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화 〉 황녀 세이린을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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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녀 세이린을 만나다
어라…. 저게 뭐야?
[아마 게임 내에서 GM의 공지글 같습니다.]
그건 알겠는데….
저기에 적혀있는 지렁이…. 는 날 말하는 거 맞지?
딱 봐도 나다. 오우거를 먹었던 것 하며 데이터 소실에 관한 이야기를 하는 것 보니 라는 것이 날 지칭하는데 아무래도 나에 대한 정보를 저쪽에서 알고 있는 듯 했다.
하긴…. 누가 뭐래도 여긴 게임세상이니까 만든 사람이 잘 알겠지?
모르긴 몰라도 나랑 비슷하게 만든 몬스터도 있을 것이 분명했다.
아니면 내가 그 몬스터 일수도 있고 말이다.
어찌 됐던 간 하늘에 떠 있는 공지글로 인해 더욱 편하게 지낼 수 있게 된 나로서는 크게 신경 쓸 일은 아니었다.
물론 하늘에 떠 있는 공지글 한번 나 한번 공지글 한번 나 한번 번갈아 가면서 보는 유저들이 많아졌다고 해야 하나?
그래 봤자 공격하는 사람은 없지만.
[사용자의 주변으로 감시자가 붙었습니다.]
응?
누구?
[왼쪽 뒤 21도가량 꺾어진 틈 사이 3명의 인간이 3분 전 부터 사용자를 뒤따라오고 있습니다.]
거참.
넌 그런 것도 알아?
시스가 알려준 곳으로 고개를 돌리며 힐끗 보니 정말로 3명의 인간이 보고 있는 걸 확인했다.
살기가 없는 것을 보니 공격할 의사는 전혀 없어 보였고 그저 관찰하기 위해서 확인차 보고 있는 듯했다.
몰래 훔쳐보는 거…. 기분 나쁘네?
잡을까?
[잡는 것 보다는 배후를 알아내는 것을 추천합니다.]
확실히
몰래 감시하면서 살펴본다는 뜻은 누군가의 사주를 받았거나 그만한 이득을 챙기기 위해서이다. 현재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으니 후자는 탈락이고 그렇다면 누군가의 사주를 받아서 날 감시 하려는 것밖에 없었다.
[감시자들이 물러갑니다.]
쫓아가자.
슬금슬금 어디론가 가는 그들의 뒤를 쫓아가며 노점상에 있는 음식을 하나하나 골라 먹었다.
이럴 땐 거미줄 스킬이 정말 활용 가치가 많은듯했다.
[스킬을 그런데 쓰라고 준 게 아닐 텐데….]
닥쳐!
난 내 맘대로 사용할 거야!
우걱우걱!
음~
이거 맛있네! 올때 하나 더 가지고 가야지
물론 공짜로 먹는 건 아니다.
아다만티움 조각을 반으로 쪼개어 3개에서 6개로 만든 뒤 거미줄을 이용해서 줌과 동시에 빼앗듯 강탈해오는 것이었다.
상대방 입장에서는 오히려 이득이니 괜찮은 생각 아닌가?
꼬치 하나에 50브론즈 하는 거 4개 가지고 왔으니 2실버다. 하지만 새끼손톱보다 절반 정도 작은 아다만티움은 못해도 30골드가 넘는다. 100실버가 1골드인것을 감안 한다면 충분히…. 아니 완전히 개 이득인 것이다.
양손 가득 들려있는 돼지 꼬치와 핫바를 입안으로 야금야금 넣으며 쫓아가는데 이 녀석들은 뭐가 그렇게 바쁜지 시지도 않고 달려간다.
시스 여기로 계속 가면 어디로 나와?
[현재 방향으로 계속 가다 보면 아포미네 제국에 도달합니다. 하지만 현재는 아포미네 제국은 몰락했으며 작은 왕국 5개로 쪼개어졌다고 합니다.]
그래? 거참…. 이 녀석들은 누구의 사주를 받았으려나…?
유저가 사주를 받는다고 한다면 퀘스트 뿐이 없다.
단순한 확인용 퀘스트라면 몰라도 토벌이나 여타 귀찮은 퀘스트를 받았다면 아예 귀찮은 껀덕지를 없애버릴 요량이었는데 저 녀석들이 말을 타는 것이 보였다.
어어...
그러면 안 되는데?
지룡보를 이용해서 빠르게 쫓아갈 수도 있지만 그렇게 된다면 양손에 들려있는 음식들이 바람에 날려가서 못 먹게 될 상황이 도래할 수 있었기에 어쩔 줄 몰랐다가 머리에서 아주 기막힌 생각이 떠올랐다.
가라! 시스!
[....]
가! 가라니까?
[제가 왜….]
이럴 땐 닥치고 시스! 하면서 날아가야 하는 거야!
옛날 TV 만화에서 주머니 몬스터를 떠올린 난 시스를 저 녀석들에게 붙여버렸다.
어디로 가는지 잘 보고와~
이거 참 맛있네! 우걱우걱!
[.....]
아무 말 없이…. 아니 어차피 보이지도 않으니 그냥 사라졌다고 하자.
``
``
``
1시간쯤 지났을까?
[다녀왔습니다.]
오오~ 왔어?
귓가로 들려오는 시스의 목소리에 먹고 있던 흙을 뱉어내고는 물어보았다.
그래 어디로 갔는데?
돈 많은 상인?
탐욕스러운 귀족?
아니면 세계지배를 원하는 왕!?
[여기가 영화속도 아니고….]
뭔가 어이없다는 말투가 슬며시 새어 나오는데 그 말을 듣자하니 내가 이상한 놈 처럼 느껴졌다.
아니!
꼭 그렇잖아
세상에 마법도 있고 몬스터도 있으니 흑마법사나 마족들이 튀어나와서 `흐흐흐 세상은 내가 지배한다!` 이러면서 나 뒹굴면 얼마나 좋아?
아…?
그러고 보니 게임 세상으로 변했구나?
[아마…. 사용자가 원하는 일은 특별한 이벤트가 아닌 이상에야….]
없겠지…?
[네]
단호박이네.
너무 칼같이 끊어내는 시스의 말에 풀이 잔뜩 죽었다가 그 녀석들에 대해 다시 물어보았다.
[감시자의 뒤를 쫓아가 본 결과 예전…. 그러니까 11년 전에 세이린이라는 여자를 보게 되었습니다.]
세이린? 세이린...세이린..?
누구지?
누굴까나?
11년 전이라는 말에 곰곰히 떠올려봤지만 도통 기억이 가물가물하다가.
[그때 5층 퍼펫들에게 개발리다가….]
아!
떠올랐다.
그때 그 엉덩이…!
아니 잠시만 그것보다 뭐라고? 개발려? 그딴 상스러운 말 누구한테 배운 거야!?
[너님이요]
아..
미안해요
갑자기 성격 더러운 아줌마처럼 행동하면 부끄러워서 죽여버릴 수가….
[농담입니다.]
엉덩이…. 아니 세이린이 있다는 곳은 아캄 중립국으로 부터 약 30킬로 떨어진 곳이었는데 인근 마을과는 상당히 떨어진 외딴곳이라고 한다.
울프퀸이랑 같이 있다는 게 상당히 코믹한데?
[거기다. 상당한 친밀도를 자랑하더군요]
음..
몬스터와 인간이라?
하긴…. 요즘엔 그딴 게 어디 있어? 몬스터 가짜도 있고 인간 가짜도 있는데.
다만 필드 몬스터나 벨로르 던전 같은 던전형 몬스터들은 말 그대로 게임의 구성을 위해서 존재하는 옵션 같은 놈들이라서…. 아니지? 그럼 울프퀸 역시 던전형 몬스터로 되었어야 했지 않나?
[아마 사용자의 영향이 다분히 끼쳤을 거라 예상합니다.]
왜?
내가 뭘 어쨌다고?
[...정말 쓰레…. 흠흠…. 야만인 같은 몬스터 답군요]
뭐야.
뭔가 하려다가 말았던 말이 전혀 신경 쓰여!!
[수컷 오우거를 보고 변태 같은 생각을 하질 않나 망상에 빠져 혼잣말을 하질 않나…. 이번엔 이곳저곳에 흘리고 다니면서 막상 책임은 지지 않는….]
야야야야야야야!!
말은 똑바로 하라고?
네가 분명 `지렁이는 번식 안 합니까?` 라며?
난 그거에 실천했을 뿐이라고?
솔직히 같은 지렁이형 몬스터라면 이것저것 신경 써주겠다만 나랑 전혀 다른 종족인 늑대에게 신경을 쓰기에는 뭔가 거시기 하다.
뭐…. 애초에 늑대한테 그런 짓거리를 했다는 것 자체가 이상하지만?
에효.
일단 날 찾는다니까 가봐야겠네
가라! 시스게이션!
길 안내를 하는 거야
[....]
뭐야? 이럴 땐 개그를 받아줘야 재미있잖아!
[CPU가 녹아내릴 정도로 재미없는 개그를 들었기에 시스템을 다운합니다.]
``
``
``
``
와..
징하다 정말.
[뭐가 말입니까?]
너!
너 말이야!
어쩜 개그하나 못 받아줘서 30분 동안 꽁해져있냐?
[감성이 풍부한 저에게 그런 저질스러운 개그를 한 사용자 본인에게 물어보십시오]
.....
우씨!
시스의 30분가량 파업 덕분에 그 자리에서 흙이나 파먹고 있었다.
현재 도착한 곳은 올리오나 왕국에서 약간 벗어난 곳, 즉 세이린이 있다는 곳이었다.
온통 꽃밭으로 치장되어있는 곳으로 매우 질 좋은 토양이 자리 잡고 있었는데 말 그대로 이곳에다가 밭을 가꾸면 풍년이 들 것만 같았다.
[사용자 주변 10m 땅속에서 뭔가 다가옵니다.]
응?
땅속?
어떤 놈인지는 몰라도 땅속은 내 전문인데 감히 지렁이 앞에서 깝죽거려?
땅속이라는 말에 별 긴장감 없이 기다렸다.
그리고….
쿠르륵!
뀨?
아?
[지렁이네요]
응.
지렁이네
지렁이구나?
미안 지렁인데 지렁이라고 깝죽거려서….
땅속에서 깝죽거린다고 벼르고 있었는데 지렁이라서 봐줬다.
그런데 이 녀석 어떻게 밖으로 나왔지?
울프퀸도 그렇고 이 녀석들도 그렇고 별다른 이상을 느끼지 못하는듯 했지만, 나한텐 상당히 궁금한 이유였다.
"야! 누가 땅을 이렇게 헤집어놓으래!?"
뭐지?
이 박력감 넘치면서 익숙한 말투는?
뀨….
목소리가 들려오자마자 부들부들 떨며 내 뒤로 숨는 녀석을 보며 그동안 많이 당해왔구나! 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마침내 다가오는 인간을 보았는데….
[변한게 없군요]
순간 보톡스 한 트럭 찔렀는 줄 알았네
게임 세상으로 변해서 그런가? 나이를 먹질 않네
11년전 그때 당시 나이가 19살이라고 했으니 지금은 30대라는 소리다.
아니
벨로르 던전이랑 밖의 시간차가 많이 나니까 적게 잡는다 치면 26~7쯤 된다는 소린데….
저건 너무한다고 생각된다.
무슨 고등학생도 아니고….
가슴이 없어
가슴이….
[사용자의 눈에 음란마귀가 끼었습니다.]
왜?
수컷이라면 당연히 가슴을 봐야 하는 거 아니야?
[아닙니다.]
응.
시크하게 반박하는구나?
아무튼, 여고생 한명이 뛰어오더니 이내 내 머리를 아주 스메쉬하고 차지게 때린다.
"이런 유셀 좆만 한 것이 말은 더럽게 안 들어!"
....
[....]
유셀이 누군지 몰라도 참….
*******
"미안! 난 뀨 이 녀석인 줄 알고…."
퍽!퍽!퍽!
뀨..뀨!
머리를 사정없이 때리는 세이린을 보며 그저 하하거리며 웃고 있었다.
"그나저나 그동안 어디에 있었던 거야?"
`응? 나 8층에 있었는데?`
참고로 말하자면 여타 몬스터 통역기와는 다르게 세이린이 들고있는 몬스터 통역기는 나랑 대화할 수 있었다.
지난 8년간 새끼 지룡들의 언어를 분석해서 조금씩 수정 작업을 거쳤기에 가능한 일이라고 하는데 나한텐 너무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사용자가 자주 사용하는 `지렁이 언어 배워와`가 통하지 않겠군요]
억?
정말?
에이 상관없잖아.
어차피 저거 하나밖에 없는데
"8층? 역시 대충 예상하고 있었는데 8층까지 갔구나…."
세이린은 내가 8층에 있단 소리에 그렇게 놀란 반응이 아니었다. 하긴 대충 생각해봐도 8층 이상 넘어갈 몸뚱이였으니….
"그럼 9층에는 안 가봤어?"
`9층? 가봤지, 그런데 내 존재가 8층에 귀속이 되어버렸는지 9층에 정식으로는 못 가더라고`
시스를 제외한 누군가의 대화는 처음인지라 시간 가는 줄 몰랐다.
거기다 세이린이 `왜 남의 엉덩이를 깨물어?`라고 말하는데 지렁이 인생 처음으로 식은땀을 흘려봤다.
단순히 퀘스트로 시작해서 나중엔 그저 개인적인 욕심으로 행해진 일이다 보니 쉽사리 꺼내질 못했는데….
[개인적인 욕심이 아니라 개인적인 음욕이겠죠]
이 녀석…. 내 마음을 너무 잘 알아서 용서 할게♥
[닥치세요. 더러우니까]
겁나 시크하네.
누구한테 그런 말을….
[너님이라고 말했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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