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지렁이로 환생했다-39화 (39/45)

〈 39화 〉 깨어나다(3)

* * *

음?

입안에서 살아 움직이는 듯한 펄떡임과 고소함과 달콤함이 어우러져 무수한 조화를 이루는 이 맛은!?

인간을 먹었네?

기분은 찜찜한데 맛있어서 패스!

역시나 인간은 맛있다.

하지만 전생에 인간이었다는 코딱지만큼의 양심이랄까…. 아니면 잔존의 향취랄까…? 그런 거 때문에 이렇게 맛있는 인간을 내 의지대로 먹지를 못한다.

에이…. 갑자기 기분 나빠졌어.

이럴 땐 뭐라도 박살 내는 게 최고지!

일단…. 이거 부터 어떻게 해야 할 듯 한데….

[꿈에서 깨어날 시간 4분 2초]

사라졌던 게임 능력이 다시 돌아온 것인가? 아니면 나도 게임의 구성원으로서 그저 영향을 받는 것일까? 대략 1초간 고민을 해봤는데 결론이 나지 않았다.

4분이라…. 여기가 어딘진 몰라도 4분 동안 이동할 수 있는 거리가 상당히 제한적으로 보이는데….

좀 더 파괴의 행각을 들어내고 싶은 지금의 심정으로는 단순히 시간을 버린다는 것이 짜증이 났다.

지구는 둥그니까! 자꾸 걸어 나가면 언젠간 바다에 빠져 죽겠지만 꿈이니까 상관없겠지?

꾸그그극....!

오랜만에 날아가 볼까?

<지플링/>

길이 5킬로 둘레 500m에 달하는 몸뚱이가 길이 1킬로에 둘레 1.5킬로의 비만스러운 지렁이로 수축한다. 스플링이 몸을 조이며 탄성력을 보이며 원래 형태로 돌아가려는 것처럼 내 몸 또한 원래 생겼던 몸뚱이로 돌아가려고 부단히 애를 쓰지만 여기서 원래대로 놔두면 내가 생각한 것 처럼 되지 않는다.

<지플링> , <지플링> ,<지플링> , <지플링> ,<지플링> , <지플링>....

까가가각...까가가가가가가각.....!!!

으억…. 나 죽어!

괜히 썼나 보다. 생각보다 아주 아프다.

방금전에도 1/5수준으로 수축한 것이라 상당히 당겼던 몸인데 이제는 지렁이라기 보다 얇은 판때기라고 해도 믿을 수 있을 정도로 얇아졌다.

그래봤자 인간의 기준으로는 여전히 굵은 몸뚱이였지만?

그럼 가볼까?

<지룡보>,<지철봉>,<스크류>,<돌기화/>

지플링으로 수축된 몸에 한층 더 빠른 몸을 만들기 위해 지룡보 스킬을 사용했으며 만약을 대비해서 지철봉 스킬로 몸을 보호했다. 게다가 총알이 날아가는 모습을 본 따기 위해서 스크류 스킬과 장애물을 완벽하게 부수기 위해서 돌기화 스킬로 입 주변을 드릴처럼 만들어버렸다.

흐흐흐

내 몸뚱이는 하늘을 뚫는다!

투캉!

.....

쿠아아아아아앙!!!!!!!!

콰우우우우우우우우우......

만화에서 보면 매우 빠른 물체가 바다를 스쳐 지나갈 때 일어난다는 물살 가르기를 아는가? 현재 바다물을 가르는 게 아니라 땅이 정확하게 250m의 두께로 말려 올라가며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있었다.

그것은 눈으로 볼 수도 쫓을 수도 없는 절대적인 진실인 것 마냥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서 마치 누군가가 손가락으로 흙장난을 하는 것처럼 보였다.

************

중국 베이징 대통령 집무실인 중난하이의 상황은 그렇게 좋지만은 않았다.

"칭이 죽었다는 게 확실한가요?"

"미국의 SS 등급 능력자 케빈의 말로는 그렇다고 합니다."

쾅!

"말이 되는 겁니까!? 중국 최고의 능력자가 한낮 몬스터에게 당하다니!"

"하지만…."

"뭔가 착오가 있는 것이 분명해…. 아니! 분명 착오일 거야! 특히 미국 능력자 케빈! 어째서 우리 능력자는 죽었는데 그 덜떨어진 능력자가 살 수 있다는 건가!"

릐따오의 말에 다들 할 말을 잃었다.

그들이 생각해도 이상한 상황이기는 하지만 현재 상황이 이렇게 돌아가는 데다가 퀘스트의 주범이자 칭을 죽였던 몬스터 `뀨`는 현재 4차 방어진에 투입되어있기에 어떻게 할 방법이 없다.

"당장! 방법을 찾으세요! 다…."

한참 성을 내던 대통령의 말이 끊어졌다. 간부들은 그저 열받아서 그러겠지 하며 계속 딴짓을 하고 있었는데….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

분명 건물 안에 있는데 하늘이 보인다. 그리고 대통령인 릐따오는 어디로 갔는지 보이질 않았으며 건물이 너무나 매끄럽게 잘려 나갔다.

"잘려…? 잘려 나갔다고!?"

너무 비현실적인 상황인지라 이제서야 뇌가 정상 작용을 하고 있었다.

고위 장관은 의자에서 몸을 일으키며 벌떡 일어났지만, 어느 순간 들려오는 소리에 눈을 돌렸다.

"저…. 저게?"

콰가가가가가강!!!

매끄럽게 잘려나간 건물 틈으로 보이는 엄청난…. 아니 엄청나다고 말하는 것 보다는 땅덩어리가 알아서 허공으로 비산하며 모든 것이 사라져 가루로 변하고 있었기에 다소 영화를 보는듯한 착각을 일으키는 장면에 눈을 부릅떴다.

그리고 온몸이 붕뜨는 뜻한 느낌과 함께 한순간 찾아오는 찢어지는 느낌…. 그리고 검게 물드는 눈앞을 보게 되었다.

*************

불과 20초 남짓한 짧은 시간 동안 중국을 가로지르며 주요 도시들은 물론 깊이 700m 파괴 범위 2킬로미터라는 말도 안 되는 공격을 선보이며 지나간 데스킹을 보며 두려움에 벌벌 떨게 되었다.

"현재 위치 추적기로 살펴본 결과…. 믿기지 않지만, 시속 160만 킬로미터로 움직이고 있습니다."

"...뭐요?"

"160만 킬로미터입니다."

지구의 적도 둘레가 4만 킬로 미터이다. 통상적인 속도 면에서 계산한다고 하면 시속 4만 킬로로 다닌다면 한 시간이면 지구 한바퀴를 돈다는 소리였는데 현재 데스킹의 이동속도는 무려 40배나 빠르다. 말 그대로 시간당 지구를 40바퀴나 돌 수 있다는 소리였고 초속 450㎞로 움직인다는 소리와 같았다.

"현재 퀘스트 만료까지 1분 남았습니다. 하지만 데스킹의 속도로 보아 퀘스트가 만료된다고 해도 적어도 1시간 이상은 계속된 이동이 보일 듯 합니다."

"그래서 결론이 어떻게 된답니까?"

현재야 어떻게 됐든지 이미 벌어진 일이니 그렇다 치고 제일 중요한 결과를 물어봤다.

그러자 대책 회의를 열고 있는 서울에서는 차마 듣기 싫은 소리가 흘러나왔는데….

"처음 퀘스트가 만료된 후 데스킹이 정신을 차린다면 우선 일시적으로 속도가 줄어들 겁니다. 예상으로는 절반인 80만 킬로로 떨어질 거라 생각하고 있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위협적이지요. 그리고 5분을 기준으로 점차 속도가 줄겠지만 그때쯤이면 못해도 지구 2~3바퀴는 돈 상태라 금전적 피해는 말로 헤아릴 수 없으며 미국 본토 중심을 관통할 것이라 예상이 되기에 미국 전체가 블랙아웃에 걸릴 확률이 높습니다."

"...다시 말하지만 결론은…?"

"추산 피해 금액 82경 사망자 10억 이상…. 입니다."

현재 중국을 가로질러 다지키스탄 , 이라크 , 이집트 , 모로코를 지나 현재 북대서양을 지나고 있었다. 지나간 곳 중 가장 피해가 막심한 중국 같은 경우는 1억 명 이상의 사망자가 나왔다고 추산하고 있으며 땅이 좁은 이스라엘 같은 경우는 하필 전 국민이 모여 살고 있던 주요 도시를 관통했기에 실제론 멸망했다 쳐도 무방했다.

막을 수 없는 폭주 기관차…. 아니 핵폭탄급 지렁이를 손 놓고 보는 전 세계의 능력자와 사람들이었다.

***********

쩝쩝….

맛있네

입안으로 들어오는 모든 것을 집어삼키는 중이다. 가끔씩 들려오는 스킬 습득 소리에 뭔가 이상함을 느끼긴 했지만, 그거야 옆에 표시된 시간이 지나면 알게 되겠지?

[꿈에서 깨어날 시간 25초]

헤….

얼마 남지 않았네? 아까 딱 봐도 중국을 관통해서 지나왔으니 저 앞에 있는 곳은 미국인가?

너무 빠른 속도라서 보질 못했지만, 코끝 돌기 부분에 꽂혔다가 산산히 부서진 가재 물에 보였던 중국어는 알아볼 수 있었다.

미국이라?

예전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한탕 뛰고 싶었는데….

쿠구구구구구구!!

바다를 가로지르던 몸뚱이가 다시금 땅 위를 지나자 입안으로 들어오는 수많은 잡동사니와 인간을 느꼈다.

내가 생각해도 나 좀 짱인듯?

운석이 빗겨 지나가듯 모든 것을 관통하며 지나가는데 이동속도가 빨라지면 동시에 동체시력도 좋아졌으면 좋겠다. 이건 뭐 뭐가 뭔지 알 수가 있어야지….

[제한 시간 5초…. 4…. 3…. 2…. 1….]

[꿈에서 깨어납니다.]

[정신이상 상태가 풀립니다.]

[현실을 자각합니다.]

[오랜만입니다. 사용자]

어…. 안녕?

콰아앙!!

현실을 자각함과 동시에 들려오는 시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동안 잊고 있었던 모든 기억이 속속히 머릿속을 파고들며 빈 곳을 채워주는데….

거참

벌써 18년이 지난 거야? 어쩐지 길다 해…. 꿀꺽!

시스에게 못했던 수다를 하려고 했는데 입안으로 들어오는 것들로 인해 자꾸만 말이 끊어졌다.

어….

그런데 시스?

[네 말씀하십시오]

이거 어떻게 멈춰?

분명 내가 했던 짓이긴 하지만…. 이건 너무 빨라서 멈출 엄두를 못 내겠다.

[띠링! 퀘스트 발생! <몸을 멈춰라.="">]

[현실인지 꿈인지 구별도 못 하던 미친놈이 멍청히 있다가 멈출 타이밍을 놓쳤다. 몸을 멈추기 위해선 행선지를 따라 이동하세요]

<미국 라스베이거스="" ,="" 하와이="" 아피아="" 오클랜드,="" 오스트레일리아="" 파푸아="" 뉴기니="" 무너진="" 일본="" 서울="" 목적지="" 뀨=""/>

[1초이라도 빨리 멈추는 걸 추천합니다. 아니면 남아있는 게 아무것도 없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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