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53화 >
# 53화
군신, 마르스의 검.
아틸라의 검에 대한 전설은 정말이지 대수롭지 않은 일에서부터 시작되었다.
꿈에서 나타난 흰수염을 길게 늘어뜨린 노인.
그는 아틸라를 향해 군신 마르스의 검을 줄 터이니, 모든 땅을 정복하라고 전했다.
단순한 꿈으로 치부할 수 있는 그 상황을 아틸라는 놓치지 않았다.
당시의 아틸라는, 선왕이자 피붙이인 블레다가 죽으며 왕에 오른 위치였다.
블레다의 의문스러운 죽음으로 혼란에 빠질 부족을 아틸라는 수습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때마침 목동이 가져온 칼.
그것을 손에 거머쥐고서, 아틸라는 이 검이야 말로 ‘군신, 마르스의 검’이라 말하며 제단에 올려 제사를 지내었다.
세계 정복을 신에게 약속하면서 말이다.
그저 단순한 해프닝에 불과한 일.
어떤 왕이라도 자신의 자리를 굳건하게 하기 위해서라면 어떤 거짓말이라도 할 수 있다.
하지만 훈족의 최대 전성기를 이끌며.
강력한 군사력을 바탕으로 한, 광활한 땅을 얻어낸 아틸라의 행보는 그 일화마저 전설과 신화가 되기에 충분했다.
휘이이잉-.
폭풍이 지나간 직후.
선선한 바람이 뜨겁게 달구어진 아스팔트 위를 쓰다듬으며 지나갔다.
“...”
“...”
하지만 사람들은 그런 바람을 만끽할 새도 없다는 듯, 멍하니 정면을 바라보고 있었다.
믿어지질 않는 상황이 그들의 머리를 잠시간 멈추어 세웠다.
조금 전까지만 하더라도, 바글바글했던 수없이 많은 언데드들이 보이질 않는다.
그 대신이라고 할까.
고속도로의 시원하기 짝이 없는 탁 트인 일직선의 길이 눈에 들어왔다.
마치 한 순간에 모조리 사라졌다는 듯, 흔적도 없는 그 모습은 사뭇 받아들이기 어려운 점이 있었다.
이 모든 것이 꿈이 아닐까.
현실이라면, 이런 장면 따위는 나타나지 않아야 한다.
그런 생각이 절로 떠오른다.
하지만 무려 수십, 수백 명이 지켜본 장면이다.
“...말도 안 돼.”
결국 기나긴 침묵 속에서 누군가가 입을 열기는 했다.
하지만 그 말은 이 비현실적인 상황을 받아들인다는 의미나 다름없다.
“이게, 도대체 뭐야...”
사람들이 몸을 덜덜 떨어댔다.
거기에 아틸라의 ‘세계 6대 살인마 세트 효과’가 제 역할을 하고 있음에는 틀림이 없었다.
다만, 사실 그 따위 것은 상관없다.
사람들은 영웅을 동경하기 마련이다.
강력한 힘을 지니고서, 위기와 역경을 이겨내는 모습은 그 어떤 이들이라 할지라도 두 팔을 벌려 환영할 터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허용 한도라는 것이 있는 법이다.
“...으.”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 힘의 존재는, 사람들을 두려움에 떨게 만든다.
적들이 사라졌기에, 살아남았다- 라는 감상이 도저히 흘러나오질 않는다.
‘저 검이 우리에게 향했다면.’
오히려 자신들에게 휘둘러졌을 때를 망상하며 몸을 부르르 떨어댄다.
결코 일어나지 않을 일이라고 단정지을 수가 없다.
얼굴조차 늑대로 가리고 있는 이가 아닌가.
정체불명의 이를 신뢰하기에는 이 세상은 너무도 변했다.
짝-! 짝-!
그 때.
누군가가 박수를 치며, 사람들의 주목을 이끌었다.
“자, 자. 여러분. 뭐하고 있습니까? 든든한 지원으로 적들이 모조리 쓰러졌지 않습니까.”
세오였다.
세오는 스스로도 몸을 떨고 있으면서도, 늑대 가죽을 뒤집어 쓴 사내, 정호를 가리키고 있었다.
“저 사람이 누군지 알고 있습니까? 랭킹 1위! 과금망겜플레이어입니다. 예.”
그런 환기성 멘트는 사람들의 불안감을 진정시키기에는 부족했으나.
‘정체불명’이라는 점이 벗겨졌다는 것에 크게 안도시키기에는 충분했던 모양이었다.
짝짝짝짝짝짝.
독재자를 향한 찬가가 이럴 것인가.
환호 따위는 없는, 기묘하기 짝이 없는 경직적인 박수소리가 고속도로 위에 울려 퍼졌다.
짝짝짝···.
그것을 듣는 정호는 미간을 잔뜩 찌푸리고 있었다.
박수소리가 마음에 들지 않았기 때문은 아니었다.
‘이봐, 아틸라. 이런 건 이야기에 없던 일인데?’
-너무 힘주지 말라고는 했었잖아.
아틸라의 스킬, 군신의 검.
그녀의 서사가 되는 힘을 내보인 대가는 상당했다.
* * *
솔직한 말로, 정호는 아틸라의 스킬인 군신의 검의 위력에 상당히 놀랐다.
‘말도 안 되는군.’
단 한 번의 스킬로, 수천에 달하는 적들을 몰살시킨다는 것은 정호의 예상을 아득히 벗어나 있었다.
물론.
‘전부를 직접 쓰러뜨린 건 아니지만.’
대다수가 네크로맨서인 보스가 소환해낸 구울의 군단.
소환자인 니네체르가 쓰러짐에 따라, 당연하게도 사라지기 마련인 존재들에 불과했으나.
그것을 감안하더라도, 놀라운 일이었다.
‘한 번에 열 두 개체.’
방어력이 낮은 네크로맨서 클래스의 보스라 할지라도.
그것을 한 번에 격파했다는 것은 군신의 검이 얼마나 강한 스킬인지 알 수 있었다.
‘으음...’
다만 정호는 모든 것이 끝났음에도 불구하고, 그 자리에 못이 박힌 듯이 서 있었다.
적들을 향해 내뻗었던 검 또한 회수하지 않았다.
‘온 몸을 누가 때린 것 같아.’
몸을 움직일 수 없다는 게 정확했다.
아틸라의 스킬, 군신의 검을 사용하기 직전만 하더라도 온몸에 샘솟던 활기는 온데간데없었다.
그저 손가락 하나 까딱하는 것만으로도 끔찍한 고통이 동반했다.
마치 수없이 많은 개미들이 자신의 살을 인정사정없이 갉아대는 듯 했다.
-너무 광범위로 쏘아댄 탓이야.
아틸라의 말에 정호는 고개를 주억거리려다, 살짝 눈을 찌푸리는 것으로 답했다.
본래 정호가 쓰러뜨리려 했던 것은 가장 성가신 ‘니네체르’ 12체 뿐이었다.
본래라면 동서남북, 네 방향으로 뿔뿔이 흩어져 있어야 할 녀석들.
그런 녀석들이 현대의 고속도로 위에 있었으니, 당연하게도 그 범위가 넓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뭐...’
정호는 시원하게 뚫어져 있는 고속도로를 바라보며 미소를 내지었다.
‘나쁘지만은 않네.’
당장이라도 무릎을 꿇고 싶을 정도로 탈력감.
그마저도 뜻대로 되지 않을 정도의 고통.
그럼에도 편안한 잠에 빠질 수 있을 정도의 만족감이 있었다.
“...”
하지만 그것은 정호에게 허락되지 않은 일이다.
끼익- 끼익-.
삐걱대는 몸은 극심한 고통을 동반했으나, 이를 갈며 천천히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시선이 향하는 곳은, 새까만 적들로 가득 찼던 장소.
이제는 금빛 물결이 펼쳐진 고속도로다.
* * *
‘아이고, 내가 미쳤지!’
세오는 후회를 거듭하고 있었다.
자신이 어쩌자고, 정호의 정체를 까발렸는지는 스스로도 알 수가 없다.
그저 저만한 신위를 보여주는 이가 그저 두려움의 대상으로 남는 것이 아쉬웠을 수도 있다.
‘이 정도는 괜찮을 거야.’
그렇게 자기 암시를 내건다.
과금망겜플레이어라는, 랭킹 1위의 존재는 누구나 아는 이름이다.
‘여기까지야!’
몸을 빼야 할 타이밍이었다.
오늘 일로 확실하게 알게 되었다.
나름 정체까지 알고 있다는 점에서 파악을 했다고 생각했으나, 전혀 아니었다.
저런 막 되먹은 무력이라니?
어떤 스킬을 쓴 것인지, 그가 도대체 몇 레벨인지조차 감이 잡히질 않는다.
종말 속에서 그는 멀리 해서는 안 될 인물이었으나, 그렇다고 너무 가까이 해서도 안 되는 인물이다.
스르륵-.
세오는 그림자 은신을 펼쳐, 곧장 그 자리를 벗어나려 했다.
우우웅-!
손목에서 스마트워치가 울려대는 이상 사태가 발생하지 않았다면 말이다.
-제 5 방어 지역, 이상 발생.
-지원 요청.
세오는 그 메시지를 보자마자, 고개를 기울였다.
본래 이런 지원 요청의 메시지는 서로가 보내지 않기로 약속을 한 마당이다.
어떤 방어선이든 간에, 힘이 든 것은 매한가지다.
적들을 모조리 몰살시키지 않고서야, 다른 방어선으로의 지원은 불가하다는 사실을 그 누구보다 랭커들이 잘 알고 있지 않은가.
‘그런데... 무슨 일이지?’
지원 따위는 생각하지도 않았으나, 그 내용이 궁금할 수 밖에 없었다.
세오는 그 내용을 한참이나 읽어나갔다.
“뭐?”
그러다 화들짝 놀랐다.
자신이 몸을 감추고 있다는 사실조차 까먹은 채, 입 밖으로 소리를 내었다.
내용이 사뭇 심각했다.
‘여기는 끝났지만...’
눈을 흘겨, 정호 쪽을 바라본다.
저 한 명의 독보적인 존재에 의해 가장 위험한 지역이라 불리던 제 8 방어선은 끝이 난 마당이다.
‘나는 상관없는 일이야.’
세오는 그 말을 몇 번이고 되뇌며, 못 본 척 발걸음을 바삐했다.
지금 중요한 것은 이 장소에서 벗어나는 것이 우선이 아닌가.
다만, 그것은 채 다섯 걸음을 옮기지도 못했다.
터업-!
누군가가 자신의 목을 붙잡았다.
“또 만나네요. 도둑 아저씨.”
언제고 들어 본 적 있는, 익숙한 여성의 목소리.
그리고 이 상황에서만큼은 절대로 듣고 싶지 않았던 목소리.
“통성명은 처음이네요. 저는 코르데랍니다.”
“세, 세오입니다. 한, 한국분이 아니신가 보네요.”
세오는 최대한 침착하게 코르데의 말을 받았다.
거기에는 지난번과는 달리, 목에 칼이 들이대지 않았다는 점도 한몫했다.
“어쩐지 무언가 이국적인 느낌이 난다고 할까...하하. 나중에 만나면 차라도 한 잔 대접해드리고 싶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마냥 제정신으로는 있을 수 없는 노릇이었다.
세오는 스스로 무슨 말을 하는 지조차 인지하지 못했다.
“그럼 저는 바빠서, 이만 가보겠습니다.”
다만, 자신의 의사만큼은 확실하게 전달했다.
“조금 전까지만 하더라도, 고민하시더니 무언가 큰일이라도 생긴 모양이죠?”
“아무래도 그런 모양입니다. 하하.”
“자세하게 설명을 듣고 싶어요.”
콰악-!
목을 붙잡은 가녀린 손에서 묘한 압박이 느껴진다.
절대 놔주지 않겠다는 의지가 가득했다.
“그, 그럼 설명해드리겠습니다. 사실 제 5 방어 지역의 랭커들에게서 연락이...”
“아뇨.”
꾸우욱.
한 번 더 압박을 가한 코르데가 자신의 귓가로 속삭였다.
“제가 말주변이 안 좋아서, 직접 말씀해주시면 좋을 것 같은데요.”
“누, 누구한테요?”
“아시면서.”
그야말로 악마의 속삭임이었다.
아니, 지옥으로부터의 부름이던가.
* * *
정호가 몸을 움직일 수 있는 데에는 상당히 오랜 시간이 걸렸다.
‘으음...’
어깨를 쭈욱 피고, 발목을 이리저리 돌리며 몸 상태를 점검하는 정호.
하지만 고통만큼은 어쩔 수 없는 터라, 절로 눈물이 질끈 나올 것만 같았다.
-그 정도는 참아야지. 그래야 이 누님의 주인이지.
아틸라의 응원에 할 수 없다며 투정부릴 수도 없는 마당이다.
그런 그 때.
“주인님.”
정호에게 하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소리가 들려온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자, 코르데가 두 손을 가지런히 모은 채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무슨 일이지?”
“이 분이 할 말이 있다고 하기에 데려왔어요.”
코르데의 옆에는 한 명의 남성이 있었다.
마치 끌려온 것처럼, 울상을 짓고 있는 이는 랭커인 암살귀족, 김세오였다.
“...반갑습니다.”
“오랜만에 뵙네요. 세오 씨. 무슨 일입니까?”
입을 여는 것만으로도 상당한 고통을 동반한 터라, 잔뜩 얼굴을 찌푸렸다.
그 탓일까.
세오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그, 그게. 제 5방어 지역에서 랭커들에게 지원요청이 왔거든요.”
“지원 요청이요?”
세오는 손을 벌벌 떨면서도, 자신의 손목에 걸린 스마트워치를 보여주는 것을 잊지 않았다.
한데, 그 내용을 보는 정호의 얼굴이 사뭇 진지해졌다.
-거대한 몬스터가 침공 중.
-그림자 지하 성채와는 관계없는 존재일 가능성이 높음.
-랭커들 다수, 리타이어.
‘거대한 몬스터?’
첫 문장부터 고개가 기울어진다.
거대한 몬스터라니? 준보스급의 황소인 아피스를 말하는 일인가 싶었으나, 그것도 아닌 모양이었다.
“아, 아무래도 하늘을 나는 묘한 녀석이 있다고 하더라고요.”
내용은 아직 이어지고 있었다.
하늘을 나는 거대한 몬스터.
“거기에, 그 위에 누군가 타고 있다고도...”
-보스급으로 보이는 노인 일 체 발견.
-하늘에서 배회 중.
-누군가를 찾는 듯 보임.
그 마지막 줄을 확인 하자마자 정호의 얼굴이 와락 찌푸려졌다.
‘이런 망할... 반드시 나한테 찾아오겠다며.’
녀석이 분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