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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말 속 뽑기로 살아남는 법-51화 (52/144)

< # 51화 >

# 51화

거미의 알은 한껏 내뿜은 거미줄에 의해 감싸져 있다.

한 치의 틈도 주지 않고, 가득 채워 넣은 알.

그것은 자그마한 외부의 자극.

살짝 손을 찔러 넣는 것만으로도 순식간에 풀어져, 그 속에 감추고 있던 수십, 수백, 수천 마리의 새끼 거미들을 한 번에 배출해낸다.

퍼엉-! 펑!

손가락을 타고 오는 바글바글한 새끼 거미들은 절로 온 몸에 소름이 끼칠 정도다.

제아무리 털어내고, 문질러도 쉴 새 없이 몰려드는 악몽.

“캬하아아악.”

“캬아아아!”

그것이 고작해야 곤충에 불과한 거미가 아니라, 혐오스러운 신음 소리를 흘리는 언데드들이라면.

혐오를 넘어서, 두려움과 공포로 사람들을 집어삼키기 마련이다.

“아, 아아...!”

“이봐! 정신 차려! 곧 놈들이 온다고!”

예산을 많이 쓴, B급 좀비 영화만큼이나 무서운 것이 없다.

분명 한 여름, 무성한 숲은 푸르른 나뭇잎으로 가득한. 삭막하기 그지없는 회색의 콘크리트들만이 가득했던 그 장소들이 모조리 새까맣다.

포탈이 울컥울컥 토해내는 수많은 수의 구울은 주변에서 터져 나가는 소리에 이끌려, 일제히 내달려왔다.

“저, 전투준비!”

그 수가 어찌나 많던지.

조금 전까지만 하더라도 든든하기 그지없었던 바리케이드가 종이 짝 마냥 느껴진다.

사람들은 저마다 자신의 무기를 쥐고서 떨리는 몸을 추스렸다.

투웅-! 투웅-!

전투 시작을 알리는 것은 포탄이었다.

아직 유저들의 사정 범위에는 닿지 않는, 멀찌감치 떨어진 위치.

평화롭기 그지없는 21세기에는 사용되지 않을 것만 같았던 105mm와 155mm 견인곡사포가 불을 내뿜는다.

6.25때나 쓰였던 M48A2C 탱크의 자주포가 삐걱대는 몸을 이끌고 그 기세에 열기를 끌어 올린다.

퍼엉-! 펑!

“캬하아악!”

“캬학!”

그 화력은 월등했다.

잔뜩 밀집되어 있는 곳에 포탄처럼 효율적인 무기가 있을까.

터져 나간 자리에서 구울들이 외치는 단말마의 비명이 숱하게 쏟아져 나온다.

다만, 그것만으로 막아낼 수 있다면 ‘아스텔’이라는 힘을 부여받을 리가 없다. 시련을 받으며 성장할 이유도 없다.

“아, 아직도 저렇게나 많이...!”

녀석들에게 효과가 있었다고는 하나, 그 결과는 암울하기 짝이 없다.

족히 수천을 아우르는 구울의 수는 고작해야 몇 십 씩 나가떨어졌을 뿐이다.

이래서야 바닷물을 그저 손으로 옮기겠다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와, 왔다!”

마침내 녀석들이 고속도로 위를 올라왔다.

더 이상 그들을 인도하는 소리도 없을 진데, 정확하게 바리케이드가 세워져 있는 군대와 유저들을 향해 내달린다.

“캬하아아아악!”

“캬아아악!”

이제 인도할 필요 따위는 없다.

언데드인 그들에게 가장 증오하는, 산 자들이 한 곳에 밀집되어 있었으니까.

타아앙-! 타앙-!

다가오는 녀석들을 향해 군인들의 K2 소총이 불을 내뿜지만, 그 진격을 막아 세우는 데에는 역부족이다.

그렇지 않아도 구울의 뛰어난 방어력은 총탄을 튕겨낼 뿐만 아니라, 설사 깊은 상처가 있더라도 아랑곳하지 않고 뛰어온다.

“원거리 딜러들! 준비!”

고막을 터뜨릴 듯이 쏟아지는 총탄과 포탄의 소음 속에서.

수백의 인원들이 자신들의 무기를 들었다.

지팡이와 활.

만약 이 사태가 일어나기 전이었다면 장난하는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의 우스운 꼴에 불과했으나.

“파이어 볼!”

“아이스 스피어!”

“일제 사격!”

“멀티 샷!”

아스텔의 능력을 부여받고, 스스로의 능력을 키운 그들이 쏘아내는 공격은 결단코 비웃음을 지을 수 없다.

마치 밤하늘에 떨어지는 별똥별처럼, 완만한 곡선을 그리며 떨어지는 그들의 스킬.

“캬학!”

“캬하아아악!”

이 괴물들을 상대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라는 것을 입증이라도 하듯.

확실하고, 착실하게 녀석들의 숨통을 끊어내며 그 진격의 속도를 늦춘다.

덕분에 그 수가 줄기는 했으나···.

구울과의 전면전은 피할 수 없는 일이다.

“탱커 앞으로!”

쿠웅, 쿠웅!

육중한 갑옷을 필두로, 커다란 방패를 든 이들이 몸을 앞세운다.

그 뒤를 비교적 가벼운 복장의 검과 창을 든 이들이 뒤따른다.

쿠우우웅!

이윽고, 격돌.

“죽어! 이 새끼들아!”

“캬하아아악!”

“파워 슬래시!”

방패를 앞세운 탱커들의 구울들을 막아서고, 병장기를 든 이들이 스킬을 난사하는 전면전.

“뭐야! 생각보다 할 만하잖아!”

“쓸데없는 소리 말고, 앞에 있는 녀석들이나 썰어!”

“알았어. 알았다고.”

분명 뒤에서 밀려오는 구울들의 수는 크게 줄지는 않았으나.

사람들의 낯빛은 환했다.

멀리서 다가올 때만 하더라도, 희망이라고는 쥐뿔도 없는 상황이었지 않은가.

한데, 직접 맞붙어 보니 생각보다 할 만 했다.

녀석들이 몸집을 불려, 제법 그 수가 많다고는 하지만 그들도 파티 단위가 아닌, 집단 전투를 감행하고 있는 노릇이다.

결국은 그들이 사냥하던 1층의 구울과 크게 다르지 않다.

아니, 오히려 이성이라고는 눈곱만치도 없는 언데드들과 달리 그들은 연계를 이어나가고 있지 않은가.

군대의 지원까지 있는 마당에 생각보다 이 침공이 막아 세우기 쉬울 것이라고 예상했다.

하지만.

“배, 고...파!”

그림자 지하 성채는 구울들만이 있는 것이 아니다.

녀석들 사이로, 나타나는 개체들.

커다란 배를 두들기며 배고픔을 호소하는 괴물, 아귀.

“키르르르르.”

기다란 몸체로 순식간에 탱커 역할의 유저를 휘감아버리는 라바까지.

속속들이 등장하는 ‘2층’의 몬스터들.

“어, 어어!”

“이봐! 정신차려!”

언제까지고 듬직하게 그 자리를 지킬 것만 같았던 탱커, 전열이 하나 둘 무너지기 시작하자.

순식간에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안 돼!”

“부상자는 얼른 빠져!”

“조금만 버티면 지원이 올 거다! 버텨! 버티라고!”

순식간에 패색의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고작해야 몇 마리의 아귀와 라바가 구울들 틈에 섞여 있을 뿐이다.

저 뒤에는 지금보다 훨씬 많은 수의 2층의 몬스터들이 즐비해있다.

그런 와중에.

“파워! 스트라이크!”

콰아아아앙!

한 사람의 목소리가 그런 이들의 귀를 때린다.

탱커 클래스조차도 막아내지 못했던 아귀를 단 한 방에 박살내버리는 이.

“한방박살이다...!”

랭커들의 등장이었다.

전국 각지에 배치되어진 랭커들.

그들은 하나 같이 어째서 자신들이 랭킹에 수록되어 있는지 입증이라도 하겠다는 듯.

불리했던 전장의 판도를 뒤집어엎기 시작했다.

“와, 와아!”

“살았다! 살았다고!”

다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랭커들이 배치되어 있는 장소에서나 일어나는 일들에 불과했다.

* * *

전국에 포탈은 백여 개에 이른다.

상당한 수는 정호에 의해서, 또 다른 랭커들에 의해서 공략이 완료되었으나.

그럼에도 80여개의 포탈이 남아 있는 마당.

그 중에서도 포탈들이 밀집되어 있는 곳은 위험 지역으로 분류되어, 랭커들의 배치조차 이루어지지 않았다.

아니, 정확히는 ‘과금망겜플레이어’라는 한 사람의 몫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위험 지역은 하나만 있는 것이 아니다.

랭킹 1위의 몸이 둘이 아니고서야, 그 모든 장소를 지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랭커가 없는.

고작 아귀에게도 밀려나는 유저들의 수준에서는 당연하게도 전멸은 불가피한···.

안타까운 상황이 벌어진다.

아니, 벌어졌어야만 했다.

타아아앙! 타앙!

한데.

“뭐, 뭐야? 저 꼬맹이는?”

“랭커? 아니, 랭커에 저런 애가 있었나?”

한데 기묘하게도, 그곳의 양상은 많이 달랐다.

타아아아앙!

K2 소총으로는 그 몸을 뚫기조차 어려운, 구울들을 단 한 발의 총성으로 잠재운다.

아니, 그 놀라운 파괴력은 괴물이 접근하는 것조차 허락하지 않는다.

“어...공격해야 하나?”

“지금 공격하면 오히려 방해가 되지 않을까?”

도움을 줘야 하는 지조차 의문이다.

타앙! 휘익-! 타앙!

그들과 조금 떨어진 장소.

고작 열다섯은 되었을 꼬마가 괴물들의 파도에서 춤을 추고 있다.

머리를 젖히고, 권총을 쏴대는가 싶으면.

바닥을 한 바퀴 굴러, 샷건을 갈긴다.

놀라운 신위를 보여주는 그 행태에 섣불리 도와주기도 어려울 지경이다.

“주인이 이 모습을 봐야 한다니까. 겨우 한 번 실패한 것 가지고 그렇게 타박을 주는 게 말이나 돼?”

열다섯의, 금발을 한 꼬마에게는 전혀 위기감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

기묘하게도, 그러한 상황은 또 다른 위험 지역에서도 펼쳐지고 있었다.

“...대체 저게 뭐야?”

“어떤 파티야?”

“나도 모르겠는데...”

사람들의 눈앞에는 제각기 다른 병장기를 든 병사가 여덟이 보였으나.

펄럭-.

거대한 깃발을 고속도로의 콘크리트 바닥에 꽂은 중년의 사내는 그 존재감이 압도적이었다.

“진군(進軍).”

“와아아아아!”

“와아아아!”

중년의 사내의 입이 떨어지자마자, 주변을 에워싸고 있던 이들이 구울들의 파도에 몸을 내던지기 시작했다.

“어...어?”

“저게 대체 뭐야...”

구울들의 파도가 고작 여덟 명에 불과한 이들을 뚫어내질 못한다.

콰득! 콱!

“캬하아악!”

생기를 떠올리는 새빨간 피 대신, 새까만 피가 여기저기서 터져 나온다.

잇따라 나타나는 아귀들조차, 중년의 사내가 손에 쥔 파초선을 흩뿌리는 순간 쓰러진다.

“이게, 대체...”

랭커들이 나타남에 따라, 환호성을 내질렀던 다른 장소와는 사뭇 다른 반응이 이어졌다.

전혀 위기감이 느껴지지 않는 전투다.

마치 다른 세계에서 온 듯한, 자신들과는 그 궤를 달리 하는 능력은 묘한 두려움을 안겨다주고 있었다.

* * *

‘서서와 키드는 사냥에 시작한 모양이고.’

정호는 위험 지역을 일부러 몇 개나 고른 이유는 제각기 다른 위치에서 사냥을 개시하기 위함이었다.

‘문제없어.’

거기에 불안감 따위는 없었다.

-빌리 더 키드★★☆

-힘 : 78 체력 : 63 민첩 : 195 지력 : 85

키드는 두 번째 각성에서 실패를 경험하기는 했으나, 각성 재료에는 아직 여유가 있는 마당이다.

결국은 두 번의 각성까지 성공한 키드의 능력치는 민첩 만이라면 아틸라의 스탯마저 뛰어넘는 수준이다.

서서 또한 사 성급의 장비, 진군의 깃발에 의해 그 지능수치는 ‘180’에 이르러 있다.

진군의 깃발의 효과는 고작해야 지능을 올려주는 것만이 있는 게 아니다.

‘등용문’의 효과인 소환체의 등급 상승, 지능 수치에 비례하여 그 스탯을 상승시키는 ‘진군’의 특수 능력까지.

‘겨우 구울들에게 쓰러질 이유가 없지.’

문제라면 오히려 정호에게 있었다.

이곳은 가장 위험도가 높은, 12개의 포탈이 집중되는 장소였다.

그 밀집도가 다른 장소에 비해서는 몇 배나 다르다.

“조금 더 틀어막아!”

“녀석들이 너무 많아.”

“으아악!”

“부상자는 빠져! 제 2 탱커 앞으로!”

다만, 상황이 아직까지는 낙관적이었다.

오히려 많은 수의 포탈에서 미어터질 듯이 나온 덕분에.

앞에 선 구울의 수가 너무도 많아, 그 뒤를 따르는 라바와 아귀들은 아직 그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탓도 있었으나.

“배고...파!”

콰득! 콱!

그 후열에서 아귀와 라바들을 정호가 직접 처리하고 있는 탓도 있었다.

후우우우우웅-!

“키르르르-!”

검을 한 차례 크게 휘둘러, 라바의 목을 따버리는 정호는 익숙함을 넘어서 능숙하기까지 했다.

다만.

‘답답해.’

고작해야 이십 분 남짓한 전투에서 정호는 역체감이 무엇인지 단단히 느끼고 있었다.

아틸라에서 유능한 용병으로.

단순한 능력치 면에서도 그 차이를 확연히 보여주는 그 힘의 차이는 묘한 탈력감을 주기에 충분했다.

‘차라리 각성을 보내지 말 걸 그랬나?’

그런 생각이 떠오르는 것도 당연했다.

실패할 수 있을 지도 모르는, 30%에 불과한 확률.

자신의 판단이 틀렸는가도 잠깐이나마 떠올렸다.

-‘아틸라 더 훈’이 수행을 위한 기나긴 여행을 끝마쳤습니다.

-각성 재료 : 데몬하트

-각성 확률 : 30%

-아틸라 더 훈☆☆☆☆☆의 각성에 성공하였습니다.

-아틸라 더 훈★☆☆☆☆이 귀환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정말이지, 찰나의 생각뿐이었다.

-주인, 이 누님의 몸이 그리워졌나봐? 많이 기다렸어?

아틸라의 목소리가 들려오자마자, 정호는 미소를 내지으며 답했다.

“목이 빠지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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