소장님을 대신하여 오늘 하루 보좌를 맡게 된 바그나라고 합니다. 예약하신 아이린 레오나드 공녀님 맞으신가요?”
“그래요.”
“알겠습니다.”
철컥!
아이린의 신원이 확인되자 문에는 잠금장치가 걸렸다.
얼핏 살피기로도 해제가 까다로운 마법적 보안 체계였다.
공녀의 방문이니만큼 그동안 다른 손님의 방문은 차단하겠다는 건가.
아이린은 당연한 대우라는 양 신경조차 쓰지 않았다.
“주문한 물건은 어디 있죠?”
“이쪽으로 와주세요.”
한쪽 벽면, 유리로 된 전시장 안으로 금박이 씌워진 금속 상자가 보였다.
바그나는 조심스레 이를 꺼내 아이린에게 내밀었다.
“주문하신 강건의 영약입니다.”
“……!”
내 눈이 휘둥그레졌다.
상자 내부 작은 유리병 속에서 뿜어져 나오는 찬란한 광채.
마개가 있음에도 흐르는 진한 마력의 향취로 취할 것만 같았다.
영약.
검은 마탑에서 이룬 희대의 성과였다.
마나가 가득 깃든 희귀 재료를 조합하여 만든 물약.
포션이 회복에 특화되었다면, 영약은 강화에 특화되었다.
그것도 일시적인 효과가 아니었다.
영구적인 강화.
게임으로 치면 영구적으로 스테이터스를 올리는 물건이다.
“긴급한 요청에 재료를 수급하느라 상당히 고생했어요. 마탑에서도 고위급 마법사를 파견하여 지원을 받았습니다. 그만큼 품질은 확실하죠.”
“그런 것 같네요.”
내가 봐도 마찬가지였다.
좋은 물건을 쓴 것이란 게 겉모양으로도 느껴졌다.
저만한 마나 양이면 사실 공정이 개판이었어도 어떻게든 몸에 좋은 영향을 미친다.
나쁠 거 하나 없었다.
“대금은 레진 상회에서 받아 가세요. 그쪽에서도 그게 편할 거예요.”
“언제나 감사합니다.”
가격은 듣지 않아도 예상이 갔다.
상회에서 직접 받아 가라 할 정도면…….
지폐로는 감당이 안 되는 금액이다.
흑색 마탑 연금술의 진수인 만큼 누구에게나 팔지도 않았다.
사회적 명성이 있거나, 대금을 완납할 수 있는 재산이 확인된 이에게만 예약을 받았다.
거의 황실 진상품에 가깝다는 소리다.
새삼 느끼는 공작가의 스케일에 감탄만 나왔다.
“더 필요하신 물건은 없으세요? 지금이라면 특별히 할인가로 드릴 수 있습니다.”
큰 거래를 성공시킨 바그나는 이 기회에 아예 뽑을 뽑으려는 요량인 듯했다.
살가운 미소와 부드러운 말씨로 권유했다.
영약 하나면 실적은 충분하지 않나.
탐욕스러운 마법사의 부하이자 마탑 지부의 직원다웠다.
“흐음…….”
“여기 카탈로그입니다~!”
아이린은 바그나가 건네준 가볍게 훑었다.
바그나는 공전절후의 실적을 올릴 수 있다는 기대에 흥분된 기색이었으나 나는 알 수 있었다.
아이린은 별 관심이 없다.
의례적으로 살핀 그녀가 이내 내게 카탈로그를 건넸다.
“케일은 어때요?”
“나?”
“골라요.”
“네가 사러 온 건데 왜 내가 골라.”
부담스럽다.
“어차피 이 영약도 알베지아 남작님 드리려고 한 거예요. 남작님만 드릴 수는 없으니 케일도 하나 고르란 거예요.”
“아니…….”
영약을 누구 주려나 했더니 아버지 거였나.
“좀 과한데?”
“제 마음이죠. 같은 영약이면 부담스러워할 것 같아서 케일은 따로 고르라고 배려해주는 거예요. 정 마음에 걸리면 오늘 교습 잘 가르쳐달라는 뇌물로 치죠.”
“……괜찮겠어?”
“누구에게 묻는 건지.”
아이린은 새초롬히 머리를 쓸어내리며 말했다.
“저 레오나드 영애에요.”
돈은 썩어 넘친다.
아이린은 그리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