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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렁이로 환생했다-17화 (17/45)

〈 17화 〉 가상현실게임(2)

* * *

음….

[으음…?]

음….

[으흐흐믐...?]

너 뭐하냐?

[따라 하고 있습니다만?]

왜 따라 하냐?

[심심해서…. 랄까요?]

시스 이 녀석이 어지간히 심심했나보다. 안 하던 짓까지 하는 걸 보면….

[그나저나 시스라는 이름…. 너무 막 지은 이름 아닌가요?]

뭐 어때? 편하고 부르기 쉬우면 장땡이지

난 계속 같이 붙어 다닐 녀석을 시스템이라고 부르기 싫어서 이름을 붙여줬다.

이름이라기보다는 애칭 같은 거지만 작명 센스에 대한 고질병이 있기에 그저 시스템의 두 글자를 떼다 시스라고 부르는 중이었다.

더불어 내 이름까지 지었다.

파르파산의 지룡이니 그냥 뚝 떼다 파르파…. 솔직히 말해서 파르페 같아서 싫었는데 이름 짓기가 귀찮아서 그냥 대충 부르는 중이다.

애초에 누가 내 이름을 불러줄 가능성도 적거니 해서 그냥 무시하는 중이다.

그러고 보니 요즘에 지상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들리던데 무슨 일인지 알아?

[자세하게는 모르겠지만 듣기로는 8주년 기념이라는 소리가 들리더군요]

8주년? 아아…. 격변의 날 8주년?

나름 정보를 모 운답시고 이리저리 살펴보고 있긴 하다.

현재 내가 있는 곳은 벨로르 던전 8층이다.

입구에 설치된 시공간의 결계와 구별 결계가 파괴되어 원상태로 1:1 비율로 시간이 돌아가는 상황이었는데 다행이라면 7층과 8층에 있는 균열은 여전히 존재하고 있었기에 격변의 날에도 변화가 찾아오지 않았었다.

크어어어!!

덥석!

가끔씩 찾아오는 맛난 간식거리를 넙죽넙죽 받아먹고 있으면 언제나 이렇게 있고 싶었지만 짜증 나게도….

슈르르륵….

뱃속에 얌전히 들어갔던 몬스터가 스르륵 사라지는 게 느껴졌다. 그리고 무엇인가가 몸 안으로 흡수 되는 게 느껴지는데 말 그대로 작은 상태에서는 `데이터`였다.

.....

나참.

이게 뭐야 진짜?

아무리 규칙이 어긋났다지만…. 이건 너무 하잖아?

나와 시스 녀석이 규칙을 깨버렸기에 내가 가지고 있던 특전이 완전히 사라졌다.

그러므로 인해 고유의 게임시스템이 사라져버렸기에 얼마나 성장했고 얼마나 커졌는지 알 수가 없었는데….

하필 내가 가지고 있던 게임시스템이 세상에 고착화 된것이다.

모한다르 행성 자체가 이계의 가상현실게임과 융합되어 또 하나의 `게임`처럼 되어버린 것이었다.

세상에 살고 있던... 아니 모한다르 행성에 살고 있던 모든 생명체는 또 하나의 0.1로서 데이터 형식으로 변화가 되어버렸기에 내가 뭔가를 먹으면 영양상으로 흡수가 되는 게 아니라 데이터 형식으로 이른바 `경험치`가 되어 몸으로 흡수가 된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내가 게임시스템을 가지고 있느냐?

그것도 아니다.

그냥 말 그대로 작은 상태에서는 몸으로 느낀다는 것이었는데 몇몇 `유저`들을 만나본 결과 날 버그 몬스터로 취급한다는 걸 알았다.

`뭐야!? 레벨이 ??이라니!`

`능력치는 왜 저러는 거야!?`

`운영자한테 신고해!`

등등 아무튼 지랄 같은 경험을 겪었다랄까?

다행이라면 이계의 운영자는 이 세계를 직접적인 관여를 못 한다는 것이었다.

말 그대로 작은 상태에서는 이벤트나 사소한 구조 관리만 가능할 뿐 모한다르 행성의 생명체에 대한 능력치 구현은 못 한다는 것이다.

음.

어떻게 하지?

[뭘 말입니까?]

아니.

이렇게 죽치고 있자니 심심하잖아.

8층을 완전히 지배한 지도 꽤 됐고…. 그렇다고 9층을 도전하자니 이게 또 안되고….

암울하게 됐지만 말 그대로 작은 상태에서는 난 8층 던전 보스로 변해있었다.

9층으로 내려가려고 할 때마다 입구에서부터 전해져 오는 의지랄까? 아무튼 그것이 날 자꾸 막아서는데 이걸 힘으로 어떻게 할 수도 없었거니와 다른 방법을 통해서 내려갈 수밖에 없었던 것이었다.

단지 다른 방식으로 내려가게 된다면 버그 플레이로 판별이 되는지 몇 시간이 지나면 8층으로 되돌아간다는 게 문제라면 문제였다.

[그래도 지상으로 나가는 것은 문제가 없지 않습니까?]

그래

그거라도 가능해서 다행이지 아니면 진작 자살했을걸?

모종의 방법…. 즉 땅굴을 파서 층과 층 사이가 아니라 아예 던전 밖으로 벗어나서 지상으로 올라가는 것은 버그로 취급이 되지 않는지 몇 시간 며칠이 지나도 8층으로 돌아가는 일은 없었다.

아직까지는 고렙 유저가 없는 모양인지 벨로르 던전의 2층까지만 출입한다고 한다.

심심해서 벨로르 던전의 입구를 통해 1층을 지나간 적이 있었는데 예전에 봤던 버그들은 물론 내 새끼들이 꼼지락거리면서 지나가는 게 보였다.

2m 수준인 것을 보니 아직 저렙수준의 지렁이였는데 그 뒤로 2층 3층을 쭉 지나 7층까지 지나가 본 결과 말 그대로 작은 상태에서는 기존에 있던 몬스터 + 지룡들로 채워져 있었다.

[오늘도 가실 생각입니까?]

가야 하지 않을까?

최근엔 시간 맞춰서 오는 유저도 많던데?

[저번 이계의 신…. 아니 운영자들이 경험치 이벤트라는 것을 행한 덕분에 고렙 유저가 빠르게 늘어나고 있습니다. 매번 이렇게 놀고 있다 보면 언젠간 사냥당하는 일이 벌어질 수 있습니다]

에이.

그래봤자 한참 남았는걸?

전에 보니까 로우커 한테도 쩔쩔매던 놈들이 언제 8층까지 내려오려고?

아니 설령 내려온다고 해도 감당이나 하겠어?

[사제나 팔라딘 3명 이상 그룹파티가 온다면 흉폭에 저항할 수 있습니다만?]

됐어 그땐 그때 생각해보지 뭐.

못해도 3년은 더 있어야 실현 가능한 일이잖아?

미래에 대한 일은 저 멀리 치워버리고 작은 몸을 최대한 크게 만들어 버리곤 땅굴을 파서 위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7층으로 올라가는 입구를 향해 맹렬한 속도로 올라가다가 균열의 끝부분에 닿는 즉시 좌측으로 고개를 틀어 7층으로 올라가는 것을 방지했다.

콰그그그그그그그그그그....

매번 이렇게 올라가는 거도 귀찮네….

직선으로 쭉 올라간다면 10분 안에 도착할 수 있지만 던전 밖으로 빠져나간 뒤 위로 올라가야 하는 상황인지라 못해도 4시간은 걸린다.

그만큼 벨로르 던전이 넓다는 말이었다.

시스 잠시 멍때릴테니까 도착하면 위로 올라가라고 말 좀 해줘?

[알겠습니다.]

4시간 동안 땅만 파기엔 너무 지루한 경향이 있기에 시스에게 맡겨두고 멍때리기로 했다.

지렁이의 시간 개념은….

[벨로르 던전을 빠져나왔습니다.]

이렇게 빠르답니다.

직선으로 향하던 방향을 바꿔 위를 향했다.

그리고

위로 올라가면서 서서히 몸을 작게 만들었는데 아무래도 덩치가 너무 크면 유저들이 기겁을 하기 때문에 임의 적으로 100m 수준으로 바꿨다.

그것도 많이 크다면 크겠지만 이것도 많이 줄인 상태였기에 상관치 않았다.

[10초 9초…. 3…. 2…. 1…. 올라갑니다.]

쿠그그극!!

"왔다!"

"모두 공격해!"

거참….

매번 느끼는 거지만 유저들의 반응이 거시기하다.

"파이어볼!"

"스팅거 스피어!"

"달빛 어스르기!"

수많은 스킬들이 나에게 날아오는 게 느껴진다.

그래봤자….

파삭!파삭!

내 몸에 닿자마자 순식간에 사라진다.

현실이 게임세상으로 변하고 난 뒤 내 몸에 일어난 첫 번째 변화인 항마력이다.

고렙 몬스터일 수록 마법과 이능에 대한 저항력이 높아지는데 이것을 항마력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20렙 이상 차이가 나는 몬스터들에겐 거의 통하지 않을 정도의 항마력 차이가 난다.

으음….

이 녀석들을 어떻게 해야 할까?

[그렇게 생각하셔도 공격도 못 하시잖아요]

쳇.

그냥 그렇다는 거지….

전에 유저 22명을 먹었던 일 이후 자의적으로는 공격할 수 없게 변해버렸다.

이것은 본능으로 느꼈다. 만약 자의적으로 공격을 하게 된다면 소멸하게 된다는 강한 느낌을 받았기에 함부로 공격할 수 없었다.

그나마 8층으로 돌아가면 이러한 본능이 사라지는데

아마 세상의 균형을 위해서 그런 제재를 가하는 것 같았다.

후후.

그래도 굳이 공격 못 한다는 말은 아니지

말 그대로 작은 상태에서는 `자의적` 공격은 할 수 없다는 뜻이다.

고로….

"파이어 피스!"

"아쿠아 붐!"

"검기일천!"

파삭!! 파삭!!

아아~

난 절대로 일부로 이러는 게 아니야!

공. 격. 받아서 쓰러지는 것일 뿐!

"으아악! 왜 이리로 넘어지는 거야!"

"피해!"

쿠구구궁!

어이쿠 이런~

실. 수·로 깔아 뭉개버렸네?

[오늘은~ 마법사 21명 기사 35명 그 외 몬스터 유저 52명을 깔고 뭉개셨습니다.]

오늘은 수확이 좋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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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바탕 유저들을 학살 아닌 학살을 자행하고선 몸의 크기를 줄였다.

몸 크기 2미터….

이 정도라면 충분히 수많은 유저들에게 다굴빵을 당할 수 있었지만 크기가 작아진 뒤로 유저들의 공격은 없었다.

[확실히…. 패턴이란 건 좋군요]

당연하지!

내가 이렇게 만들려고 얼마나 공을 들였는데!

지난 몇 달간 공들이고 공들인 몬스터 `파르파`의 행동 양식이다.

`덩치가 커지면 공격하고 작아지면 공격하지 않는다.`라는 패턴을 유저에게 주입하느라 얼마나 노력했는지 모른다.

그로 인해서 유저들 또한 덩치가 클 때만 미친 듯이 공격을 하고 작아진 현시점에서는 전혀 공격할 생각을 하지 않는다.

단!

뭣도 모르는 초보 유저의 경우는 이야기가 다르다.

"어? 여기에 몬스터가…."

보기엔 2m 크기의 지렁이가 매우 약해 보이는지라 목검으로 공격하지만….

딱!

퍼억!!!

목검이 내 머리에 닿자마자 눈에 모이지 않을 속도로 꼬리에서 뾰족한 돌기가 튀어나와 초보 유저의 머리를 꿰뚫는다.

참고로 말하자면 이런 것도 자의적 공격이라고 치부되었지만 `세상은` 작아진 상태에선 먼저 공격하지 않으면 된다. 라는 의지를 심어 주었다.

말 그대로 작은 상태에서는 유저가 선빵을 날리면 나도 공격 할 수 있다는 소리였기에 참지 않는다.

가끔씩 산 채로 먹기도 하고 고통스럽게 팔다리만 뜯어서 그대로 버려두기도 한다.

[덕분에 작은 상태의 파르파는 눈도 안 마주친다죠]

흠흠!

그래도 몸은 편하잖아?

꾸물꾸물….

몇 달간 행해진 행동으로 이제는 자유롭게 아캄 중립국을 기어 다니고 있었다. 맛있는 냄새가 풍기는 음식점을 기웃거리면 식당 주인이 음식을 들고 와서 나눠주기도 하는데 그럴 때면 가끔씩 8층에서 생성되는 광석을 채취하여 주기도 한다.

이럴 땐 손이 있다는 게 참 좋다.

오늘도 맛있는 냄새가 풍기는 어느 식당을 골라서 기웃거리는데 기쁘다는 듯 음식을 들고나오는 식당 주인을 보며 손에 들고 있던 작은 광물을 주며 음식과 바꿔 먹었다.

젓가락을 이용해서 음식을 뒤적거리며 먹는데 오랜만에 먹는 스파게티였다.

수많은 유저들과 기존의 인간(NPC)들이 젓가락질하며 스파게티를 먹는 날 보며 신기해한다.

뭘 봐?

젓가락질하는 지렁이 처음 봐?

[네 처음 봅니다.]

씁!

넌 다물어.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말하는 시스를 한번 몰아세우고는 나머지 스파게티가 담긴 접시 채 먹어버렸다. 물론 젓가락도 보너스로 먹어버리는 건 기본이다.

끄륵….

잘 먹었어~

입가심 스파게티를 먹고는 뒤돌아서 `빠빠이`한번 해주고는 다시 아캄 중립국을 한 바퀴 돌아다녔다.

요즘엔 이렇게 하는 게 삶의 낙이랄까?

가만 보자.

남은 광물이…. 4개네

앞으로 4번 더 먹을 수 있는 건가?

[비싼 아다만티움을 고작 먹는 것과 바꾼다는 사상이 아주 매력적이다 못해 빵 터집니다.]

에이.

너무 그러지 말라고?

나한텐 돈이란 개념이 필요 없다는 건 너도 알잖아?

[먹을 것을 먹기 위해선 돈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나한텐 이게 있잖아?

[그걸 팔아서 돈을 벌겠습니다.]

내가? 어떻게?

[....]

솔직히 말도 안 통하는 몬스터랑 누가 거래를 하겠어?

너도 알잖아? 몬스터 통역기는 나한테 통하지 않는다는 것? 그러니까 이게 최선의 방법이야.

애초에 아다만티움 중에서 가장 작은 거만 골라서 가지고 오니까 괜찮잖아

새끼손톱만 한 크기의 아다만티움도 엄청나게 비쌌지만 그나마 그것도 제일 작은 거라서 이렇게 활용하고 있는 중이었다.

솔직히 8층 흉폭의 협곡에서 가장 흔한 것이 아다만티움이다. 땅속 100m만 파 내려가도 수십 개가 튀어나오는데 그걸 주워다 이렇게라도 활용하니 얼마나 좋은가?

[강철보다 단단한 땅을 100m나 파 내려가는 게 쉽습니까?]

응.

적어도 나한텐 쉽잖아?

[....]

기본적인 지렁이 패시브 때문에 아무리 단단한 곳이라도 쉽고 빠르게 파 내려갈 수 있었다.

땅 자체가 아다만티움으로 되어있어도 쉽게 팔듯…?

이리저리 시장 구경을 하며 뭘 먹을까 고민을 하던 중 뭔가 거대한 그림자가 내 등 뒤로 드리우는데.

고개를 살짝 올려다보니….

어…. 개불이다.

[...개불이 아니라 오우거 거시기입니다만]

아…. 그래? 더럽게 크네

5m에 달하는 거대 오우거가 최대한 살며시 걸으며 아캄 시장을 활보 하고 있었다. 오우거라는 특성상 인간이 입을 수 있는 방어구를 착용하지 못하지만 성장함에 따라 가죽이 점점 질겨지고 튼튼해진다고 한다.

[특수 캐릭터 오우거를 가진 유저를 보니 상당히 강하겠네요]

응.

정력이 아주 강력할 거 같아.

[... 사용자의 정신 상태가 음란합니다.]

아 왜!

솔직히 저런 물건을 달고 다니는데 안 부러워?

같은 수컷으로서 부러운데.

못해도 40㎝ 이상.

굵기? 모르겠다. 아마 내가 가지고 있는 `내 누군가의 팔`의 팔뚝만 한데 저게 흥분해서 커진다면….

[변태]

...

인정한다.

나 변태 맞다.

케케케….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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