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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말 속 뽑기로 살아남는 법-52화 (53/144)

< # 52화 >

# 52화

‘이런 젠장! 젠장!’

세오는 몸을 숨긴 채, 몇 번이고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믿고 있던 존재인 정호는 나타나지도 않았고, 몰려오는 적은 너무도 많았다.

스르르륵-!

하나, 그렇다고 한들 세오가 랭커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그는 정호를 제외한다면 그 누구보다도 빠르게 그림자 지하 성채의 2층에서 사냥을 개시했던 이가 아닌가.

“케헥!”

그림자 은신의 높은 숙련도는 아귀조차도 그 형체를 확인하지 못했던 마당.

구울 따위가 그런 세오의 기습적인 공격을 막아낼 수 있을 리가 만무했다.

아스텔의 상태창을 얻은 세오에게 있어서.

충분한 사냥이란, 그만큼 충분한 레벨 업이 있었다는 말과 일맥상통했다.

‘다중 그림자 일격!’

암살자의 공격이란 본래 일 대 일에 최적화가 되어있기 마련이지만.

히든 클래스라 불리는, 남들과는 다른 특별한 직업을 가지고 있는 그는 그러한 암살자와는 궤를 달리한 힘을 지니고 있었다.

스르르륵-!

“캬하아아악!”

“케에에엑!”

몸을 감춘 세오의 주변에서 그림자들이 몸을 일으켜, 십 수 마리의 구울을 한 번에 쓸어버린다.

“어어?”

“무, 무슨 일인지 모르겠지만 지원이 왔다!”

무려 레벨 32의 암살자 클래스인 세오의 지원.

“이, 이대로 조금만 더 버티면...!”

“어디 계신지는 모르겠지만, 조금만 더 힘을 내주십시오!”

타앙-! 타앙!

아직 그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으나.

그 존재만은 유저들에게 큰 힘이 되어주고 있었다.

‘젠장... 젠장!’

하지만 세오는 이 상황에 대해 매우 회의적이었다.

이곳은 무려 12개의 포탈이 집중되어 있는 장소다.

랭킹 1위의 참가가 확실시 되어 있는 장소에도 불구하고, 랭커들마저 꺼려하던 최고로 위험한 지역이 아닌가.

‘아직 시작도 안 했어.’

아스텔 유저들은 대부분이 1층에 머물러 있는 상황이다.

그들은 구울 외의 존재.

아귀와 라바.

그 너머에 존재하는 준보스와 보스의 강함을 모르고 있다.

‘끔찍해!’

그 위험을 생각해본다면, 도저히 낙관적으로 있을 수만은 없을 상황이었다.

아귀와 라바를 어찌 넘긴다 하더라도.

심지어 아피스마저도 넘어선다 하더라도.

그 뒤에 존재하는 니네체르의 존재는 세오의 부담을 더욱 가중시키는 일이나 다름없다.

‘니네체르가 방에서 벗어난다?’

그 위험을 떠올리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고작 방 안에서도 그만한 위력을 내었던 니네체르다.

12개의 포탈이 밀집되어 있는 곳이라면.

녀석의 분신을 포함하면 무려 48마리의 니네체르가 나타난다는 것과 같은 말이다.

콰득! 콱!

‘언제...언제 오는 거야.’

이미 전투 시간은 30분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구울의 파도는 그 수를 착실히 줄여나가고 있음에도 끝이 보이질 않는다.

‘안 오는 건 아니지?’

스르륵-! 푸욱!

“케헥!”

불안감이 들 때마다 전투에 집중하는 것으로 힘껏 내저어냈다.

하지만 그것도 한계에 다다랬다.

“허억!”

“이, 이 녀석은 뭐야!”

결국은 걱정하고, 염려하던 존재의 등장을 알리는 사람들의 목소리!

“배고...파!”

아귀의 첫 등장이었다.

‘역시 날 죽이려는 거였어!’

까드득-!

세오는 이를 갈았다.

구울의 열 배는 강함을 지니고 있는 아귀.

사실 지금까지 나타나지 않은 것이 이상한 녀석이었다.

‘그림자 순보!’

하지만 세오에게 선택지는 없었다.

아귀로 인해 사람들의 연계가 무너진다면, 자신 또한 살아남을 확률은 없는 마당이다.

아니, 제 목숨을 사리는 것 만이라면 가능하겠으나 그 참담한 순간으로부터 고개를 돌리는 것은 할 수 없었다.

샤샤샥-!

세오는 정호에게서 도망가기 위해서 수련한 탓에 높은 숙련도를 지니고 있는 그림자 순보로 순식간에 목소리가 들려온 위치로 날아들었다.

“아아! 안 돼!”

아귀는 유저 하나를 붙잡고, 당장이라도 그 머리를 먹어치울 듯이 입을 쩌억 벌리고 있었다.

“당장 거기서 비켜!”

세오는 지금껏 단 한 번도 푼 적 없는, 그림자 은신마저 풀어내며 녀석에게 달려들었다.

여기서 사망자가 생겨나면, 유저들의 사기는 물론이고 뒤에서 총을 쏴대고 있는 군인들도 크게 꺾이리라.

“다중 그림자...!”

신형을 크게 날리며, 그리 외친다.

자신이 가진 가장 강력한 스킬을 단 하나의 적을 위해서 내날린다.

한데 그것을 채 다 외치기도 전에.

콰아아아아아앙!

그 장소에서 거대한 폭음과 함께.

“으아악!”

“뭐, 뭐야?”

분명 흙이라고는 한 톨도 없는 고속도로에 위에서 새까만 흙먼지가 날렸다.

탁-, 탁-!

‘어?’

세오는 자신의 뺨을 때리는 돌 조각을 잡아채고서, 그것을 확인했다.

단순한 돌멩이인 줄 알았더니, 그것은 콘크리트 조각이다.

‘설마 군대가?’

패닉에 빠진 군대가 아군과 함께 포탄을 쏴버린 것이 아닐까.

잠시나마 생각하는 세오였으나.

그것이 아니라는 사실 정도는 스스로도 잘 알고 있었다.

“...”

서서히 새까만 흙먼지가 사라지고, 나타나는 이.

거대한 검을 손에 쥐고서, 늑대 한 마리를 통째로 뒤집어쓴 사내의 모습은 이전과는 분명히 달랐으나.

단번에 동일 인물이라고 알아챘다.

“늦진 않은 것 같군.”

이 만한 일을 해낼 수 있는 이는 세오의 기억에는 단 하나 뿐이었으니까.

‘늦었어! 늦었다고! 한참!’

그런 불평을 내뱉고 당장이라도 면상에 내뱉어주고 싶었으나, 그럴 만한 용기는 세오에게 없다.

아니, 애초에 그걸 말할 시간조차도 주지 않았다.

쉐에에에에엑-!

마치 늦은 것을 변명이라도 하듯.

정호가 검을 세차게 휘둘러대기 시작했으니까.

“캬악!”

“캬하악!”

검이 휘둘러질 때마다, 구울들의 신체 이곳저곳이 뭉텅뭉텅 치솟아 올랐다.

“뭐...뭐야.”

“누, 누구지?”

사람들은 의문을 터뜨릴 수밖에 없었다.

‘어?’

그에 세오도 의문을 터뜨렸다.

‘안...늦었나?’

그토록 저주하던 소리가 쏙 들어갔다.

* * *

검이 휘둘러진다.

그 한 번, 한 번의 일격들은 구울들은 물론이고, 아귀와 라바조차.

마치 몸이 두부로 되어 있는 것처럼 두 쪽이 나버린다.

하지만 그것조차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촤아아악-!

촤아아악-!

늑대 가죽을 뒤집어 쓴 사내의 행진은 멈추지 않는다.

오히려, 더욱 박차를 가해 내달리기까지 한다.

“...”

“...”

기묘한 일이다.

조금 전까지만 하더라도, 수백에 달하는 인원들이 필사적으로 막아서던 존재들.

그런 녀석들이 단 하나의 존재에 의해 더 이상 진격은커녕, 후퇴를 거듭하고 있다.

-주인, 너무 신을 내는 거 아니야?

정호는 아틸라의 말을 들으면서도, 멈추지 않았다.

촤아아악-!

다가오려는 몇 마리나 되는 아귀의 형체를 단번에 두 쪽으로 갈라버린다.

‘미쳤군.’

아틸라의 강신은 몇 번이고 해 본 기억이 있었지만 지금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체력의 안배 따위는 필요가 없을 정도로, 강인한 힘이 몸에 흘러넘치고 있었다.

‘고작 한 번.’

고작 한 번의 각성.

그것으로 아틸라가 이룩해낸 힘은 정호의 예상을 아득히 뛰어넘고 있었다.

-아틸라 더 훈★☆☆☆☆

-힘 : 214 체력 : 220 민첩 : 195  지능 : 176

육각형을 그리는 아틸라의 스탯.

그것이 강신을 이루면서 ‘120%’의 동기화 스탯을 포함하니 모든 스탯이 200을 넘어서는 기염을 토해냈다.

후우우웅-!

단순히 검을 휘두르는 것에 세찬 바람이 일어난다.

구울 따위는 그것에 휩쓸리는 것으로 소멸해버릴 정도로 강력한 화력을 내뿜어낸다.

그 뿐이랴.

[전투광(戰鬪狂)]

-적과의 전투가 지속될수록 모든 능력치가 상승한다.

-5분마다 모든 능력치가 5%씩 상승한다.

아틸라의 스킬, ‘전투광’의 효과로 그 스탯은 하염없이 치솟기만 한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지치기는커녕 온 몸에 힘이 흘러넘친다.

-주인, 아무래도 녀석들의 수가 다시 불어나는 것 같은데?

다만 그런 정호가 감당해야 할 녀석들은 무려 12명이나 되는 보스다.

‘하! 이 모습을 보면, 니네체르가 놀라겠는걸.’

자신의 부하가 되었을 것이 분명한 니네체르.

하지만 같은 얼굴을 한 녀석들은 빈 눈동자로 자신을 바라보며, 연신 주문을 읊어대고 있었다.

“크르르르르.”

“캬아아아아!”

그림자에서 치솟아 오르는 수없이 많은 구울의 군단들이 눈에 들어왔다.

-으, 징그러워라.

‘동감이야.’

정호는 허탈하기 짝이 없는 웃음을 흘렸다.

수천에 가까운 적을 베어 넘겼건만, 그 수에 맞먹는 적이 다시 일어난다는 의미가 아닌가.

-주인.

‘알고 있어.’

구울을 쓰러뜨리는 것 자체는 정호에게 일도 아니었다.

다만, 녀석들이 계속해서 주문을 읊어대는 한은 구울들의 수가 줄지 않을 것이란 말과 같았다.

‘48마리라...’

보스는 자신의 분신까지 만들어가며, 진짜가 누구인지 알아차리지 못하게 만들고 있었다.

그 해결책을 정호는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하나가 녀석들 중 진짜를 찾아, 12명의 보스를 쓰러뜨리는 일이었으나.

‘더 간단한 방법이 있으니까.’

뚝.

한창 휘둘러지던 정호의 검이 멈추었다.

* * *

도저히 손을 쓸 수가 없는 상황에서 나타난, 하나의 강력한 지원.

분명 환호를 내질러야 하는 그 상황에서, 사람들은 오한에 떨었다.

“저게 무슨...”

“으으...”

이 지옥 같은 상황에서 자신들을 구하러 온 것이 틀림없는 이의 등장이었으나.

그들은 하나 같이 덜덜 떨리는 몸을 주체할 수 없었다.

그것은 본래 정호가 강신시키고 있는, 아틸라의 존재에 의해 발동한 ‘세계 6대 살인마’의 세트 효과에 의한 일이었으나.

사실, 그 따위 것은 상관이 없었다.

새빨간 눈을 빛내며, 수천에 달하는 언데드들을 쓰러뜨리는 모습은 아군이라기보다는, 악귀에 가까웠으니까.

‘이, 이거야.’

떨리는 몸을 추스르는 세오는 주먹을 불끈 내쥐었다.

어째서인지, 사뭇 늦게 나타난 정호였으나.

그 어느 곳보다, 정호가 나타날 장소에 있는 것이 생존 확률이 높다는 자신의 판단은 틀리지 않았다.

저 악귀와 같은 모습이야 말로, 자신이 알고 있던 정호다.

“도, 도대체 저 사람은 누구야?”

“사람이 맞긴 한 건가?”

사람들은 떨리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후후...’

세오는 괜히 우쭐해졌다.

정호는 늑대 가죽을 뒤집어쓰고 있었다.

그것이 단순한 취향일 가능성도 없었고.

그 형태에 비해 높은 값어치를 지닌 장비일 리가 없지 않은가.

정체를 감추기 위해, 일부러 저런 장비를 구했을 것이 분명했다.

오직 자신만이 저 두려운 존재의 정체를 알고 있다.

‘이대로 밀어버리라고!’

한데, 그런 세오의 응원과 동시에.

“어?”

“구울들이...”

상황이 반전되었다.

분명 형체도 남기지 않고, 사라졌던 구울들이 재차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미친. 저게 다 몇 마리야?’

쓰러뜨린 수에 버금가는 언데드 군단들이 다시금 나타났다.

“어어? 뭐하는 거야?”

“포기...했나 본데?”

악귀가 휘두르던 검을 멈추어 세웠다.

“캬하아아악!”

“캬아아아!”

되살아난 구울들이 재차 달려오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요지부동.

그 자리에 우두커니 멈춰 서 있었다.

그 모습은 마치 망연자실한 모습처럼 보였기에, 단숨에 불안감이 엄습했다.

쓰러뜨려도, 쓰러뜨려도 다시금 되살아나는 구울의 모습에 포기한 것처럼 보여 졌다.

‘그럴 리가 없다니까.’

세오는 그런 이들을 비웃었다.

저 괴물 같은 정호가 포기할 리가 없다.

오히려 녀석들의 보스인 니네체르를 쓰러뜨리기 위한 준비 작업에 불과하다-.

그리 판단했다.

그런 세오의 예측은 반은 들어맞았다.

정호가 검을 천천히 들어, 녀석들을 향해 일직선으로 내뻗고 있었다.

‘거봐.’

의기양양한 미소로 그 장면을 지켜보던 세오.

이제 저 검을 들고서, 조금 전처럼 녀석들을 쉴 새 없이 베어버리리라고 확신했다.

한데, 그 직후.

검의 끝을 따라 하늘을 바라 본 세오의 얼굴이 기울어졌다.

이상했다.

‘왜...? 구름이?’

하늘이 조금 전까지 보았던 장면과 달랐다.

구름이 반으로 갈라져 있었다.

마치 무언가가 강제로 끊어놓은 것처럼.

점차 서로를 밀어내듯이, 밀려나고 있었다.

그 때.

“군신의 검.”

정호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작은 한 마디.

분명 작은 목소리에도 불구했음에도, 구울들의 기괴한 외침을 뚫고서 귀에 틀어 박혔다.

그와 동시에.

파아아아아앙-!

“으윽?”

강렬한 돌풍이 휘몰아쳤다.

“뭐, 뭐야?”

“어떻게 된 거야?”

사람들은 세찬 바람에 눈을 감고서 날아가지 않도록 서로를 붙잡았다. 아예 바닥에 넙죽 엎드리는 이도 있었다.

후우우우웅-.

한참 동안 지속되던 바람이 잦아들자.

“뭐, 뭐야.”

“어떻게 된 거야? 방금.”

“괜찮아?”

“허리케인이라고 분 건가?”

사람들이 제정신을 차리지 못한 채, 두리번거리며 서로가 괜찮은지 안부를 묻기 시작했다.

꽤나 혼란스러운 상황.

“...”

그 속에서 모든 것을 지켜 본 세오만이 경악에 물든 채, 입을 벌리고 있었다.

‘괴...괴물.’

크게 달라진 것은 없다.

정호는 조금 전과 같이, 그 자리에 우두커니 서서 검을 내뻗고 있을 뿐이다.

‘다. 전부 다.’

적들이 모조리 사라진 것만 제외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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