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화 〉 변화(2)
* * *
세이린이 마당 한쪽에 마련된 화원을 가꾸며 나에게 트집을 잡는다. 세이린 말대로 거대한 나무를 질질 끌고 다녔더니 땅에 깊은 구덩이가 생긴 건 맞는데 도와주지도 않으면서 자꾸 잔소리만 하니 여간 짜증나는게 아니다.
"뭐! 왜! 뭐뭐뭐!"
`아니…. 아무것도….`
계집애가 성깔은 더럽다.
물론 더러운 성깔 뒤에 자상한 면도 있다. 예를 들면….
"유셀 밥 먹고 해"
"알았어"
"야! 넌 먹지 말고 일해!"
응.
자상한 면은 개뿔…. 전부 유셀한테 쏟아진다.
방금 볶은 것 처럼 고소함이 쏟아지는 장면에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히는 상황이었지만 굳이 상관 하지는 않았다.
왜?
보기 좋았으니까.
내가 죽기 전에 가졌던 단란한 가족의 이상형이랄까?
매번 돈 가지고 오라며 툴툴대던 아내도 그립고 주말마다 귀찮게 놀자고 했던 아들 녀석도 그립고 회사에서 티격태격하던 상사도 그립…. 지가 않네? 그 녀석은...없에..큼큼! 아무튼 대리만족이랄까?
내가 못했던 일을 세이린과 유셀이 대신 이뤘으면 하는 작은 소망이 생겼기에 묵묵히 참을….
"야! 일 안 해!?"
수 있긴 개뿔!
`야! 유셀만 입이고 난 주둥이냐!?`
"그럼 네가 주둥이지 입이냐!?"
어.. 주둥인가? 인간의 입을 입이라고 하니…. 나 주둥이 맞구나?
`몰라! 나도 밥 줘! 배고프단 말이야!`
"꺅! 오지 마! 이 변태 비만 지렁이야!"
오랜만에 지렁이지렁을 사용해서 세이린을 지렁이로 만들어 버리고는 엉덩이를 콱 깨물었다.
뭐…. 예상했겠지만 야릇한 신음 소리는 물론 유셀이 보는 앞에서 몸을 빌빌 꼬며 좋다고 하는데 내 입장에서는 좋다고 빌빌 꼬는 거지만 유셀의 입장에서는 그냥…. 꿈틀 하는 것 이상으로는 보이지 않는가보다.
"하악…. 하악…. 이…..이….이…."
`이 뭐? 한번 더해줘?`
"하지마! 하지마?"
기겁하며 유셀뒤로 숨는다.
`헤…. 귀엽네!`
"남의 마누라에 눈독 들이면 안 되는 거 알지?"
`알아 나도 유부녀한테는 관심 없거든?`
슬금슬금 뒤돌아서 한가롭게 누워있는 청랑에게 다가가서 품속으로 들어갔다.
`아응~ 주인님! 남들 보는 앞에서….`
뭔 상상을 하는진 몰라도 그딴 짓 할 생각은 없었기에 그냥 복슬복슬한 속 털 속으로 파고들었다.
역시 개털…. 아니 늑대 털은 부드럽다니까
조금 더 느끼고 싶었던지라 크기를 딱 청랑 보다 작게 20m로 불려서 온몸을 빌빌 꼬았다.
청랑은 내 행동에 뭐가 그리 좋다고 연신 하악하악 거리는 건지는 몰라도 오랜만에 번식 스킬이나 써볼까 싶어서 사용하려고 했더니….
"야! 밥 먹는데 뭔 짓거리 하려고!?"
"...이왕이면 밤에 하던가 우리 눈에 안 띄는 곳에서 해줬으면 하는데…."
세이린은 짜증 난다는 말투였지만 유셀은 뭔가 애절? 간절? 한 말투였다.
아하? 유셀은 세이린이 발정 나는 게 무섭구나?
`유셀`
"응?"
`세상에서 제일 재미있는 게 뭔지 알아?`
내 물음에 궁금증을 표현하더니 이내 고민을 하기 시작한다. 그리곤 세이린을 살짝 보고는 얼굴이 붉어지는데….
이 녀석…. 누가 깨알 사랑을 하래!?
왠지 속이 뒤집히는 느낌이 들어서 나도 모르게 청랑에게 번식 스킬을 사용해버렸다.
컹컹컹!!컹!
"야! 아놔…. 눈이 더럽혀졌어"
세이린이 눈을 가리며 나의 행각을 못 본 척 하지만 난 보았다. 여자들의 전매특허
손가락 사이로 볼 거 다 보기 스킬….
청랑은 좋다고 낑낑거리고 있고 유셀과 세이린은 얼굴이 붉어진 채 연신 도시락만 까먹고 있는데.
케케케케!
오늘 밤…. 아니 내 예상이 맞다면 밥 먹고 DNA 방출과 흡수행위를 하겠지?
유셀! 세상에서 제일 재미있는 건 불구경 싸움구경, 그리고 남의 사생활 구경이야 잘 기억하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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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찰일기.
지난 몇 주간 인외자의 행동을 관찰해온 결과 여타 몬스터들과는 차원이 다른 행동을 보였다.
마치 몬스터 유저들과 같은 모습이랄까?
NPC들과 놀고 일도 하며 울프퀸에게 짝짓기를 시도 하기도 하며 몬스터 처럼 행동을 하지만 내 눈엔 마치 부러워서 그러는 것 처럼 보였다.
거기다 세이린과 유셀이란 NPC 역시…. 뭔가 이상하다. 최근 들어 모한다르 홈페이지에는 게임이 정말로 다른 세상과 연결된 게 아니냐는 그런 글이 자주 올라오긴 한다.
게임이라면 기본적인 시스템이 있을 텐데 NPC들에겐 말 그대로 시스템이라는 게 없는지 NPC라는 단어도 알고 있고 우리들이 유저, 또는 다른 차원의 인간으로도 부르고 있다는 말이 오간다.
몇몇의 플레이어들은 세상의 역사를 조사하던 중 게임에서 공지한 역사와 틀린 부분을 찾아내기도 했었고 그걸 킹덤사에 문의를 해봤지만 역시나 돌아오는 건 침묵 뿐이었다.
물론 그래 봤자 수많은 사람이 그런 걸 따져서 뭐하냐는 식으로 `이건 그냥 게임이다`라고 생각하라며 플레이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몇몇은 머더러(살인마)가 되어 실제로 유저와 NPC들을 살해하고 다니기도 했으며 그로 인해 수많은 퀘스트들이 엉켜 소실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참고로 머더러들은 아캄 중립국에서 파병 나온 병사들에게 붙잡혀 사형을 선고받았는데 놀랍게도 케릭터가 삭제당해버렸다.
말 그대로 모한다르에서 사라져 버린 것이었다.
인외자 말고도 다른 방식으로 삭제할 수 있다는 소식을 전달받은 수많은 플레이어는 혹시 모를 위험 때문에 공포스러워 했다.
단순히 캐릭터 삭제라는 것 때문이 아니었다. 가상현실 게임 모한다르에 접속하기 위해서는 캡슐 4천만 원 계정비 100만 원에 월 20만 원이라는 거금이 들었는데 문제라면 1인 1캐릭터라는 암울함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었다.
말 그대로 잡케를 만들었다고 삭제를 해버리면 케릭터를 다시 만들 수 없다는 뜻이기도 했다.
한번의 실수로 4천만 원이 넘는 금액을 손해 본다면 얼마나 뼈아프겠는가?
"제법 그럴싸한데?"
유셀의 입에서 나온 말은 대략 손가락 크기만큼의 감탄사랄까? 물론 만든 정성과 시간을 생각한다면 이 정도 감탄사도 복에 겨운 것이지만 어쩌겠는가? 우리 모두 손이 발인데….
정확하게 직사각형의 테두리에 삼각형 모양의 지붕, 그리고 둥그런 문 하나와 옆구리에 달린 창문을 가장한 개구멍 2개.
바르게 말하자면 집이요 나쁘게 말하자면 개집이요….
`밖에서 자는 것 보다는 낮겠네!`
무식하게 크기만 컸지 실질적인 살림살이는 전혀 없다.
왜?
여기는 청랑과 내가 지낼 곳이거든.
아!
뀨도 포함해서 3명이 함께 지내기 위해서 만든 곳이다. 아까도 말했듯 외형은 개집인데 크기는 청랑에 맞췄기 때문에 높이 10m에 길이 30m로 어떻게 보면 터널이라고도 불리고 컨테이너 박스형 개집이라고 불릴 수도 있겠다.
"자자! 빨리 들어가서 집구경 해야지?"
`집구경이라기보단….`
집구경? 할 게 뭐가 있나 그냥 입구에서 보면 뻥 뚫려있어서 다 보이는데.
"몰라! 이것들아! 너희 때문에 유셀이 밤마다 얼마나 힘들어했는지 알아?!"
`그 범인이 누구인지는 본인이 제일 잘 알 텐데?`
"시끄러워! 이 비만 변태 지렁이야!"
투닥거리긴 하지만 이게 세이린만의 독특한 친밀감이란 걸 알기에 불만감은…. 그리 크진 않다.
아예 없다는 건 아니고. 약간이랄까?
"아! 그러고 보니 오늘 유저들이 온다고 했는데?"
"엑? 언제? 왜? 뭔 일 때문에?"
유셀이 오늘 오후에 오기로 한 유저들 이야기를 하니 세이린이 기겁을 한다.
왜 그런가 했더니 가끔씩 찝쩍대는 유저가 있다나 뭐라나?
빈유에 키도 작고 삐쩍 말라서 뭐가 그리 좋은지…. 이래서 인간이란 쯧쯧쯧….
"뭐야 그 한심한 눈초리는?"
난 세이린의 말을 가볍게 씹어주고는 청랑과 함께 새로 만든 집에 들어갔다. 뒤에서 쫓아오는 뀨를 보며 내심 귀엽다는 생각을 했지만, 한편으로는 여전히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에 될 수 있으면 보지 않는 편이었다.
`그러고 보니 배 속에 있는 새끼지룡들은?`
`주인님의 자식들은 무럭무럭 크고 있답니다.`
`안 아파?`
`아프죠?`
`....`
세이린도 그렇도 청랑도 그렇고 왜 이렇게 시크한지 모르겠네.
분명 뱃속을 뜯어 먹고 있을 새끼들 때문에 많이 아플 텐데도 전혀 내색하지 않는다. 그만큼 레벨 차이가 심하게 난다는 소리였으며 회복력 또한 많이 늘었다는 소리였다.
[전방 500m 앞 유저로 보이는 다수가 포착되었습니다.]
깜짝이야!
너 기척 좀 하고 다닐 수 없어?
모습이 보이질 않으니 온 지 안온 지 판단이 서질 않기에 이렇게 갑작스러운 말에도 깜짝깜짝 놀랄 때가 많았다.
[저에게 삶의 낙을 빼앗지 마세요]
거참…….
이 녀석 한테는 날 놀라게 해주는 게 낙인가 보네.
하기사 나 말고는 대화조차 할 수 없으니 어쩔 수 없는가?
요즘 GM의 행동은 어때? 별다른 이상은 없지?
[현재까지는 별다른 사항은 없지만, 저쪽 세계에서 상당한 혼란이 찾아 온 듯 합니다.]
혼란?
뭐 때문에?
[몇몇의 유저들이 이곳 모한다르에 대해 의심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쪽 세계에서 상당한 재력가인지 무분별한 현질을 이용하여 정보를 수집하고 있는데 추측하기엔 3개월 안에 이곳이 가상이 아닌 현실이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라 예측됩니다.]
그래?
일이 재미있게 돌아가네.
현재 모한다르에 접속한 `가짜`들 수가 몇이라고 했더라?
[평균 10억 명의 유저가 접속하는 상황이고 주말에는 대략 30억에 가까운 유저가 접속한다고 들었습니다.]
게임이라고 생각하면서 몬스터나 도적들을 죽이고 다니는 사람들이 막상 이곳이 현실이고 죽였던 것들이 정말로 살아있는 생명체라고 한다면 어떻게 될까?
아마 혼란을 뛰어넘어 광기로 뒤덮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왜냐?
가짜들은 그동안 몬스터들이나 도적들을 죽이면서 짜릿한 쾌감을 느껴봤을 테니까.
쾌감을 느껴봤지만 게임 속이라는 강박관념 때문에 현실에서 조용하게 살았겠지만 진짜라면? 모르긴 해도 몇몇은 현실에서도 거침없이 살인을 할 것이다.
오오!
재미있겠다.
정말 재미있겠어….
나도 가서 죽이고 먹고 싶다.
꼬르르르륵…….
배고파.
배고파….
먹을 거 없나?
[사용자의 정신에 오류가 발생했습니다.]
오류라니?
난 정상이라고?
몬스터가 인간을 죽이는 건 당연한거 아니야?
잡아 먹는 것 또한 단지 배고파서 먹는 것 뿐이라고?
어…?
내가 무슨 생각을 했더라?
정신없이 중얼거리던 난 필름이 끊긴 것 처럼 부분적인 기억이 상실되었다.
아무리 기억해보려고 해도 도통 기억이 나지 않고 오히려 머리가 아파오기에 그냥 청랑의 품속에서 잠을 청했다.
[사용자의 정신을 보호해주던 특전이 사라지고 부작용 발생, 시급히 처리요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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