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8화 〉 깨어나다(2)
* * *
[퀘스트 만료시간까지 1시간 10분 남았습니다.]
벌써 이렇게 됐나?
일단 깨우고 보자는 심보로 인간을 놔두곤 그대로 데스킹에게 다가간 것이었다.
그리고 지금 시점으로 다시 돌아와서 이빨조차 박히지 않는 지금의 상황에선 마지막 수단을 사용할 때가 온 것이다.
세이린이나 유셀이 절대로 인간을 잡아 먹어서는 안 된다고 말했지만, 굳이 다른 차원에서까지 지킬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기에 눈앞에 있는 인간을 먹기로 했다.
꾸드드득….
스킬을 사용한 뀨는 500m에 달하는 크기를 가진 몸체가 허공에 녹아드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뭐야!? 어디 갔어!"
케빈이 당황하며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동안 빠르게 뒤돌아서 피떡이 되어있는 인간을 잡아먹었다.
[흡수 스킬이 발동됩니다. 4가지 스킬 중 한 가지를 흡수합니다. 천참만륙, 파쇄 , 구룡보 , ???(알 수 없음)]
[축하합니다! 스킬 을 습득하셨습니다.]
[ 과 스킬이 융합됩니다.]
[를 습득하셨습니다.]
유형 : 변의형 액티브 스킬
크기와 상관없이 입에 닿는 모든 것을 먹는다는 탐식의 하위 스킬로서 입에 들어가는 것을 잘게 부수어 먹을 수 있다.
쿨타임 : 0
마나 소비 : 0
주의사항 : 칠성장어로 변이할 경우 다른 유형의 스킬을 사용할 수 없습니다.
스킬이다.
칠성장어라는데 처음 들어보는 이름이었지만 표시된 것을 읽으면 충분히 부모의 몸을 뜯어먹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잘 먹겠습니다~
콰직!
우적우적!!
방금전과는 다르게 너무 쉽게 뜯겨 나간다. 마치 엄마 속살을 파먹는듯한 느낌이랄까? 쫀득하면서도 탱탱함이 살아있는 살점이 입안에서 놀아나고 있는데….
[흡수 스킬이 발동됩니다. 48가지 스킬 중 한 가지를 흡수합니다. 흡수 MAX, 지렁이 헤드 어택 MAX, 지렁이 꼬리치기 MAX, ME끼 MAX, 자기 투척 MAX, 지룡보 LV65, 독니 MAX , 불멸화 MAX , 지렁이지렁 LV9, 번식 MAX, 돌기화 MAX , 지플링 MAX , 지철봉 MAX ,스크류 MAX , 자연체 MAX ,뇌전계 MAX , 화계MAX, 수계 MAX , 빙계 MAX, 지류계 MAX , 거미줄 MAX , 투사 MAX......]
눈앞을 어지럽히는 수많은 스킬들이 떠오르며 천천히 랜덤으로 흡수를 시작하는데 예전부터 가지고 싶어 했던 스킬이 흡수가 된다.
[축하합니다! 스킬을 습득합니다.]
[이미 알고 있는 스킬이므로 자세한 설명은 생략합니다.]
[퀘스트를 성공적으로 달성합니다.]
[부모인 데스킹이 깨어납니다. 남은 시간 9시간 59분]
드디어 깨어난다.
무려 360년 만에….
세이린과 유셀이 그렇게 보고 싶어 했던 `지렁이`가 드디어 깨어나는 것이다.
아…?
뭘까….
눈앞이 환하게 변하는 것이 상당히 눈부시네.
꾸그극.. 꾸그극….
평소에 꿈을 많이 꿔서 그런지 요즘엔 꽤 리얼리티한 꿈을 많이 꾼다. 예를 들면 인간이었을 때의 꿈이라던가 옛날에 시스랑 같이 던전을 기어 다니면서 호작질을 했던 것이나….
그리고 이번 꿈은 정말로 현실성있게 몸까지 움직여진다.
오오! 신기해!
지금이라면 충분히 돌아다닐 수 있겠는데?
몸을 움직일 때마다 고무가 강제로 늘어나는 듯한 소리가 들린다. 그렇지만 소리와는 다르게 몸에는 별다른 이상이 없는 듯 보였으며 무슨 놈의 키가 이렇게 큰지 지상이 잘 보이지 않았다.
아무렴 어때? 이왕 이렇게 된 거 스트레스나 풀지 뭐
쿠르르르르!!
땅에 박혀있던 몸을 가볍게 움직여봤더니 땅거죽이 뒤집히며 소리를 낸다. 얼마나 지났는지는 모르겠지만 갇혀있었다는 생각 때문에 이런 사소한 작용에도 큰 카타르시스를 느꼈다.
후우우웅!!
콰아아앙!!!!
일직선상으로 있던 몸을 맘 편하게 자유 낙하시켰다. 폭탄이라도 터진 것 마냥 엄청난 소리와 함께 몸에서 느껴지는 찌릿한 감각은 날 더욱 흥분시키기 시작했고 언제 깰지 모르는 꿈이기에 다시금 느껴보고 싶었기에 지룡보를 이용해서 앞으로 뻗어나갔다.
콰가가가가각!
좋아! 이거야!
내가 원했던 게 이거라고!
매우 빠르게 이동하면서 입에 들어오는 모래, 흙, 바위, 기타 등등의 이물감이 입안을 잔뜩 메꿔준다.
으음…? 고기라도 있나? 쫀득한 맛이 나네
기어 다닌다고 하지만 500m에 달하는 높이로 인해 아래에 있는 것은 보이지 않았다.
아무렴! 내 눈깔이 옹이 눈깔인데 그딴 게 보이겠어?
그나마 탱크는 보이네.
어.
탱크?
물론 탱크라고 말하는 동시에 입안으로 사라지는 마술 같은 일이 벌어졌지만 넘기지는 않았다. 물론 인정이 흘러넘쳐서 그런 게 아니라 탱크는 맛없다.
특히 튼튼하게 만들려고 온갖 합성 금속을 써댓겨서 비리고 쓰고 해서 옆으로 고갤 돌리고 퉤 하며 버려버렸다.
흐흥~
탱크가 있다는 말은 주변으로 인간들이 잔뜩 있다는 말이겠네?
물론…. 지금도 인간들이 빼곡히 들어찼으며 내 뒤를 따라오고 있다는 건 5분 뒤에 알았다.
**********
"앞으로 1분…."
"1차 방어선은 어떻게 됐습니까?"
"우선 데스킹이 싫어하는 합금 소제를 이용한 탱크를 20킬로 전방에 원형으로 배치했습니다."
데스킹에 대한 여러 가지 정보를 서울에 있는 EX 등급 능력자 성태에게 들었다. 어떤 경로로 이런 정보를 얻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이것을 토대로 약 4차 방어진까지 만들어놨다.
가장 마음에 들지 않는 마지막 4차 방어진은 말 그대로 도박이나 다름없는 것인데 다행이라면 녀석이 가만히 있다는 것이다.
꾸그극.. 꾸그극….
하늘에서 섬뜩한 소리가 울려 퍼진다.
거대한 바벨탑 처럼 아득하니 우뚝 서있는 붉은 기둥.. 데스킹이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5분이다! 무조건 5분만 버티면 되는 것이니 죽지 않게 버텨라!"
[잠시 후 퀘스트를 시작합니다. 제한 시간 5분입니다.]
그들은 생각했다.
고작 5분인데 그걸 못 버티겠느냐고 하는 사람들이 있는 반면
반대로
"큭큭…. 5분이면 아무리 빨라도 러시아랑 서울 아니겠어?"
"굳이 우리가 나서서 막을 필요는 없잖아"
이기적인 능력자들이 슬그머니 대열을 이탈하며 옆에서 담배를 피우고 술을 마시고 있었다. 그중에선 미국, 영국, 독일, 러시아 등등 이미 자기들 일이 아니라는 안일한 생각으로 빠져나온 사람들이 태반이었다.
"여~ 짝퉁 나라님께서 웬일이 신가?"
"그러는 무늬만 귀족인 영부인께서는 여기 웬일이 신가?"
서로 으르렁거리는 영국 능력자와 중국 능력자를 보며 자기 할 일만 열심히 하는 미국 능력자들은 열심히 포커만 치고 있었다.
이러나저러나 동양의 일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사람의 심리라는 것이 다 똑같다. 나만 아니면 된다는 아주 간단하면서도 편리한 이론. 그러나 그와 반대되는 상황이 닥친다면 왜 도와주지 않았느냐면서 따지는 거지 같은 이론이기도 했다.
[데스킹이 움직입니다. 카운트 시작 4분 59초]
"이거 크게 한바탕 할 것 같은데?"
"그래봤자 빵즈놈이나 얼음 새끼들에게 가겠지."
빵즈는 말 그대로 중국인들이 한국인에게 하는 욕이다. 이건 한국인들이 중국인들에게 짱깨라고 부르는 것과 같은 선상이었고 얼음 새끼는 러시아인들을 지칭하는 말이었다.
"뭐? 개새끼야?"
"얼씨구? 여기도 얼음 새끼 있네!"
여기저기 똥을 뿌리고 다니는 중국이었기에 상당히 좋지 못한 평판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막상 대면하고 보니 이건 쓰레기 보다 못한 것이 아닌가?
"옛날 빌빌 구걸하던 거지새끼들 돈을 들여가며 키워 줬더니 기어오르네?"
주변으로 얼음이 와그작거리며 날아다닌다. 그걸 본 중국인들이 살짝 주춤하며 뒤로 물러나는데 이미 뒤를 점하고 있는 영국 능력자가 있었기에 오도 가도 못하는 중국 능력자들이 버럭 화를 내는 것이 아닌가?
"너희들! 감히 중국인들을 핍박해!? 가만두지 않을 거다!"
"미친 새끼들. 누가 먼저 시작했는데?"
"중화인민공화국에서 너희들을 가만 둘 것 같으냐!? 게다가 우리에겐 SSS 등급의 칭님이 계시다!"
"이래서 미개한 거지새끼들이 안 된다니까? 힘만 믿고 깝죽거리잖아"
"그러게, 뭐든지 남들이 잘되면 배 아파서 시기하고 자기들이 잘되면 협박에 공갈에 쯧쯧…. 애쓴다."
평소라면 이를 부득부득 갈면서도 돌아갔겠지만, 이번엔 그러지 않았다. 이젠 꼴릴 것이 없기 때문이었다.
SSS 등급 능력자인 칭이 죽었다는 소릴 이미 미국 능력자인 케빈에게 들었기 때문이였는데 말 그대로 여기서 이 녀석들을 죽인다고 해도 이곳에 있는 사람들이 입을 싹 다문다면 죽었는지도 모를 것이다.
"그냥 순순히 죽어 거지새끼야"
촤자자작!!
"으아악!!"
"컥..!"
허공에 떠 있던 얼음 송곳이 미처 대비하지 못한 중국 능력자들에게 박혀 들더니 이내 얼음으로 된 동상처럼 꽁꽁 얼어붙어 버렸다.
"실력도 없는 새끼들이…."
"저딴 나라에서 SSS 등급 능력자가 나왔다는 게 신기하단 말이지"
그렇게 칭하나만 믿고 있던 중국은 점차 패망의 길을 걷고 있었다.
쿠르르르르르!!!!
"이거…. 상당히 빠른데?"
중국 능력자를 처리하고 다시금 평화로운 막사가 된 지 몇 초나 지났을까?
무려 150킬로나 떨어진 곳에서도 느껴지는 엄청난 진동에 잔뜩 긴장하기 시작했다.
[퀘스트 성공까지 남은 시간 4분 30초]
1분이 안 되는 시점에서 벌써 150킬로를 돌파했다는 뜻은 잘못하다간 미국까지 갈 수 있다는 소리와 같았다. 물론 미국까지 가는 동안 퀘스트는 깨질 것이다. 다만 퀘스트가 깨지고 난 뒤에도 난폭하다는 상정하에 엄청난 재앙을 불러올 수 있다는 생각을 할 뿐….
무전으로 들려오는 소리를 들어보자니 1차 방어선은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아무런 방해 요소가 되지 않는지 그냥 뚫고 지나갔다고 한다.
그리고 2차 방어선 데스킹의 까다로운 입맛을 사로잡아줄 가축들이 종류별로 있었는데 그것 또한 단 10초도 붙잡아 두지 못했다고 한다. 그럼 가축들은 멀쩡하냐? 그것도 아닌 듯 하다.
마치 진공청소기가 먼지를 빨아들이듯 8천 마리가 되는 가축들이 순식간에 데스킹의 입속으로 빨려 들어가더니 그대로 사라져 버렸다고 한다.
1차 방어진이 깨지고 2차 방어진이 깨진 지금 3차 방어선에 있는 이곳까지 거의 스트레이트로 왔다는 소리였는데 막사로부터 전해져오는 공기의 진동을 통해서 얼마만큼 다가왔는지를 알 수 있게 해주고 있었다.
"젠장! 모두 밖으로 나가!"
능력자중 한명이 기겁을 해며 막사 밖으로 몸을 던진다. 몇몇의 눈치 빠른 능력자는 따라서 황급히 나갔지만, 눈치 없고 자존심이 강한 대부분의 능력자들이 꽁지 빠지라 도망가는 능력자들을 보며 비웃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 넓은 공간에서 딱 이곳으로 온다는 법이 전혀 없기 때문이었다.
으아아악!!!!!
역시나 밖에서 울려 퍼지는 비명소리에 혀를 끌끌 차는 능력자들이었다.
"괜히 움직여서 죽는 저 병신들 봐라."
"킥킥 데스킹이 얼마나 큰데 우리가 보이겠냐? 물론 움직여서 시선 끌어줘서 고맙다고 해야 하나?"
두두두두두두둑!!
"정말 가까이 왔나 보군 이렇게 심한 진동이라니"
"몸길이 5킬로에 육박하는 데스킹이다. 100킬로 밖에서 움직여도 진동이 감지되는 녀석이니 이정도면 못해도 1킬로 안에는 접근했다는 소ㄹ…."
스스스슥….
"어…?"
"몸이 왜…?"
한참 말을 하고 있던 그와 포커를 치며 지금 순간이 넘어가길 기다렸던 능력자 등 약 40명에 달하는 능력자들의 몸이 서서히 기화되기 시작했다.
한줄기의 촛불처럼 서서히 뽑혀 올라가는 몸을 보며 이게 뭐지? 라고 생각하다가 막사의 천장이 훌러덩거리며 벗겨졌는데 그때 서야 깨달았다.
"아…. 그렇군…."
온통 핏빛 벽으로 둘러싼 듯한 아주 고어스러운 풍경이다. 단순히 핏빛벽이였으면 참 좋았을 텐데 꾸물떡 꾸물떡 거리며 살아있는 듯 움직이며 주변의 모든 것을 먹어 치우고 있는 듯 열심히 빨아당기는데….
그중 자신의 몸과 연결된 연기 같은 것을 보고는 손으로 살짝 건드려봤다.
"세포분열…. 아니 분자 분열인가?"
어둠속으로 빨려 들어가듯 눈앞이 깜깜해졌다.
다행이라면 고통은…. 없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